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고민하는 청년

<황천의 개>는 1995년 도쿄의 지하철 역에서 사린 가스 테러를 일으킨 종교단체 '옴진리교'를 소재로 한 에세이다. 그러나 이 에세이는 테러에 대한 르포형식의 글은 아니다. 사건 직후, 옴진리교도 일망타진에 대한 보도를 보던 지은이는 컬트 종교에 빠져있는 청년들의 모습과, 살아있는 육체로서의 삶을 고민하며 인도로 떠났던 작가 자신의 청년시절을 오버랩하며 쓴 글이다. 청년의 후지와라 신야는 왜 인도로 갔던 것인지, 삶이 그대로 종교인 인도에서 신야가 본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서술하고, 역시 인도에서 종교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옴진리교의 교주와, 그를 추종하는 청년들은 무엇때문에 그 스스로를 바리케이드 안에 가두고 세계를 증오했던 것인지를 추측한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얼마나 비뚤어진 괴물이었는지에 대해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사하라 쇼코가 그와 같은 종교관과 세계관을 갖게된 배경을 비춰보고자는 취지로 씌여진 책인 것이다.

전후 고도성장을 통해 물질과 자본을 추종하던 일본에서는 광고와 온갖 정보에 세뇌된 청년들이 탄생한다. 저자는 이들이 히키코모리가 되었거나 옴진리교를 추종하는 청년이 된 것은 깊이는 다를 지언정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그들은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으며 시류에 순종하는 양이 되는 대신, 자신을 고독감과 비슷한 감정에 가두며 사회의 질서를 거부한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십대 시절 대학을 그만두고 인도여행을 택했던 자신의 고뇌와도 같은 결의 이야기지만, 그 결과는 20년의 시간차를 지나며 히키코모리거나 사이비 종교단체에 적을 두고 타인의 생명을 음해하는 세력이 되거나 하는 식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기질이나 역량에서 나타난 결과이기보다는 인간을 거스르며 자본을 추종해온 시대에 의한 변질이지 않겠나 하는 해석을 잔잔하게 펼친다.

 

황천의 개

책을 읽기 전 책장을 넘기며 대충 살피다가 충격적인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장과 장을 가르는 목적으로 사용된 사진은 엎드린 사람의 발을 물어뜯는 들개의 모습이었다. 기이하게 뒤틀린 채로 개에게 물어뜯기고 있는 희멀건 물체는 사람의 다리가 맞는지 흑백의 사진은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지만, 몇번을 다시 보아도 그것은 분명 개가 사람을 먹고있는 장면이었다. 지은이는 인도에서 찍은 이 사진을 다른 책에도 서너번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후지와라 신야를 이 책으로 처음 안 나는 이 사진 역시 처음 보았다.

 

화장터에 처음 갔을 때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지. 인간이 짐승의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렸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지구보다 무겁다'라고 말하던 인간의 목숨이 아귀 같은 들개들에겐 한낱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꼴좋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뭔가로부터 해방되고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의 해방감이었을까. 자아였는지도 몰라. 혹은 사회였는지도 몰라. 서구화를 목표로 우리들을 감시하고 관리했던 근대화였는지도 몰라. 민주주의 사회가 가르친 것처럼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대수로운 게 아냐. 출산율이 감소되면서 부모와 사회는 하나뿐인 자식을 과잉된 기대와 과보호 속에서 키우고 있는데 인간은 우리가 그토록 많은 기대와 희망을 걸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냐. 동물이나 곤충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혹은 화장터의 불길을 바라보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편해졌어. 그리고 눈앞의 광경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어. 개의 엄니가 피부를 뚫고 뼈에 부딪힐 때마다 목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 마치 이 세상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음악처럼 들렸지.(145쪽)

 

처음 사진을 보며 느꼈던 섬뜩함은 신야의 이 글을 보며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어쩐지 나조차도 속이 후련해지며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사진에 대한 신야의 설명은 언제나 중요한 무엇이 되지 못해 기가 죽어있던 나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삶이 이토록 가벼운 것인데 무엇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하느냐는 말을 온 몸으로 보고 들은 것만 같았다.

