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근심
마리아나 레키 지음, 장혜경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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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근심을 품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다. 그것은 지나치게 사적인 감정처럼 여겨져서 종종 마음의 가장 안쪽으로 밀어 넣어진다. 타인의 삶이 또렷하게 빛나는 순간일수록, 나의 걱정은 유난히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인다. 이 정도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그러나 <온갖 근심>을 읽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가 품고 있는 걱정들이 생각보다 서로 닮아 있다는 사실을. 어떤 근심은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그 작은 균열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번져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문득 고개를 들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근심이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통과해 온 감정이라는 사실을. 서로 다른 삶에서 태어난 걱정들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비슷한 온도와 결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근심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간이 세계와 마주하는 하나의 방식처럼 바라본다. 우리는 흔히 걱정이 많다는 사실을 마음의 약함으로 해석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 감정은 삶의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과 결정되지 않은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연스럽게 흔들린다. 어떤 의미에서 근심은 삶의 균열이라기보다, 인간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감각에 가깝다. 삶이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이 여전히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다는 사실을 마음이 먼저 감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근심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세계를 더 섬세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하나의 창처럼 놓여 있다.

책에 실린 서른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거창한 사건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작은 감정들,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을 오래 들여다본다. 타인의 삶이 더 또렷해 보일 때 찾아오는 막연한 열패감, 사소한 걱정,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 이유 없이 마음을 붙잡는 생각들. 이런 감정들은 대개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바로 그 평범한 감정 속에서 인간의 오래된 질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은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가. 왜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살아가는가. 결국 이 질문들은 인간의 삶이 지닌 불확실성을 향해 이어진다.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하며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언제든 방향이 바뀔 수 있는 시간 속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근심은 그 불확실한 구조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근심이라는 감정의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인간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서로에게 가까이 데려간다는 데 있다. 각자의 마음속에서 자란 걱정들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꺼내는 순간 묘한 공통성이 드러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조차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안정된 존재였다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저마다의 불안과 가능성 사이를 건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의 흔들림을 어렴풋이 알아본다. 두려움과 불안, 망설임 같은 감정들은 결국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의 흔들림을 통해서야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알아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근심은 단순히 마음을 괴롭히는 그림자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은밀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결국 마리아나 레키가 서른아홉 편의 이야기로 건네는 것은 근심을 없애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옆에 잠시 앉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방법이다. 근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이 완전히 또렷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조금 흐릿한 상태로도 시간을 통과해 보는 것. 그렇게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때 근심 역시 이전과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은 더 이상 고쳐야만 할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또 얼마나 서로 닮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처럼 남는다. 어쩌면 삶이 완전히 선명해지는 순간은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흐릿한 자리에서, 근심과 나란히 앉아 잠시 숨 고르는 법을 배우게 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속의 근심도 더 이상 완전히 혼자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도서출판 현대문학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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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나쓰키 시호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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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키 시호의 <니키>는 금기를 소재로 삼지만 독자를 자극적인 영역에 오래 머물게 두지 않는다. 대신 더 근원적인 질문을 꺼낸다. 인간은 무엇으로 판단받아야 하는가. 욕망으로, 혹은 선택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을 ‘반복되는 선택의 습관’이라 보았듯, 이 소설은 인간을 순간의 충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결단의 존재로 바라보려 한다. 충동은 스쳐 지나가지만, 선을 넘지 않겠다는 의지는 매번 새로이 갱신된다. 작품 속에서 윤리는 거대한 도덕 명제가 아니라, 매일의 멈춤 속에서 가까스로 유지되는 균형에 가깝다. 행위 이전의 영역,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자리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래서 불편하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느리게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기다리기보다 단어 하나와 성향 하나로 상대를 고정해버린다. 욕망은 곧 정체성이 되고, 정체성은 곧 낙인이 된다. 고백은 해방의 언어인 동시에 통제의 장치이기도 하다. 어떤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이름은 설명이 아닌 분류가 되고, 분류는 곧 배제의 체계로 작동한다. 분류와 규정은 이해의 형식이라기보다 불안을 관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름 붙이기는 사유를 대신하는 가장 빠른 길이며, 그 속도는 종종 성찰을 압도한다. 타인을 규정하는 일은 결국 스스로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인간을 한순간의 명명으로 봉인하는 태도는 과연 정의로운가. 아직 행위로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까지 우리는 심판할 수 있는가. 판단은 안전을 보장할지 모르나, 동시에 인간을 단순화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겹친다. 바로 남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다름은 표면적으로는 ‘특별함’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관리되어야 할 위험처럼 취급된다. 장 폴 사르트르가 타인의 시선을 ‘타자의 지옥’이라 표현했듯, 인간은 타인의 눈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한다. 평범함을 향한 갈망은 결국 그 시선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싶다는 욕망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조금만 어긋나도 경계선을 그어버리고, 그 선 밖의 존재를 설명하기보다 경고의 표지로 삼는다. 다름은 설명되기보다 경계되고, 이해되기보다 경고된다. 평범함은 선택이 아닌 요구가 된다. 우리는 서로를 닮으려 애쓰며, 동시에 서로를 의심한다. 동일성은 그렇게 사회의 가장 손쉬운 안전장치가 된다.

