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밤톨이
안즈 유키 지음, 가나자와 마유코 그림, 김숙 옮김 / 책연어린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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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딱 좋은 크기네요. 제가 애정하는 시 필사 노트와 함께 놓아봅니다. 잘 어울려요.
당분간은 달강달강 이 그림책을 손에 넣고 지내게 될 것 같아요.
앉은 채 고개를 살짝 돌린 저 포즈, 눈망울 가득히 별빛이 내려앉은 듯 반짝거리는 두 눈이 마치 저를 바라보는 듯 생생하네요.
표지 그림 속 귀여운 갈색 개의 이름은 '오늘부터 밤톨이', 숲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가족이 생겼답니다.
뒤표지에서는 다쿠토와 엄마, 그리고 밤톨이가 다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일반적인 반려견 가족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네요.

떠돌이 개가 있었어요.
잡초 더미 위에서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불안하게 서성이곤 했지요. 늘 꼬질꼬질 때가 묻어 있었어요.
아이들이 놀려대면 슬금슬금 숲속으로 사라졌고요.
다쿠토는 그 개가 웬일인지 마음에 걸렸어요.

''그럼 그 개도 언젠가 잡혀가는 거예요?''

엄마와 다쿠토는 개를 집에 데려오기로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야기를 따라가 보아요.

-이 숲에 있는 갈색 개를 기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도와 주세요.-

먼저 숲 근처 게시판에 전단지를 붙였어요.
그리고 개와 조금씩이라도 친해지고 싶어서 숲으로 놀러 갔어요. 준비해간 간식을 주려고 했지만 개는 다가오지 않아요.
그러던 어느 날 동물보호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개를 붙잡았다고요. 센터 직원이 그 전단지를 본 모양이에요.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우리는 너를 도와주려고 온 거야.''

센터 직원은 사람에게 길들지 않은 개라 데리고 가도 잘 따르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조금만 기다려 줘. 금방 다시 올게.''-

개는 웅크린 채 다쿠토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어요.

스토리 전개가 흥미로워요. 특히 그림은 사실적이면서도 느낌이 너무 좋아요. 우리집 강아지가 심심해 하는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만사를 제치고 강아지랑 놀아 주거든요.

-동글동글한 눈, 둥글게 말고 있는 갈색 몸.
''엄마, 이 개에게 이름을 지어 줘도 돼요?''-

그렇게 떠돌이 개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불러 줄 그 누군가가 생긴 것이지요.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겠고요.

드디어 밤톨이를 데리러 가는 날입니다.
엄마와 다쿠토가 어떻게 밤톨이를 데려 올 수 있을 지 궁금해졌어요.
센터 직원도 걱정을 하네요.
엄마는 케이지와 케이지를 서로 붙여보자고 제안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밤톨이가 전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그러자 지금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던 밤톨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어요.
앗!
밤톨이는 새 케이지로 들어가더니 풀 위에 엎드려서 눈을 감았어요.

-''우리가 해냈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요건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요.
이후에는 밤톨이가 반려견으로 적응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저는 울컥하다가 결국엔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하니 더욱 놀라웠어요. 2019년 일본 후쿠오카의 한 마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작가 안즈 유키가 알게 되면서 탄생되었다고 하네요.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장면입니다.

-숲에 있던 개를 무사히 데리고 왔습니다.-
헛!
이건 생각지도 못했어요.
코코, 호두, 희망이, 뭉치, 까미, 해피, 초롱이, 루씨, 후추, 보리, 모카, 별이...
전단지에 붙은 쪽지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는데 가슴이 막 뜨거워졌어요.
밤톨이가 웃고 있네요.
개들이 기분이 좋으면 정말 이렇게 웃거든요.
그림 보면서 또 감탄합니다.

