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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평점 :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저 사람처럼 혹은 저 사람과 가까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동경이 오래될수록 이상한 일이 생긴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삶을 더 열심히 바라보게 되고, 그의 성공에 웃고 그의 실패에 무너진다. 마음의 중심이 조금씩 옮겨가는 동안, 정작 자신의 삶은 배경이 되어 버린다. 『파우사』는 복수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은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내어주게 되는지를 들여다본다.
사람은 결핍이 깊어질수록 우상을 세운다. 완전한 존재를 만나서가 아니다. 혼자 감당하기 벅찬 삶을 잠시 기대어 둘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그 사람이 살아내는 삶을 선망할 때가 많다. 그 안에 미래를 겹쳐 보고, 이루지 못한 가능성을 슬그머니 맡겨 둔다. 그래서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은 단순한 호감을 넘어선다. 그의 승리가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지고, 그의 빛으로 자신의 그늘까지 덮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 일은 오래 걸린다. 이미 빛을 얻은 사람 곁에서 미래를 빌려오는 편이 훨씬 쉽다. 우상이란 동경의 이름을 빌린 안식처다. 사람은 그곳에 잠시 불안을 내려놓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미래를 미리 살아본다. 작품 속 명관 역시 그런 마음으로 한 사람을 바라본다. 삶이 흔들릴수록 사람은 자신보다 단단해 보이는 존재를 찾는다. 그 곁에 서 있기만 해도 자신의 삶까지 조금은 단단해질 것이라 믿으면서.
그러나 우상은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지는 만큼, 무너질 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배신은 신뢰 하나를 잃는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쌓아 올린 시간과 믿음, 그리고 그 안에서 그려왔던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허물어진다. 우상이 무너질 때 사라지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기대어 세워 두었던 자기 자신도 함께다. 사랑과 증오는 서로 등을 돌린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마음을 내어준 만큼 상처도 깊어진다. 복수는 상대를 겨누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대를 향한 칼끝에는 무너져 버린 자신의 삶도 함께 걸려 있다. 그래서 오래 미워할수록 삶의 중심에는 여전히 그 사람이 머문다.
작품 속 ‘NPC’라는 표현은 현대인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처럼 읽힌다. 게임 속 NPC는 스스로의 목적 없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채워 주는 존재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가족의 삶을, 누군가는 조직의 성공을, 또 누군가는 동경하는 이의 꿈을 마치 제 목표인 듯 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하루의 기쁨과 슬픔이 늘 다른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면 삶의 중심은 이미 그곳으로 기울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삶은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간다. 처음에는 동경이었지만, 어느새 기쁨과 슬픔마저 남의 삶을 따라 움직인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위대한 성공을 이루는 일이 아니다. 하루의 기쁨과 슬픔을 다시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일, 그 작은 회복이 한 사람을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우리 모두에게도 ‘파우사’는 필요하다. 우상을 좇는 사람은 좀처럼 멈추지 못한다. 달리는 방향이 자신의 의지인지, 타인의 욕망이 스며든 길인지 돌아볼 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제목인 ‘파우사(PAUSA)’는 축구에서 잠시 공을 멈춰 상대를 끌어들이는 기술을 뜻한다. 이 한 단어는 경기장을 벗어나 삶의 태도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멈춘다는 것은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다시 살피는 일이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이유를 돌아보고, 미움의 끝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며, 타인의 그림자를 좇느라 자신의 얼굴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천천히 확인하는 시간이다. 삶은 때때로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보다 멈춰 서는 용기에서 새로운 방향을 얻는다. 잠시 멈춰야만 삶이 향하던 방향도 또렷해진다.
『파우사』가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복수의 성패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던 한 인간이 다시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려는 여정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를 통해서도, 미워하는 이를 통해서도 삶의 중심을 내어줄 수 있다. 그 중심을 타인에게 맡긴 동안에는 어떤 감정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삶은 자신의 이름으로만 완성된다.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고, 누구의 빛도 자신의 시간이 되어 주지는 않는다. 자기 삶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다시 자기 손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파우사』가 말하는 멈춤은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바라보다 문득 자기 자신을 잃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더욱 깊게 읽힐 것이다. 동경은 누군가를 향하는 감정이지만, 그 끝에서 시험받는 것은 언제나 자기 삶이다. 오래 품었던 동경이 어느새 삶의 중심을 대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 타인의 성공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 했던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드라마를 오래 연출해 온 작가답게 장면의 호흡과 인물 사이의 긴장은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야기를 읽는다는 감각보다 한 편의 작품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듯한 몰입이 이어진다. 복수보다 자기 삶을 되찾는 이야기에 더 오래 시선을 머무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다. 이야기의 끝에서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은 흔치 않다. 『파우사』는 그런 작품이다.
✏️도서출판 쌤앤파커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