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모든 심리 - 타인을 읽는 시간 ㅣ 김성규의 문화심리학 읽기 1
김성규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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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모든심리 (#김성규 지음 #책이라는신화 출판)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너’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뜻하는 자존감.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인 자존감이 타인과의 비교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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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라는 단어에 불편함(또는 불쾌함)이 생겨날 수 있다. 보통 자신을 위해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의 비교는 잘못된 비교이다. 비교란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다른지를 통해 자신 고유의 특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저 사람은 이것을 잘하고 나는 이것을 잘하고처럼, 자신만의 무언가들을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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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나에 대한 데이터는 자존감을 만들어주고 그와 동시에 쌓은 타인에 대한 데이터는 간접 경험으로 좋은 교훈이 됨은 물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게 되고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쉽게 말하는 것을 막아준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우울증 같은 것도 나도 우울하다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며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타인의 힘듦을 절하하지 않는 것. 쉽게 입에 담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과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비관적이지 않게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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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타인들을 무조건 곁에 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처럼 타인을 공격하고 자신의 잘못을 납득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악행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반드시 관계를 단절’하라고 한다.
사람 쉽게 끊는 것 아니라며. 언젠가 다 돌아온다고 세상에 배웠지만 자신을 위해, 곁에 있어 주는 든든한 내 사람들을 위해 때로는 결연한 각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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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심리>는 <굿 윌 헌팅>, <어떤 인생>, <블랙 스완>, <김씨 표류기> 같은 명작 영화들을 보여주며 심리학 개념들을 설명하고 이해시켜 주기에 재미는 물론 스스로 더 나아가 자신만의 생각(물음)을 이끌어 준다.
이 영화 속에는 길을 잃은 사람도, 험난한 세상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도, 여러 이상심리들도, 인간의 끝이자 삶의 한 부분인 죽음까지 인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당연히 나도, 내 곁의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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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들처럼, 타인도, 나도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으로 단단히 이 세상에 두 발 딛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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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 100일 영어 필사 : 책읽는소녀 편
Just Space 지음 / 더블:엔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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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살아다가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은 멈춤의 시간이 아닌가 싶다.
피곤함이 풀리지 않았지만 눈을 뜨고 사회에 나가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고, 집에 와서도 해야할 것들을 하다보면 또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 시간들은 당연하게도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온갖 생각들을 부유하게 만드는데 문제는 조용히 이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분주함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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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전원을 가끔 꺼주거나 캐시 메모리를 삭제해줘야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듯이, 우리도 멈추고 쉬어줘야 쌓여있던 것들을 생각하고, 처리하고, 마음을 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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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그런 멈춤의 시간을 마련하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독서가 좋다. 독서는 텍스트르를 읽지만 글자들 여백에서 멈추고, 생각에 빠지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한다. 읽는 동안 일상에서 넘겼었던 것들을 책은 캐내고 살펴보게 한다.
또 다른 내용들로 머리를 채우는 것 같지만 비움, 정리의 효과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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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함께100일영어필사 는 그 멈춤의 시간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루 10분정도만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게 한다. 고흐, 르누아르와 같은 유명 화가들이 그린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담긴 아름다운 명화 한점과, 저자가 엄선한 책 속 문장(영어 원문 그대로) 하나를 따라 쓰게 하는데, 순서대로 하지 않고 목차에서 지금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페이지를 고르는 것 부터 나와의 대화, 생각 정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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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게모르게 생각하고 있던 행복, 건강, 사랑, 쉼,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놓치기 쉬운, 그러나 놓쳐서는 안되는 것들을 짧은 시간이나마 하루에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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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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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시간 꾸준히 고민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진득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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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고 그 무게가 무거운만큼,
잘하고 싶은 부담은 이해가 되지만
그럴수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야한다.
차마 보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 곁에 있고, 그것들이 복잡해 보이던 문제들을 풀어줄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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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해결해주는 것은 다시 한번 더 달리는 것이 아니다. 큰 마음 먹고, 멈춰보는 것이다.
힘을 빼보는 것이다. 멈춘다고 도태되지 않는다. 오히려 올바른 방향과 다시 달릴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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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 100일 영어필사>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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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짐승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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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아들 셋.