-떠돌이 개가 착한 주인을 만나 행복해지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생명을 책임지려고 용기를 내보는 아이, 우연히 마주친 생명체에 대한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 잘 녹아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치유와 위로가 필요한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출판사 서평

반려동물 1000만 시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 27.9%가 반려동물과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과 반려동물의 행복한 공존은 시대적 담론이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밤톨이》는 바로 그러한 문제들을 잘 짚어내고 있습니다.

그립고 소중한 옛친구같은 책을 만났습니다. 곁에 두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미소짓게 하네요.
동화책이지만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개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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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친구 작은 발견 1
길상효 지음 / 씨드북(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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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슬포슬 감자 느낌이 나는 그림책입니다.
책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것이나 컬러감, 무게감 그리고 소박한 일러스트가 그렇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면지에 주목했는데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계의 대순환,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을 앞면지와 뒤면지를 통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그림책에 이런 것까지 담아내시는 작가님의 통찰력에 감탄했어요.
또한 감자가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모습도 감각적으로 그리셨더라고요.
세상을 알기 위하여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혀 나가는 감자의 용기있는 마음을 짐작하게 되어요.
수많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아요. 계속해서 나아가는 감자의 뚝심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어요.

-''안녕, 감자야? 나랑 친구 할래?''
''그래, 고마워. 너는 좋은 씨감자가 될 거야.''-

고진감래. 드디어 감자는 친구를 만났어요.
반복적인 문장이 리듬감을 줍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반복되는 문장을 즐겁게 받아들이죠. 재밌게 그림책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되어요.
그러므로 이 그림책을 지식 그림책이라고 분류해 볼 수도 있겠어요.
실제로 그림책에서 나온 용어들을 개념정리한 부록이 뒷부분에 실려 있거든요.
특히 '씨감자'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아니라서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특별히 더 많아질 듯 해요.
부록에 보면 건강하고 좋은 감자를 골라서 씨감자로 심는다고 하는 설명이 있어요.
감자는 이렇게 친구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차리게 되는데요.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이 짧은 그림책이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자 친구》는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 채소와 과일, 뿌리채소와 열매채소, 덩이줄기와 덩이뿌리까지 다른 분류의 친구들과 감자의 만남을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담았습니다.-출판사 서평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마지막 페이지였어요.
알록달록 고만고만한 등장인물들이 줄지어 서 있어요.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네요.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친구가 되지 못했지만 돌아갈 곳은 어차피 똑같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결국 생명체들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생명 순환법칙이라든지 생명의 존엄성, 존재의 의미까지도 확장시킬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고나면 독자들은
감자의 생식 방법 및 생물의 분류체계를 자연스레 학습하게 된답니다.
부록 페이지도 꼼꼼하게 읽어보시기를요.
과학 그림책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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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빠른 달팽이
이선영 지음, 조르디 핀토 그림 / 라플란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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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화사하네요.
가로로 길다란 판형은 달팽이의 생김새를 연상하게 합니다.
화려한 색감의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아이들이 몹시 좋아할 듯요.

산책길에서 달팽이 한 마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숲 속 오솔길을 횡단하려는 것 같았는데 정말 느리더라고요. 왠지 무모해보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그림책 속 주인공은 날개가 달린 달팽이라니...와우!
하지만 친구들은 빠른 달팽이를 밀쳐냈어요.

-''넌 우리와 달라!''-

마음 아파요. 세상에서 제일 빠른 달팽이의 표정이 침울하네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그림작가님이 천재라고요.
빠른 달팽이뿐만 아니라 친구 달팽이들조차 등껍질 모양을 각자 다르게 그렸잖아요.
사실 우리 모두는 다 달라요.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나보다 잘났다는 이유로 친구를 미워하고 밀어낸 적 있을 거에요. 그게 아니더라도 평판이 나쁘니까, 가치나 이념이 달라서...등등의 잣대를 앞세워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림책의 장면 하나가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서 뭉클해졌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외면 당한 우리의 주인공 빠른 달팽이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빠른 달팽이의 속마음이 어떨지 그림책을 따라가보아요.
지금부터의 스토리 전개가 정말 흥미로워요.
글 작가님의 센스에 감탄했답니다.
제일 먼저 미움이가 나타났어요.

