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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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게 없는, 악의없는 친절.
마치 유니콘처럼 느껴진다. 괜히 낯선사람이 친절하게 대하면 ‘나한테 바라는게 있나?’저절로 경계하게 되는 삭막한 세상이다.

요즘 결혼은 물론 연애마저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그것은 사랑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지 않나. 사랑은 무엇일까. 처음엔 이유가 있었으나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이유 없이 호의는 물론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이 사랑아닐까. 그런 사랑은 그 사람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는 관심, 호기심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런 사람끼리의 관심과 호기심을 필요한다. 사회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테오 (#앨런레비 지음 #오팬하우스 출판)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사랑을 되살릴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불꽃의 이야기다.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골든이라는 곳에 머무르게 된 86세 테오. 그곳의 한 카페의 벽에 걸린 92개의 초상화를 보게되고 그 초상화는 벽에 걸려있을 것이 아니라, 당사자 또는 당사자를 아끼는 사람에게 가있는 것이 맞다라는 생각으로 직접 초상화를 구매해 당사자에게 전달해주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낯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테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라 그는 전해줄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 사람의 인상을, 인상 뒤에 숨어있는 그 사람의 감정을, 성격을, 아픔을 발견하며 초상화를 전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사람들을 선정해 차례차례 진행한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낯선 편지를 받고 장난 또는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결국 약속장소에 나와 테오를 만나면 이제 처음 만난 노인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는 마법같은 경험을 한다.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가 가능했던 것은 테오의 태도이다.
테오는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꺼내지 않는다. 항상 질문을 던지고 가만히 귀기울여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다. 몸은 상대방쪽으로 살짝 기울이고 시선은 상대방의 눈에 고정한다. 그만큼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깊다는 경청의 자세가 상대방의 마음을 연다.
그런 오롯한 상대에 대한 집중이 그림 속 인물의 내면을 보듯 눈 앞에 있는 사람의 내면도 바라본다.
너무나도 정중하고 다정한,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상대방의 굳게 잠긴 마음의 문을 여는 테오를 만난 사람들은 다시 테오를 만나지 않더라도 늘 테오를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바라는 것이 없는 무조건적인 관심과 사랑의 씨앗이 그렇게 그들의 인생에 뿌리내린다.

평생 음악가로 살아온 저자가 노인이 되어서야 혼자 완성한 글이고, 출판을 의도하지 않았으나 주변의 권유로 자비로 출판한 책이 100만부 넘게 팔렸다.
잘은 모르지만 음악도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악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악보와 음악가 단 둘이 마주보고 오랜시간 대화를 통해 찾아야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야한다. 그 둘의 것이자 다른 사람들이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야 한다. 평생을 음악을 해오듯 글도, 테오로 분해 상대방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도 저자는 성공했다.

평생을 살아오며 역시 사랑이 으뜸임을 깨달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임이 느껴진다.

같은 곡을 연주하는 새로운 연주자의 앨범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찾아 듣게되는 앨범이 있다. 모두가 인정하는 연주라 그럴수도있고 나만의 취향일 수도 있고, 특별한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테오> 속 테오의 상대방을 바라보는 애정과 관찰력은 <테오>를 저마다의 이유로 다시 찾게 될 명반이자 자신만의 특별한 앨범으로 만든다.

살아갈 세상을 한층 더 아름다운 색으로 만들어줄 BGM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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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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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었다.
숱한 SF소설 속 이야기들이 대부분 현실화가 될만큼 발전의 속도은 눈부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독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선택(핵,전쟁)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없는것들의밤 (#정보라 지음 #현대문학 출판)속 세상은 더이상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
혈연 및 복잡한 이해관계따위 들어갈 틈이 없는 ‘완전무결’한 AI, 기계에게 세상의 운명이 맡겨진다.

지구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인간의 수를 조절한다. 곳곳에 숨어있는 인간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인간이다. 기계의 앞잡이가 된 인간들과 그들과 맞서싸울 수 있는 힘을 가졌으나 인간의 피를 마셔야 살아남을 수 있는 흡혈인. 흡혈인도, 기계쪽도 아닌 떨고있을 수 밖에 없는 나머지 인간들. 이렇게 인간들은 나뉜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체제에서 권력을 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남과 여로 끝없이 편을 나눈다.

하나로 똘똘 뭉쳐도 이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시국에 오히려 더욱 더 많은 세력으로 나눠진다.
이것이 진정한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남과 여, 노동, 전쟁, 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간의 존엄이 흔들리는 지금과 미래의 모습은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완전무결한 유토피아. 그런 것은 꿈 속에서나 존재한다라는 것은 우리모두 알고 있다.

그럼 우리는 이 어두운 이야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저항의 계보를 잇는 것이다. 문제는 끝없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 문제를 권력층은 숨길 것이고 강제할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스스로 생각하길 멈추고 그저 시대의 편제를 듣고, 들은 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방치되면 결국 손쓸 수 없이 망가질 것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사회 구성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내야한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이렇게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큰 의미가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나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의 저항의식이 꺼지지 않고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런 저항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사회. 그것이 희망이 있는 현실에서 존재가능한 유토피아의 모습일 것이다.

