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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염의 시대 - 28년 차 환경정책 전문가가 진단한 오염의 과학
정선화 지음 / 푸른숲 / 2026년 2월
평점 :
깨끗함이라는 감각은 언제나 눈으로 확인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투명한 물, 흰 벽, 냄새 없는 공기. 우리는 그런 표면을 보며 세상이 정돈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선화의 <대오염의 시대>는 바로 그 믿음의 틈을 슬며시 벌려 보인다. 오늘의 오염은 더 이상 연기처럼 하늘을 가리지도, 폐수처럼 강을 검게 물들이지도 않는다. 대신 거의 감지되지 않는 형태로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든다. 손에 쥔 물건, 식탁 위의 음식, 공기 중을 떠도는 미세한 입자들. 세계는 여전히 말끔해 보이지만, 그 고요한 표면 아래에는 수많은 화학 물질과 보이지 않는 잔여들이 떠다닌다. 이 책은 그 사실을 폭로하듯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질문 하나를 건넨다. 우리가 믿어 온 ‘깨끗함’이라는 감각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어쩌면 인간이 신뢰해 온 감각은 늘 표면에 머물러 있었고, 오염은 그 아래에서 조용히 시간을 축적해 왔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환경 재앙은 비교적 분명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스모그로 뒤덮인 도시, 오염된 강물, 쓰레기로 넘쳐나는 매립지. 위험은 눈앞에 있었고, 따라서 분노 역시 또렷했다. 그러나 지금의 오염은 훨씬 미묘하다.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화학 물질과 산업 기술은 동시에 우리의 몸과 환경에 축적되는 또 다른 흔적을 남긴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작고, 너무 널리 퍼져 있으며, 너무 일상적인 형태로 존재한다는 데 있다. 플라스틱 포장재, 방수 코팅 제품, 전자기기의 부품들. 인간은 언제나 편리함을 발명해 왔고, 그 발명은 종종 예상하지 못한 흔적을 세계에 남겨 왔다. 결국 대오염의 시대란 단순히 환경이 악화된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더 이상 위험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세계는 여전히 평온해 보이지만, 그 평온함은 어쩌면 이해되지 않은 채 지나온 수많은 선택 위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공포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오염의 시대>가 선택하는 태도는 분노보다 인식과 이해에 가깝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바라보고, 어떤 구조 속에서 오염이 만들어지는지 각종 데이터를 통해 차분히 설명한다. 화학 물질이 개발되고 산업 속으로 유입되는 과정, 규제와 정책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뒤따라가야 하는 구조, 그리고 소비자가 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방식까지. 기술의 낙관이 남긴 그림자들은 그렇게 역사가 되었고, 그 역사는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지도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오랜 시간 환경 정책의 현장에서 세계를 바라봐 온 사람인만큼, 그 지도를 꾸밈없이 정직하게 펼쳐 보인다. 책장을 넘길수록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막연한 불안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지만, 이해는 방향을 만든다는 것. 세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층위를 이해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이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오만과 무지 사이의 간극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수많은 물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물질들은 다시 인간의 몸과 환경 속으로 되돌아왔다. 이 순환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다. 오염을 만들어낸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영향을 함께 감당하는 하나의 생명일 뿐이다. 오염은 외부에 존재하는 재앙이 아닌 우리가 만든 세계의 또 다른 순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대오염의 시대는 단순한 환경 문제의 시대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는 시대이기도 하다. 자연을 이용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생태적 연결 속에 묶여 있는 하나의 존재로서의 인간이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감정은 의외로 차분하다. 두려움이나 절망보다는 세계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는 감각이 남는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전처럼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장면들이 생겨난다. 어떤 물건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산업과 정책을 지지할 것인지, 어떤 방식의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인지. <대오염의 시대>는 그 답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스스로 붙들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거대한 결단이 아닌 인식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인간은 이미 이전과는 조금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오염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서서히 달라진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순간부터, 우리가 믿어 온 ‘깨끗함’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환경 문제를 감정적 공포가 아닌 구조와 데이터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일상의 소비와 산업 구조가 환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한 독자, 그리고 환경 문제를 단순한 위기 담론이 아닌 인간의 선택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도서출판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