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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페스트>를 읽겠다고 도전했다가 페스트 발병 과정과 도시의 폐쇄에 따른 불안심리 묘사에 지루해진 나는 그만 카뮈는 내게 너무 부조리한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그후로부터 다시 카뮈를 읽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게있어 책이란 학문이 아닌 재미, 혹은 즐거움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골똘해진 나머지 머리가 아파지고, 줄곧 잠이 쏟아지는 그런 경험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디오 북으로 출퇴근길에 <이방인>을 듣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읽기는 벅차지만, 오며가며 듣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겠다란 생각으로 우연이 듣기 시작한 것인데, 들으면서 줄곧 <이방인>이 맞는지 계속 확인했다. 글자가 아닌 소리이기 때문인지 지루하기 보다는 장면들이 눈앞에 너무도 선명히 그려지면서 장례식 분위기, 바닷가의 풍경, 해질 무렵의 도시 등등의 묘사가 무척 아름다웠다. 귀로 듣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인지 당장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어 퇴근 후 곧바로 책을 집어 들었다.
아니, 어째서 카뮈를 지루의 대명사쯤으로 생각했던 거지? 확실히 <페스트>에 비해서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지루하기보다는 장면의 묘사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첫 장면은 양로원에 있는 어머니의 사망 전보로 부터 시작된다.
뫼르소는 딱 내 스타일이다. 우울한 기질, 감정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은 냉담함, 그러면서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끈질긴 관찰력, 그리고 과장하지 않는 언어 스타일까지. 다만 감정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는 것만 마음에 걸렸다. 그는 마치 흔히 말하는 사회 부적응자, 더 악랄하게는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될 만큼 감정에 변화가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지 않았고, 연인 마리와의 교감을 사랑이라고 여기지도 않는 것 같았다. 확실한 자기 주장 대신 이래도 저래도 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는 뫼르소라니.
그런 뫼르소의 성격 탓인지, 모든 일들이 우연처럼 일어난다. 살인까지도 그랬는데, 의도하지 않은 탓인지 뫼르소는 살인 후에도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았는데, 나로서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레몽의 증언처럼 뫼르소와 레몽간의 우정도 우연이었다. 레몽의 행동에 대한 호의적인 증언도 우연이었으며, 따라서 살인도 우연이였다. 다만 뫼르소의 사회 통념에 대한 거부만은 우연이 아닌 타고난 기질로서 그는 조작된 감정, 보여지는 표면적 순응을 거부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덜 사회화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암묵적으로 약속되어 있는 사회적 약속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분명히 살인자인데, 어쩐지 재판관정에서는 뫼르소가 시스템으로 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는 피해자처럼 여겨졌다. 마치 남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는 순교자처럼 여겨진 것이다.
평화주의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진정 평화를 사랑하는 이라면 무리에 스며들듯 동조하는 사람일까, 무리에서 튕겨질 망정 평화적이지 않은 모든 관념, 통념을 거부하는 사람일까? 타인의 감정에 스미지 못했고, 거짓으로 감정을 포장할 줄 몰랐으며, 분위기에 맞는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거부했던 뫼르소는 평화주의자 였을까, 성격 파탄자 였을까?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재판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회고했다. 뫼르소는 카뮈의 대리인이 되어 이야기 한다.
이 재판은 나의 것입니다. 나는 피고인 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빼고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까.
카뮈는 정작 자신의 거취를 정해줄 재판에서 피고인은 소외되는 불합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카뮈가 말하고자 한 '부조리'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이방인>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페스트>에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