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40 -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개정증보판 수능.논술.내신을 위한 필독서
0. 헨리 외 지음, 박선희 엮음, 박찬영 옮김 / 리베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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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도 아닌 내가 이 책이 탐났던 이유는 꼭 읽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세계단편문학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겠다는 욕심에서였다. 꼭 읽어야 할 것처럼 여겨졌다는 것은 결국 읽고싶다는 내 의지보다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의 목적을 품고있는 것이였다. 그러나 당위의 목적이란, 해도그만 안해도 그만인 자유의지로 얼마든지 뒤집을 수도 있는 것이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학생도 아닌 나는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어떤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중고교시절 반드시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만 했던 일명 필독서 목록을 귀찮아했던 자책감일 수도 있겠고, 그보다는 이런 기본적인 단편소설 쯤은 몇번이고 읽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싶었던 탓일 수도 있겠다. 책을 선택한 이유가 어찌되었든 이 책을 살펴보고난 솔직한 내 심정을 이야기하자면, 중고생이 아닌 나도 그렇지만 중고생이라해도 임의의 목적에서 필독이라고 정해진 문학을 꼭 읽어야할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다.

 

먼저 종합선물세트처럼 잘 구성된  이 책의 단편들은 교과서에 실린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다해도 교양처럼 읽어두면 도움이 될 만한 주옥같은 글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더구나 이 책에는 <노인과 바다>, <아Q정전>같은 중편조차도 편집없이 전문을 다 담고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지않으면(아니 그보다는 이책을 갖지않으면) 손해를 볼 것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러한 욕심으로 손에 쥔 책을 차분히 앉아 불을 켜고 읽으려하니 숨이 턱 막히는 것이 꼭 읽어야만 하겠다는 욕심이 앞서 읽기 싫어지는 기분이었다. 더구나 수능·논술·내신을 위한 필독서라는 부제에 맞게 이 책은 한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작가와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작품의 성격이나, 시점, 주제 그리고 내용까지 미리 잘 요약해 두었다. 때문에 작품해설을 읽고나면 본편은 읽고싶은 생각조차 없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작품 설명이 정작 작품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만 것인데, 이는 학창시절 억지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때 작품해설을 베끼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대학입시와는 관계없는 나는 좋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읽겠다는 욕심으로 이 책을 선택했지만, 외려 책이 읽기싫어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그러나 나와는 반대로 이 책을 통해 꼭 필요한 것만 취하겠다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정말 유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은 어떤 목적, 이유가 있는 행위라기 보다는 그저 '재미'를 위한 작업이었으면 좋겠다.

 

청소년 시기에 소설, 즉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삶에 대한 예방주사를 미리 맞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살 수 있는 삶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내가 살 수 없는 삶을 체험하고 느껴 내가 살아내야만 하는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함에 있는 것이다. 또는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단순하게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 어느경우건 대학입시나 논술, 내신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절대로 책읽기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좋은 단편집이 내게는 너무 버거웠다. 때문에 나는 절대로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삶의 다양한 경험이 절실한 청소년들이 대학입시만을 위한 책을 읽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그런 독서를 더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때문에 단편일지라도 단행본으로 한권 한권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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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꼬치 일본관찰 지식의 비타민 1
지식활동가그룹21 지음 / 문화발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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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는 인도의 음식이 아니다, 짬뽕의 본 고장은 일본이다, 일본에는 사막이 있다, 요런건 정말 몰랐다. 한때는 일본이 산유국이 였다는 것도 지식의 비타민 시리즈 <꼬치꼬치 일본과찰>을 읽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던 일이었다.

텔레비전 퀴즈프로그램 구성작가, 잡지 편집장, 제약회사 홍보책임자, 방송작가, 일간신문 기자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만드는 시리즈의 제 1권이 바로 이 책, <꼬치꼬치 일본관찰>이다. 이들이 모여 지식의 비타민을 통해 지향하는 것은 방대한 양의 고급문화, 고품격 지식, 거대담론이 아닌 사소하고 어쩌면 하찬케까지 여겨질 수 있는 잡학다식한 정보의 만물상이다. 따라서 이 책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정보들로 간단하고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말 그대로 정보전달을 위한 책인 것이다. 그 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그를 이용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초밥 한접시에 똑같은 초밥이 두개씩 나오는 이유는 단순히 암산을 위해서라거나, 일본의 성에 소나무가 많은 이유는 전쟁시의 식량대비라는 것을 알고는 다소 허탈했다. 오사카의 도톤보리에서 보았던 다리 하나가 1미터가 넘는 게의 모형 간판이 50년이나 되었다는 것, 꿈의 섬 오키나와는 일본인들로서도 쉽게 갈 수 없는 고급휴향지이며, 오키나와인들은 자신들을 일본인으로 여기지 않고 아직도 독립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는 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이처럼 새롭고 다양하며, 놀라운 많은 정보들이 빼곡히 실려있지만, 물론 이 책 한권으로 일본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짤막짤막한 단순 지식을 통해 그동안 전혀 몰랐던 것을 알 수 있었고, 알고는 있었지만 왜그런지 궁금했던 것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 배낭 여행 후 부쩍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이 책을 통해 알면서 잘 알지 못했던 사소한 일본이 흥미로웠던 이유다. 또한 재미있고, 다양한 정보책 지식의 비타민 시리즈가 무척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책이 너무 뻣뻣해서 작은 책임에도 한손에 쥐고 읽기가 불편했다는 것과 사진의 화질이 많이 떨어져 답답했다는 것이다. 정보를 위한 책답게 한손에 쥐고 넘기기 수월하도록 좀더 부드러웠으면 좋겠고, 사진이 작더라도 선명했으면 하는 욕심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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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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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미나토 가나에를 알게된 것은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을 읽고 였다. 그후로 몇주간 줄곧 범죄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야말로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그녀의 소설은 범죄 이야기이지만, 그 전에 각자의 입장에서 한 사건을 바라보는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더불어 남의 일이라면 함부로 마구 거칠어지고 마는 심리를 밀도있게 잘 표현한다. 말 그대로 빛과 어둠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간의 양면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인 것이다.