결국 이 소설은 두 가지 두려움을 병치한다. 하나는 자기 안의 충동과 선택 사이의 긴장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시선과 자기 인식 사이의 긴장이다. 욕망을 품고도 멈추는 인간, 다르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같아지고 싶어 하는 인간. 이 모순은 병리라기보다 조건에 가깝다. 우리는 모두 어떤 가능성을 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쓴다. 어쩌면 인간의 존엄은 욕망의 순수함에 있지 않고,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사유의 능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단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 그 미세한 망설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힘일 것이다. 인간은 완결된 정의가 아닌 끊임없이 조정되는 상태에 가깝다.

<니키>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불편함이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선정적 자극이 아니라 사유의 요구에 가깝다. 인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려는 충동을 멈출 수 있는가.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봉인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타인의 내면을 두려워하는가. 이 작품은 답 대신 기준을 흔든다. 욕망이 아니라 선택을, 명명이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라고. 이 책을 덮고 금기의 이름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망설임의 시간이다. 어쩌면 문학의 역할은 단죄를 유예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유예의 틈에서, 인간은 비로소 단순한 범주가 아닌 복잡한 존재로 남는다. 인간을 쉽게 규정해온 언어를 의심해보고 싶은 이들, 윤리와 욕망의 경계를 사유해보고 싶은 이들, 타인의 다름 앞에서 멈추어 생각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소설은 오래 남는 질문이 될 것이다.

**출판사 해피북스투유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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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다커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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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다커>는 폭풍이 몰아치는 섬을 무대로 삼지만, 실은 한 가족의 내부 기압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바다가 길을 지워버리면 사람들은 한 공간에 남겨진다.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은 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풍랑을 만나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기억이라는 가장 불안정한 토대를 밟고 서 있는 이 공동체. 피로 묶였다는 사실은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듯 보이지만, 실은 각자가 따로 간직한 기억 위에 위태로이 세워진 구조일 뿐이다. 이 소설이 묻는 것은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사람들이 왜 서로를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붙들고 있는 힘은 애정인가, 아니면 오래전 장면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온 기억의 관성인가.

가족은 사랑으로 유지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랑은 추상적이고 기억은 구체적이다. 그리고 기억은 기록이 아닌 해석이다. 같은 식탁, 같은 폭풍, 같은 표정과 말 한마디가 전혀 다른 의미로 저장된다. 누군가에게는 농담이었던 문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낙인이 된다. 이렇게 어긋난 기억들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 관계는 더 이상 따뜻한 울타리가 아닌, 서로의 서사가 충돌하는 법정이 된다. 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오랜 시간 축적된 해석의 차이가 폭발하는 순간처럼 보인다. 그 과거는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기억은 언제나 주관의 언어로 번역되며, 그 번역은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고립된 섬은 물리적 배경이면서 동시에 은유이다. 조수가 차오르면 빠져나갈 길은 사라진다. 변명과 합리화의 여지도 함께 바닷속으로 잠겨 버리고, 가족 안에서도 빠져나갈 통로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섬 위에 남아 있는 것은 거센 바람과 각자가 붙들고 온 과거뿐이다. 타인은 내 멋대로 바꿀 수 없고, 각자의 기억에 저장된 과거는 수정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 위에 서로 다른 해석이 포개질 때, 진실은 더 이상 단수가 아니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더욱 가혹하다. 사랑은 거부할 수 있어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때로 가장 잔인한 심판자가 된다.

