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ㅣ 도트 시리즈 5
육선민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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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 너무 오래 그 자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풍경처럼 굳어진 존재들. 누구도 이름을 부르지 않아 침묵 속으로 가라앉은 것들. 육선민의 『비에』는 바로 그런 존재에게 한 사람이 다가가 “내가 보여?”라고 묻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 질문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오랫동안 사물로만 취급되던 존재를 다시 세계 안으로 불러들이는 행위에 가깝다. 학교 전시실에 놓인 낡은 안드로이드 비에는 그전까지 누구에게도 삶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다 하나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동시에 ‘비에’라는 이름을 건네는 순간부터 그는 비로소 하나의 존재가 된다. 사랑은 거창한 감정 이전에, 누군가를 익명의 부품에서 단 하나의 “너”로 바라봐주는 일이다.

작품 속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 비에는 외로움을 배우고, 기다림을 견디고, 상실을 두려워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생명은 과연 육체의 온도로만 결정되는가. 금속과 회로로 이루어진 존재가 인간보다 더 간절하게 사랑을 배우는 순간들은 처연하고 아름답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살아 있는 것과 쓸모 있는 것을 같은 의미로 취급해왔다. 기능을 다한 존재는 쉽게 밀려나고, 효율을 잃은 생명은 금세 교체된다. 작품 속 안드로이드와 복제인간은 미래의 비극이라기보다, 이미 지금 우리 곁에서 반복되고 있는 삶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기대를 수행할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증명되는 삶.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유용해야만 하는 삶. 『비에』는 그런 세계 속에서, 존재는 정말 쓸모로만 증명될 수 있는가를 바라보게 만든다.

사랑은 한 존재를 살아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시 누군가의 목적 안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게도 만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 자기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에』 속 애정은 아름답기만 한 감정으로 머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소모하면서까지 타인의 세계 안에 남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존재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존재 이유가 결정되는 삶. 타인의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삶. 작품은 그런 슬픔이 얼마나 오래 한 존재를 잠식하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이란 서로를 구원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족쇄가 되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의 심장과 기계 심장, 이식과 대체, 복제와 교체. 수없이 바뀌고 옮겨지는 것들 사이에서도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마음이다. 심장은 피를 순환시키는 기관인가, 타인을 사랑하게 만드는 감정인가, 혹은 단 한 사람의 이름을 오래 붙들고 놓지 못하는 기억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기능하는 상태가 아니다. 어떤 존재를 자신의 세계 한가운데에 두고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일에 가깝다. 작품은 육체라는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한 존재를 정말 그 자신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몸은 바뀌고 부속은 교체되지만, 어떤 존재는 오래도록 한 이름 앞에 붙들린 채 살아간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고 능력이나 언어가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애도의 힘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러진다는 것. 그 한 번의 호명은 한 존재를 살아가게 만들기도 하고, 자기 삶을 갖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쉽게 대체 가능한 부품처럼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단 한 사람의 시선 안에서만 겨우 자신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결국 우리는 자신을 불러준 목소리의 방향으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존재를 기다리며 긴 시간을 건너가는 일. 존재하고 싶었던 이들의 가장 외롭고도 다정한 생존 기록, 『비에』. 삶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었던 것은, 살아갈 이유가 아닌 자기 존재를 기억해줄 단 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발견된 순간 이후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비에』를 권하고 싶다. 오래도록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왔던 사람, 타인의 기대 안에서만 겨우 존재를 허락받는 기분을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 사람에게. 이 소설 속 ‘비에(vie)’는 삶이라는 뜻을 가졌다. 그러나 작품이 말하는 삶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 안에서 처음 자기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이며, 단 한 사람의 이름을 오래 기억한 채 끝까지 사라지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에 가깝다. 그래서 『비에』는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삶이 되어본 적 있는가. 혹은, 누군가를 삶처럼 붙들어본 적 있는가.

