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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 ㅣ 트리플 37
임솔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9월
평점 :
한 사람의 생에는 목격자가 없는 시간이 얼마나 많던가. 문이 닫힌 뒤에도 하루는 계속되고, 전화를 끊은 뒤에도 마음은 한동안 그 자리에 남는다. 함께 있었다고 기억하는 날조차 서로에게 같은 하루였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그중 몇 장면을 얻는다. 한때 보았던 표정, 오래 기억한 말, 함께 지나온 장소. 그리고 그것들을 이어 한 사람을 기억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빈칸은 쉽게 잊힌다. 오래 보았다는 이유로 많이 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임솔아의 소설에는 그 빈칸이 있다. 장면과 장면 사이, 기억과 기억 사이, 내가 본 것과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낸 시간 사이. 그 간격은 가까워진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바라볼수록 넓어진다. 알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에게 낯선 시간이 생겨나고, 이미 지나간 날에서 전에 보이지 않던 표정이 떠오른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의 삶에서 내가 차지하지 못한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서로 다른 방향이 함께 놓인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를 향해 다가가는 마음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려는 욕망을 품는다. 행동에는 이유를 붙이고, 표정에는 감정을 대응시키고, 반복되는 특징에는 이름을 붙이면서. 낯선 사람을 조금씩 익숙한 언어 안으로 옮겨오는 일. 언어가 촘촘해질수록 설명은 쉬워진다. 설명된 사람은 다루기도 쉬워진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생은 그 설명보다 자주 넓어진다.
「금빛 베드 러너」의 지윤이 오랫동안 익혀온 것도 사람들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세계의 문법이다. 그녀는 웃는 얼굴을 연습하고, 타인의 반응을 살피며, 자신에게 곧바로 주어지지 않는 의미를 배우려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지윤에게는 배워야 하는 언어가 된다. 반대편에는 지윤에게 너무도 선명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세계가 있다. 돌아가는 물체를 오래 바라보는 마음, 일정한 움직임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같은 세계 안에서 무엇은 상식이 되고 무엇은 해명해야 할 취향이 된다. 그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감각의 옳고 그름보다 다수의 익숙함이다.
도어 벨은 돌아가고, 지윤은 그것을 바라본다. 몇 시간이고 보고 싶다는 마음에는 복잡한 설명이 없다. 계속 보고 싶어서 본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에도 이런 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받아내기 전에 그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 모든 감각을 번역하려 들지 않는 시간.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서둘러 빈칸으로 취급하지 않는 시간. 사람에게는 자신의 언어로 옮길 수 없는 타인의 영역을 그대로 두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렇게 남겨둔 것은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당시에는 읽어내지 못했던 표정 하나가 오래된 기억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 것처럼.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빈칸을 만든다. 과거는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어린 도희가 보았던 얼굴과 지금의 도희가 떠올리는 얼굴 사이에는 같은 세월이 놓여 있지만, 두 얼굴의 의미는 같지 않다. 어린 눈에는 자신의 두려움이 먼저 보였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표정 안에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의 사정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 시간이 바꾼 것은 그날의 사건보다 그날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의 크기다. 어떤 기억은 아주 늦게 완성된다. 사건은 오래전에 일어났는데 그 안에 있던 마음은 수년 뒤에 도착한다. 그때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 지금의 자신에게는 보이고, 당시 확신했던 의미가 흐릿해진 자리에 다른 가능성이 들어선다. 뒤늦게 헤아린 마음으로 과거의 정답을 세울 수는 없다. 기억은 진실을 찾아내는 발굴보다 자신이 보았던 장면의 가장자리를 넓혀가는 일에 더 닮아 있다. 그 가장자리에서 사람은 처음으로 자신이 없던 곳에서도 타인의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런데 기억에는 실제로 지나온 시간만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쉴 곳」의 민영은 자신에게 없었던 시간을 기억의 자리로 불러들인다. 살아본 적 없는 장면 속에 자신을 놓아보고, 그곳에 있었을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았을지 그려본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그것을 떠올리는 마음만큼은 실제로 존재한다. 가지 않았던 길과 하지 않았던 선택, 다른 삶이 가능했다면 존재했을 자신도 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현실과 나란히 자란다. 실제의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가능했으나 살아보지 못한 과거 역시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하나의 눈이 된다. 사실의 증명 바깥에서도 삶을 움직이는 시간이 있다. 인간은 일어난 일만으로 자신을 만들지 않는다.
소설 또한 그런 시간을 만든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어린 시절을 따라가고, 가본 적 없는 방의 온도를 기억하게 하고, 경험하지 않은 상실을 한동안 자기 일처럼 품게 한다. 읽는 동안 빌려온 삶은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 곁에 놓이고,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바라볼 때 슬며시 끼어든다. 문학이 타인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창이라면 이 일은 너무 간단해진다. 창의 바깥은 무척이나 넓다. 소설은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 앞뒤에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이 있음을 함께 감각하게 한다. 인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도 그 사람이 전보다 쉽게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때 독자가 얻는 것은 타인에 관한 정답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삶의 넓이다. 소설은 보이는 것을 늘려주는 만큼 보이지 않는 삶의 크기도 키운다.
가까워진다는 말에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기억이 있고, 설명을 들어도 체험할 수 없는 감각이 있으며, 내가 없었던 시절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몸을 기울이는 것. 알지 못하는 마음 앞에서도 손을 거두지 않는 것. 이 책에서 돌봄은 이해의 완성을 기다리지 않는다. 떨리는 손을 멈추게 할 방법을 몰라도 그 위에 손 하나를 포갤 수 있고,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읽지 못하면서도 그의 행복을 바랄 수 있다. 이해보다 몸이 먼저 도착하는 순간. 임솔아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닿는 방식은 그런 작은 움직임 속에 있다.
책의 제목을 다시 바라보면 ‘보고 있지 않았던’이라는 말에는 묘하게 긴 시간이 들어 있다. 그때에는 볼 수 없었고 지금에 와서야 다르게 보이는 장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나 오래 상상함으로써 마음속에 생겨난 장면, 같은 것을 바라보고도 서로 다른 감각으로 살아낸 장면. 우리가 보고 있지 않는 동안에도 타인의 생은 계속된다. 몇 개의 표정으로 그의 마음을 완성하거나 한때의 행동으로 그의 시간을 고정하지 않을 때, 보이지 않는 시간은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넓이가 된다. 어떤 장면은 오래 바라보아야 하고, 어떤 장면은 볼 수 없다는 사실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한 사람을 오래 안다는 것은 그에 관한 장면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 아니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직 모르는 시간이 더 있다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생을 완성해서 건네받지 못한다. 몇 장면을 보고, 몇 장면을 놓치고, 뒤늦게 하나를 다시 바라본다. 그 사이에도 각자의 삶은 계속된다. 보지 못했던 장면이 남아 있기에 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모습보다 언제나 조금 더 넓다.
✏️도서출판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