-''나랑 같이 저 녀석들을 미워하자.''
''싫어. 나는 미워하고 싶지 않아.''-

자꾸만 밀어내는 친구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다가 빠른 달팽이는 그만 넘어지고 말아요.
그러자 슬픔이가 나타났어요.

-''나랑 같이 여기 앉아서 울자. 너무 슬퍼!
''싫어. 조금 아프지만 슬프지는 않은 걸. 누구나 넘어질 수도 있는 거지 뭐.''

어느 날 태풍이 불어왔어요.
부모님도 친구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어요.
이번에는 누가 찾아왔을까요?
ㅎㅎ 그림책에서 확인해 보세요.
그 뒤로도 빠른 달팽이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것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재빨리 달렸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슬프지도 외롭지도 절망스럽지도 않지만, 이런 것도 행복일까? 어쩌면 부모님은 어딘가에 살아 계실 거야. 그리고 언젠간 나를 이해해 줄 친구를 만날 수 있겠지.'-

너무너무 기특하네요.
가없는 마음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요.
꼭 필요한 곳에 자신의 재능을 쓸 줄 아는 빠른 달팽이의 지혜와 용기를 배웁니다.
그리고 응원하게 되었어요.
''그래,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빠른 달팽이는 우연찮게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게 되지요.
행복은 대단하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을...
행복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작가님은 어린이들이 의미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이 그림책을 지었다고 해요.
우리에게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달팽이의 날개가 있을텐데요.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은 마음을 가진 적 있지 않나요?
그렇게 마음이 가라앉으려 할 때마다 이 그림책을 떠올리면 좋겠어요.
요.
일러스트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따라 그려보고 싶어졌어요. 오일파스텔로 그림책의 한 장면을 그려 보았습니다.
감동이 더 커지는 듯 하네요.

그림책 한 권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주인공 달팽이가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
진정한 삶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가치로운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빠른 달팽이>를 꼭 만나보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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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없는 토끼 작지만 소중한 2
아나벨 라메르스 지음, 아네크 지멘스마 그림, 허은미 옮김 / 두마리토끼책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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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숲 속의 짙은 나무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스스로를 질감 마니아라고 자처하는 그림 작가의 작업 방식이 독특하네요.
색감이 매우 자연스러워요. 실물 잎사귀를 활용한 콜라주 그리고 몇 겹의 질감으로 겹쳐낸 화면 구성이 돋보입니다.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졌어요.

-코가 있거나 없는 모든 이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너를 사랑해!----출판사 서평

어느 날 주인공 토끼는 자신에게 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코가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코는 심리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관 중 하나라고 해요.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콧대가 서기도 하고, 코가 납작해지기도 하는 거지요.
저도 가끔 제 코가 없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관습에 얽매어서 속마음과 다르게 행동해야 할 때마다 자꾸만 맥이 빠졌어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를 꼭꼭 숨겨 놓아야 할 때마다 외롭고 불안했어요.

-우연과 만남, 그리고 진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얼마든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이야기-

'아! 이 그림책 꼭 만나보고 싶다.!'
코가 없는 토끼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는 그림책의 서사가 롤러코스터를 탄 듯 불안할 지라도 마침내 해소될 것임을 알고 있기에 기꺼이 함께 하려고 합니다.

-토끼는 여기저기 코가 될 만한 것을 찾아다녔어.
하지만 어울리지 않았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어.-

그림책이 주는 위로는 상황과 시기에 따라 매번 달라서 그 깊이를 짐작도 못하겠어요.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고요하게, 하지만 언제나 다정한 우정처럼 따뜻한 응원과 지지를 받았어요.
아름다운 메시지가 제 마음을 붙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일러스트가 너무 예뻐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책들은 저의 무딘 감성조차도 반짝이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지요. 책을 쓰다듬고, 품에 안아보기도 하며, 책장 넘기는 사락사락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지요.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요.

