오십부터는 왜 논어와 손자병법을 함께 알아야 하는가 -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몰랐다는 걸 깨닫는 순간 100 최고의 안목 시리즈 1
모리야 히로시 지음, 김양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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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라는 궁금증으로 신청한 책이다. 말하지 않아도 하늘의 뜻을 헤아린다는 지천명인 오십을 넘어선지 한참인데, 그 어려운 고전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이제라도 알아야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 책은 91세 동양 고전 해설의 일인자라고 알려진 모리야 히로시가 현대에 맞도록 해석했다. 그는 어려운 동양 고전을 쉽게 해설하기로 정평이 난 데다, 단순히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강연자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헛헛한 마음에 이제라도 자신을 찾겠다거나,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모험에 떠나는 흔들리고 불안한 인생이 바로 오십이라는 저자의 말에, 나 역시 요즘 많이 흔들리고 있던 터라 마음이 동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인생의 한복판에 다다랐어도 여전히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 싶은데 그렇게 흔들리는 순간에 이 책은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둥글게 관계 맺는 데는 논어를, 무조건 싸우자 덤빌게 아니라 되도록 싸움을 피하는데 전력을 다하라는 손자병법은 혐오와 분노 사회인 이 시대에 분명 인생을 지혜롭게 만들어줄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라며 논어와 손자병법에서 엄선한 100가지 지혜와 전략을 소개하면서 제대로 읽으면 반드시 얻는 게 있다고 한다.


子曰, 基身正, 不令而行, 基身不正, 雖令不從​

자왈,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


'자기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기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 즉 리더가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실행된다. 리더가 바르지 않으면 어떤 명령을 해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저자의 리더십의 해석은 몸담고 있는 조직에 새로운 리더가 등장한 요즘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맞아 떨어져 마음에 와닿았다. 아울러 리더와 오너의 차이를 다시금 생각한다.


118쪽, 오십부터는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




오십부터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 묻는 저자의 질문에, 솔직히 오십부터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때쯤이면 있는 친구도 더 이상 안부를 묻지 않으면 솎아 내면서 그동안 피로했던 인간관계를 점점 가볍게 다이어트 하는 시기인데 뭐 하러 또 굳이 관계를 만들까.


또, 저자는 공자의 말을 빌려 익자삼우 益者三友를 말한다. 사귀면 좋은 세 종류의 친구로 강직하고 성실하고 박식한 친구로 友直, 友諒, 友多聞을 꼽는다.


한데 이런 류의 친구가 남은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십에 강직하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으면 울트라 꼰대가 분명하지 않을까? 뭐 성실이나 박식한 것도 다르게 보면 새로운 친구로 사귀는 것도 쉽진 않겠다 싶은데 내가 너무 부정적일까. 내 친구들은 익자삼우인가.


兵者, 詭道也

병자, 궤도야


병법은 상대를 속이는 것이라는 손자의 말을 삶은 속고 속이는, 그런 싸움의 연속이라는 저자의 해석에 순간 멈칫했다. 8년 동안 친형처럼 따랐던 인간에게 뒤통수 맞은 일이 상기됐다. 잊을만하면 그렇게 되는데 그런 게 삶이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216쪽, 살면서 경계해야 할 5가지 위태로움


故將有五危

고장유오위​


장수가 경계해야 할 5가지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지 말고, 살려고 발버둥 치지 말며, 화를 잘 내지 않고, 청렴결백을 고집할 것도 아니고, 백성을 지나치게 사랑하지 말라는 것을 손자는 꼽았다. 하여 저자는 무엇이 위태로움인지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마무리하는데 손자의 병법을 현대로 끌고 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 접목해 보자니 현실에는 쉽지 않지만 사실 죽자고 싸우다 진짜 죽는다는 말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되레 허를 찌른다.


이 책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다만 공자와 손자의 마음을 모두 헤아려 내 삶에 적용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덤이다.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놓은 저자의 해석은 분명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이 된다. 최고의 안목이 확실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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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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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우연히 방문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눈물 콧물 찍어내며 감동과 희열을 경험하게 했다던, 게다가 관람하고 나서 개미지옥처럼 오페라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만든 오페라가 어떤 작품이었을까 심히 궁금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한 문화콘텐츠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이서희는 <방구석 뮤지컬>,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00가지 고민에 대한 마법의 명언> 등을 펴냈다.


12쪽, 오페라 용어 해설



오페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용어부터 친절하게 담았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오페라가 문학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 오랜 시간 전, 위대한 문학가들의 글이 오페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지만 보통은 성악 정도로만 이해했는데 아차 싶다.


