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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들
플로렌스 냅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9월
평점 :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세상에 도착했을 때 이미 누군가가 골라둔 몇 글자를 건네받고, 그것을 평생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이름에는 그것을 고른 사람의 바람과 기억도 스며든다. 누구를 닮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 한 집안이 오래 보존해온 역사까지. 이름을 물려준다는 행위에는 한 사람을 부르는 일을 넘어 그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먼저 건네는 의미가 있다.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생 앞에 놓이는 최초의 서사. 플로렌스 냅의 『이름들』은 바로 그 몇 글자에서 세 개의 삶을 펼친다.
1987년, 코라는 어린 딸 마이아와 갓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출생신고를 하러 간다. 남편은 집안의 남자들에게 대대로 이어진 자신의 이름 ‘고든’을 아들에게도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코라는 베어와 줄리언이라는 두 이름을 함께 떠올린다. 다정하고 용감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이름,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기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름. 출생신고서에 적힐 몇 글자를 앞에 두고 하나의 삶은 세 갈래로 나뉜다. 베어, 줄리언, 고든. 같은 날 태어난 같은 아이는 서로 다른 가족의 시간을 통과하며 다른 사랑을 만나고, 다른 상처를 입고, 다른 어른이 된다. 작명이라는 작은 선택을 세 개의 생으로 확장하는 순간, 소설 속 이름은 한 인간을 둘러싼 세계를 움직이는 첫 번째 사건이 된다.
세 갈래의 생을 따라가다 보면 ‘만약’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삶의 문법 안으로 들어온다. 그날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몇 분 먼저 혹은 늦게 도착했다면. 현재의 삶 뒤편에는 실현되지 않은 선택들이 셀 수 없이 겹쳐 있다. 『이름들』은 그 가능성 가운데 더 나은 생을 골라내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 삶에는 저마다 사랑과 상실, 다정함과 두려움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찾아온다. 어느 이름이 더 행복한 삶을 만들었는지 비교하려는 마음은 차츰 힘을 잃는다. 대신 지금의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관계의 교차 속에서 만들어졌는지가 드러난다. 현재의 나는 예정된 하나의 결과물보다 수없이 많은 가능성 가운데 현실이 된 하나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이름은 운명을 결정하는 주문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같은 아이에게 붙은 세 이름은 각기 다른 관계와 기대를 불러들이고, 그 관계는 다시 아이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스며든다. 로코 콸리아, 클라우디오 롱고바르디, 마누엘라 멘돌라, 라우라 엘비라 프리노는 「Names in Psychological Science: Investigating the Processes of Thought Development and the Construction of Personal Identities」(「심리학에서의 이름: 사고 발달 과정과 개인 정체성의 구성에 관한 탐구」)에서 이름을 개인 정체성의 형성과 연결해 살피며, 관계체계의 관점에서 개인의 이름을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표상하는 기표로 바라본다. 이름은 몇 글자의 소리만으로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선택했으며, 그 이름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불려왔는가와 함께 의미를 얻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베어’에는 누군가가 바란 용기와 다정함이, ‘줄리언’에는 또 다른 미래를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 ‘고든’에는 세대를 거쳐 보존되어온 가족의 역사가 포개진다. 같은 아이를 가리키는 세 이름에는 이미 서로 다른 관계의 가능성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름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완성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최초의 언어가 될 수 있으며,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까지 삶의 일부로 불러들인다.
그중에서도 코라의 작명은 이 소설에서 가장 절박한 선택으로 읽힌다. 아이의 이름을 정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단지 예쁜 몇 글자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어떤 역사를 이어주고 어떤 역사로부터 아이를 떨어뜨려놓을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다. 부모는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할 수 없고, 아이 대신 미래를 살아줄 수도 없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 안에서 무엇을 건네고 무엇을 건네지 않을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다. 그래서 출생신고서 앞에 선 코라의 망설임에는 미래를 통제하려는 욕망보다 한 아이에게 자기 삶을 살아갈 여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담긴다. 작명은 이 순간 축복이면서 저항이고, 사랑이면서 책임이 된다.
이름에서 시작된 상속의 문제는 이내 삶을 이루는 더 넓은 영역으로 번져간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 건네는 것은 성과 이름만이 아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두려움에 반응하는 태도, 가족 안에서 익힌 침묵과 기대, 남성과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이 되어 전해진다. 가족은 인간이 처음 사랑을 배우는 장소이며 동시에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을 처음 습득하는 장소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이후의 삶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의 세습으로 모습을 드러낸 상속은 그렇게 삶의 태도와 기억, 관계를 맺는 방식의 세습으로 범위를 넓혀간다.
세정 양, 양진 박, 파 토르는 「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 of Family Violence: A Narrative Review of Pathways from Childhood Exposure to Family Violence to Adult Intimate Partner Violence Perpetration」(「가족폭력의 세대 간 전승: 아동기 가족폭력 노출에서 성인기 친밀한 파트너 폭력 가해로 이어지는 경로에 관한 내러티브 리뷰」)에서 어린 시절 가족폭력에 노출된 경험과 성인기의 친밀한 관계 폭력 가해 사이에 나타나는 연관성을 기존 연구들을 통해 검토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폭력의 전승이 하나의 직선적인 경로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학습 과정뿐 아니라 감정 조절, 관계를 해석하는 인지 방식,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맥락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 가족 안에서 폭력을 경험했거나 목격했다는 사실은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미래의 행동을 하나의 방향으로 확정하지는 않는다.
