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 기업가, 예언자, 감독 그리고 왕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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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멀리서 바라보면 사람은 작아진다. 한 시대의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는 지리와 자원, 제도와 기술, 전쟁과 경제처럼 개인의 의지보다 오래 지속되는 조건들이 놓인다. 『총, 균, 쇠』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바라본 세계도 그러했다. 문명의 격차를 몇몇 영웅의 탁월함으로 설명하는 대신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인간보다 오래 남는 환경과 구조를 살폈다.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서 그의 시선은 거대한 문명으로부터 한 사람에게로 좁혀진다. 대통령과 CEO, 스포츠 감독과 종교 지도자를 차례로 불러내며 그는 묻는다. 수많은 조건이 이미 주어진 세계에서도 한 사람은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 시대의 흐름이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과 한 사람이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순간을 우리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다이아몬드는 이 문제를 ‘햄릿 테스트’라는 흥미로운 사고실험으로 풀어간다. 셰익스피어가 일찍 죽었다면 동시대의 다른 극작가가 『햄릿』을 쓸 수 있었을까. 이 가정을 정치와 기업으로 옮기면 익숙한 위대함의 기준이 흔들린다. 스티브 잡스가 없었더라도 스마트폰은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고, 제프 베이조스가 없었더라도 온라인 유통 시장은 성장했을 것이다. 반면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처럼 특정한 신분과 능력, 시대적 조건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다른 누군가로 쉽게 교체하기 어렵다. 다이아몬드에게 중요한 것은 성취의 크기보다 그 사람을 역사에서 지웠을 때 생겨나는 차이다. 유명한 사람과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위대한 인물’을 기억하는 방식부터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대체 불가능했다는 판단 역시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추론이다. 실제로 그 사람이 사라진 또 하나의 역사를 살아볼 수는 없다. 『햄릿』이 없는 세계에서 또 다른 걸작이 태어났을 가능성도, 잡스가 없는 세계에서 스마트폰이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을 가능성도 확인할 길이 없다. 한 사람을 지워보는 사고실험은 그래서 역사의 정답을 알려주는 장치보다 인과관계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로 읽을 때 더 매력적이다. 이미 벌어진 사건은 너무 쉽게 필연처럼 보인다. 성공한 기업 뒤에서 탁월한 CEO를 찾고, 승리한 팀에서 명장을 발견하며, 번영한 국가의 중심에 위대한 지도자를 세우는 일도 그렇다.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과거는 언제나 현재를 향해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이 자연실험과 통계까지 동원해 개인의 영향력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꽤 의미심장하다. 성적이 나빠진 팀이 감독을 교체한 뒤 다시 승리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새 감독이 반등의 원인이라고 곧바로 말할 수는 없다. 극단적으로 낮아진 성적이 평균으로 회귀했을 수도 있고, 선수의 부상이나 일정, 상대 팀의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조직학자 제임스 마인들(James R. Meindl), 샌퍼드 얼리치(Sanford B. Ehrlich), 재닛 듀커리치(Janet M. Dukerich)는 1985년 논문 「The Romance of Leadership」에서 사람들이 조직의 복잡한 성과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리더십을 하나의 강력한 인과적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살폈다. 이들은 국가와 산업, 기업의 성과 변화와 리더십에 대한 관심을 비교하고 일련의 실험을 거쳐, 조직의 현실을 설명할 때 리더의 영향력을 두드러지게 인식하는 경향을 ‘리더십의 낭만화’라는 관점으로 해석했다. 한 사람의 힘을 실제보다 크게 평가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수많은 변수가 얽힌 조직의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리더’라는 인물을 인과의 중심에 세우는 방식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원인보다 한 명의 주인공을 기억하기 쉽다. 수십 개의 조건이 겹쳐 일어난 성공에는 영웅의 이름을 붙이고 실패에는 책임질 사람의 얼굴을 찾는다. 구조는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인간에게는 성격과 선택, 욕망과 결단이 있다.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개인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그리는 까닭에는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인간의 서사적 습관도 섞여 있다.