 

언덕 위에 살면서 고통을 느끼는 이는 언덕 밑으로 내려가야만 하는 사람들 뿐이다.(126쪽)

 

역시 남의 고통에 대해 상상하거나 말하기는 쉽다.

범죄 소설이라지만 흔히 하드보일드에서 느끼는 공포감과는 또다른 연민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남의 일이지만 남의 일만은 아닌, 어느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공포와 연민이 공존한다. 그것이 미나토 가나에 작품의 힘이다. 또한 피해자와 피의자 외의 주변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사건의 외향 또한 놓치질 않는다. 이렇게 섬세한 작가이기에 범죄 소설도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새삼 감탄한다. 지금껏 하드보일드라면 삼류의 무협지처럼 여기지 않았던가 반성하는 마음까지 든다.

 

분명 그 가족밖에 모르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어떨까? 도망치고, 내일 돌아가고, 마유미와 아야카에게 멸시당하고, 또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른 선택은 없단 말인가?(280)

 

부촌으로 알려진 언덕위의 한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일상 속에서 언덕위의 집은 평온했다. 온화한 부모가 있고, 성실한 아들과 딸이 사는 집이였다. 그런데 그런 집에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후로 사건을 바라보는 각각의 입장이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개인적인 것을 강조하지만 살아가는 데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역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때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아야카도 신지도 지극히 평범할 뿐인 자신들의 발을 단단히 붙들어 매주는 누군가의 마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것이다. 준코 역시 자신이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살인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강한 살의를 품어도 죽였다는 사실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 사이에는 크나큰 경계선이 있다. 그 경계선을 뛰어넘을 것인지, 눈앞에서 그칠 것인지, 결정은 의지가 크게 좌우한다고 믿었다. 윤리관, 이성, 인내심. 하지마 그것뿐이라면 나는 지금쯤 살인자 신세다. 말려주는 사람의 유무가 결정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결코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말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다카하시 준코에게는 없었다. 차이는 그저 그뿐.(286)

 

살인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의 가족이 된 다카하시의 형제들은 이웃에 받아들여짐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그나마 지킬 수 있게 된다. 살인자라는 비방문이 잔뜩 붙은 집으로 되돌아가 가기는 힘겹지만, 이웃과 친구의 도움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친구라는 말, 이웃이라는 말에 잠깐 감동하게 된다. 역시 사람은 혼자서만은 살 수 없기에.

야행관람차. 사람들은 대부분 관람차의 승객이 되어 타인의 삶을 바라본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대로 자기식으로 편집된 장면을 기억할 뿐이다.

 

오늘을 이겨낼 수 있었으니 내일도 앞으로도 분명 어떻게든 될 거야.(322)

 

체념. 일정정도의 체념은 오늘을 살아가는데 의지가 되고,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된다. 너무 예민하게 굴어서는 지칠뿐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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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책장 - 애서가의 꿈 / 세상에 없는 나만의 서재 만들기
알렉스 존슨 지음, 김미란 옮김 / 위즈덤스타일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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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영위하며 행복을 찾을 것을 종용했던 르네상스의 철학자 몽테뉴의 서재는 저택 한구석에 위치한 원형 탑 3층이였다. 그 서재에서는 정원을 비롯한 주변의 자연환경 모두 내려다 보였으며, 서재의 책꽂이는 원형 탑을 둥글게 감싸 돌며 놓여 있었다. 때문에 아래에서 책꽂이를 올려다보면 마치 나뭇가지를 칭칭 감은 포도 넝쿨과 같은 모습이였다고 한다. 몽테뉴는 이 원형탑 서재에서 염세주의를 벗어나고멋진 인생을 노래한 '수상록'을 저술한다.