✏️도서출판 아작으로부터 비에 붐업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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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셋 (THE 3ET)
오준석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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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도 국경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공간, 우주. 인간은 오래전부터 그 광막한 어둠 속으로 도망치듯 시선을 던져왔다. 하지만 『더 셋』을 읽는 동안 떠오른 것은 해방감보다도 이상한 답답함이었다. 아무리 먼 행성으로 향해도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황폐해진 행성에 불시착한 세 인물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뢰하지도 못한다. 예민함과 충동, 불안과 집착으로 뒤엉킨 이들은 어딘가 조금씩 망가져 있다. 그런데도 혼자가 되지는 못한다. 우주의 끝에 도착해서도 인간은 결국 또 다른 인간 옆에 주저앉는다. 사람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완전한 고립 속에서는 서서히 자기 존재를 잃어간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상처 입을 가능성 역시 커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은 반복해서 타인에게 몸을 기울인다.

<스타워즈>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의 신념과 운명을 논했다면, <솔라리스>는 미지의 존재 앞에서 인간 정신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들여다보았다. 『더 셋』은 그 두 방향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 총성과 추격, 기묘한 사건들이 쉼 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작품의 시선은 바깥보다 인간 내부를 향한다. 작가는 외계의 공포를 괴물이나 재난 자체에만 두지 않는다. 말라붙은 행성과 기괴한 존재들보다 더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인물들 내부의 풍경이다. 통제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불안, 순간의 욕망을 견디지 못하는 충동, 누군가를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버려지길 두려워하는 마음. 우주는 흔히 미지의 공간으로 묘사되지만, 우리가 가장 오래 해독하지 못한 미지는 결국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셋』의 우주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장소라기보다, 인간 안의 어둠이 외부로 드러난 거대한 내면처럼 느껴진다.

서로를 향해 짜증을 내고, 의심하고, 이용하면서도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세 사람. 그 모습은 아름다운 우정보다 오래 지친 관계에 가까운데, 이상하게도 그 서투름이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현실의 관계 역시 대개 그렇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람보다, 서로의 모난 부분을 견디며 겨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는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해서 곁에 남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포기하지 못해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 불편하고 초라한 공존의 형태가 우주라는 극단적인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관계가 화해나 성장의 언어로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인은 안식처인 동시에 끊임없이 자아를 뒤흔드는 침입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계는 언제나 친밀함과 경계 사이를 위태롭게 왕복한다.

이들의 동행은 위로나 성장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존재 앞에서 각자는 자기 안의 공허를 더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자기 결핍을 더 자주 발견한다. 관계란 서로를 완성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가 감추고 있던 불안과 결핍을 끊임없이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받으면서도 또다시 타인을 향해 걸어간다.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 존재를 끝까지 혼자 감당하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비로소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생물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오해받고, 때로는 외면당하면서도 완전히 관계를 놓지 못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고독은 인간을 잠시 안전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끝내 살아 있게 만들지는 못한다. 

『더 셋』은 결국 완전한 치유나 숭고한 연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상처 입은 인간들은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조차 서툴고 불완전하다. 다만 이 작품은, 인간이 본래 그렇게 미완의 상태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가장 낯선 외계는 머나먼 행성이 아닌 인간 내부에 존재하고, 인간은 그 낯섦을 견디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평생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사실 관계란 서로의 불투명함을 견디는 능력 위에서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불편하고도 오래된 인간의 조건을 폭발과 농담, 불시착과 생존의 풍경 속에 숨겨놓은 소설, 『더 셋』.

우주의 끝에 도착해서도 인간은 결국 또 다른 인간 옆에 주저앉는다. 『더 셋』은 바로 그 초라하고도 오래된 인간의 습성을 우주라는 극단적인 공간 위에 펼쳐놓는 소설이다. 타인과 가까워질수록 더 깊은 고독을 경험해본 사람, 관계 속에서 안도와 피로를 동시에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불시착을 낯설지 않게 통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스타워즈>식 우주 활극의 속도감 속에서도 <솔라리스>가 품고 있던 실존적 불안을 발견하고 싶은 독자, 완전한 구원보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견디며 유지되는 관계의 형태에 더 현실적인 진실이 있다고 믿는 독자에게도 깊은 흥미를 남긴다. 『더 셋』은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실은 왜 인간이라는 존재가 왜 끝내 타인을 포기하지 못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서로의 고독을 해결하지 못한다. 다만 그 고독이 완전히 밀폐되지 않도록 옆에 앉아 있을 뿐이다.