#우리짐승들 (#저스틴토레스 지음 #열린책들 출판)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이다. 부모가 십대일 때 세 아이를 출산하여 고된 노동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히스패닉계 미국인인 아빠는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른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엄마는 그 폭력 속에서도 아빠를 놓지 못한다. 아빠도 결국엔 선을 넘지않는다. 가정을 지킨다. 구속같아 보이지만 함께하자는 마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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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욕설, 음주, 흡연이 난무하지만 멀쩡한 가족의 모습이 종종 드러난다. 격렬한 불안과 동시에 그 못지않은 사랑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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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짐승들>은 후에 막내아들이 회상하는 형식이라 아이들의 기억(대부분의 기억)이 그렇듯 듬성듬성 비어있고 조각나있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명확하게 가리키는 것은, 아들 중 유난히 몸이 연약하고 예민하고, 책을 좋아하던 작은 막내아들의 가족들과 공유할 수 없는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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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자신만의 욕망을 점차 깨달아가며 쌓아왔던 세상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다시 쌓아가는 막내 아들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성취로 인해 과도할 정도로 엉켜붙어있던 가족의 유대를 뒤흔든다.
그 느슨한 유대는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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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릴만큼 ‘우리’를 부르짖던 삼형제와 가족에서 외톨이 ‘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은 가족들의 유대를 강화한다. 그들은 한가지 희망으로 더 단단히 뭉친다. 아들의 성향을 ‘고쳐내겠다’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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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었던 <암전들>에 이어 저스틴 토레스 작가의 첫 퀴어 소설이다. 성정체성의 성장통으로 열병을 치르는 존재의 성장은 상처가 봉합되고, 아물고, 더 강해지는 그런 성장이 아니다. 소외감과 상실이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고 정립해간다는 뿌듯함보다 훨씬 더 강하고 잔인하다.
아물지 않고 자꾸만 벌어지는 상처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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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처는 그들의 성향의 특성이 아니다.
그 특성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타인의 시선이 아물고 통증이 사라지는 보통의 성장을 막아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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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대로 살아감에도 아물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방치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것을 성장이라 할 수 있을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뿐이라는 말을 이들에게 적용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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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평가하기 힘들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시도조차 큰 실례인 것 같다.
하지만 치료받아야 한다고, 고칠 수 있고 고쳐야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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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과 신념. 모두 저마다의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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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도 아물지 않았던 상처였지만,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그렇게 그들도, 우리도 스스로를 마주했을 때 성장했구나라며 오롯이 성장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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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권지은 지음 / 부크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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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릴적 좋아하던 만화의 주제곡이다.
(영원한)다섯 살 주인공의 삶은 저렇게 하루가 흘러가도 흥미롭고 하루의 주인공이 자신이었는데 우리의 하루는 정신없는 것만 닮았다. 닳아버린 것일까. 무채색 세상에는 나도, 타인도, 진심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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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다정한 말을 건내고 영혼이 없다는 소리가 전해져온다. 그것은 내가 영혼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이 영혼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정말 내가 한 말이 입에 바른 말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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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을듣고싶었나보다 (#권지은 씀 #부크럼 출판)은 간질간질, 가슴을 콕콕 찔러 자극하는 짧은 글들이 모여있다. 나에서 너를 거쳐 우리로 나아가는 글귀들은 타인을, 나아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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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입에 발린 말이라고 들릴 수 있는 말이라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언제인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남 못지않게(심지어 더하게) 자신을 믿지 못하고 싫어하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게 자신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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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고는 고쳐야 함에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데, 스스로를 위한 누군가의 생각이나 글을 보는 것 부터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살짝 오글거릴수도 있는 글들을 손으로 옮겨적다보면 뭐랄까 손끝에서 마음까지 온기가 전해져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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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나를 놓고 살아온 것일까.
솔직한 고백같은 이 말들이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있던 내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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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잘 자고 잘 먹으라고, 잘 웃으라고, 잘 만나라고, 그렇게 내 삶을 사랑하라고.
어떤 말이 듣고싶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내 삶을 살아왔다. 항상 나는 감춰야하고 숨겨야한다고 배우고 요구받아오다보니 어느덧 나와 거리가 멀어져벼렸다.
