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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경찰관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7
플랜 오브라이언 지음, 이정화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평점 :
세상에는 고통으로 설명되는 지옥이 있다. 불과 형벌, 끝없는 고문으로 묘사되는 장소들. 그러나 어떤 지옥은 그런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같은 길을 다시 걷게 만들고, 같은 질문을 다시 듣게 하며, 이미 지나간 순간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되풀이하게 만든다. 플랜 오브라이언의 <세 번째 경찰관>은 바로 그런 지옥을 그려 보인다. 이 소설의 세계는 기묘하고 환상적이며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묘하게 서늘한 감각이 남는다. 세계가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잘못이 결코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이야기는 사소한 욕망에서 시작된다. 돈을 차지하기 위해 한 노인을 죽이고, 숨겨진 상자를 찾으려는 한 남자의 계획. 그 사건 이후 세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경찰들은 인간과 자전거가 서로의 원자를 교환한다는 이론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상자 속에는 또 다른 상자가 들어 있으며, 시간은 멈추거나 뒤틀린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기묘한 농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 세계의 균열은 점점 깊어진다. 논리는 여전히 작동하는 듯하지만, 그 논리가 가리키는 곳은 언제나 어딘가 어긋나 있다. 현실은 설명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설명될수록 더 낯설어질 뿐이다.
그 낯섦의 중심에는 ‘반복’이라는 구조가 놓여 있다. 세계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사건들은 끝나는 대신 되돌아오고, 길은 어딘가로 향하는 대신 다시 처음의 자리로 이어진다.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치가 현실을 천천히 접어 다시 펼쳐 놓는 것처럼, 이야기는 같은 장면을 향해 끊임없이 회귀한다. 그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폭력이나 죽음이 아니라,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시간은 벌이 되고 존재는 그 형벌을 견디는 방식이 된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언제나 반복 속에서 살아왔다. 비슷한 아침을 맞이하고, 익숙한 길을 걷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다시 이어 간다. 그 반복이 평온한 일상일 때도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것이 탈출할 수 없는 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 번째 경찰관>은 바로 그 감각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삶이 아닌 형벌로서의 반복,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간이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세계. 이 소설의 기묘한 유머는 결국 그 사실을 은근히 드러내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웃음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지나온 길을 계속해서 다시 걷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 작품을 덮고 나면 오래 남는 장면은 어떤 사건도 아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상태, 세계가 조용히 같은 자리를 맴도는 그 정적이다. 이야기는 결론에 도달하는 대신 처음의 문장으로 미묘하게 되돌아간다. 그 순간 이 소설은 하나의 철학적 사유로 변한다. 삶이란 직선이 아니라 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보이지 않는 궤도 위에서 끊임없이 같은 장면을 통과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문득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했던 ‘영원회귀’가 떠오른다. 지금의 삶이 그대로 무한히 반복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세 번째 경찰관>의 세계는 그 질문을 조용히 현실로 만든다. 불길도 형벌도 없이, 다만 같은 길을 다시 걷게 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언젠가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나간 장면 속으로 다시 들어와 버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탈출해야 할 장소는 세계가 아니라, 끝내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도서출판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