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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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소설에는 늘 삶의 밑바닥이 등장한다. 가난하고, 어리석고, 욕망에 휘둘리며,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인물들. 그러나 작가는 한 번도 인간을 냉소의 대상으로 그려본 적이 없다. 가장 초라한 자리에서도 인간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생명력이 남아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세상이 아름답다는 확신보다는,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간다는 감각이 오래 남는다. 10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코디언』 역시 그런 작품이다. 전쟁이 지나간 서울의 판자촌, 세상에서 가장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들여다본다.

소설 속 아이들은 가진 것이 없다. 부모도, 집도, 미래도 없다. 폭력과 굶주림, 상실과 공포가 일상이 된 세계에서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나 작품은 비참함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천명관은 가장 추운 장소에 사람들을 몰아넣은 뒤, 그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온기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 기대고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코디언의 음색을 닮아 있다. 슬픔과 익살, 분노와 환희가 함께 숨 쉬는 악기. 서로의 부족함이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고, 혼자였다면 견디지 못했을 시간들이 함께였기에 하루를 더 건너간다. 인간은 스스로 완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손길과 시선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간다.

혈연은 가족을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언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마음, 그의 삶을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 또한 가족을 이루는 힘이기 때문이다. 동이는 누구보다 가난하고 연약한 아이였지만, 가장 큰 어른이 된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순간은 어쩌면 누군가의 삶을 외면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가 아닐까. 책임은 의무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사람의 세계를 기꺼이 짊어지는 행위에 가깝다.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것은 그의 기쁨뿐 아니라 상처와 불안, 미래의 무게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은 인간을 속박하기보다 오히려 넓혀준다. 타인을 품는 순간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을 넘어선다. 사회는 흔히 인간을 능력과 성취로 평가하지만, 삶의 가장 본질적인 장면들은 대개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순간 인간은 비로소 혼자 살아남는 존재에서 누군가를 살아가게 하는 존재로 바뀐다.

그런 의미에서 『아코디언』은 희망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다만 그 희망은 흔히 떠올리는 밝고 낙관적인 형태가 아니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더 나은 내일은 쉽게 약속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어떤 이는 폭력의 상처를 평생 짊어진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닌 서로를 향한 신뢰에 가깝다. 삶은 종종 견딜 수 없는 방향으로 기울어지지만, 누군가와 같은 무게를 나누어 들 때 인간은 생각보다 멀리 걸어간다. 서로의 체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삶은 계속된다. 중요한 것은 눈부신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라기보다, 오늘을 함께 건너갈 사람을 잃지 않는 일이다. 희망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니까. 삶을 지탱하는 것은 찬란한 전망이나 거창한 약속보다 함께 나누는 죽 한 그릇과 서로를 향해 건네는 작은 믿음일 때가 더 많다. 그리고 그 믿음은 때로 죽보다 오래 생을 지탱하고, 집보다 깊은 안식처가 된다.

아코디언은 바람이 드나들어야 소리를 낸다. 한 번 수축하고, 다시 팽창하는 움직임 속에서 비로소 음악이 만들어진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상실과 사랑, 절망과 기쁨, 죽음과 생명이 번갈아 스쳐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아코디언』은 가장 척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잃지 않는 소설이다. 세상이 사람을 버리는 순간에도 사람은 사람을 품을 수 있다. 천명관은 전쟁과 가난의 풍경 너머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서로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장면들. 『아코디언』이 들려주는 음악은 승리의 노래가 아니다. 폐허 속에서도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숨결, 그리고 그 숨결이 만들어낸 한 편의 합주. 죽은 자와 산 자의 체온을 모두 품은, 슬프고도 따뜻한 음악.