숨기다 못해 멀어지고 잊혀버린 시간동안, 내 마음은 못난 나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듣지 못했을 뿐. 나와 내 안의 나. 그 둘 사이를 막고있던 장벽이 허물어져 비로소 목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어떤 말이 듣고 싶었는지, 나에게 어떤 말을 그동안 들려주려고 소리치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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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다난 것. 그것은 나를 핑크빛으로 바라본다기 보다는 내가 살아가는 삶을 사랑하라는 것 같다.
내 하루하루에 애정과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그 의미있는 것들을 매듭짓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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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들을 사랑하고, 그로인해 나를 사랑하고, 그로인해 또 나날들을 더 사랑하는 선순환이 생겨나면 세상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같은 나날들을 살아가야 한다면 이왕이면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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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아 보이는 하루하루를 특별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바꿔주는 것은 특별한 무언가들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거기에 나를 귀하게 대하는 태도까지 더한다면 가히 완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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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행복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세상, 그리고 내가 되기 위해 진짜 필요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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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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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노벨상이라는 타이틀과 고전이라는 세월이 주는 이미지는 한없이 두껍고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 손에 쥔 <이방인>은 생각보다 얇다. 민음사 판 <이방인>은 소설이 끝난 뒤에 카뮈가 쓴 서문과 로제 키요의 출간50주년을 기념하는 글, 번역가의 해설까지 담겨있다. 원작에 대한 감상이 원작분량 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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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깨달았다. <이방인>은 침묵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라는 것을. 침묵은 때론 답답하기도 하고 명쾌한 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그 덕에 읽는 사람들 저마다의 주관이 그 빈칸들을 채우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게 한다.
그 때문에 나도 두번 째 읽는 이 책이 다른 이야기로 읽혔다.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뫼르소가 너무나 이상했다.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고 장례식때도 덤덤했다. 빨리 집에 돌아가 쉬고 싶어했으며 바로 다음날 마리와 해변에서, 영화관에서, 집에서 ‘시기가 적절하지 않은’좋은 시간을 보낸다.
사랑하느냐라는 마리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대답하고, 결혼은 너가 원하면 하겠다고 한다. 결국 무어인에게 다섯발의 총알을 발사하고 후회라기보다는 일이 귀찮게 되었다 말한다.
감정과 윤리가 결여된 사람이라고 할까.
엄마가 오늘 또는 어제 죽었고, 나이를 예순 즈음으로 모든 것이 불명확하게 시작된 뫼르소와의 첫만남은 그를 부조리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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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번째 읽는 <이방인>에서는 뫼르소는 누가 뭐래도 세상과 자신에게 진실되게 행동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장례식에서 돌아와 집이 쓸데없이 넓게 느껴지고, 음식응 제대로 챙겨먹을 마음이 들지않아한다. 겉으로 뱉었던 말과는 다르게 보일 수 있을 생각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위에서 언급했던 시의적절하지 못했던 그의 행동들은 실은 자기만의 애도이자 그럼에도 살아가겠다는 일상에 대한 붙듦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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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었음에도 뉘우치지 못하고 있다면, 감형을 위해 뉘우치고 있다고 후회한다고 말해야하는 것이 맞을까. 어느 것이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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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 여러가지 가능성을 논할 수 있는 일들도 한계가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그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하지만 뫼르소의 살인으로 벌어지는 재판에서 피고인 뫼르소도 배제되어있는 것은 물론, 누구보다 엄벌의 목소리를 내야할 살해당한 피의자와 원고인은 한번도(한마디도)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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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연극 무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하고 유려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판사, 검사, 변호사는 자신들이 뫼르소가 되고, 신이 되고, 신의 사자가 되어 쉽게 말을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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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라는 무거운 죄를 걷어내고 보면 부조리한 것은 뫼르소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죽은이를, 이 세상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그저 자신의 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뿐이다. 그렇기에 시대상으로 식민지인을 백인이 살해한 일이 그렇게 무거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닌 지금까지 뫼르소의 ‘반인류애’적인 태도들을 배심원단의 감정에 호소하며 살인을 주장하고, 판사는 감형의 원인을 뫼르소의 종교관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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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지 않는다고, (애석하게도) 살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멍청하게도) 진실만을 말했던 뫼르소는 자기가 한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똑똑한 사람’이 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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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당 그래야함과 사회를 위해서 라는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악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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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사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솔직함으로 자신만의 기준을 관철한 개인. 무엇이 더 부조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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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다시 읽고 싶다.
나는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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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카뮈 #민음사 #민음사세문전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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