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번역 - 마감에 쫓기고 문장에 울지만 ㅣ 난생처음 시리즈 10
이소담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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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오래 머문 곳을 닮아 간다. 오래 바라본 풍경은 시선이 되고, 오래 품은 문장은 사고방식이 되며, 오래 사랑한 대상은 마침내 한 사람의 삶을 빚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묻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오래 좋아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애정은 순간의 감정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견딘 애정은 삶의 방향이 된다. 『난생처음 번역』은 번역가라는 직업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인 동시에, 오래 좋아한 마음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소담 작가는 처음부터 번역을 직업으로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 문화를 좋아했고, 이야기를 좋아했고, 그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덕질은 공부가 되었고, 공부는 반복이 되었으며, 반복은 어느새 생업으로 이어졌다. 특별한 계기보다 오래 지속된 애정이 한 사람의 이력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인상 깊다. 세상은 결과를 보며 재능을 말하지만, 삶은 대부분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시간 위에서 천천히 형태를 갖춘다. 재능은 가능성을 열어 주지만, 애정은 그 가능성을 끝까지 살아남게 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는 일이다. 그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 머문 자리만큼 사람을 닮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반복하는 행위가 결국 그 사람의 성품을 만든다고 보았다. 덕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닌 습관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소담 작가의 여정은 이 오래된 통찰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 그에게 번역이란 하루아침에 얻은 초능력이 아니라 수없이 읽고, 찾아보고, 고쳐 쓰기를 반복한 시간이 만든 결과였다. 전문성은 오랫동안 한 세계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반복은 단순히 능숙함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미해질 것 같지만, 어떤 애정은 오히려 반복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반복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한 사람만의 기준을 만든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다듬어진 기준은 결국 그 사람의 세계가 된다.

번역이라는 작업은 흥미롭다. 좋은 문장은 가장 많은 가능성을 품은 문장이 아니라, 가장 많은 가능성을 기꺼이 포기한 문장이다. 번역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단 하나를 남기는 작업이다. 더하는 기술보다 덜어 내는 감각을 요구하는 것. 이 표현도 가능하고, 저 표현도 가능하지만, 그 가운데 단 하나만을 남겨야 한다. 좋은 번역은 더 많은 말을 아는 사람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만든다. 이것은 우리의 삶과도 비슷하다. 삶 역시 선택보다 포기의 총합에 의해 모양을 갖춘다. 모든 가능성을 붙잡은 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길을 놓아주어야 하고, 어떤 가치에 마음을 주는 순간 다른 욕심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결국 한 사람의 삶도 수많은 가능성을 덜어 낸 끝에 완성되는 하나의 문장이다.

번역가라는 직업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번역가는 자신의 문장을 뽐내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감춘 채 원작의 목소리가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좋은 번역일수록 번역가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보다 다른 이의 문장이 온전히 살아 숨 쉬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까닭이다. 세상은 자신을 드러내는 능력을 성공의 조건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책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자신의 목소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 빛을 독차지하기보다 빛이 지나갈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깊은 품격.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에게서만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래서 『난생처음 번역』은 번역에 관한 책을 넘어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책으로 기억된다. 누군가는 취미라고 불렀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일이 되었고, 가볍게 시작한 애정은 결국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이소담 작가의 작업은 살아가며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보다 무엇을 오래 사랑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묻게 한다. 삶은 쉽게 놓지 못한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오래 사랑한 세계는 결국 그 사람의 언어가, 태도가, 삶의 모양이 된다. 인간은 자신이 오래 사랑한 것들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러니 자신이 오래 사랑해 온 것들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어느새 당신을 이루는 한 편의 문장이 되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좀처럼 소리 내어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물며 사람을 조금씩 바꾸고, 어느 날 문득 삶의 방향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보다 오래 사랑할 대상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건네고 싶다. 어떤 애정은 결과보다 먼저 한 사람을 성장시킨다. 그 시간은 눈에 띄지 않아도 결코 헛되이 흘러가지 않는다. 취미와 일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줄 알았던 사람, 좋아하는 마음이 과연 삶을 지탱할 수 있을지 망설여 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오래된 확신 하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번역이나 글쓰기처럼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더 많이 쌓아 올리는 일을 하는 사람, 재능보다 꾸준함을 더 믿어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한다. 오래 품은 애정은 언젠가 재능을 앞질러 한 사람만의 언어가 된다. 『난생처음 번역』은 그 조용한 시간을 끝까지 믿어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도서출판 티라미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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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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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스스로를 낯설게 바라보는 방식은 때로 미래라는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단요의 『존재의 대연쇄』는 바로 그 낯섦을 통해 세계의 질서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소설집이다. 로마 황제와 연결되는 오래된 유선전화기, 온도를 읽는 사람들, 전류를 따라 이어지는 의식, 성경을 하나의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다루는 세계. 여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상상력을 품고 흩어져 있지만, 그 끝마다 닿아 있는 곳은 하나다. 어떤 존재도 홀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진실이다.