이야기의 서늘함은 존재의 문제로까지 번져간다. 마치 오래전부터 경계의 어딘가에 발을 걸치고 있는듯한 사람.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생과 사의 구분마저 흐릿해진다. 존재는 살아 있는 몸으로만 증명되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때도 여전히 지속되는가. 만약 우리가 타인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다면, 그 기억이 왜곡되는 순간 존재 역시 변형되는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은 죽음보다 기억의 지속을 더 두렵게 만든다. 사라지지 못하는 자, 각자의 해석 속에서 다른 얼굴로 남겨지는 자의 불안이 서사를 감싸고 있다.

이 소설은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관계의 구조를 드러내는 데 더 집요하다. 가족은 혈연이라는 사실로 묶여 친밀함을 약속하는 이름이지만, 그 내부는 하나의 세계가 아니다. 혈연이라는 관계는 실제로는 서로 다른 기억을 강제로 공존시키는 장치에 가깝다. 서로 다른 기억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할 때, 사랑은 때로 가장 연약한 연결 고리가 된다. 같은 시간을 살았다는 사실이 같은 세계를 공유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정말 같은 시간을 살았는가, 아니면 각자의 기억 속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의 인물로 스쳐 지나갔을 뿐인가. 어쩌면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는 타인의 형상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가족은 가장 가까운 타인이 된다.

<데이지 다커>는 단순히 범인을 찾는 이야기를 넘어, 고립된 공간에서 벗겨지는 인간의 얼굴과 가족이라는 구조의 균열을 오래 바라보게 하는 소설이다. 밀실의 긴장감 속에서 심리의 미세한 파동을 읽고 싶은 독자, 가족을 따뜻한 울타리로만 소비하지 않고 그 안의 침묵과 어긋남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이야기가 깊게 스며들 것이다. 또한 같은 사건이 어떻게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는지, 기억이 어떻게 진실을 비틀고 존재를 규정하는지 사유하는 독자에게도 잘 맞는다. 반전의 순간에 놀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이후에 남는 의미와 구조를 곱씹는 독서 취향이라면 더욱 그렇다. 결말보다 질문이 오래 남는 작품을 찾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

**도서출판 밝은세상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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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A 그리고 좀비 - 제9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배예람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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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사건이지만, 애도는 구조다. 흔히 죽음은 한 단어로 정리된다. 끝. 그러나 이 소설집에서 죽음은 마침표가 아닌 번지는 얼룩에 가깝다. 사라졌어야 할 몸은 다른 형태로 기묘하게 남아 있고, 남겨진 사람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세계는 이미 파괴되었는데 관계는 아직 파괴되지 않은 상태. 이 어긋남이야말로 작품집을 관통하는 진짜 재난이다. 파국은 도시를 무너뜨리기 전에 의미를 무너뜨린다. 좀비와 아포칼립스 설정은 공포의 외피일 뿐, 실은 끝났다고 선언할 수 없는 사랑을 붙들어 두는 장치처럼 작동한다. 종말 이후에도 지속되는 감정의 잔향이 이 이야기들의 중심이다.

몸은 가장 먼저 무너진다. 훼손되고 절단되며, 때로는 효용의 논리 속에서 자원으로 환원된다. 육체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지지만 여기서는 너무도 쉽게 붕괴한다. 살과 피가 더 이상 동일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순간, 인간이라는 범주는 흔들린다. 그럼에도 관계는 즉시 소멸하지 않는다. 형체가 변했는데도 이름은 남고, 기억은 집요하리만치 잔존한다. 누군가를 불러온 시간, 함께 건너온 계절들은 단번에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온전한 신체인가, 아니면 타인의 기억 속에서 계속 불리는 이름인가. 존재는 스스로를 증명하는가, 아니면 관계 속에서 승인될 때 비로소 유지되는가. 이 작품집은 존재의 기준을 육체에서 관계로, 생물학에서 윤리로 옮겨 놓는다.

애도는 그래서 감정이 아닌 선택의 형식이 된다. 이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저것을 여전히 인간으로 부르며 관계를 이어나갈지, 나에게 위협이 될지 모르는 저것을 제거할지. 이 선택은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간됨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완전히 보내지 못하는 태도는 나약함이 아니라, 관계를 단절의 논리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저항처럼 보인다. 형태는 파괴되었으나 함께 축적해 온 시간과 기억은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사랑은 육체를 잃고도 방향을 바꾸어 지속된다. 그저 형태를 잃었을 뿐,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애도란 잊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변형된 존재와 공존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긴 훈련에 가깝다.