나도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름 없는 것들’ 중 하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지금 내가 무엇이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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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영혼의 왈츠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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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이 잠언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달까.
#영혼의왈츠 (#베르나르베르베르 지음 #열린책들 출판)을 보는 동안 역사의 무게에, 역사는 왜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의 무게에 내내 짓눌렸다.

주인공 외제니의 어머니가 쓰러지고 의식을 잃기전에 남긴말, 세상에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너 뿐이다. 라는 말로 이 방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범한 대학생인 외제니의 입장에선 기가막힌 일이지만 아내의 말을 들은 아버지가 둘만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퇴행최면을 통해서 자신의 전생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아내와 자신은 그것을 제법 오래 해오다가 이제는 할 수 없다는 것. 가장 최근까지 퇴행최면을 해온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뱉은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외제니도 퇴행최면을 시작한다.

그렇게 떠난 퇴행최면은 자신의 첫번째 전생이자 무려 12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인 ‘엄지’였다. 그곳에서 자신의 부족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전멸당한다. 빼앗은 것의 기원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겠다는 욕망때문에.

단순한 욕망 때문에 하나의 종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시작해 현재와 가까워지는 전생들을 체험한다. 수메르 문명, 이집트, 고대 그리스 등 역사를 따라가며 하나의 세계와 지식이 창조되고 사라지는 과정을 답습해나간다.

구체적인 형상만 다를 뿐 기존의 것들이 사라지는데에는 어떠한 이해관계들이 얽혀서 외압이 작용하더라는 사실. 그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사라지는 것들은 사라져야만 하는, 나쁜 것들이 아니었다. 어떤 기존 세력들을 위협하고, 나(또는 우리)와 대척되는 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폭력적으로,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무지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제대로 알아야 자신이 직접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고, 현 세대와 미래에 남겨야만 하는 것들을 선택해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AI의 발달로 직접 읽기보다 출처도 분명하지 않은 것들을 듣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는 것을 안다고 착각한다. 그런 착각들이 긴 인류의 역사동안 위와 같은 악순환을 가능하게 했다.

<영혼의 왈츠>는 환생, 천국, 카르마와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 속에 묵직한 질문을 심어뒀다.
왜 어째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어렵게 이뤄놓은 것을 무너뜨릴만큼 욕망은 다스릴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잘못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깨달은 후,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과거로 12만년, 아포칼립스까지는 앞으로 5일.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보다 더 긴 세월을 보여주면서 언젠가 우리에게도 아포칼립스가 올 것 같은 불안함이 든다.
아포칼립스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분명 흥한 분명은 언젠가는 쇠퇴한다. 우리가 태어나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니 쇠퇴를 막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종말이 아니라 서서히 잘 내려올 수 있게 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기억해야하는지, 다음 시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남겨야하는지 그 후를 준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새로운 규칙과 권력이 생겨나지만 그곳에서도 그 시대의 인류애는 피어난다. 그 인류애와 문명에 기름진 양분이 될 수 있도록, 현재를 단단히 발딪으며 과거와 그리고 먼 미래를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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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의 일 - 음표가 음악이 되기까지
손일훈.조하정 지음 / 앤의서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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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을 다니고 음반을 듣다보면
봐도 알아듣기 쉽지않은 음악가들만의 언어로 빼곡한 악보를 기웃거리게 된다. 하나의 악기를 위한 악보부터 오케스트라를 위한 총보(스코어)까지. 빼곡한 음표들과 음악적 명령어들을 보면 오히려 모르는게 약이다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조금 더 알고싶다는 이중적인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중적. 그러고 보면 클래식보다 이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분야가 있을까. 곡은 작곡가가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작곡가 스스로가 들려주는 것보다 연주자가 들려주는 음악을 듣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클래식이라 불리는 장르에서 인기있는 곡들은 작곡가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작곡가와 연주가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고전시기의 곡에는 아예 포르테, 루가토 같은 지휘가 하나도 없기도 했고, 그런 명령어가 있더라도 어느정도까지 그 지시를 따를 것인지 해석의 여지가 차이를 만들어낸다. 하프시코드, 포르테 피아노처럼 그 시대의 악기형태와 지금의 악기형태의 차이도 물론.

그런 차이를 어떻게 해소할까.
해소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결국 음악가의 일이란, 그런 차이를 스스로를, 그리고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게 노력하는 일이지 않을까.

관람객의 입장에서 음악을 업으로 살아가는 음악가들의 일상은 항상 궁금하다. 그림을 감상하면 그 화가가 그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있었던 일 같은 것들이 궁금하듯이 이런 연주를(작곡을) 해내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음악가의일 (#손일훈 #조하정 지음 #앤의서재 출판)은 작곡가인 저자가 만난 음악가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영감, 음악 연주의 시대적 괴리, 올바른 해석, 음악적 취향, 작품을 잘 전달하기위해 연주자가 해야하는 노력, 연주자와 감상자의 시각차이, 지휘자가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음악가의 도전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로 진행된 인터뷰들을 보고 있으면 마냥 재미있다.