나는 몽테뉴의 원형탑 서재를 상상하며 남몰래 흐믓한 미소를 짓곤 한다.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의 로망은 자기만의 공간에 자기만의 서재를 세우는 것이다. 나역시 언젠가는 나만의 서재를 세우리라는 꿈을 갖고 몽테뉴의 서재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서재에는 무엇보다 책꽂이가 중요하다. 서재가 좁으면 좁은대로 모양이 틀어지면 틀어진 대로 많은 양의 책을 수용하기 위한 책꽂이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책꽂이가 반드시 벽면에 세울 네모난 모양일 필요는 없으며, 요즈음은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는 가구를 이용한 책꽂이가 많이 애용된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책장과 의자가 결합한 책장소파가 있겠다. 

이 책에는 바로 이런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많은 책장들이 등장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흐믓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된다. 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인지, 책들이 주체할 수 없을만큼 쌓인 풍경을 좋아하는 것인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지만, 이 책에 실린 책장들이라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책장만은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도서관을 닮은 책장, 책갈피를 닮은 책장, 하다못해 '스카이콩콩'이라는 이름을 단 책꽂이까지 등장한다. 아, 무한한 창조의 세계여! 실용적이거나 감각적이거나 또는 무의미하지만 완전히 획기적인 책장들의 향연을 즐기다 보면 몽테뉴의 원형탑 서재가 더더욱 간절해지는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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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실뱅 테송 지음, 임호경 옮김 / 까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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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숲, 고독, 체험, 은둔, 눈덮힌 시야 따위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 도시내기인 나는 입버릇처럼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도시를 떠나 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여행 역시도 무엇보다 편하고 깨끗한 잠자리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다만 책을 통해서 타인의 경험을 마치 내가 체험하는듯 느끼기는 즐기는 편인데, 역시 그는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상상 이외에 손이 갈라지고 뺨이 창백해지는 생생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 책 역시도 그랬다. 여행가 실뱅 테송의 바이칼 호반 오두막 생활을 마치 <로빈슨 크루소>의 일기를 읽듯 따뜻하고 안전한 내 집, 내 침대에서 막연한 상상으로 읽었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물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극지방, 혹은 오지체험을 할 수 없는 게으른 종족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 외에는.

 

'나는 몇 달 동안 오두막 생활을 하리라는 맹세를 했었다. 곧, 추위와 정적과 고독은 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인구과잉에 이상고온과 온갖 소음에 시달리는 이 지구에서 숲속의 오두막은 일종의 엘도라도 라고 할 수 있다'(38쪽)

 

엘도라도. 이상향. 내가 꿈꾸는 고독. 다만 나는 절대 이루지 못할 꿈. 현대문명의 혜택은 하나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그리는 자연으로의 귀향. 소나무 가지들을 지붕으로 삼고 번잡한 일상과 갈수록 세밀해지는 물건더미 속에서 놓여나 책을 읽고, 잠을 자고, 한동안은 멍하게 있을 자유를 꿈꾼다. 실뱅 테송의 고독을 마치 내가 느끼는 고독인양 위안삼아 이 책을 읽으며.

도피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내마음대로 무엇을 하건 아무의 허락도 필요치 않고, 누구의 시선도 느끼지 않으면서 게으를 자유를 꿈꾸는 것이다. 그것이 꼭 시베리아의 광활한 얼음 숲속은 아니어도 가능하련만, 나는 경기도를 벗어나는 것 조차도 크게 인심쓰듯 작정을 해야 한다. 아, 습관적으로  떠나고 싶다는 말을 얼마나 입에 달고 사는지. 그러나 결코 떠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실뱅 테송의 바이칼 체험기를 마냥 부러운 시선으로 약간의 안도감 속에서 읽을 수 밖에 없다.

 

은둔의 유혹이 생기려면 반드시 어떤 주기를 거쳐야 한다. 숲속 빈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두막에서 살기를 열망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소화불량으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순응주의라는 굳기름 속에서 온몸이 경직되고, 안락함이라는 돼지기름 속에서 정신이 곪아터져야 비로소 숲의 부름이 귀에 들린다.(163쪽)

 

6개월간의 체험이 아닌 일상의 숲이라면 실뱅 테송은 시베리아의 오두막 생활을 결코 찬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볼이 얼음 바람 속에 늘 빨갛게 얼긴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날마다 노래하지는 않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기간이 정해진 은둔은 진정한 은둔이 아니다. 돌아올 기약을 약속한 떠남은 낭만적이고싶지만 게으른, 혹은 정신적이고 싶지만 몹시도 물질적인 도시인들을 위한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반성장을 국민에게 부과할 통치자가 없는 것처럼 오두막의 간소함을 정해진 기간 외의 삶으로 받아들일 사람 또한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점에서는 실뱅 테송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같지않은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나의 게으름이 그다지 한심하게만 여겨지는 것은 아니라 다소나마 안심하게 된다.

다만 나는 오늘도 꿈꾼다. 실뱅 테송이 짊어지고 들어간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라던가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가 든 책꿰짝을 지고 어딘가로 숨어들어가 무작정 책만 읽을 수 있는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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