✏️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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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공약 - 표와 피의 잔혹사
김주석 지음 / 9월의햇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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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 되면 거리에는 늘 미래를 약속하는 문장들이 내걸린다. 더 안전한 도시,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내일. 사람들은 그 문장들 앞에서 잠시 희망을 믿는다. 김주석 작가는 그 희망의 언어 아래에 얼마나 많은 욕망이 숨어 있는지를 들춰낸다. 이 소설 속 공약들은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한 약속이 아니다. 누군가의 지지율이 되고, 누군가의 생존이 되며, 누군가의 탐욕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 된다. 피를 흘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지만, 그 피 냄새 뒤에는 언제나 “더 나은 미래”라는 말이 붙어 있다. 살인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언어의 위선을 다루는 소설. 가장 잔혹한 욕망은 대개 가장 정의로운 문장 속에 숨어 들어간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오래 견디기 위해, 그것에 언제나 명분을 덧씌운다. 그래서 정치의 언어는 때때로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진실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민주주의는 이상으로 유지되지만 현실은 종종 가장 원초적인 욕망 위에서 굴러간다.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표한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늘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은 두려움과 이익을 잃지 않고 싶은 계산이 섞여 있다. 정의를 좇던 발걸음이 서서히 욕망의 편으로 기울어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인간은 신념을 따라 살아간다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신념의 형태로 이해하며 살아간다. 더 두려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스스로를 악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잔혹해서 타락하기보다, 자신에게만은 예외가 허용된다고 믿는 순간 조금씩 무너진다. 정치가 위험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거대한 이념은 언제나 개인의 욕망을 숨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숭고한 얼굴을 하고 있으므로.

그래서 이 소설 속 선거는 축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미래를 이야기하는 민주주의의 장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는 거대한 전쟁터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누군가는 부를 얻기 위해 움직이며, 누군가는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상대를 파괴하려 한다. 표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공포와 탐욕, 분노와 생존 본능이 함께 들어 있다. 선거철마다 사회 전체가 예민해지고 서로를 향한 혐오가 짙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존을 전제로 유지되지만, 선거의 순간마다 사람들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제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투표는 이상을 선택하는 행위라기보다, 때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최악을 고르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악’이라는 단어가 반복될수록 민주주의는 조금씩 냉소의 언어를 닮아간다. 모두가 더 나은 세계를 말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파멸을 늦출 수 있는 방향을 택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명분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리고 그 명분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더 나은 지역 발전, 시민의 삶, 정의로운 정치, 공정한 사회. 하지만 그 문장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결국 그 안에는 개인의 욕망과 두려움이 얽혀 있다. 노골적인 악은 쉽게 경계할 수 있지만, 선의를 닮은 욕망은 오래도록 사람을 속인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선한 편에 서 있다고 확신하곤 한다. 그래서 혐오는 언제나 정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누군가는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타인을 밀어내고, 누군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살인 공약』은 바로 그 순간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인간 사회는 늘 선과 악이 충돌하며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선을 주장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잔혹해지곤 한다.

2026 지방 선거일인 오늘, 투표 현황 뉴스가 쉼 없이 울려퍼지고 있다. 더 나은 내일을 말하는 목소리들, 서로를 비난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덜 불안한 삶을 붙잡으려는 마음들. 민주주의란 완벽한 인간들이 세운 이상이 아니다. 서로 다른 욕망과 공포를 지닌 사람들이, 서로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기 위해 가까스로 합의해온 생존의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김주석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정치의 추악함이 아니다. 욕망과 공포, 생존과 신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얼굴이다. 선거는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때로 투표소 앞에 선 인간은 미래보다 먼저, 자신의 불안을 처리할 방법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거철 뉴스만 틀어도 피로감이 밀려오는 사람, 서로를 향한 혐오와 확신이 점점 짙어지는 풍경 속에서 정치가 과연 인간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살인 공약』을 오래도록 찾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권력의 추악함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의와 신념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욕망의 얼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한다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을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그래서 현실 정치의 냉소와 피로를 문학적으로 마주하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와닿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거리마다 희망의 문장들이 내걸릴 때마다 이 책은 다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더 나은 세계를 말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인간은 왜 매번 ‘최선’보다 ‘차악’을 고르며 살아가는지 문득 생각하게 되는 순간마다.