가난과 욕망, 폭력과 사랑이 뒤엉킨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길어 올려온 천명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버려진 존재들의 곁에 머문다. 『고래』를 사랑했던 독자라면 익숙한 듯 낯선 그의 문장 속에서 다시 한번 거칠고도 뜨거운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가족이 반드시 혈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 사람, 사람에 대한 신뢰를 쉽사리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 거대한 영웅담보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에게도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아코디언은 바람이 드나들어야 비로소 소리를 낸다. 『아코디언』 역시 마찬가지다. 상처와 결핍, 상실과 사랑이 스며들고 빠져나가는 자리에서 한 편의 음악이 태어난다. 1950년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선율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래전 판자촌 골목에서 시작된 음색은 시간을 건너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속에서도 진동한다.

✏️도서출판 창비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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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우붓 사우나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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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너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히 찾아온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익숙하던 세계가 더 이상 자신을 품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속고, 오랜 시간 공들여 가꾼 터전을 떠나야 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날들. 우리는 그런 시간을 지나며 자주 스스로를 실패한 존재라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정말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품은 화려한 재기의 서사가 아닌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현실적인 생존의 이야기이다. 사우나에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들이 쌓여 간다. 손님이 찾아오고,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가족들은 웃다가도 다투고 서운해하다가도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나 극적인 기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알고 있다.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 함께 밥을 먹는 일,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일. 인간은 생각보다 소박한 것들에 의해 내일로 건너간다. 삶을 무너뜨리는 사건은 대개 한순간에 찾아오지만, 삶을 다시 엮어가는 과정은 놀라울 만큼 더디다.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수행하며, 누군가와 식탁을 공유하는 행위. 그런 반복은 언뜻 변화 없는 정체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간의 풍랑 속에서 자신을 붙들어 매는 닻이 된다. 사람은 비범한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세워 올리니까.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굳어 있던 근육이 천천히 풀어지듯, 사람의 마음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는 흔히 곧바로 치유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실제의 삶은 조금 다르다. 어떤 기억은 오래 남고, 어떤 아픔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익숙한 밥 냄새, 같은 공간을 함께 견디는 사람들의 존재가 사람을 다시 따뜻하게 만든다. 우리는 거대한 희망보다 작은 온기에 더 오래 기대어 살아간다. 그러나 온기가 상처를 지워주지는 않는다. 상실 또한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다만 체온을 되찾은 사람은 같은 무게를 조금 다른 자세로 감당하게 된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던 몸도 온기가 돌기 시작하면 다시 움직일 수 있듯이.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힘은 고통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을 품은 채 다시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온도에 있다.

가족은 가장 편안한 안식처인 동시에 가장 많은 상처가 오가는 공간이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쉽게 실망하고, 가까운 만큼 서운함도 깊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전히 등을 돌리지 못한다. 사랑은 언제나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불평하면서도 밥을 차리고, 다투면서도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사소한 행동들 속에 숨어 있다. 이 작품이 그려내는 가족애는 눈물겨운 희생이나 이상적인 화목함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가깝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많이 아프게 하면서도 가장 늦게 떠나는 사람들이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충분히 용서하지 못한 채 같은 식탁에 앉는 관계. 그래서 가족의 사랑은 특별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더욱 선명한 형태를 갖는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차가운 계절이 찾아온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고,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듯한 날들도 있다. 그런 시간 앞에서 필요한 것은 다시 따뜻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발리 우붓 사우나』는 삶을 바꾸는 기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식어버린 하루를 조금 덜 차갑게 만들어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구운 계란 냄새가 배어 있는 찜질방 한구석처럼, 특별하지 않지만 오래 기억되는 온기. 그리고 그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내일도 여전히 곁에 머물 것 같은 체온의 예감이 아닐까. 뜨거운 물이 몸의 냉기를 밀어내듯, 누군가의 다정함은 삶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오래 머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빌려 계절을 건너고, 또 다음 날을 살아간다.

