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온갖 근심
마리아나 레키 지음, 장혜경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2월
평점 :
사람들은 저마다의 근심을 품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다. 그것은 지나치게 사적인 감정처럼 여겨져서 종종 마음의 가장 안쪽으로 밀어 넣어진다. 타인의 삶이 또렷하게 빛나는 순간일수록, 나의 걱정은 유난히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인다. 이 정도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그러나 <온갖 근심>을 읽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가 품고 있는 걱정들이 생각보다 서로 닮아 있다는 사실을. 어떤 근심은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그 작은 균열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번져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문득 고개를 들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근심이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통과해 온 감정이라는 사실을. 서로 다른 삶에서 태어난 걱정들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비슷한 온도와 결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근심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간이 세계와 마주하는 하나의 방식처럼 바라본다. 우리는 흔히 걱정이 많다는 사실을 마음의 약함으로 해석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 감정은 삶의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과 결정되지 않은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연스럽게 흔들린다. 어떤 의미에서 근심은 삶의 균열이라기보다, 인간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감각에 가깝다. 삶이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이 여전히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다는 사실을 마음이 먼저 감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근심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세계를 더 섬세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하나의 창처럼 놓여 있다.
책에 실린 서른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거창한 사건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작은 감정들,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을 오래 들여다본다. 타인의 삶이 더 또렷해 보일 때 찾아오는 막연한 열패감, 사소한 걱정,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 이유 없이 마음을 붙잡는 생각들. 이런 감정들은 대개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바로 그 평범한 감정 속에서 인간의 오래된 질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은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가. 왜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살아가는가. 결국 이 질문들은 인간의 삶이 지닌 불확실성을 향해 이어진다.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하며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언제든 방향이 바뀔 수 있는 시간 속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근심은 그 불확실한 구조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근심이라는 감정의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인간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서로에게 가까이 데려간다는 데 있다. 각자의 마음속에서 자란 걱정들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꺼내는 순간 묘한 공통성이 드러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조차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안정된 존재였다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저마다의 불안과 가능성 사이를 건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의 흔들림을 어렴풋이 알아본다. 두려움과 불안, 망설임 같은 감정들은 결국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의 흔들림을 통해서야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알아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근심은 단순히 마음을 괴롭히는 그림자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은밀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결국 마리아나 레키가 서른아홉 편의 이야기로 건네는 것은 근심을 없애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옆에 잠시 앉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방법이다. 근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이 완전히 또렷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조금 흐릿한 상태로도 시간을 통과해 보는 것. 그렇게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때 근심 역시 이전과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은 더 이상 고쳐야만 할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또 얼마나 서로 닮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처럼 남는다. 어쩌면 삶이 완전히 선명해지는 순간은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흐릿한 자리에서, 근심과 나란히 앉아 잠시 숨 고르는 법을 배우게 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속의 근심도 더 이상 완전히 혼자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도서출판 현대문학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