『이름들』의 세 갈래 구조는 이 복잡성을 문학의 형식으로 펼쳐 보인다. 같은 뿌리에서 시작한 삶도 어떤 관계를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는가에 따라 물려받은 것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변형한다. 가족에게서 전해진 역사와 기억은 한 사람 안에 흔적을 만들지만, 그 흔적을 어떤 방식으로 읽고 살아갈지는 계속 달라질 수 있다. 물려받은 것은 삶의 조건이 될 수 있어도 완성된 운명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과 한 인간의 모든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이러한 상속의 문제를 강렬한 이미지로 옮겨놓는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자식을 삼키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다음 세대를 독립된 존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래된 욕망이 새겨져 있다. 부모가 자신의 가치와 질서를 자녀에게 물려주려는 순간, 사랑과 소유의 경계는 쉽게 흐려진다.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 건네고 싶은 마음이 아이의 삶을 자신의 연장으로 만들려는 욕망으로 변할 때, 다음 세대가 자기 몫의 존재가 될 공간은 좁아진다. 이름의 세습 역시 이러한 긴장 속에 놓인다. 물려준다는 말에는 다정함이 있지만, 무엇을 반드시 이어야 한다는 명령이 숨어들 때 상속은 무게가 된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하나의 이미지가 언제나 같은 의미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가에 따라 같은 그림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읽힐 수 있다. 작품 속 사투르누스가 지닌 의미 역시 한 번의 해석으로 닫히지 않는다. 그림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이 변하고, 달라진 시선은 다시 그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름들』이 세 개의 삶을 병치하는 방식도 이와 닮아 있다. 같은 이름과 같은 기억조차 어떤 생의 자리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얻는다.
그래서 상속의 반대말은 망각보다 선택에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전해진 모든 것을 지워내는 일보다 그 가운데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자신의 대에서 멈출 것인지 결정하는 일. 인간은 태어날 가족도, 처음 자신에게 붙여질 이름도, 어린 시절 자신을 둘러싼 세계도 고를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평생 같은 형태로 보존해야 할 의무까지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것을 해석하고 다시 배열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자기 삶의 몫을 만들어간다. 이름은 타인에게서 받은 최초의 문장이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살아가는 사람의 선택과 관계 속에서 계속 달라진다.
그렇다면 베어와 줄리언과 고든 가운데 누가 그 아이의 진짜 모습일까. 세 삶을 나란히 바라볼수록 어느 하나를 원본으로 세우기는 어려워진다. 인간 안에 하나의 완성된 자아가 먼저 존재하고 환경이 그것을 꺼내놓는다고 보기에는 세 삶이 너무 다채롭게 갈라진다. 관계가 달라지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랑과 상처의 경험이 달라지면 세계에 응답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핵을 보존하는 일보다 세계와 관계 맺으며 계속 형태를 얻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세 개의 이름은 세 개의 운명을 확정하기보다 한 사람 안에 존재할 수 있었던 서로 다른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낸 삶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그래서 선택하지 않은 삶의 결과를 확인할 수 없고, 다른 길의 자신과 만나 어느 쪽이 더 행복했는지 비교할 수도 없다. 『이름들』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현실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그 비교를 잠시 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세 개의 삶을 모두 바라본 뒤에도 정답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의 생을 하나의 선택이나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생 역시 지금의 삶 주변에 가능성의 형태로 존재하며, 지금의 자신 또한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현실이 된 하나의 모습이다.
처음 주어진 이름에는 타인의 바람과 가족의 역사, 아직 만나지 않은 미래가 함께 놓여 있다. 그러나 이름이 한 사람의 첫 문장이 될 수는 있어도 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정해둘 수는 없다. 삶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이어 쓰는 과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이해하고, 그중 무엇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며, 무엇을 다른 형태로 바꾸어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도 삶을 이룬다. 『이름들』이 세 개의 이름과 세 개의 생을 통해 펼쳐 보이는 가능성은 결국 그곳으로 향한다. 우리는 이미 쓰인 문장에서 시작하지만,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까지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도서출판 문학동네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이름에는 그를 부르는 이의 사랑뿐 아니라 가족의 역사와 기대, 아직 살아보지 않은 미래까지 함께 들어선다. 『이름들』은 세 개의 이름에서 세 갈래의 생을 펼쳐 보이며, 우리가 현재의 자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과 관계와 선택을 통과해왔는지를 섬세하게 더듬는다. 선택하지 않은 삶은 사라지는 대신 가능성의 형태로 현재의 나를 둘러싸며, 지금의 자신 역시 수많은 갈림길 가운데 현실이 된 하나의 모습임을 보여준다. ‘그날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를 한 번쯤 상상해본 독자, 정체성과 자유의지,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세 삶이 갈라지는 순간마다 자신의 가능성까지 겹쳐 읽게 될 것이다.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기억과 관계, 사랑과 상처가 한 인간에게 어떤 흔적을 새기는지 탐구하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더욱 깊이 읽을 만하다. 무엇을 물려받았는가에서 시작해 그것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로 사유를 확장하는 작품이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건너온 것들 가운데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자신의 삶에서 멈출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까지 세밀하게 응시한다. 이토록 치밀한 구조와 넓은 감정의 진폭을 한 권 안에 완성했다는 사실이 플로렌스 냅의 소설 데뷔작이라는 점을 더욱 놀랍게 만든다. 한 작가의 첫 장편에서 이미 완성된 세계를 발견하는 경험을 기다려온 독자에게, 『이름들』은 플로렌스 냅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만드는 강렬한 첫인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