대한에서 동지까지, 절기는 한 해를 둥글게 감싸며 흘러간다. 『발리 우붓 사우나』는 상가 지하의 작은 사우나를 무대로 그 시간 속을 살아내는 가족의 생활을 담아낸 소설이다. 사우나의 뜨거운 탕이 몸의 냉기를 단번에 몰아내지는 못해도 다시 움직일 힘을 주듯, 이 책 역시 대단한 기적이나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삶의 방향을 잃어본 사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과 서운함을 함께 겪어본 사람, 화려한 성공담보다 생활의 온기를 좋아하는 사람, 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음미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절기가 계절을 감싸듯, 사우나의 증기가 몸을 데워주듯 이 이야기는 서두르지 않고 독자 곁에 머문다. 그리고 뜨거운 탕에서 나오듯 조금 가벼운 걸음으로 책장을 덮게 된다. 내일을 향해 한 걸음쯤 더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도서출판 책과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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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바다처럼 운다
임세병 지음 / 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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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으로만 이해해온 시간들이 있었다. 목표를 향해 걷고, 성장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에 가까워지는 일. 그러나 실제의 삶은 그런 직선과는 거리가 멀다. 같은 고민이 되돌아오고, 겨우 지나온 상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분명 건넜다고 생각했던 불안이 어느 날 또다시 발목을 붙든다. 삶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를 닮았다는 임세병의 문장은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순간들마저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하나의 세계관이 된다.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가듯 사람 역시 같은 자리에서 수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책 속 바다는 불안과 후회, 좌절과 그리움이 뒤섞여 있는 인간 내면의 형상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 감정들을 하나의 결론으로 묶어내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삶은 원래 정돈된 이야기보다 어수선한 생각에 더 가까운 법이다. 마음속에서 채 가라앉지 못한 감정들, 설명할 수 없어서 반복되는 사유들, 어느 날 문득 밀려왔다가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지는 감각들. 이 책은 그것들을 매끄럽게 다듬기보다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그래서 읽는 동안 한 사람의 생각을 따라간다기보다, 한 사람의 내면이 움직이는 과정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파도의 모양을 설명하기보다 파도가 일렁이는 순간 자체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넘어질지 말지 걱정하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 같은 생각을 반복하며 밤을 지새우는 일,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 애쓰는 일. 그런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인간은 현재만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끊임없이 앞당겨 살아본다. 불안은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그림자와도 같다. 소중한 것이 있었기에 잃을까 두려워하고, 포기하지 않았기에 내일을 걱정한다. 바다가 파도를 품고 있듯 삶 역시 불안을 품고 흐른다. 그것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살아 있음과 함께 따라오는 감각이다. 어쩌면 인간은 불안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가장 선명하게 자각하는지도 모른다. 바다가 파도를 멈춘 순간 바다일 수 없듯이.

살아가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이 있다. 특별한 희망도 없고, 거창한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침은 찾아오고 하루는 흘러간다. 인간은 삶을 이해한 뒤 기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설명할 수 없어서 쓰고, 정리되지 않아서 적는다. 모든 생각이 완성된 뒤에 문장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생각들을 붙잡기 위해 기록을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는 완성된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지나간 자리를 더듬어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누군가는 그 흔적 속에서 자신과 닮은 불안을 발견하고, 또 누군가는 타인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 세계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삶이란 결국 수없이 되돌아오면서도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의 축적일 것이다.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출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물결을 품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같은 불안을 겪고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듯 보여도, 그 시간을 지나온 마음은 이전과 완전히 같을 수 없다. 이 책은 흔들리는 삶을 위로하거나 명쾌한 해답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누구에게나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풍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품고 있는 가치 또한 그것에 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 끝맺지 못한 감정,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마음들. 삶은 그것들을 해결하는 데서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곁에 둔 채 계속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깊어진다. 파도가 계속 밀려오고 다시 물러가듯, 인간 또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바다를 건너간다.