개인적으로 나와는 수준이 다른 어려운 예술로 여겨 오페라의 '오'자도 이해 못 하는 문맹 수준이라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이 책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라는 '피델리오'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그만의 인문학적 해석이 곁들여져 소개하는 25편의 서사가 남다르다. 특히 친절하게도 각각 QR코드를 통해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46쪽, 긴 기다림이 빚어낸 고결한 사랑: 율리시스의 귀환

https://youtu.be/Jk_MceHbzeM?si=_U7vIfmu1RclrRSv


그나마 좀 익숙한 율리시스의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로 수많이 회자되면서 율리시스에 초점이 맞춰있지만, 오페라는 페넬로페의 고결함과 정숙함에 초점이 맞춰 있다는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니 느낌이 새롭다.


베토벤, 헨델,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들의 이름이 등장하니 더 흥미로운데 오페라라고는 단 한편도 본 적이 없는 나로선 그나마 제목이라도 들어본 <피가로의 결혼>이 로맨스뿐만 아니라 모차르트가 신분사회를 대놓고 비판하는 작품이었다니 더 빠져든다. 구구절절한 미니와 래머레즈의 사랑을 노래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의 서사는 활자로 읽어도 짜릿할 정도다.


204쪽, 피로 얼룩진 욕정의 춤

https://youtu.be/BNUZsl3XBEY?si=Kj5eT39KOSNlGVGk


피로 얼룩진 사랑의 욕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살로메의 이야기는 목이 잘린 요한의 목을 들고 그의 입술에 키스를 퍼붓는 장면이 그대로 상상이 돼서 그로테스크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궁금해 QR코드를 찍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연기하는 살로메의 심정은 어떨까.


중국 공주 투란도트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하고 푸치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제자인 알파노가 완성해 현재까지 독특한 색채의 오페라로 사랑받는 작품이라는 저자의 설명 역시 작품을 감상한 사람이라면 애정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국립 오페라단의 공식 추천도서이기도 한 이 책은 작품의 줄거리를 쉽게 요약해 어렵다고 느꼈던 오페라를 친숙하게 만든다. 또 등장인물들이 노래하는 가사와 서사에 얽힌 내용을 인문학적으로 설명과 저자의 해석을 덧입혀 읽는 내내 흥미로움이 식지 않게 한다. 거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작품은 QR코드로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정말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은 몇 번 보긴 했어도 솔직히 오페라는 아예 생각도 안 했던 장르다. 한데 이 책으로 극장에 가지 않고 방구석에서도 오페라가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어쩌면 반음 정도는 지적 수준이 높아졌을지도. 그리고 더 이상 방구석에 있지 못하게 극장으로 등 떠미는 느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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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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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시대를 관통해 온 사람이라면 '물 좀 주소!'라는 노래, 아니 절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 갈급한 시대를 담은 사진이라니… 그것도 그렇게 검열되던 한대수라는 인물 담아낸 세상이라니 궁금했다. 많이.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2쪽


종신형이라니, 그에겐 삶이 통째로 고통이었으려나. 하기야 이 시대 저 시대 가리지 않고 살아 남아야 하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누군들 자유로울까.


내가 태어나기 10년 전이, 그에게는 전성기였다니…. 그와 나 사이에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 순간 열린 느낌이 들었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같은 그의 노래를 부르고 자랐던 나는 그를 동시대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41쪽

83쪽


그의 시선을 따라 가다가 1969년 뉴욕의 어느 거리, 원숭이가 올려진 히피 남자의 손목에서 멈췄다. 그의 가죽 팔찌에 달린 시계는 1986년, 고등학생이던 내 팔목에도 채워져 있었다. 흑백의 기억이긴 하지만 그때의 시간으로 느리게 되감긴다. ​


1969년에는 있던 창경원과 전차는 1979년에는 창경원만 남았을까? 엄마 손잡고 창경원에 가서 호랑이를 보고 기겁한 일은 기억이 있는데 전차를 탄 기억은 없다. 기록에는 서울전차는 1968년까지 달렸다는데 그의 사진은 1969년으로 기억한다. 뭐 어떠랴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을. 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태극기 아래 돌아 보는 여인이 그녀일까? 빨리 감기로 감아 버리는 그의 연애사는 잿빛에 가깝다. "뉴욕에서 이혼을 결정하는 파트너는 주로 여자다"라는 그의 말은 잡지 못하고 놓아주어야만 했던 마음이 짙게 베였다. 어쩌면 후회일지도. 명신이 떠난 후 그의 삶이 피폐했을까 마음이 쓰였다.


