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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라면
김유리.김영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8월
평점 :
작가의 이름이 낯익었다. 그리고 반가웠다. '권익옹호'라는 거센 바람이 복지관으로 밀려들던 2017년, 새로운 사업 구상이 필요했다. 더 이상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패러다임을 바꿔보고 싶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 다다를 수 있는 '당사자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써보자! '했다.
<펜대: 나를 찾다>라는 이름의 에세이 출간 사업을 기획하고, 수많은 출판사에 요청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글쓰기 교육과 출간을 공익적으로 저렴하게 좀 도와 줄수 없느냐는, 좀 비굴모드를 장착한 내용이었다. 그러는 한편 함께 자신의 민낯의 이야기를 토해내 줄 당사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때 장애 관련 인터넷 신문에서 우연히 간결하고 짜임새 있던 그의 글을 봤다.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일이 생각났다. 수줍지만 밝게 웃던 그였다.
그렇게 출판사와 당사자 8명이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 그들이 그렇게 배우고 쓰며 웃고 즐겼던 이야기는 <행복추구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벌써 5년 전의 이야기다. 이 책은 그 시간, 함께였던 그의 이야기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책은 직업재활상담사와 발달장애인이 인연을 맺은 14년간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보통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인 조력을 주고 받는 관계일 텐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는 관계라고 느껴진다. 단순히 장애인과 조력자의 관계가 아닌 공통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공동 작가, 딱 그만큼의 위치에서 앞으로도 우정이 계속되길 응원하게 된다.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은 날것의 글, 그게 잘 쓴 글이라는 김아영의 이야기에는 수긍하지 못했다. 다만, 김유리의 글이 빨간펜으로 좍좍 그어졌을 때의 곤혹스러움에는 공감 됐다. 그 자리에서 그의 글도, 내 글도 그렇게 빨갛게 물들었으니까.
사실 쓰는 이상 글이 아닌 글은 없다지만 모든 글이 문학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터라, 내용 중에 글로 고민하는 두 작가의 이야기에는 개인적으로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읽히는 게 아니라 초등학생이 읽어도 충분한 글을 쓰는 게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쉬운 단문, 그게 참 어렵다.
95쪽, 덕업 불일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자신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뤄낸 것 같다는 김아영의 소회에 살짝 미소를 짖는다. 글을 쓴다는 행위와 그를 통해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는 그들의 소박함과 발달장애인과 지원 인력들의 관계에게 글을 쓴다는 희망적인 모델이 되고프다는 바람을 응원한다.
작가에 대한 순수한 욕망이 묻어나는 김유리의 글에서 5년 전, 눈도 잘 맞추지 못하고 수줍기만 하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글쓰기에는 의욕 차고 넘치던 그가 떠올라 절로 미소를 짓는다.
묵직한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담백해서 좋았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꿈을 이뤄주려 하는 장애인재활상담사라는 관계성이 반복돼서 언급되는데 이 부분이 훈훈한 미담으로 폄하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가 '죽지 않으려'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됐지만, 그때 의욕적으로 글을 써내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앞으로는 행복한 글쓰기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애를 썼는데 그의 기억 속에 나는 '그 사람'쯤으로 남아 있다는 게 얼마간 섭섭함이 들었다. 어쩌면 질투일지도.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