삶이 왜 늘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지 궁금했던 사람, 불안을 극복하기보다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온 사람,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문장이나 그림으로 붙잡아본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한 화가인 임세병은 이 책에서 하나의 답을 그려내기보다 여러 겹의 흔들림을 캔버스 위 색채처럼 겹쳐 올린다. 그래서 이 책은 잘 정돈된 사유를 적어낸 에세이라기보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이 남아 있는 작업실의 모습에 가깝다. 어떤 문장은 선명하게 형태를 갖추고, 어떤 문장은 번져나가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실제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삶을 명쾌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과 함께 오래 머물러본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다.

✏️도서출판 달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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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에 갇힌 여자 ㅣ 스토리콜렉터 12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허형은 옮김 / 북로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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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과거라 부르며, 또 누군가는 감춰야 할 비밀이라 부른다. 데이비드 발다치의 『거짓에 갇힌 여자』는 거대한 금융 범죄와 살인 사건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는 스릴러이지만, 책장을 덮고 난 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은 범인의 정체나 사건의 전말이 아니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에는 기록보다 훨씬 오래되고 깊은 인간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삶은 늘 현재에서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종종 지나간 시간에 의해 살아간다. 이미 끝난 일이라 여겼던 기억이 선택의 방향을 바꾸고, 오래전 남겨진 상처가 오늘의 표정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타인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숨긴 채 살아간다. 누구나 말하지 못한 사연 하나쯤은 품고 있고, 들키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채 하루를 건너간다. 기록되지 않은 고통은 쉽게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숨겨진 시간들은 내면에 오래 머물며 삶의 결을 바꾸어 놓는다. 거짓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상처와 두려움이 켜켜이 쌓인 끝에 탄생한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과거를 지우며, 또 진실을 감춘 채 다른 얼굴로 세상을 살아간다. 인간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진실을 품고 살아간다. 말해지지 못한 것들은 침묵 속에 남아 또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작품 속 거짓은 악의의 언어라기보다 생존의 언어처럼 읽힌다.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숨길 이유가 없다.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부정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어떤 상처는 인간을 원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과거는 끝나지 않은 채 현재를 규정하는 힘이 되고, 사라지지 않은 기억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작품 속 수많은 거짓은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갑옷과도 같다. 그 모습은 안타깝고 때로는 위태롭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얼마나 절박하게 살아남으려 하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모습은 거짓이라기보다 고통을 통과한 흔적에 가깝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거짓을 품고 살아간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처를 감추기 위해 웃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무너진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짓은 단순히 도덕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 없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진실보다 거짓이 사람을 하루 더 살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그 거짓은 결국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옥이 없었다면 버텨낼 수 없었던 시간 역시 존재한다. 작품은 그 모순된 진실을 응시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를 필요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울타리는 처음에는 몸을 지켜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깥세상과 자신을 갈라놓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삶의 비극은 거짓을 선택했다는 사실보다 언젠가 그 거짓마저 놓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데 있다.