소설집의 제목인 ‘존재의 대연쇄(Great Chain of Being)’는 중세 형이상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신과 천사, 인간과 동물, 식물과 광물까지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질서 안에서 이어져 있다는 오래된 세계관. 단요는 이 오래된 사유를 현대의 언어로 다시 번역한다. 그 연쇄에는 신과 인간만이 아니라 데이터와 전류, 코드와 신화, 역사와 기술까지 함께 놓인다. 그 순간 인간은 세계의 중심에서 내려와 수많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된다. 특별함을 잃어서가 아니다. 인간 역시 다른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통과하며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얻는다. 오래된 철학은 미래를 배경으로 삼아 새롭게 호흡하기 시작하고,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위계에서 연결로 옮겨간다.

그렇기에 이 소설집이 이야기하는 존재는 홀로 완성되는 실체가 아니다. 다른 존재를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과정이다. 하나의 생명은 기술과 맞닿으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고, 오래전 신화는 현재의 시간과 겹쳐지며 또 다른 의미를 얻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인간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는 순간 이전에는 없던 세계가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처음부터 하나의 모습으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각으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다른 질서를 드러낸다. 인간이라는 이름 또한 그 관계망 밖에서 정의될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경험 역시 이러한 구조를 닮아 있다. 초반에는 로마사와 종교, 컴퓨터공학과 과학기술이 한꺼번에 등장하며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각각의 설정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걸음을 늦추게 되지만,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구조를 이루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독서의 감각도 달라진다. 이야기 하나를 이해하는 기쁨보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감각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단요의 서사는 목적지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여러 갈래의 길을 천천히 돌아가며 독자의 시야를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이끈다. 이해는 읽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라난다.

이러한 독서 경험은 자연스레 해석하는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작품은 현실과 상상, 과학과 신화 사이에 넓은 여백을 남겨 둔다. 그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독자가 자신의 사유를 채워 넣을 자리이며, 서로 다른 독서가 서로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다. 그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독자는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구조를 함께 완성하는 사람이 된다. 서사를 따라가는 일은 하나의 철학을 체험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존재의 대연쇄』가 보여주는 세계에서는 어느 하나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신과 인간, 생명과 기계, 현실과 상상은 서로를 밀어 올리고 스며들며 하나의 거대한 연쇄를 이룬다. 그 안에서 인간 역시 독립된 실체가 아닌 수많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쓰여 가는 존재가 된다. 단요는 오래된 형이상학을 미래의 상상력으로 치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온 존재의 정의를 다시 움직인다. 세계를 이루는 것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서로를 이어 주는 관계이며, 인간 역시 그 연결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얻는다. 오래된 철학이 오늘의 SF와 만나는 순간,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이전과는 다른 높이에 닿는다. 그곳에서 바라본 세계는 조금 더 넓어지고, 인간이라는 이름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풍성한 의미를 품게 된다.

세상은 때때로 설명보다 상상으로 더 깊이 이해된다. 『존재의 대연쇄』는 그 낯선 상상 속에서 오래된 철학을 다시 숨 쉬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SF를 단순히 미래를 그리는 장르가 아닌 존재를 사유하는 문학으로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인간과 기술, 현실과 신화가 서로를 비추는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하나의 세계를 읽는다는 일이 곧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우는 일이라 믿는 독자라면 더욱 반가운 만남이 될 것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하나의 세계를 스스로 조립해 가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흩어진 이야기들이 하나의 질서로 이어지는 순간의 전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남겨 둔 여백 위에 자신의 해석을 덧입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은 한 권의 이야기를 넘어 끝없이 확장되는 사유의 공간으로 오래 함께할 것이다. 좋은 SF는 미래를 보여주는 문학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만드는 문학이다. 이 책이, 그리고 단요가 그렇다.

