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서 그림책을 들면 빨간 곰과 시선이 마주칩니다.커다란 빨간 곰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아요. '내 이름은...라울'안녕? 라울그런데 라울은 '라울'이라고 불리는 게 싫대요.저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알아요.늘 그랬거든요.좋은 의미가 있거나, 세련되고 예쁜 이름들이 부러웠어요. 특히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제 이름부르는 것은 더 싫었어요.-라울아!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온 몸에 소름이 돋고, 기분이 나빠져.내가 못생겼다고 느껴지거든.그럴 때마다 어디론가 확 사라지고 싶어.-라울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할 수 있어요.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라울의 뒷모습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여요.라울도 멋진 이름을 갖고 싶었을 것 같아요.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이름을 던져 버리고 말이에요.이름은 자신의 것이지만 타인이 더 많이 부르게 되지요. 그래서 부르기 좋고 듣기에도 좋아야 해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름에 담긴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저는 사유의 샘에서 길어올린 파란 소망이 담긴 이름을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제 이름은 그렇지 못했고 살아가는 동안 그것에 대한 불만은 계속되었지요.재미있는 것은 작가 앙젤리크 빌뇌브도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싫어했다고 해요. 정순 번역가 또한 라울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크게 공감하며 가슴 뭉클했다고 하네요.'라울과 자코트의 이야기는 콤플렉스를 떨치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친구란 어떤 마음을 갖는 것인지 알게 한다'는 출판사 서평을 읽으면서 저는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자코트는 라울의 친구입니다.빨간 곰과 여자아이가 이 그림책의 주인공이에요.라울은 자코트의 이름이 멋지고 근사하다고 얘기해요.-집 안이나 마당에는 없는 멋진 이름이야. 신비한 회오리바람처럼, 당당한 여왕님처럼 말이야. 또 새콤달콤한 귤처럼, 자유로운 잠자리처럼 근사해.-저는 이런 문장들이 참 좋았어요. 진심이 담겨 있는 생생한 비유의 문장이 감동적이었거든요.우리가 일상에서 감정 표현할 때도 이런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이 말을 들은 자코트의 기분은 어떨까요?자코트는 라울의 이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네 이름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나. 달콤한 꿀 같고, 고소한 과자 같아.-하지만 라울은 여전히 시큰둥하지요.개불알꽃이나 며느리밑씻개풀처럼 어처구니 없는 이름은 아닐지라도 스스로가 만족 못한다면 당연히 나쁜 이름인 거죠.라울은 이 고민을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요?자기 이름을 사랑하지 않는 빨간 곰의 이야기.다 읽고나면 자꾸만 책 표지를 쓰다듬게 되는 그림책.아름다운 언어로 빚어내는 마법같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저는 관계의 지속성을 생각했어요.그리고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렸습니다.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라울과 자코트의 우정이 귀엽고 깜찍하네요.뒷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그림책으로 꼭 만나보시기 바랍니다.생각지도 못할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