"매일같이 늘어나는 이 슬픈 인간들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파 진다. 홈리스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비단 뉴욕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이 현상이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된 사회의 결과물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다. 똑같은 한 인생, 똑 같이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태어났을 텐데, 쓰레기 취급을 받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오늘도 그들 앞을 무심하게 무심하게 지나간다." 161쪽


홈리스, 우리가 인상을 찌푸리거나 측은한 시선을 짓게 되는 또 다른 이름 노숙자. 대학을 막 입학했던 1989년, 숙대 앞에서 친구들과 진탕 술을 먹고 비틀거렸던 그곳에 박스를 이불 삼아 누워있던 그들이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체온을 나누던 그들의 안녕을 걱정했던가 떠올려 보지만 기억에 없다. 추워도 너무 추웠던 그때의 한파가 몰아닥친다.


그가 담아낸 세상 곳곳에 있는 그들의 사진들은 그렇게 무심히 지나쳤던 일을 아프게 끌어 당긴다.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고통의 밤을 지샐 그들의 안녕을 걱정하게 한다.


179쪽


책장의 대부분은 그가 바라본 1960년 대의 거리사진이 담겼다. 그리고 짧게나마 굴곡진 그의 인생 이야기도 있다. 또 그의 삶의 철학이나 따라 부르던 그의 노래가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알게 되는 건 덤이다. 아티스트 한대수를 이해하기 이만한 책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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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 타인의 감정은 내 책임이 아니다
캐런 케이시 지음, 방수연 옮김 / 센시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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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같은 말을 여러 심리 관련 책에서 많이 봐왔다. 나름 실천하는 중이기도 하다. 누구나 관계에서 타인에게 감정이 휘둘리는 일이 많은 세상 아닌가. 한데 문득 문득 타인의 감정을 살피지 않는 '직설적'으로 포장된 말들이 무례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자주 본다. 나 역시 그러고 있으리라는 짐작이 들기도 하지만.


제목에 '가르침'이란 타이틀을 버젓이 내 건 책의 저자도 그렇고, 장사에 대한 조언을 독설을 쏟아내는 걸로 유명세를 떨치는 유튜버도 그렇다. 그들을 읽고 보다 보면 꽤 많은 지점에서 불쾌한 감정이 든다. 그렇게 타인의 감정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의 말과 행동들. 정말 내 감정만 괜찮으면 괜찮은 걸까?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작가이자 강연가로 활동하는 캐런 케이시는 불행한 유년기와 알코올과 약물중독을 겪은 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날마다 새로운 시작>이란 책을 써내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 책이 10년 개정판이라니 좀 놀랍다. 10년이나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쓴맛을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


서문에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은 '만나기로 약속되었던 것'이 었다라고 하는데, '신'을 거론하며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식의 무슨 운명론 같은 주문처럼 들려서 살짝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는 대로 살아 간다'라는 말에는 빠져 들기도 한다.


이런 관계와 자신을 앎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 자신이 깨달은 삶의 태도에 관한 12가지 원칙을 소개하고 한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삶에 집중할 때 비로소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내려 놓기' 쉽지 않아서 욕심이 아닐까. 타인이 밀접해질수록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길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그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럴수록 그 관계는 피폐해진다는 조언 역시 팩트다. 대를 이어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지 마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엄마에 이어 아내의 따가운 눈총에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일관하는 이런 무심함에 상처는 잔소리 폭격을 당하는 내가 아닌 엄마와 아내가 받는다. 아마 양말 뒤축에 손가락 하나 넣을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그러지 않을까.


이 책은 얼마간 그런 심오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중 타인에게 '간섭'하는 일이 '인질로 잡는 일'이라는 표현이 마음 쓰였다. 저자의 이 지적은 부모의 간섭이 싫었던 과거의 일을 까맣게 잊고 아이들에게 '그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경험하고 결정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현명한 관계'라는 말이 공감 되면서 아들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38쪽, 그래서 뭐?

타인과의 관계에서 분노를 포함한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릴 때 '그래서 뭐?'는 마법처럼 치솟은 감정을 순식간에 식혀줄 수 있을까? 뒤이어 파트 3 '기쁨'에 대한 내용에서 '즐겁게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현재를 살 때만 가능하다며 미래의 걱정 따위는 이제 그만하고 절대적으로 현재를, 코 앞만 보고 살'라는 조언은 감전된 것처럼 찌릿함이 있다.


학생이 공부를 어쩜 이렇게 안 할 수도 있을까, 싶을 만큼 공부에는 도통 관심 없어 하는 아들에게 늘 하는 잔소리는 현재를 이렇게 살면 미래 네 인생은 더 불안해 진다는 협박인데, 아들의 현재가 마냥 즐겁고 행복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저자의 조언처럼 나는 쿨하게 웃으며 네가 행복하다면야, 라며 더 즐기도록 내버려 둬야 하나? 멘탈이 심하게 흔들린다.