✏️도서출판 사계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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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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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저 사람처럼 혹은 저 사람과 가까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동경이 오래될수록 이상한 일이 생긴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삶을 더 열심히 바라보게 되고, 그의 성공에 웃고 그의 실패에 무너진다. 마음의 중심이 조금씩 옮겨가는 동안, 정작 자신의 삶은 배경이 되어 버린다. 『파우사』는 복수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은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내어주게 되는지를 들여다본다.

사람은 결핍이 깊어질수록 우상을 세운다. 완전한 존재를 만나서가 아니다. 혼자 감당하기 벅찬 삶을 잠시 기대어 둘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그 사람이 살아내는 삶을 선망할 때가 많다. 그 안에 미래를 겹쳐 보고, 이루지 못한 가능성을 슬그머니 맡겨 둔다. 그래서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은 단순한 호감을 넘어선다. 그의 승리가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지고, 그의 빛으로 자신의 그늘까지 덮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 일은 오래 걸린다. 이미 빛을 얻은 사람 곁에서 미래를 빌려오는 편이 훨씬 쉽다. 우상이란 동경의 이름을 빌린 안식처다. 사람은 그곳에 잠시 불안을 내려놓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미래를 미리 살아본다. 작품 속 명관 역시 그런 마음으로 한 사람을 바라본다. 삶이 흔들릴수록 사람은 자신보다 단단해 보이는 존재를 찾는다. 그 곁에 서 있기만 해도 자신의 삶까지 조금은 단단해질 것이라 믿으면서.

그러나 우상은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지는 만큼, 무너질 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배신은 신뢰 하나를 잃는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쌓아 올린 시간과 믿음, 그리고 그 안에서 그려왔던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허물어진다. 우상이 무너질 때 사라지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기대어 세워 두었던 자기 자신도 함께다. 사랑과 증오는 서로 등을 돌린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마음을 내어준 만큼 상처도 깊어진다. 복수는 상대를 겨누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대를 향한 칼끝에는 무너져 버린 자신의 삶도 함께 걸려 있다. 그래서 오래 미워할수록 삶의 중심에는 여전히 그 사람이 머문다.

작품 속 ‘NPC’라는 표현은 현대인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처럼 읽힌다. 게임 속 NPC는 스스로의 목적 없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채워 주는 존재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가족의 삶을, 누군가는 조직의 성공을, 또 누군가는 동경하는 이의 꿈을 마치 제 목표인 듯 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하루의 기쁨과 슬픔이 늘 다른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면 삶의 중심은 이미 그곳으로 기울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삶은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간다. 처음에는 동경이었지만, 어느새 기쁨과 슬픔마저 남의 삶을 따라 움직인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위대한 성공을 이루는 일이 아니다. 하루의 기쁨과 슬픔을 다시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일, 그 작은 회복이 한 사람을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우리 모두에게도 ‘파우사’는 필요하다. 우상을 좇는 사람은 좀처럼 멈추지 못한다. 달리는 방향이 자신의 의지인지, 타인의 욕망이 스며든 길인지 돌아볼 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제목인 ‘파우사(PAUSA)’는 축구에서 잠시 공을 멈춰 상대를 끌어들이는 기술을 뜻한다. 이 한 단어는 경기장을 벗어나 삶의 태도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멈춘다는 것은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다시 살피는 일이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이유를 돌아보고, 미움의 끝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며, 타인의 그림자를 좇느라 자신의 얼굴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천천히 확인하는 시간이다. 삶은 때때로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보다 멈춰 서는 용기에서 새로운 방향을 얻는다. 잠시 멈춰야만 삶이 향하던 방향도 또렷해진다.