✏️도서출판 9월의햇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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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온 손님 ㅣ 그늘 단편선 4
박규민 지음 / 그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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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상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위태롭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고 가는 안부와 익숙한 식탁, 오래 알고 지냈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표정은 삶을 안전한 장소처럼 보이게 만든다. 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사랑도, 신뢰도, 도덕도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유지되는 감정들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밤에는 아주 작은 낯섦 하나만으로도 그 풍경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관계를 지탱해온 믿음 사이로 작은 금들이 드러나고,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져 있던 인간의 불안과 비겁함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장면들은 자극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마치 물이 천장에 번지듯,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어떤 그림자를 뒤늦게 발견하게 만든다.

사람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비로소 안심한다. 상대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관계는 안정된 형태를 갖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에게도 완전히 열리지 않는다. 가장 오래 곁에 머문 사람 안에도 설명되지 않는 어둠과 침묵은 남아 있다. 인간관계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품은 채 함께 살아가는 일에 더 가깝다. 사랑은 상대를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마음인 동시에, 영원히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견뎌내는 감정이다. 가까운 사람 안에서 처음 보는 표정을 발견하는 순간의 공포는 귀신이나 재난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타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진실보다 평온한 환상을 더 사랑한다.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는 믿음,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믿음, 지금의 관계는 안전하다는 믿음. 그런 확신들은 우리를 하루하루 살아가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흔들리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진실을 몰라서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알고 있는 것들을 외면하기 위해 더 애쓴다. 모든 진실을 직시한 채 살아가기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 위에 믿음을 덧칠하고, 기억 위에 침묵을 덮어두며 살아간다. 그 얇은 층들이 삶을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동안에는 안온함이 유지된다. 하지만 외면해온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가, 가장 방심한 순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밤은 이상한 시간이다. 낮 동안 단단해 보이던 감정과 생각들이 밤이 되면 쉽게 흔들린다. 어둠 때문이라기보다, 낮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외면해온 마음들이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속 ‘손님’은 단순히 누군가의 방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래 덮어두었던 죄책감일 수도 있고,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일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낯선 얼굴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은 대개 예고 없이 찾아온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갑작스럽게 삶 속으로 스며들어,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세계를 전혀 다른 장소로 바꾸어놓는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의지해온 평온이 얼마나 위태로운 믿음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박규민의 소설들은 인간을 함부로 단죄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오래 바라본다. 누군가의 비겁함과 침묵, 외면 속에서 낯선 타인만을 발견하게 만들지 않고, 독자 자신의 얼굴 또한 함께 비춰 보게 만든다. 삶은 애초부터 완전히 안전한 적이 없었고, 관계 역시 완전한 이해 위에서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은 서로를 정확히 알아서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남겨둔 채 환상 속에서 서로를 사랑한다. 인간은 타인을 사랑할 때조차 실제의 상대를 바라보기보다, 자신이 잃고 싶지 않은 세계를 함께 사랑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관계가 무너지는 순간에는 상대에 대한 배신감만이 아니라, 그동안 의지해온 삶의 질서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 상대를 너무 오래, 가까이 들여다보지 말 것. 때로는 한 사람의 얼굴보다, 그 사람을 믿으며 살아온 세계가 먼저 무너진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서 처음 보는 얼굴을 발견한 적 있는 사람, 평온한 관계 안에도 설명되지 않는 침묵과 불안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밤에 찾아온 손님』의 세계를 쉽게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악의를 극단적으로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평온한 일상과 익숙한 관계 아래 무엇이 가라앉아 있는지를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선의와 사랑, 도덕과 신뢰 같은 말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믿음 위에 세워져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왜 끝까지 안온한 환상을 붙들려 하는지를 드러낸다. 공포는 낯선 존재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장 익숙했던 얼굴이 어느 날 전혀 다른 표정으로 돌아보는 순간, 삶 전체가 낯설어지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미처 닿지 못했던 세계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 소설은, 더운 여름날 잠시 몸을 기댈 그늘처럼 다가와 오래 외면해온 무언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도서출판 그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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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의 모든 것 - 보이지 않는 세계와 인간 사이를 잇는 자들의 시각자료집 ㅣ 미술문화 시각자료집
맥스 카로치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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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오래 바라볼수록 인간은 이해보다 해석에 가까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은 계절의 원리를 설명하고, 의학은 병의 원인을 밝혀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불안 앞에서 징조를 찾곤 한다. 어떤 이는 시험을 앞두고 같은 옷을 반복해 입고, 어떤 이는 불길한 꿈 하나를 오래 마음에 담아둔다. 이미 충분히 이성적인 시대에 도착했음에도 인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들 곁을 서성인다.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늘 설명 바깥의 영역을 향해 마음 한편을 열어두며 살아왔던 것이다.

