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
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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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부터 결혼이라는 이름을 필요로 하게 되었을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잠들고, 힘든 날 서로의 등을 내어주는 일에는 본래 결혼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랑은 결혼으로 향해야 온전해지고, 결혼에 이르러야 비로소 안정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안희제의 『사랑과 안정』은 결혼을 둘러싼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랑과 안정이라는 두 단어를 얼마나 오랫동안 결혼이라는 하나의 제도 안에 포개어왔는지 보여준다. 사랑과 결혼, 가정과 안정 사이에 당연한 듯 놓여 있던 연결고리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양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결혼을 꿈꾸는 마음에는 낭만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섞여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생활비와 돌봄,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결혼은 삶의 바닥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울타리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지만,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고 나의 집이며 어려운 순간에도 책임을 나누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종류의 안도감을 준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쉽게 대체되는 시대일수록 오래 머무르겠다는 약속을 품은 관계에 마음이 기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버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 결혼이라는 형태를 향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면서 동시에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익숙한 방법이 된다.

하지만 안정이 결혼이라는 하나의 문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문밖에 서 있는 삶은 언제나 불완전한 것으로 남게 된다. 좋은 직업을 얻고, 돈을 모으고, 집을 마련하고, 적절한 나이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삶. 우리는 이것을 평범한 삶이라고 부르지만 그 평범함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결혼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관리하며, 남성에게는 경제적 능력과 책임감이, 여성에게는 외모와 나이, 출산과 돌봄의 가능성이 따라붙는다. 누구도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결혼하지 않는 삶을 불안해하고, 누구도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았는데 이미 정해진 생애의 순서를 따라가게 된다. 가장 단단한 규칙은 명령의 목소리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새 자신의 생각과 욕망인 것처럼 마음속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그 문을 통과한 뒤에는 또 다른 이름들이 기다리고 있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 위에 사회가 오래도록 정해온 역할이 포개진다. 사랑은 때때로 그 역할들을 부드럽게 감싸는 언어가 된다. 사랑하니까 이해하고, 사랑하니까 양보하고, 사랑하니까 돌본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운 말 뒤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한 몫으로 굳어진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오래된 사회의 관습은 사라지는 대신 사랑의 얼굴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누군가는 가족을 책임질 경제력을 증명해야 하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경력을 조정해야 한다. 특히 여성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어디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계산하게 만드는 사건이 된다. 사랑이 두 사람의 세계를 넓히는 힘이 되려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한 자원으로 소모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안정이라는 말의 자리를 조금 넓혀볼 수 있지 않을까. 안정은 정말 배우자 한 사람에게서만 얻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곁을 내어주는 친구,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간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관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해주는 사람, 아픈 날 말없이 찾아와주는 사람. 삶을 지탱하는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오랫동안 사랑과 돌봄과 책임과 주거와 경제적 연대를 한데 묶어온 탓에, 그 밖의 관계들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을 뿐이다.

관계의 가치는 이름보다 그 안에서 서로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내 곁에 붙잡아두는 것이 사랑의 증명이 될 필요는 없다. 상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때로는 등을 내어주고, 필요할 때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다. 돌봄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대신 살아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갈 힘을 잃지 않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이라면, 돌봄은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닌 서로를 살아 있게 하는 관계의 방식이 된다. 좋은 관계 속에서는 한 사람의 세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작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게 기대면서 각자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진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독립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관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안정』의 마지막에는 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진다.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던 사랑과 결혼과 가정과 안정 사이에 다른 길들이 생겨난다. 친구와 가족 사이에도 돌봄이 있고, 연인 사이에도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거리가 있으며, 이름 붙이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도 서로의 삶을 견디게 하는 책임과 애정이 존재한다. 안정은 한 사람의 어깨에 모든 무게를 올려두는 대신 여러 관계 사이에서 서로의 무게를 나누어 갖는 일일 수 있다.

‘관계의 기하학’이라는 말은 그래서 이 책의 사유를 잘 보여준다. 삶은 하나의 직선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다른 사람의 곁을 지켜주면서 수많은 선과 면을 만들어간다. 그 모든 관계가 반드시 같은 모양일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사람이 작아지지 않는 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기 삶을 잃지 않는 일, 서로의 불안을 혼자 견디게 하지 않는 일이다.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는 방식으로 안정될 필요가 없다. 안정 역시 한 사람의 어깨 위에만 세워질 이유가 없다. 서로의 삶을 지탱하면서도 각자의 삶이 더 넓어질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것. 어쩌면 우리가 오래도록 사랑이라고 부르며 찾아 헤맨 것은 그런 관계였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존재했던 것, 그리고 결혼이라는 이름 너머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 『사랑과 안정』은 사랑과 안정 사이에 너무 오래 놓여 있던 하나의 등식을 천천히 풀어내며, 그 자리에 우리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수많은 관계의 형태를 그려낸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하니포터 13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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