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터닝 페이지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9월
평점 :
매달 마지막이면 한 달 동안 읽은 책을 한자리에 모은다. 몇 권을 읽었는지 세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책을 추리고, 짧게라도 기록을 남긴다. 그렇게 한 달의 독서를 숫자와 제목으로 정리하다 보면 목록과 기억이 꼭 같은 순서로 놓이지는 않는다. 분명 완독한 책인데도 금세 흐릿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몇 달 전에 읽은 책의 한 문장이 아무 때나 불쑥 되돌아오기도 한다. 읽은 권수는 정확히 셀 수 있지만 한 권이 사람 안에서 지속되는 시간에는 마땅한 단위가 없다. 독서가 쌓이는 일과 깊어지는 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그리고 독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수많은 문장을 지나온 뒤에도 이전과 똑같은 자리에 서 있다면, 그 시간은 어디에 쌓이는 것일까. 홍승완의 『터닝 페이지』는 30년에 걸친 독서와 500편의 서평에서 건져 올린 경험을 서른두 가지 독서 수업으로 풀어낸다. 정독, 문독, 심독, 재독, 교독을 거쳐 기록과 서평, 문장 수집과 필사, 체독에 이르는 과정은 한 권을 읽고 소비하는 시간보다 오래 품으며 관계 맺는 쪽에 무게를 둔다. 저자가 구분하는 ‘창고형 독서’와 ‘도끼형 독서’도 독서의 양과 깊이가 언제나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많은 지식을 차곡차곡 저장한 뒤에도 익숙한 사고의 테두리는 그대로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단 한 줄이 오래된 믿음을 건드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세계를 바라보던 방향을 조금 틀어놓는다. 독서의 깊이는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했는지보다 읽기 이전의 자신과 얼마나 다른 자리까지 이동했는지를 통해 드러난다. 책이 품은 세계 위로 독자가 살아온 삶이 겹쳐질 때 의미도 달라진다. 이해는 그 만남 속에서 계속 새로워진다.
책을 ‘거울과 창문’으로 바라보는 심독은 시선을 바깥과 안쪽으로 동시에 움직인다. 창문 너머에는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가 있고, 거울에는 그 앞에 선 독자가 비친다. 낯선 삶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시선이 돌아오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마다 다른 문장에 밑줄을 긋는 모습도 이와 닮았다. 누군가에게는 무심히 지나갈 한 줄이 다른 사람에게는 페이지를 오래 넘기지 못하게 한다. 책에서 무엇을 골라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고른 사람의 일부도 함께 나타난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동안 독자 역시 자신의 일부를 해석한다. 그리고 그 자기 이해에는 타인의 언어가 끼어든다. 마음속에서 이름을 얻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이 낯선 이야기를 경유한 뒤 처음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펼치면 밑줄은 어느새 당시의 독자를 가리키고 있다. 지금은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갈 문장 아래 여러 겹의 선이 그어져 있고, 현재라면 놓치지 않았을 대목은 아무 표시 없이 남아 있기도 한다. 글자는 그 자리에서 한 글자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책 앞에 다시 앉은 사람에게는 몇 년치 삶이 더해졌다. 경험이 늘고 가치의 순서가 달라지면 같은 말이 닿는 자리도 달라진다. 재독에서는 익숙한 내용과 과거의 자신을 함께 마주한다. 한 권을 사이에 두고 이전의 독자와 지금의 독자가 나란히 놓인다. 새롭게 발견한 의미에는 책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가능성과 그동안 살아낸 삶이 함께 스며 있다. 모든 독서는 자신이 서 있는 시간에서 이루어진다. 같은 페이지를 다시 펼칠 때마다 처음 그곳을 지난 뒤 살아온 몫까지 함께 얹힌다.
‘반려 고전’과 ‘반려 작가’는 한 번의 독서를 여러 시절로 이어준다. 오랜 시간 같은 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한 권 위에 자신의 여러 시절을 차례로 포개는 일이기도 하다. 스무 살의 밑줄과 서른 살의 밑줄이 다른 자리에 놓이고, 그 차이가 다시 다음 독서를 기다린다. 첫 번째 완독에서 남겨둔 몫은 다음 만남으로 넘어간다. 당시에는 살아보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웠던 대목이 훗날 자신의 경험과 맞물리고, 오래 곁에 둔 한 권에서는 그때마다 새롭게 발견할 자리가 생겨난다. 그렇게 반려하는 책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조금씩 포개진다.