이 장면에서 반전!
코없는 토끼는 헝겊인형이었네요.

-엄마가 여자아이에게 말했어. ''네가 원하면 단추로 토끼 코를 만들어 줄게.''
여자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어. ''난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코가 없어도요.''-

그날 이후, 다른 어떠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아이는 코 없는 토끼를 그 모습 그대로 사랑했어요.
솔직히 저는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는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코 없는 토끼와 여자아이의 특별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된답니다.
궁금하신가요?
뒷이야기는 그림책으로 확인해 보시길요.

우리 내면의 본질적 열등감이 바로 '코 없는 토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가 없어도 서로 비웃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너와 나의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되어요.
《코 없는 토끼》를 꼭 한 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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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라울 나무자람새 그림책 6
앙젤리크 빌뇌브 지음, 마르타 오르젤 그림, 정순 옮김 / 나무말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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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서 그림책을 들면 빨간 곰과 시선이 마주칩니다.
커다란 빨간 곰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아요.
'내 이름은...라울'

안녕? 라울
그런데 라울은 '라울'이라고 불리는 게 싫대요.
저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알아요.
늘 그랬거든요.
좋은 의미가 있거나, 세련되고 예쁜 이름들이 부러웠어요. 특히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제 이름부르는 것은 더 싫었어요.

-라울아!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
온 몸에 소름이 돋고, 기분이 나빠져.
내가 못생겼다고 느껴지거든.
그럴 때마다 어디론가 확 사라지고 싶어.-

라울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할 수 있어요.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라울의 뒷모습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여요.
라울도 멋진 이름을 갖고 싶었을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이름을 던져 버리고 말이에요.
이름은 자신의 것이지만 타인이 더 많이 부르게 되지요. 그래서 부르기 좋고 듣기에도 좋아야 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름에 담긴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사유의 샘에서 길어올린 파란 소망이 담긴 이름을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제 이름은 그렇지 못했고 살아가는 동안 그것에 대한 불만은 계속되었지요.
재미있는 것은 작가 앙젤리크 빌뇌브도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싫어했다고 해요. 정순 번역가 또한 라울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크게 공감하며 가슴 뭉클했다고 하네요.
'라울과 자코트의 이야기는 콤플렉스를 떨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친구란 어떤 마음을 갖는 것인지 알게 한다'는 출판사 서평을 읽으면서 저는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자코트는 라울의 친구입니다.
빨간 곰과 여자아이가 이 그림책의 주인공이에요.
라울은 자코트의 이름이 멋지고 근사하다고 얘기해요.

-집 안이나 마당에는 없는 멋진 이름이야.
신비한 회오리바람처럼, 당당한 여왕님처럼 말이야.
또 새콤달콤한 귤처럼, 자유로운 잠자리처럼 근사해.-

저는 이런 문장들이 참 좋았어요.
진심이 담겨 있는 생생한 비유의 문장이 감동적이었거든요.
우리가 일상에서 감정 표현할 때도 이런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자코트의 기분은 어떨까요?
자코트는 라울의 이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네 이름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나.
달콤한 꿀 같고, 고소한 과자 같아.-

하지만 라울은 여전히 시큰둥하지요.
개불알꽃이나 며느리밑씻개풀처럼 어처구니 없는 이름은 아닐지라도 스스로가 만족 못한다면 당연히 나쁜 이름인 거죠.
라울은 이 고민을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요?
자기 이름을 사랑하지 않는 빨간 곰의 이야기.
다 읽고나면 자꾸만 책 표지를 쓰다듬게 되는 그림책.
아름다운 언어로 빚어내는 마법같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저는 관계의 지속성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라울과 자코트의 우정이 귀엽고 깜찍하네요.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그림책으로 꼭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지도 못할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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