책은 샤머니즘을 낡은 미신이나 기이한 민속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세계의 공포와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온 가장 오래된 정신의 형식으로 바라본다. 병과 죽음, 자연재해와 상실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설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사람들은 상징을 만들고 의식을 반복해왔다. 샤먼은 두 세계 사이를 오가는 초월적 존재이면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이야기의 형태로 번역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북소리와 가면, 부적과 제의 같은 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포를 견디기 위한 언어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언제나 삶 바깥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했고, 샤머니즘은 그 막막함을 공동의 의례 속으로 옮겨놓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 북을 울리고, 불 앞에서 기도를 반복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호명하는 동안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현대인은 미신을 비웃으면서도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불안한 밤이면 작은 우연 하나에도 마음을 졸인다.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자꾸만 의미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오래전 동굴 벽화 앞에 섰던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과 정보가 넘쳐날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연결을 갈망한다. 길을 걷다 보면 ‘용한 무당’, ‘갓 신내림’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되고, 산이나 바닷가에서는 지금도 누군가 간절한 마음으로 굿과 기도를 올리는 장면과 마주치곤 한다. 그것은 단순히 오래된 풍습의 잔재라기보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오래된 본능에 가까워 보인다. 세상이 점점 더 계산 가능해질수록 오히려 인간은 계산되지 않는 영역을 필요로 한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불안,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실, 이유 없이 밀려드는 예감 같은 것들은 여전히 인간 내부 깊은 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많은 도판과 이미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샤머니즘은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상징 체계처럼 느껴진다. 동물의 형상을 뒤집어쓴 가면, 금속 장식이 달린 의복, 주술적 문양과 의례 도구들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온 또 다른 문법처럼 보인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두려움과 경외를 사람들은 이미지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상상한 뒤에야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신화를 만들고 별자리를 연결하며 죽음 이후를 그려왔던 것처럼, 샤머니즘 역시 세계의 공백을 견디기 위해 탄생한 상상력의 역사이다. 인간은 설명만으로 완성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끌어안은 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 책 속의 낯선 상징들과 의례는 먼 과거의 흔적이라기보다 지금 우리의 내면과도 이어져 있는 풍경처럼 느껴진다.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인간은 작은 이야기들을 곁에 세워두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행운의 물건을 품고, 누군가는 기도를 하고, 또 누군가는 우연한 숫자 하나를 운명처럼 기억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한 이러한 몸짓은 삶을 견디기 위한 방식이 된다. 인간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우연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를 바라며 살아왔다.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고통은 견디기 어렵고, 설명되지 않는 상실은 오래 마음속을 떠돌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의 모든 것』은 신화와 의식, 이미지와 상징을 따라가며 인간 정신의 가장 오래된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지금도 여전히 불안과 경외 사이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얼굴이 함께 겹쳐 보인다.

이 책은 샤머니즘이라는 오래된 믿음 체계를 설명하면서도, 결국 인간이 왜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해왔는지를 탐구한다. 병과 죽음, 상실과 우연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상징을 만들고 의식을 반복해왔다. 그래서 이 책 속의 가면과 부적, 제의와 신화는 단순한 민속 자료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가장 오래된 흔적처럼 읽힌다. 세계를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느껴본 사람, 현대 사회의 불안과 공허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이 왜 의미와 징조를 갈망하는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특히 깊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류학과 종교학, 예술과 철학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방대한 시각 자료와 해설을 따라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지적 여정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설명되지 않는 삶의 영역을 오래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인간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과 함께 살아왔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도서출판 미술문화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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