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바다처럼 운다
임세병 지음 / 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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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으로만 이해해온 시간들이 있었다. 목표를 향해 걷고, 성장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에 가까워지는 일. 그러나 실제의 삶은 그런 직선과는 거리가 멀다. 같은 고민이 되돌아오고, 겨우 지나온 상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분명 건넜다고 생각했던 불안이 어느 날 또다시 발목을 붙든다. 삶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를 닮았다는 임세병의 문장은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순간들마저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하나의 세계관이 된다.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가듯 사람 역시 같은 자리에서 수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책 속 바다는 불안과 후회, 좌절과 그리움이 뒤섞여 있는 인간 내면의 형상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 감정들을 하나의 결론으로 묶어내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삶은 원래 정돈된 이야기보다 어수선한 생각에 더 가까운 법이다. 마음속에서 채 가라앉지 못한 감정들, 설명할 수 없어서 반복되는 사유들, 어느 날 문득 밀려왔다가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지는 감각들. 이 책은 그것들을 매끄럽게 다듬기보다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그래서 읽는 동안 한 사람의 생각을 따라간다기보다, 한 사람의 내면이 움직이는 과정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파도의 모양을 설명하기보다 파도가 일렁이는 순간 자체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넘어질지 말지 걱정하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 같은 생각을 반복하며 밤을 지새우는 일,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 애쓰는 일. 그런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인간은 현재만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끊임없이 앞당겨 살아본다. 불안은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그림자와도 같다. 소중한 것이 있었기에 잃을까 두려워하고, 포기하지 않았기에 내일을 걱정한다. 바다가 파도를 품고 있듯 삶 역시 불안을 품고 흐른다. 그것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살아 있음과 함께 따라오는 감각이다. 어쩌면 인간은 불안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가장 선명하게 자각하는지도 모른다. 바다가 파도를 멈춘 순간 바다일 수 없듯이.

살아가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이 있다. 특별한 희망도 없고, 거창한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침은 찾아오고 하루는 흘러간다. 인간은 삶을 이해한 뒤 기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설명할 수 없어서 쓰고, 정리되지 않아서 적는다. 모든 생각이 완성된 뒤에 문장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생각들을 붙잡기 위해 기록을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는 완성된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지나간 자리를 더듬어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누군가는 그 흔적 속에서 자신과 닮은 불안을 발견하고, 또 누군가는 타인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 세계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삶이란 결국 수없이 되돌아오면서도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의 축적일 것이다.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출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물결을 품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같은 불안을 겪고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듯 보여도, 그 시간을 지나온 마음은 이전과 완전히 같을 수 없다. 이 책은 흔들리는 삶을 위로하거나 명쾌한 해답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누구에게나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풍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품고 있는 가치 또한 그것에 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 끝맺지 못한 감정,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마음들. 삶은 그것들을 해결하는 데서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곁에 둔 채 계속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깊어진다. 파도가 계속 밀려오고 다시 물러가듯, 인간 또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바다를 건너간다.

삶이 왜 늘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지 궁금했던 사람, 불안을 극복하기보다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온 사람,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문장이나 그림으로 붙잡아본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한 화가인 임세병은 이 책에서 하나의 답을 그려내기보다 여러 겹의 흔들림을 캔버스 위 색채처럼 겹쳐 올린다. 그래서 이 책은 잘 정돈된 사유를 적어낸 에세이라기보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이 남아 있는 작업실의 모습에 가깝다. 어떤 문장은 선명하게 형태를 갖추고, 어떤 문장은 번져나가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실제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삶을 명쾌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과 함께 오래 머물러본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다.

✏️도서출판 달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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