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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나쓰키 시호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평점 :
나쓰키 시호의 <니키>는 금기를 소재로 삼지만 독자를 자극적인 영역에 오래 머물게 두지 않는다. 대신 더 근원적인 질문을 꺼낸다. 인간은 무엇으로 판단받아야 하는가. 욕망으로, 혹은 선택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을 ‘반복되는 선택의 습관’이라 보았듯, 이 소설은 인간을 순간의 충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결단의 존재로 바라보려 한다. 충동은 스쳐 지나가지만, 선을 넘지 않겠다는 의지는 매번 새로이 갱신된다. 작품 속에서 윤리는 거대한 도덕 명제가 아니라, 매일의 멈춤 속에서 가까스로 유지되는 균형에 가깝다. 행위 이전의 영역,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자리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래서 불편하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느리게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기다리기보다 단어 하나와 성향 하나로 상대를 고정해버린다. 욕망은 곧 정체성이 되고, 정체성은 곧 낙인이 된다. 고백은 해방의 언어인 동시에 통제의 장치이기도 하다. 어떤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이름은 설명이 아닌 분류가 되고, 분류는 곧 배제의 체계로 작동한다. 분류와 규정은 이해의 형식이라기보다 불안을 관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름 붙이기는 사유를 대신하는 가장 빠른 길이며, 그 속도는 종종 성찰을 압도한다. 타인을 규정하는 일은 결국 스스로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인간을 한순간의 명명으로 봉인하는 태도는 과연 정의로운가. 아직 행위로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까지 우리는 심판할 수 있는가. 판단은 안전을 보장할지 모르나, 동시에 인간을 단순화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겹친다. 바로 남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다름은 표면적으로는 ‘특별함’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관리되어야 할 위험처럼 취급된다. 장 폴 사르트르가 타인의 시선을 ‘타자의 지옥’이라 표현했듯, 인간은 타인의 눈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한다. 평범함을 향한 갈망은 결국 그 시선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싶다는 욕망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조금만 어긋나도 경계선을 그어버리고, 그 선 밖의 존재를 설명하기보다 경고의 표지로 삼는다. 다름은 설명되기보다 경계되고, 이해되기보다 경고된다. 평범함은 선택이 아닌 요구가 된다. 우리는 서로를 닮으려 애쓰며, 동시에 서로를 의심한다. 동일성은 그렇게 사회의 가장 손쉬운 안전장치가 된다.
결국 이 소설은 두 가지 두려움을 병치한다. 하나는 자기 안의 충동과 선택 사이의 긴장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시선과 자기 인식 사이의 긴장이다. 욕망을 품고도 멈추는 인간, 다르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같아지고 싶어 하는 인간. 이 모순은 병리라기보다 조건에 가깝다. 우리는 모두 어떤 가능성을 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쓴다. 어쩌면 인간의 존엄은 욕망의 순수함에 있지 않고,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사유의 능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단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 그 미세한 망설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힘일 것이다. 인간은 완결된 정의가 아닌 끊임없이 조정되는 상태에 가깝다.
<니키>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불편함이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선정적 자극이 아니라 사유의 요구에 가깝다. 인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려는 충동을 멈출 수 있는가.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봉인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타인의 내면을 두려워하는가. 이 작품은 답 대신 기준을 흔든다. 욕망이 아니라 선택을, 명명이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라고. 이 책을 덮고 금기의 이름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망설임의 시간이다. 어쩌면 문학의 역할은 단죄를 유예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유예의 틈에서, 인간은 비로소 단순한 범주가 아닌 복잡한 존재로 남는다. 인간을 쉽게 규정해온 언어를 의심해보고 싶은 이들, 윤리와 욕망의 경계를 사유해보고 싶은 이들, 타인의 다름 앞에서 멈추어 생각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소설은 오래 남는 질문이 될 것이다.
**출판사 해피북스투유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