그렇다고 개인이 구조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이아몬드가 여러 분야의 리더를 비교할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그 사람에게 허락된 선택의 범위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도 이미 제도가 단단히 굳어진 조직과 결정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조직에서 전혀 다른 영향력을 갖는다. 대통령, CEO, 감독이라는 직함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는가에 있다. 여기에서 책이 말하는 ‘재량권’은 자유에 관한 문제와도 맞닿는다. 자유를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로 상상하기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것들의 범위로 바라본다면,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차이 역시 그 범위와 함께 커지고 작아진다. 자유는 의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의지가 현실의 결과로 이어지려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이 함께 주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량권은 개인의 자유가 현실 속에서 얼마나 멀리 뻗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은 책임의 크기와도 연결된다. 더 많은 가능성 앞에 서 있던 사람에게 우리는 그가 고른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묻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개인과 구조 중 어느 한쪽만 남기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뛰어난 능력만으로 시대를 움직일 수 없고, 강력한 시대적 흐름만으로 모든 결과가 미리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이 가진 능력과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 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와 우연히 맞아떨어진 시간이 함께 작동한다. 카마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레이철 카슨의 언어를 받아들일 사회적 토양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면, 뛰어난 CEO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조직에 놓였다면 같은 사람에게서 같은 역사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의 성취 안에는 언제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시대의 몫이 들어 있고, 시대의 흐름 안에도 특정한 순간 누군가가 선택한 몫이 스며 있다. 역사는 인간과 조건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기는 과정이라기보다 둘이 잠시 같은 시간에 포개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방향을 얻는 과정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리더의 능력을 몇 가지 자질로 정리하는 일보다 ‘언제’라는 제목 속 한 단어가 훨씬 중요해진다. 제목에 ‘언제’가 붙는 순간, 관심은 리더가 지닌 고정된 자질에서 그 자질이 실제로 힘을 가질 수 있는 조건과 시기로 옮겨간다. 결국 리더의 영향력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그의 선택이 현실에 개입할 수 있었던 순간까지 함께 살펴야 비로소 가늠할 수 있다. 다만 햄릿 테스트가 언제나 충분한 답에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망설여진다. 대체 가능성을 판단하는 순간에는 필연적으로 가정이 개입하고, 정치와 종교처럼 수많은 변수가 얽힌 역사에서 자연실험이 모든 조건을 깨끗하게 분리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 방법은 한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찬사와 비난을 몰아주던 시선에 제동을 건다. 누군가의 성공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능력만큼 그 능력이 작동할 수 있었던 환경을 함께 보고, 실패를 바라볼 때도 한 개인의 결함만큼 그가 움직일 수 있었던 범위를 살피게 한다.

『총, 균, 쇠』의 두께와 밀도 때문에 재레드 다이아몬드와의 만남을 망설였던 독자라면 이번 신작 역시 선뜻 펼치기 어려울 수 있다. 직접 읽어보니 이번 책은 조금 다른 다이아몬드를 만나는 경험이었다. 정치에서 기업으로, 스포츠에서 종교로 사례가 이동하고 하나의 물음을 여러 영역에서 반복해 시험하기 때문에 긴 논의를 따라가는 부담도 전작보다 덜했다. 무엇보다 거대한 문명의 흥망보다 사람 한 명의 선택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감각과 맞닿는 부분이 많다. 『총, 균, 쇠』가 인간을 둘러싼 거대한 조건을 바라보도록 시야를 넓혔다면, 이번 책은 그 넓어진 풍경 속에서 다시 한 사람의 자리를 찾아간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알고 난 뒤에도 인간의 선택을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이유. 그 사이에서 한 사람이 차지하는 몫을 가늠해보는 일이 이 책을 읽는 가장 긴 사유가 된다.

✏️도서출판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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