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기, 소유되기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지는 순간 삶이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라 믿는다. 집을 사고, 가구를 들이고, 통장에 숫자를 쌓아 올리면서 말이다. 그것들은 흔히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삶은 그렇게 조금씩 채워지고, 채워진 만큼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율라 비스의 <소유하기, 소유되기>는 그 익숙한 믿음을 아주 미세하게 흔든다. 우리가 어떤 것을 손에 넣는 순간 삶은 정말 더 넓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그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어떤 경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평생 붙잡으려 했던 것들, 안정이라 부르던 것들, 그리고 당연하다고 여겨 온 생활의 방식들이 과연 어떤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차근차근 되짚는다.

어쩌면 소유란 단순히 물건을 갖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것을 가진다는 것은 그 대상과 관계를 맺는 일에 가깝다. 집은 거처가 되지만 동시에 책임이 되고, 물건은 편리함이 되지만 동시에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것을 지켜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잃지 않기 위해 시간을 쓰고, 유지하기 위해 선택을 바꾸고, 더 나은 것을 향해 마음을 기울인다. 그렇게 삶의 방향은 서서히 수정된다. 소유는 삶을 채우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삶의 구조를 다시 짜는 사건이 된다. 우리가 삶의 빈칸을 물건들로 채워 넣는 동안, 그 물건들 역시 우리의 시간을 점유하고 선택의 방향을 조금씩 이끌기 시작한다.

율라 비스는 이러한 변화를 거대한 경제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사소한 장면들에서 생각을 끌어올린다. 가구 카탈로그의 문장 하나, 세탁기 같은 생활 가전, 집의 벽을 칠할 페인트의 색, 아이가 모으는 장난감 카드 같은 것들이다. 처음에는 단지 평범한 생활의 풍경처럼 보이는 사물들이다. 그러나 저자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순간 그것들은 조금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사물들은 단순한 취향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꿈꾸도록 길들여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징표가 된다. 우리는 물건을 고르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선택의 상당 부분은 이미 누군가가 설계한 욕망의 언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비는 단순히 무언가를 사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조금씩 유도하는 구조가 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가지면 만족할 것이라 믿지만 소비는 욕망을 끝내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 내며 다음 선택으로 우리를 밀어낸다. 하나의 물건을 갖는 순간 또 다른 필요가 생기고, 그 필요는 다시 다른 물건을 부른다. 그렇게 우리의 생활은 점점 더 많은 사물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정말 더 풍요로운 삶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더 많은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섣불리 답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온 소비의 리듬을 잠시 멈추어 바라보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면 처음의 질문이 조금 낯선 형태로 돌아온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 애쓴다. 집을 사고, 물건을 모으고, 조금 더 안정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의 방향이 뒤집힌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를 붙잡고 있었는가를 묻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유한다고 믿어 온 것들—집, 돈, 안정—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시간을 붙들고 우리의 선택을 묶으며 삶의 리듬을 조용히 바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유는 어떤 완성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관계에 가깝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갖는 순간 그것과 연결되고, 그 연결 속에서 조금씩 방향 지어지며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삶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소유해 온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어떤 질서와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서출판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