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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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노벨상이라는 타이틀과 고전이라는 세월이 주는 이미지는 한없이 두껍고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 손에 쥔 <이방인>은 생각보다 얇다. 민음사 판 <이방인>은 소설이 끝난 뒤에 카뮈가 쓴 서문과 로제 키요의 출간50주년을 기념하는 글, 번역가의 해설까지 담겨있다. 원작에 대한 감상이 원작분량 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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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깨달았다. <이방인>은 침묵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라는 것을. 침묵은 때론 답답하기도 하고 명쾌한 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그 덕에 읽는 사람들 저마다의 주관이 그 빈칸들을 채우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게 한다.
그 때문에 나도 두번 째 읽는 이 책이 다른 이야기로 읽혔다.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뫼르소가 너무나 이상했다.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고 장례식때도 덤덤했다. 빨리 집에 돌아가 쉬고 싶어했으며 바로 다음날 마리와 해변에서, 영화관에서, 집에서 ‘시기가 적절하지 않은’좋은 시간을 보낸다.
사랑하느냐라는 마리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대답하고, 결혼은 너가 원하면 하겠다고 한다. 결국 무어인에게 다섯발의 총알을 발사하고 후회라기보다는 일이 귀찮게 되었다 말한다.
감정과 윤리가 결여된 사람이라고 할까.
엄마가 오늘 또는 어제 죽었고, 나이를 예순 즈음으로 모든 것이 불명확하게 시작된 뫼르소와의 첫만남은 그를 부조리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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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번째 읽는 <이방인>에서는 뫼르소는 누가 뭐래도 세상과 자신에게 진실되게 행동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장례식에서 돌아와 집이 쓸데없이 넓게 느껴지고, 음식응 제대로 챙겨먹을 마음이 들지않아한다. 겉으로 뱉었던 말과는 다르게 보일 수 있을 생각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위에서 언급했던 시의적절하지 못했던 그의 행동들은 실은 자기만의 애도이자 그럼에도 살아가겠다는 일상에 대한 붙듦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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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었음에도 뉘우치지 못하고 있다면, 감형을 위해 뉘우치고 있다고 후회한다고 말해야하는 것이 맞을까. 어느 것이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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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 여러가지 가능성을 논할 수 있는 일들도 한계가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그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하지만 뫼르소의 살인으로 벌어지는 재판에서 피고인 뫼르소도 배제되어있는 것은 물론, 누구보다 엄벌의 목소리를 내야할 살해당한 피의자와 원고인은 한번도(한마디도)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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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연극 무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하고 유려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판사, 검사, 변호사는 자신들이 뫼르소가 되고, 신이 되고, 신의 사자가 되어 쉽게 말을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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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라는 무거운 죄를 걷어내고 보면 부조리한 것은 뫼르소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죽은이를, 이 세상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그저 자신의 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뿐이다. 그렇기에 시대상으로 식민지인을 백인이 살해한 일이 그렇게 무거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닌 지금까지 뫼르소의 ‘반인류애’적인 태도들을 배심원단의 감정에 호소하며 살인을 주장하고, 판사는 감형의 원인을 뫼르소의 종교관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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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지 않는다고, (애석하게도) 살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멍청하게도) 진실만을 말했던 뫼르소는 자기가 한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똑똑한 사람’이 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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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당 그래야함과 사회를 위해서 라는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악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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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사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솔직함으로 자신만의 기준을 관철한 개인. 무엇이 더 부조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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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다시 읽고 싶다.
나는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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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카뮈 #민음사 #민음사세문전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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