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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꽤 오랜 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두들 극찬을 아끼지 않던 서경식의 글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아니 읽은 지는 벌써 시간이 꽤 지났지만, 먹먹하고 답답한 마음이 부산하고 정신없이 바쁜 몸을 움직이게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재일 조선인.
저자는 재일 조선인을 민족의 관점에서는 조선인이지만,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이고, 그들의 모어는 일본어지만 모국어는 조선어라는 꽤나 복잡하지만 디아스포라의 삶, 특히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이라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실 관계에 대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을 한다. 이들은 일본인 입장에서 보면 같은 모어를 지닌 소수 민족이지만, 본국에서 보면 같은 민족이면서 모어를 달리하는 언어 소수자이다. 그들 선조의 출신지(조국)은 조선반도- 그것도 분단되기 전의-이며, 재일조선인 2세, 3세가 태어난 장소(고국)은 일본, 그들이 국민으로서 속해 있는 나라(모국)는 한국, 일본, 북한이다. 그들 중 일부는 '조선적'이라는 사실상의 무국적 상태이다.
그런 그에게 여자가 마음에 들어 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며, 만약 결혼해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하는 걱정이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상대 여성이 이해 못하는 사실이 답답하면서도 사실은 그 자신도 그 복잡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노라고 털어 놓는다.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가, 세계를 여행하며 그와 비슷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 즉 경계에서 부유하며 끝없는 방랑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애와 예술을 살펴 본다.
외적인 힘에 의해 마음대로 굴려지는 존재, 구르면서 흔적을 남기는 존재, 디아스포라적 삶을 암시하는 은유라고 읽는 문승근의 활자구를 보면서 그는 왜 그렇게 고뇌로 몸부림치던 인간이 이렇게 정돈된 표현을 하는가, 왜 좀 더 끈질기게 거친 몸짓으로 자기 고뇌를 분출하지 않는가 하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 일반에 대해 안고 있는, 애착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탄식을 한다.
영국 식민주의의 편의에 따라 아버지 세대에 인도를 떠나 아프리카로 이민했으나. 반세기가 지나 부친이 생활의 기반을 쌓은 아프리카 땅,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그 땅으로부터 추방당해,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건너갔지만 그곳에선 차별과 인권탄압이 기다리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의 사정에 따라 대로는 이용당하고, 때로는 배제당하면서 언제까지 농락당하는 삶. 이중의 디아스포라로서 자리나 빔지가 경험한 삶은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세계 분할과 식민지 쟁탈전 이후,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서 추방당하고, 추방당한 땅에서도 이방인이며 소수자로 살 수 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그런 그녀의 작품을 단지 '설명을 읽지 않으면 관객에게는 아름다운 열대 풍경으로만 보일 뿐'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는 일본 큐레이터를 보며 저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디아스포라인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디아스포라 예술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 한숨을 내쉰다.
혀로 점자 책을 읽는 김하일, 소 혀를 물고 기어가며 선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는 데이비드 강의 모습은 유랑하는 디아스포라들의 고난의 여정에 다름 아닌 것.
프랑스어로 소위 불법 체류자를 가리켜 '상빠삐에'라고 한단다. '종이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 종이와 스탬프가 없이는 마음대로 이동도 할 수 없는 사람들. 한 번 외국에 나가기도 힘들고, 들어오는 것도 힘들고, 언제나 그 다음 번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근대와 현대를 지나 탈현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경계에 사는, 추방당한 자들, 디아스포라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