우리를 가두는 것은 거짓 자체가 아니다. 그 거짓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든 과거의 상처다. 그러나 어떤 상처는 드러낸다고 사라지지 않고, 어떤 기억은 이해한다고 해서 가벼워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치유란 모든 거짓을 걷어내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되찾는 과정일 것이다. 『거짓에 갇힌 여자』는 범죄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 너머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함께 보여준다. 누군가의 거짓 뒤에는 끝내 말해지지 못한 사연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들까지도 그 사람의 삶이었다는 것을 작품은 외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삶은 그가 말한 것보다 끝내 말하지 못한 것들에 의해 완성된다. 살아남기 위해 감춰야 했던 것들까지도 결국은 그 사람의 역사였으므로. 범죄의 진실을 추적하는 스릴러를 즐기면서도, 사건보다 사람의 내면에 더 오래 시선을 머무는 독자라면 이 작품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왜 자신을 숨기게 되는지, 과거는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삶에 스며드는지, 그리고 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워가며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던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독서가 될 듯하다. 특히 트라우마와 정체성의 문제를 단순한 심리 묘사가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로 바라보는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거짓에 갇힌 여자』는 범죄와 추적의 서사 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까지도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포개어 놓는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따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경계 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초상을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도서출판 북로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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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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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는 일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그것이 하나의 생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자주 잊게 된다. 마트의 냉장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붉은 살점은 더 이상 동물의 형상을 지니지 않는다. 거기에는 탄생도, 성장도, 죽음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가격표와 유통기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육식의 종말』은 그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드는 책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진 흔적들을 되짚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육식의 역사보다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능숙하게 불편한 진실을 시야 밖으로 밀어내며 살아왔는가 하는 사실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소를 특별한 존재로 여겨왔다.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고, 때로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받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의 세계에서 소는 점점 숫자와 효율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목장과 공장식 축산 시스템 속에서 생명은 생산량으로 환산되었고, 존재의 개별성은 관리의 편의를 위해 지워졌다. 현대 사회는 저마다의 이름과 이야기를 지닌 것들을 끊임없이 분류하고 측정하며 관리 가능한 형태로 정리해왔다. 그 과정에서 세계는 점차 관계의 공간이 아닌 계산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이러한 변화는 소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문명은 자연을 자원이라 부르고, 숲을 개발 부지라 부르며, 노동을 비용으로 계산하지 않는가. 이름을 바꾸는 순간 존재는 대상이 되고, 대상은 소비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숭배의 대상이었던 소가 진공 포장육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육식의 문제는 결국 보이지 않음의 문제이다. 식탁 위에 놓인 고기에는 도축장의 냄새가 묻어 있지 않고, 포장지 너머로는 사육장의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는 결과만 마주할 뿐 과정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거리 두기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불편함을 제거한다.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사용하면서도 그 노동의 무게를 떠올리지 않고, 환경의 희생 위에서 누리는 풍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때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보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아왔다. 타인의 고통과 생명의 죽음, 먼 곳에서 벌어지는 파괴를 끊임없이 의식한다면 지금의 일상은 유지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러나 외면이 반복될수록 책임 역시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외면에는 언제나 의지가 개입한다. 알고도 보지 않으려는 태도,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는 습관.

그래서 이 책은 채식주의를 권하는 책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의도적으로 가려왔는지를 추적하는 기록이다. 풍요는 언제나 눈부신 얼굴로 다가오지만, 그 뒤편에는 드러나지 않은 비용이 존재한다. 소에게 먹일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사라진 숲, 끝없는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희생되는 생태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수많은 착취들. 효율과 생산성은 현대 문명을 움직이는 중요한 가치가 되었지만, 그 기준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생명이 지닌 고유한 의미는 쉽게 축소된다. 무엇이 더 빠르고 많이 생산되는가에 집중하는 동안,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는 좀처럼 헤아려지지 않는다. 물론 한 권의 책이 당장 식습관을 바꾸거나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작은 멈춤표를 찍게 만든다. 익숙함 속에 숨어 있던 그림자를 발견하는 순간, 세계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먹으며 살아가지만, 무엇을 외면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인 채,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앞에 도착했는지는 잊어버린다. 제러미 리프킨은 그 망각의 구조를 들춰낸다. 식탁 위의 한 조각 고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인간의 욕망과 자본, 소비문화와 환경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시야 밖에 놓여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더 나은 삶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삶이 아니다. 애써 외면해온 것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모든 시대에는 사람들이 애써 보지 않기로 한 풍경이 있다. 『육식의 종말』 그 풍경을 직시하는 책이다. 마트의 진열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목초지와 도축장, 자본과 권력, 인간의 욕망과 문명의 구조로 이어진다. 환경과 생태 문제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물론, 자본과 소비가 우리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는지 탐구해온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통찰을 건넨다. 풍요라는 단어가 감추고 있는 비용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오래 곁에 둘 만한 텍스트다. 당연하다고 믿어온 세계의 표면을 한 겹 걷어내고 그 아래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안내하는 사유의 여정을 기꺼이 따라가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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