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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나탈리아 쇼스타크 지음, 정보라 옮김 / 스프링 / 2026년 2월
평점 :
가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가족이라 부르던 것은 혹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던 진실 위에 세워진 잠정적 평화는 아니었는지. 평화로운 가족은 종종 말해지지 않은 것들 위에 위태로이 서 있다. 빚이라는 단어 하나가 가족의 한가운데에 떨어지는 순간 안정은 산산히 부서진다. 상실은 갑작스러운 비극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균열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잃어버린 것은 돈이 아닌 ‘괜찮다’고 믿어왔던 시간의 감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너진 자리에는 공백만 남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남는다. 누군가는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먼저 걱정하고, 누군가는 서툰 얼굴로도 끝내 냄비와 운전대를 잡는다. 사랑은 늘 다정한 표정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무뚝뚝하고, 때로는 계산적이며, 때로는 서툴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기의 순간 몸을 움직이는 쪽은 결국 사랑이다. 모성은 희생이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사랑과 모성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십대의 마음은 그 사이에서 세차게 흔들린다. 세상을 이해하기엔 충분히 자랐지만, 바꾸기엔 아직 너무나도 작다. 그래서 더 또렷하게 상처를 감각한다. 특히 스스로 설득해 얻어낸 존재, ‘예상 밖의 기쁨’이었던 한 생명과의 이별은 세계가 통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배우는 장면과도 같다. 그러나 완전히 빼앗기지는 않는다. 직접 발걸음을 옮겨 되찾는 순간 상실은 방향을 바꾼다. 무너진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의 관계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깨달음.
<상실>에서 상실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덜어냄에 가깝다. 거짓으로 겨우 유지되던 균형이 사라진 뒤에야 관계의 진짜 무게가 드러난다. 무너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상실은 파괴나 비어있음이 아닌 진실이 드러난 자리이다. 가족은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누가 남아 있는가로 증명되는 관계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랑, 불완전한 보호, 그럼에도 끝내 손을 놓지 않는 관계. 사랑은 때로 침묵 속에서, 때로 거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는, 가족.
서툴렀기 때문에. 며느리로서도, 할머니로서도, 딸로서도 아직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상실은 악의가 아니라 서투름에서 비롯되었다. 어쩌면 이 가족이 잃어버린 것은 안정이 아닌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모든 것을 잃는 기록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 거센 풍랑을 건너본 배처럼, 그들은 이제 파도의 결을 알고 있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가족은 다른 형태로 다시 이어진다. 돛을 단 듯, 서툴지만 방향을 잃지 않은 채 끝내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드러난 자리에는 끝내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남아 있다. 이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전형적인 가족 서사가 아닌 입체적인 여성 인물을 만나고 싶은 독자, 모성과 가족의 의미를 사유해보고 싶은 독자, 상실의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가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출판사 스프링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