좀비가 공허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 채 묻는다. 몸이 더 이상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닐 때, 사랑도 함께 끝나야 하는가. 혹은 사랑은 애초에 몸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함께 축적해 온 시간과 기억을 향한 것이었는가. 파괴된 육체와 남겨진 기억 사이에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경계를 넘으며 선택한다. 외면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남은 의미를 끌어안을 것인지. 타인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순간 인간의 범주는 다시 쓰인다. 배제는 간단하지만 인정은 책임을 동반한다. 누군가를 끝내 인간의 자리에서 밀어내는 순간, 그 경계는 언젠가 자신에게도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들은 암시한다.

네 명의 저자가 그려내는 것은 종말의 풍경이 아닌 잔존의 윤리이다.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것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 죽음 이후에도 계속 남아 있는 이름과 습관, 목소리의 흔적을 어떤 방식으로 품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 몸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지지만, 기억은 타인의 안에서 예상보다 더 오래 머문다. 인간은 스스로의 육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호명되고, 기억 속에서 연장되며, 책임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어쩌면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존재, 바로 그 태도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라짐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뒤에도 남는 방식으로 증명된다. 장르문학을 통해 존재와 관계의 근원을 사유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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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나탈리아 쇼스타크 지음, 정보라 옮김 / 스프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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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가족이라 부르던 것은 혹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던 진실 위에 세워진 잠정적 평화는 아니었는지. 평화로운 가족은 종종 말해지지 않은 것들 위에 위태로이 서 있다. 빚이라는 단어 하나가 가족의 한가운데에 떨어지는 순간 안정은 산산히 부서진다. 상실은 갑작스러운 비극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균열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잃어버린 것은 돈이 아닌 ‘괜찮다’고 믿어왔던 시간의 감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너진 자리에는 공백만 남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남는다. 누군가는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먼저 걱정하고, 누군가는 서툰 얼굴로도 끝내 냄비와 운전대를 잡는다. 사랑은 늘 다정한 표정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무뚝뚝하고, 때로는 계산적이며, 때로는 서툴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기의 순간 몸을 움직이는 쪽은 결국 사랑이다. 모성은 희생이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사랑과 모성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십대의 마음은 그 사이에서 세차게 흔들린다. 세상을 이해하기엔 충분히 자랐지만, 바꾸기엔 아직 너무나도 작다. 그래서 더 또렷하게 상처를 감각한다. 특히 스스로 설득해 얻어낸 존재, ‘예상 밖의 기쁨’이었던 한 생명과의 이별은 세계가 통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배우는 장면과도 같다. 그러나 완전히 빼앗기지는 않는다. 직접 발걸음을 옮겨 되찾는 순간 상실은 방향을 바꾼다. 무너진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의 관계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깨달음.

<상실>에서 상실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덜어냄에 가깝다. 거짓으로 겨우 유지되던 균형이 사라진 뒤에야 관계의 진짜 무게가 드러난다. 무너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상실은 파괴나 비어있음이 아닌 진실이 드러난 자리이다. 가족은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누가 남아 있는가로 증명되는 관계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랑, 불완전한 보호, 그럼에도 끝내 손을 놓지 않는 관계. 사랑은 때로 침묵 속에서, 때로 거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는, 가족.

서툴렀기 때문에. 며느리로서도, 할머니로서도, 딸로서도 아직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상실은 악의가 아니라 서투름에서 비롯되었다. 어쩌면 이 가족이 잃어버린 것은 안정이 아닌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모든 것을 잃는 기록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 거센 풍랑을 건너본 배처럼, 그들은 이제 파도의 결을 알고 있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가족은 다른 형태로 다시 이어진다. 돛을 단 듯, 서툴지만 방향을 잃지 않은 채 끝내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드러난 자리에는 끝내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남아 있다. 이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전형적인 가족 서사가 아닌 입체적인 여성 인물을 만나고 싶은 독자, 모성과 가족의 의미를 사유해보고 싶은 독자, 상실의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가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출판사 스프링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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