 

 

서구사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받아들이고, 생산과 성장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성장지상주의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았으면서도 인간의 목숨은 지구보다 무겁다며 필연적으로 누구나 겪게되는 죽음을 경원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이 우선한다는 이념을 강조하면서도 단 하나 돈 앞에서 '인간'은 무참해지곤 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그 모든 국가, 그 모든 사회에 공통된 병패이고, 병든 사회에서 괴물과 같은 젊은이들이 탄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1950년대 말, 일본 규슈지방의 미나마타에서 어패류를 먹은 사람들이 사지마비를 일으키거나 언어가 마비되고, 맹인이 되는 등의 신경 손상 증상을 보였다. 이는 수은 중독에 의한 것으로 미나미타에는 1900년대 초에 들어선 화학비료 공장이 있었고, 이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에서 다량의 수은이 검출 되었다. 바로 이것이 미나미타 병의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1956년 최초의 환자 발생이후 해를 거듭할 수록 그 수가 증가했다. 지은이는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 역시 미나마타 병에 의한 시각장애를 겪고 있었으며, 이와같은 장애는 아사하라 쇼코의 성장 과정과 정신세계에도 역시 치명적이었다 라는 지은이의 추청이다.

 

리얼리티를 잃은 현대의 삶

작가가 일본을 떠나 인도로 향한 이유는 원시의 자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오롯이 확인하고 싶었던 이유에서라고 말한다. 정형화되고 균질된 도시의 삶을 떠나 존재 자체로서의 자신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부딪히고 깨지는 삶의 리얼리티를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다. 가상의 부부를 설정해두고 그들의 일상 같지않은 일상을 엿보이거나, 오지로 떠난 인기인들이 원시의 삶을 경험하는 가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꽃보다는 여행이라며 노년 혹은 청년의 연기자들이 좌충우돌 베낭여행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유명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육아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으로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중상류 이상의 생활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와 같은 환경에서 자식을 키우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짝짓기 프로그램, 성형 프로젝트, 서바이벌 오디션 등 나열하기 힘들만큼 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있다.

채널만 돌리면 온통 사방에서 리얼리티를 외치지만 연출된 장면들은 절대 '현실의 일' 일 수가 없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쪽도, 그를 들여다보는 쪽도 모두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를 외치는 이들 프로그램이 성황인 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은 삶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길 거다. 삶이 온통 균질화된 가면의 일상이므로 TV 시청을 통해서라도 삶의 평범함을 찾고 싶은 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차라리 순진한 생각이다. 그보다는 온국민이 모두 관음증에 빠져 다른 이의 삶을 관찰하며 일상의 감동을 얻고 싶어하거나, 내 삶을 관찰당함으로써 나를 특별하게 여기고 싶은 열망에 들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한둘의 특출난 괴물은 센세이셔널한 사건을 일으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지만, 집단적 무의식에 무뎌진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게 된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쓴 것은 2006년이고, 그 후로 10년 남짓의 세월이 흘렀다. 일본과 같이 고도의 성장을 단기간에 이룩한 대한민국의 집단적 무의식 현상을 보노라면 1995년의 옴진리교 청년들은 과잉된 정보와 도시가 강요하는 억지를 거부하며, 삶에는 어떤 진리가 있다는 것을 믿었던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지와라 신야

지인에게 <황천의 개>를 소개받고 절판된 책을 중고서점에서 정가의 세 배에 가까운 금액에 구입했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기 전 청어람미디어에 책을 구할 수 없겠느냐는 문의 메일을 보냈다. 출판사 보관용 외에는 재고가 전혀 없다는 답과 함께, 좋은 책이라고 해서 잘 팔리는 것은 아닌 모양이라는 답이 왔다. 뿐만 아니라 청어람미디어에서 출간된 후지와라 신야의 다른 책들도 재고분이 소진되고 나면 모두 절판될 계획이라고 했다. 이 또한 자본의 논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신야의 다른 책들도 읽어야봐야 겠다는 것 뿐이라는 것에 다소 침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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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29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있었으면..하고 바랍니다 ㅡ

비의딸 2015-12-30 09:29   좋아요 1 | URL
책에 있다면 그건 정말 보물찾기와 갔겠구나 하는 생각이.... 무조건 많이 찾는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진짜 보물은 아니겠구요-

cyrus 2015-12-29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와 같이 읽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책 한 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비의딸 2015-12-30 09:38   좋아요 1 | URL
으헉.. 길게 단 댓글이 다시 댓글달기를 누르는 판에 다 날아가버렸어요 ㅠ.ㅠ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아<언더 그라운드>는 읽지 않았지만 사이러스님? 키루스님?(죄송합니다. 제가 좀 짧아요!)이 정리해주신다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저야말로 이 누추한 곳을 자주 찾아 주시는 님께 감사드려요!
라고 썼던 것 같아요 ㅠ.ㅠ