『파우사』가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복수의 성패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던 한 인간이 다시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려는 여정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를 통해서도, 미워하는 이를 통해서도 삶의 중심을 내어줄 수 있다. 그 중심을 타인에게 맡긴 동안에는 어떤 감정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삶은 자신의 이름으로만 완성된다.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고, 누구의 빛도 자신의 시간이 되어 주지는 않는다. 자기 삶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다시 자기 손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파우사』가 말하는 멈춤은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바라보다 문득 자기 자신을 잃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더욱 깊게 읽힐 것이다. 동경은 누군가를 향하는 감정이지만, 그 끝에서 시험받는 것은 언제나 자기 삶이다. 오래 품었던 동경이 어느새 삶의 중심을 대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 타인의 성공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 했던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드라마를 오래 연출해 온 작가답게 장면의 호흡과 인물 사이의 긴장은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야기를 읽는다는 감각보다 한 편의 작품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듯한 몰입이 이어진다. 복수보다 자기 삶을 되찾는 이야기에 더 오래 시선을 머무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다. 이야기의 끝에서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은 흔치 않다. 『파우사』는 그런 작품이다.

✏️도서출판 쌤앤파커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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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구락부
이화경 지음 / 한길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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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을 이름으로 기억한다. 이름은 한 사람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표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한 사람의 삶은 이름 하나로 설명될 수 있을까.

천아지였던 소녀는 엘렌이 되고, 애란이 되고, 신여성이 되고, 통역사가 되고, 누군가의 연인이 되고, 누군가의 정부가 되고, 스파이가 되고, 배신자가 된다. 시대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도 그녀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모든 이름으로 살아냈고, 동시에 그 어느 이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다. 한 인간의 삶은 하나의 호칭이 아니라 수없이 겹쳐진 시간과 선택, 상처와 희망이 만들어낸 서사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애란이라는 존재를 통해 증명해 보인다.

그녀가 가장 바라고 있었던 것은 그저 살아남는 일이었다.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 하나였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내리는 선택은 언제나 누군가의 손쉬운 판단을 불러왔다. 시대는 생존의 흔적을 신념으로 오해했고, 신념을 배신으로 기록했으며, 사람을 하나의 낙인으로 정리하려 했다. 애란 역시 수많은 선택 끝에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세상은 그녀의 사정을 읽기보다 이름표를 붙이는 데 익숙하다. 인간은 타인의 삶을 한 단어로 정리하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한 문장이 될 수 없다. 삶은 하나의 선택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견뎌낸 시간까지 함께 바라볼 때 비로소 이해의 문이 열린다.

애란은 이름보다 자유를 갈망했던 사람이다. 돈을 벌려 했던 것도, 언어를 배우려 했던 것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디려 했던 것도 결국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Go Forward.”라는 짧은 문장은 단순한 좌우명을 넘어 그녀의 생애 전체를 떠받치는 의지다. 민며느리였던 소녀는 지식을 향해 걸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얼굴을 수없이 갈아입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발걸음은 영광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향한 가장 처절한 몸부림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구도 쉽게 미워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시대 안에서 살아남으려 애쓴 사람들이었다. 시점이 바뀔 때마다 선과 악의 자리는 끊임없이 뒤섞이고, 독자가 내렸던 판단은 여러 번 수정된다. 누군가에게는 변절자였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지막까지 신의를 지킨 사람이 되고, 악인으로 보였던 사람의 독백에서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슬픔이 흘러나온다. 인간은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해와 오해는 서로 등을 맞댄 채 존재하며,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시선을 함께 품어야 한다. 이해는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기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오래전 끝난 역사를 다시 소설로 읽는 것일까. 역사책은 사건을 알려주지만, 소설은 그 시대의 공기를 살게 만든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과 전쟁이 이어지던 1926년부터 1955년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며,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대 앞에서 여러 번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가야 했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접어야 했는가. 얼마나 많은 삶이 역사의 거대한 문장 속에서 지워졌는가. 문학은 이 질문에 대해 숫자가 아닌 얼굴로 대답한다. 몰랐던 시간을 알게 하고, 보지 못했던 삶을 마주하게 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문학이 가진 가장 깊은 역할. 문학이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유.