읽은 것을 기록하는 일은 완독 뒤의 독서를 조금 더 이어간다. 밑줄 친 부분을 따로 옮겨두고 그 옆에 떠오른 생각을 적는다. 다시 서평으로 풀어내다 보면 처음에는 형태조차 없었던 생각도 조금씩 윤곽을 갖춘다. 머릿속에서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여겼던 내용도 글로 옮기려 하면 쉽게 막힌다. 무엇이 좋았는지, 무엇이 불편했는지, 왜 하필 그곳에서 오래 시선이 멎었는지 설명하려면 감상보다 한 단계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앞장을 다시 펼친다. 멀리 떨어져 있던 대목을 이어보고 처음 품었던 해석도 고쳐 쓴다. 완독 표시 뒤에서 시작되는 또 하나의 독서다. 저자가 서평을 통해 ‘그 책’을 ‘내 책’으로 만든다고 표현한 것도 이런 연장과 맞닿아 있다. 타인의 언어는 자신의 경험을 거치는 동안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이미 알고 있던 것과 맞대어보면 동의했던 생각이 의심스러워지고, 처음의 반박을 거두는 일도 생긴다. 기록은 그렇게 타인의 언어가 자신의 사유를 통과할 자리를 만든다. 쓰는 동안 흩어진 생각에는 순서가 생기고 멀리 있던 의미끼리 연결된다. 문장 수집 역시 아름다운 문구를 보관하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오랫동안 모은 것들을 한꺼번에 펼쳐보면 취향보다 많은 것이 보인다. 거듭 선택한 말들 사이에는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와 오래 생각해온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타인의 책에서 골라낸 것들이 한 사람의 사유가 지나온 자리를 기록하는 셈이다.
『터닝 페이지』의 독서는 마지막에 ‘체독(體讀)’으로 향한다.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을 손으로 옮겨 쓰고 소리 내어 되짚으며 책의 언어를 몸과 생활 가까이 가져온다. 앎과 삶 사이에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문장을 읽는 것과 실제 관계 속에서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는 일은 다르고, 익숙한 편견을 의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과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는 일도 다르다. 머리에서 이해한 것이 삶의 태도에 스며들기까지 그 거리를 건너는 과정이 필요하다.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자신이 안다고 여겼던 것을 실제 관계 안에서 다시 확인한다. 판단의 속도가 조금 늦어지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 앞에서 한 번 더 생각하며, 이전에는 지나쳤던 것을 알아차리는 변화도 그 과정에서 생겨난다. 지식이 반복되는 판단과 선택을 지나 습관에 스며들수록 책에서 배운 것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간다.
다음 월말에도 읽은 책의 권수를 세고 한 달의 독서를 정리할 것이다. 숫자로 남은 기록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좋은 기준이 된다. 다만 그 목록에는 적히지 않는 독서도 있다. 지난달 읽었지만 이번 달에도 계속 생각한 책, 다른 책을 읽다가 다시 펼쳐본 페이지, 몇 년 뒤에도 돌아가고 싶은 문장, 출처를 찾아야 할 만큼 생각 속에 오래 섞여버린 말들이다. 완독한 날짜는 적을 수 있어도 그 책을 마지막으로 생각한 날까지 기록할 수는 없다. 목록을 정리한 뒤에도 계속되는 독서가 있다.
『터닝 페이지』라는 제목은 그래서 책장을 넘기는 작은 동작보다 조금 긴 시간을 품는다. 페이지는 손끝에서 몇 초 만에 넘어가지만 그곳에서 만난 말이 생각을 거쳐 삶의 태도에 닿기까지는 훨씬 오래 걸린다. 어떤 페이지는 넘긴 뒤에 더 오래 읽힌다. 밑줄 속에서 되살아나고, 기록을 거치며 다시 쓰이고, 몇 년 뒤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펼쳐진다. 한 권과 함께 보낸 시간이 어느 순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면, 그때 넘어간 것은 종이 한 장만이 아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지난 뒤에도 이어지는 시간이 있다. 어쩌면 한 권을 깊이 읽는다는 것은 그 시간을 오래 살아보는 일에 더 가까울 것이다.
✏️도서출판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