[그장소] 2015-12-3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세번째 다시 읽는 글 입니다.
읽을 수록 좋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삶이 죽음과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언제쯤이면 자연스럽게 끌어안게 될까요...
우리 민족은 원래 풍장을 했던 민족였답니다.
바람에 시신이 놓이고 들개든 뭐든 와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던 거죠.
그게 장의풍습이 의례화되고 격식이
ㅡ슬픔에도 일종의 예,례가 생기며ㅡ
사라진 아득한 먼 일이 되었고 말이죠.
보기에 좋다 ㅡ본다 ㅡ보여진다 ㅡ하는 시선을
의식하며 발생한 다른 한 발명이랄수도 있겠습니다.만
리얼리티 ..까지 ..모두 ㅡ현시댈 직시하는 님의 글을
읽자니 ..괜히 글을 읽는 것은 아니구나 ㅡ저는 그리
생각이 튑니다..
그렇죠..아무래도 많이 찾고 적게 찾고의 문제도 아니고
반드시 그것이 진리냐 ..아니냐 도 놓고 쉽게 얘기할 수있는
성질의 것은 개개인으로 가면 멀어지는 게 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책이 있는게 아닌가 ㅡ그러는 거죠.
단 한권의 책이라도 처음 만난 책이 ㅡ그 다음을 이끈 책이
한 사람과 주변을 변화 시키는 것을 볼때에 ..
저는 다시 말하게 됩니다 ㅡ우둔하여 책이나 살피는 저이지만..그래도 역시 시류를 역류하든 바로 흐르든
그것은 먼 훗 날 또 다른 시선의 몫 이므로 현재엔 그저
찾아 볼 밖에 없지않나 ㅡ하고 말입니다 .
가능한 멀리 ㅡ바로 눈 앞도 밝혀 줄 수있는 현서를 말이지요.
좋은 글 덕에 모처럼 머리가 맑았습니다.
인도까지 걷지 않아도 되게 해준 글여서 더 느낌이 있었단 ..
농담아닌 농담을 하며..안부 남깁니다.
새해 더 좋은 책들과 인연하시게 되길 바라며..
건강하시길..빕니다.

비의딸 2015-12-31 11:01   좋아요 1 | URL
와... 감동입니다. 제 글을 읽고 이렇듯 긴 글을 남겨주시니요. 읽을 수록 좋다는 생각, 저 또한 같은 생각이에요. 한낱 개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시신을 보며 속이 후련해졌다는 것을 저토록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대번에 신야의 <인도 방랑>까지 구매해 버렸을 정도이죠.
우리 민족이 풍장을 했더란 것을 그장소님 덕에 처음 알아요. 박하선 작가의 <천장>을 보면, 티벳에서는 조장을 한다고 해요. 사진이 정말 리얼한데, 시체에 달려든 독수리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겠더라고요. 근데 그게 전혀 야만적이게 느껴지지 않는거에요. 저는 거기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떠오르더라고요..
저에게도 죽음은 두렵고 생경한 것이지만, 제가 믿는 종교에서 말하듯 죽음이 저주라는 생각은 안들어요.
책에 어떤 힘이 있든, 먼 훗날 보다는 당장의 눈 앞을 밝혀줄 뿐이더라도 역시 책뿐이더라는 생각을 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장소님도 더 많은 좋은 책들과 함께하는 새해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두루두루 힘있는 새해 되십쇼!

[그장소] 2015-12-3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핫 ㅡ후지와라 신야의 책도 물론 좋지만..그 글을 읽고 정리를 하신 비의딸 님 글이 좋다고 한 것입니다.책이야 사서 보면 될 것이고요..^^-물론 이런 좋은 소개가 있어서 가능하였겠습니다만..절판이라니 ..일단 도서관에 품을 빌려보는 수밖에 없으려나요? 비의딸님도 좋은 송년의 날 보내시고 새해 멋지게 시작하세요!자주 뵈면 좋겠습니다.ㅡ제가 게을러서..ㅎㅎㅎ

비의딸 2015-12-31 14:17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