『비밀구락부』에는 승자가 없다. 살아남은 사람도, 신념을 지킨 사람도, 사랑을 선택한 사람도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품은 채 시대를 통과한다. 애란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수없이 바꾸어야 했지만, 그 변화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버려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고, 이름을 잃을 때마다 또 다른 이름으로 삶을 이어간 애란. 어느 이름에서도 편안히 머물 수 없었던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이념도 사랑도 아니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기 삶이었다. 현욱 역시 시대를 바꾸겠다는 신념을 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논리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두 사람 모두 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었다는 바람만은 닮아 있다. 역사는 승자와 패자의 기록으로 남지만, 인간의 삶은 언제나 그보다 훨씬 복잡한 마음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과 우정, 신념과 배신은 시대 앞에서 너무도 쉽게 뒤바뀌고, 그 선택은 누구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채로 한 사람의 생애가 된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삶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이름이 아닌 그 이름 아래에서 견뎌낸 시간들이다. 시대는 한 사람을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하려 하고, 권력은 저마다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단하려 한다. 누군가는 배신자로 남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붙여진 이름들은 한 인간의 생애를 설명하기에는 언제나 부족하다. 삶은 판결문보다 길고, 이념보다 복잡하며, 기록보다 깊다. 『비밀구락부』는 잊힌 시대를 복원한 소설인 동시에, 한 사람의 삶을 함부로 대신 써 내려가는 모든 시선에 저항하는 작품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은 비밀도, 첩보도, 이념도 아니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하나의 문장으로 끝맺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살아내려 했던 사람들의 침묵이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과거가 되지 않는다. 이화경은 그 격동기를 거대한 사건 속에서 숨 쉬는 인간군상의 얼굴로 복원해 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한 시대를 이해하는 일을 넘어,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선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준다. 누군가의 삶은 기록될 수는 있어도, 결코 한 줄로 요약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깊이 들여다보는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민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오래 곁에 두게 될 이야기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문학을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도 건네고 싶은 소설이다.

✏️도서출판 한길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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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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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가장 익숙한 것이면서도 가장 늦게 의심하게 된다. 내일이 오늘의 뒤를 잇고, 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시간은 삶의 가장 단단한 질서이니까.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은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대신, 단 한 사람만 그 밖으로 밀어낸다. 세상은 여전히 11월 18일을 살아가지만, 타라 셀테르의 기억만은 하루씩 앞으로 나아간다. 시간은 멈췄지만 기억은 멈추지 않는다. 작품이 끝없이 바라보는 것은 바로 그 낯선 비대칭이다.

이 작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이 아닌 기억이다. 타라는 같은 하루를 수백 번 살아간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사람과 같은 대화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녀 안에는 반복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기억이다. 하루는 언제나 처음으로 돌아가지만, 기억은 단 한 번도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삶은 흘러간 시간보다, 잊히지 않고 쌓여온 경험의 두께에 의해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갖게 된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타라는 반복되는 11월 18일에 남편 토마스를 다시 만난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타라는 수백 일을 살아낸 사람이고, 토마스는 언제나 첫날을 살아가는 사람인 까닭이다. 둘 사이에는 함께 쌓아 올린 기억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거대한 간극으로 놓인다. 함께한 시간이 관계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 관계를 만드는 것일까. 나눈 대화가 한 사람에게만 남아 있다면, 그 대화는 정말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이 소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직접 겪지 않은 경험은 온전히 건너갈 수 없다. 토마스는 타라를 믿는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가 살아낸 시간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믿음과 이해는 같은 자리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상상할 수는 있어도, 타인의 시간을 대신 살아낼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타인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며,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거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작품은 되풀이되는 하루를 지루함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되는 하루는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세계를 끝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같은 비가 내리고, 같은 새가 울고, 같은 빵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평범하다고 여겼던 풍경은 수백 번 같은 하루를 지나며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익숙함은 많은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그 되풀이 속에서 익숙함은 걷혀가고,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준다.

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낯선 사건은 시간이 멈춘 일이 아니다. 함께한 시간이 한 사람에게만 남는다는 사실이다. 타라는 같은 하루를 살아가지만 결코 같은 사람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기억이 그녀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녀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누구와도 온전히 나눌 수 없는 시간이 되어간다. 인간은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라기보다, 자신 안에 축적된 기억의 밀도만큼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라는 제목은 어쩌면 그렇게 저마다 다른 두께로 쌓여가는 삶의 부피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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