106쪽, 짐을 내래놓아라


내게 유독 의지하는 친구가 있다. 근 40년 가까이 지내는 이 친구의 결정적 선택에 나는 매번 함께했다. 그리고 나는 도왔다, 고 생각 했는데 어쩌면 통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친구는 중대한 결정에 늘 어려워했고 내게 물었고 나는 조언이랍시고 아무 말 잔치를 벌였다.


여자친구와 갈등이 있을 때도, 대학에 들어 갈 때도, 군대에 갈 때도, 회사를 퇴사할 때도 나이 오십에 초혼이 재혼인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할 때도 어김없이 나는 친구의 결정에 선봉에 섰었다. 그래서 '자신이 돕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분노 섞인 비난을 듣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따끔 댔다. 술만 먹으면 후회하는 친구는 나를 비난하고 있을까.


"우리는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데 열심인 자아 때문에,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제로, 안 해도 될 논쟁을 매우 격하게 벌이곤 합니다. 아무래도 어떤 논쟁이든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모양인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논쟁을 끝까지 끌고 가지 않는 결정은 진정한 해방감을 줍니다." 186쪽, 옳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교육을 받았던가 아리송 한데, 내 생각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집념으로 끝장 토론을 즐겨 하는 편이라서 상대에게 적당히 져주는 식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이라는 저자의 말이 공감은 되지만 입맛이 씁쓸해진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줄여야 하는 것이 '말'이고 더욱이 내 생각을 고집스레 우기는 걸 피해야 함을 알지만 쉽지 않아서 저자의 말을 곱씹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타인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여러 가지 조언이 담겨 있어, 타인과의 관계가 힘들거나 스스로의 마음이 불안정 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느긋하게 마음 챙김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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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라면
김유리.김영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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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이 낯익었다. 그리고 반가웠다. '권익옹호'라는 거센 바람이 복지관으로 밀려들던 2017년, 새로운 사업 구상이 필요했다. 더 이상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패러다임을 바꿔보고 싶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 다다를 수 있는 '당사자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써보자! '했다.



<펜대: 나를 찾다>라는 이름의 에세이 출간 사업을 기획하고, 수많은 출판사에 요청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글쓰기 교육과 출간을 공익적으로 저렴하게 좀 도와 줄수 없느냐는, 좀 비굴모드를 장착한 내용이었다. 그러는 한편 함께 자신의 민낯의 이야기를 토해내 줄 당사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 장애 관련 인터넷 신문에서 우연히 간결하고 짜임새 있던 그의 글을 봤다.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일이 생각났다. 수줍지만 밝게 웃던 그였다.



그렇게 출판사와 당사자 8명이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 그들이 그렇게 배우고 쓰며 웃고 즐겼던 이야기는 <행복추구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벌써 5년 전의 이야기다. 이 책은 그 시간, 함께였던 그의 이야기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책은 직업재활상담사와 발달장애인이 인연을 맺은 14년간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보통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인 조력을 주고 받는 관계일 텐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는 관계라고 느껴진다. 단순히 장애인과 조력자의 관계가 아닌 공통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공동 작가, 딱 그만큼의 위치에서 앞으로도 우정이 계속되길 응원하게 된다.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은 날것의 글, 그게 잘 쓴 글이라는 김아영의 이야기에는 수긍하지 못했다. 다만, 김유리의 글이 빨간펜으로 좍좍 그어졌을 때의 곤혹스러움에는 공감 됐다. 그 자리에서 그의 글도, 내 글도 그렇게 빨갛게 물들었으니까.



사실 쓰는 이상 글이 아닌 글은 없다지만 모든 글이 문학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터라, 내용 중에 글로 고민하는 두 작가의 이야기에는 개인적으로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읽히는 게 아니라 초등학생이 읽어도 충분한 글을 쓰는 게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쉬운 단문, 그게 참 어렵다.



95쪽, 덕업 불일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자신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뤄낸 것 같다는 김아영의 소회에 살짝 미소를 짖는다. 글을 쓴다는 행위와 그를 통해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는 그들의 소박함과 발달장애인과 지원 인력들의 관계에게 글을 쓴다는 희망적인 모델이 되고프다는 바람을 응원한다.



작가에 대한 순수한 욕망이 묻어나는 김유리의 글에서 5년 전, 눈도 잘 맞추지 못하고 수줍기만 하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글쓰기에는 의욕 차고 넘치던 그가 떠올라 절로 미소를 짓는다.



묵직한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담백해서 좋았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꿈을 이뤄주려 하는 장애인재활상담사라는 관계성이 반복돼서 언급되는데 이 부분이 훈훈한 미담으로 폄하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가 '죽지 않으려'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됐지만, 그때 의욕적으로 글을 써내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앞으로는 행복한 글쓰기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애를 썼는데 그의 기억 속에 나는 '그 사람'쯤으로 남아 있다는 게 얼마간 섭섭함이 들었다. 어쩌면 질투일지도.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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