오프 더 레코드를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이런 그들의 솔직한 모습들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있었다. 자기만의 음악을 찾겠다는 목적이다. 그 목적을 향해가는 과정이 제각각일뿐 모두 평생 음악을 곁에 두기위해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하게 살아간다.
일하고 쉬고.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같은 것을 하면서도 개별적으로 그 행위가 가지는 의미가 달라진다. 의미가 다르다면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수백년동안 전해진 음악이 음악가마다 모두 다르듯이.

다만 적절한 선을 찾는게 중요하다.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니까.
자신만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특성을 가진 직업을 가진 이상, 타인의 마음까지도 신경써야한다.
작곡가와 연주자 그 사이의 여백, 연주자와 청중 그 사이의 여백, 청중과 청중 그 사이의 여백.

그 모든 여백을 채울 수 있는 답을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균형을 찾을 수는 있다.
모두에게 설득력있는 정도.
그 정도를 찾는 것이 음악가의 일이겠구나 라며 초심자가 은악가들을 이해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클래식이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아직 클래식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들이 읽어본다면 조금 더 느슨하게 클래식을 대해도 괜찮겠구나라는 심적 여유를 줄 것이다.

설득하는 것은 음악가의 일이고 들으려 시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것이 이 책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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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김신정 지음 / 사계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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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면 단연 윤동주라는 이름이 빠질리 없다. 시를 (어렵다는 이유로)읽지 않는 나도 교과서에서 본 그의 시들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정도는 얼추 외운다. 영화 <동주>도 몹시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영화다.

빼앗긴 나라를 위해 펜을 움직일 수 밖에, 시를 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 있는데 윤동주는 자기만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을 지켰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고 악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억압되어 사라져가는 우리의 얼, 정신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그 당시 ‘국어’라고 불리던 일본어에 밀려,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의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되던 시절 그는 순우리말이 주를 이루는 시를 썼다.
시대상을 담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물론 시인 그 스스로도 짙게 베어있다.

#윤동주의오래된노트 (#김신정 씀 #사계절 출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윤동주가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못했다가 평생동안 푹 빠져버린 저자의 글이다. 윤동주를 연구하기 좋은 이유로 그는 육필원고가 남아있기 때문이라 하는데, 부족한 글을 쓰는 나의 입장에서도 글 하나를 쓰다보면 수없이 고쳐진다. 고치고 고쳐도 또 고치게 된다. 주제말고는 기존의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윤동주 시인은 시를 지어놓고 몇번이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단어나 문장을 고쳐나갔는데 줄을 긋거나 지우개로 지우는 등 수정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왜 이렇게 고쳤을까라는 물음표에 답을 찾아가기 좋다. 게다가 그가 소장했던 책이나 글에는 모두 날짜가 기록되어 있어 이 글을 쓸 때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의 인생에서 어떤 사건이 있던 시기였는지를 볼 수 있다.

글은 적어내려간 그 사람의 일부이자 전부이다.
그때 자신의 감정을 똑 떼어다 심어두기도 하면서 전심을 담는다. 그래서 저자의 삶 모든 것이 담겨있다.
짧은 생에 걸맞지 않는 평양, 간도, 일본, 다시 고국으로의 이동이 그만의 시적 언어를 만들어냈고 수많은 고쳐쓰는 과정에서 그 어휘 하나를 고르게 했다.

윤동주에 진심인 저자를 따라 육필원고를 사진으로나마 구경하며 수정의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뜻하지 않게 용기가 생긴다. 나도 수정될 수 있다는 용기다.
나도 아직 미완성인 하나의 무언가다.
지나온 길은 고칠 수 없지만 그것을 돌이켜보며 일기로 성찰할 수 있고, 앞으로를 그려볼 수 있다. 일생의 ‘앞으로’는 매일 걸어나가는 오늘의 성찰로 얼마든지 고쳐질 수 있다. 그렇게 수정된 흔적들은 내가 살아오고 투쟁해온 고된 삶의 훈장이 될 것이다.

그 수정될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단 한가지 조건은 바로 열정과 끈기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써내려가고 끊임없이 수정할 끈기. 지치지 않을 열정.

윤동주의 이름과 시처럼 후대에 전해내려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렇지 않다고해서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윤동주는 살아생전 자신의 시가 출간되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 그 스스로에게 의미없는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한 청년, 젊은 동주에게 나도, 우리도 조금 더 오랫동안 젊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그의 육필이 써지는 그 순간의 그 손의 필압, 종이의 질감, 그때의 공기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고 내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 나도 그러고 싶다는 열망이 만들어낸 신체적 변화이다. 모골이 송연해지고 정신이 번쩍들게하는.
그럼에도 자상한 그런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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