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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에 갇힌 여자 ㅣ 스토리콜렉터 12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허형은 옮김 / 북로드 / 2026년 6월
평점 :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과거라 부르며, 또 누군가는 감춰야 할 비밀이라 부른다. 데이비드 발다치의 『거짓에 갇힌 여자』는 거대한 금융 범죄와 살인 사건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는 스릴러이지만, 책장을 덮고 난 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은 범인의 정체나 사건의 전말이 아니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에는 기록보다 훨씬 오래되고 깊은 인간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삶은 늘 현재에서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종종 지나간 시간에 의해 살아간다. 이미 끝난 일이라 여겼던 기억이 선택의 방향을 바꾸고, 오래전 남겨진 상처가 오늘의 표정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타인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숨긴 채 살아간다. 누구나 말하지 못한 사연 하나쯤은 품고 있고, 들키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채 하루를 건너간다. 기록되지 않은 고통은 쉽게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숨겨진 시간들은 내면에 오래 머물며 삶의 결을 바꾸어 놓는다. 거짓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상처와 두려움이 켜켜이 쌓인 끝에 탄생한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과거를 지우며, 또 진실을 감춘 채 다른 얼굴로 세상을 살아간다. 인간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진실을 품고 살아간다. 말해지지 못한 것들은 침묵 속에 남아 또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작품 속 거짓은 악의의 언어라기보다 생존의 언어처럼 읽힌다.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숨길 이유가 없다.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부정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어떤 상처는 인간을 원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과거는 끝나지 않은 채 현재를 규정하는 힘이 되고, 사라지지 않은 기억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작품 속 수많은 거짓은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갑옷과도 같다. 그 모습은 안타깝고 때로는 위태롭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얼마나 절박하게 살아남으려 하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모습은 거짓이라기보다 고통을 통과한 흔적에 가깝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거짓을 품고 살아간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처를 감추기 위해 웃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무너진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짓은 단순히 도덕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 없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진실보다 거짓이 사람을 하루 더 살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그 거짓은 결국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옥이 없었다면 버텨낼 수 없었던 시간 역시 존재한다. 작품은 그 모순된 진실을 응시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를 필요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울타리는 처음에는 몸을 지켜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깥세상과 자신을 갈라놓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삶의 비극은 거짓을 선택했다는 사실보다 언젠가 그 거짓마저 놓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데 있다.
우리를 가두는 것은 거짓 자체가 아니다. 그 거짓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든 과거의 상처다. 그러나 어떤 상처는 드러낸다고 사라지지 않고, 어떤 기억은 이해한다고 해서 가벼워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치유란 모든 거짓을 걷어내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되찾는 과정일 것이다. 『거짓에 갇힌 여자』는 범죄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 너머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함께 보여준다. 누군가의 거짓 뒤에는 끝내 말해지지 못한 사연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들까지도 그 사람의 삶이었다는 것을 작품은 외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삶은 그가 말한 것보다 끝내 말하지 못한 것들에 의해 완성된다. 살아남기 위해 감춰야 했던 것들까지도 결국은 그 사람의 역사였으므로. 범죄의 진실을 추적하는 스릴러를 즐기면서도, 사건보다 사람의 내면에 더 오래 시선을 머무는 독자라면 이 작품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왜 자신을 숨기게 되는지, 과거는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삶에 스며드는지, 그리고 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워가며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던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독서가 될 듯하다. 특히 트라우마와 정체성의 문제를 단순한 심리 묘사가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로 바라보는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거짓에 갇힌 여자』는 범죄와 추적의 서사 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까지도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포개어 놓는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따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경계 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초상을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도서출판 북로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