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의 어두운 두 그림자인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태를 둘러싼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니하오 미스터 빈'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 하진의 소설. 좀 더 어둡고 좀 더 개인적이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며 반동 지식인으로 비판받는 쪽에 서 있던 양교수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좌절과 패배감, 비틀린 욕망을 드러내며 점점 미쳐간다. 아니 그 이전의 삶이 미친 삶이고 병원에서의 모습이 제대로 된 삶일지 모른다. 그쪽이 오히려 더 솔직해 보이니까.
제자 지안은 그런 스승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꿈꿔온 미래가 결국 스승의 삶처럼, 왜곡된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찬 비극으로 끝날 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불안은 그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약혼녀와의 이별을 되돌리기 위해서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베이징으로 향하지만, 국가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만을 확인하고 돌아 온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그의 인생을 끝장낼 지 모르는 무서운 함정.
...중국이 백치들을 위한 천국이라고 빈정거렸다. 백치들은 질투의 대상도 아니었고, 누구한테 위협의 대상도 아니었으며, 당국에 골치 아픈 일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모범적인 국민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내가 받는 고난만 한 가치가 없는 존재는 아닌지 두려울 뿐일세... 인생이라는 건 슬픔으로 가득한 바다야....
많이 알면 알수록, 나처럼 더 미쳐갈 테니까. 안다는 건 삶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거야. 손을 갖고서 정직하게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게 좋아.
그의 죽음은 나를 뿌리까지 흔들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나는 그처럼 죽어서는 안 돼...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어야 한다.
나는 내 운명을 내 손에 쥐고 싶어. 그리고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죽고 싶어. 달리 말해, 내가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으며 죽고 싶다는 거야.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너무 지나친 고통은 자신을 더 비열하고 비정상적이고 쩨쩨하고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개인적인 동기들이 정치 행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메이메이에게 허세를 부리려고 베이징으로 돌진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이유에 근거해 혁명에 가담한 것이었다... 개인을 움직이고 따라서 역사의 동력을 일으키는 것은 개인적인 관심사들이다.
나는 나의 용기를 메이메이에게 보여 주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선택의 자유가 있는 자유인처럼, 내 자신을 혁명 기계로부터 떼어내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나의 스승과 같은 규정된 운명에 저항한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겪은 주인공은 마침내 새로운 세계로 떠날 결심을 한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미치도록 만들지는 않을 곳으로... 양교수와 지안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과거의 모습을 -아니 어쩌면 나, 우리의 지금 모습일지도 모른다- 떠올리게 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우리를 미치지 않고 살아가게 할 것인가.
지금부터 나는 다른 이름을 사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