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김신정 지음 / 사계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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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면 단연 윤동주라는 이름이 빠질리 없다. 시를 (어렵다는 이유로)읽지 않는 나도 교과서에서 본 그의 시들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정도는 얼추 외운다. 영화 <동주>도 몹시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영화다.

빼앗긴 나라를 위해 펜을 움직일 수 밖에, 시를 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 있는데 윤동주는 자기만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을 지켰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고 악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억압되어 사라져가는 우리의 얼, 정신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그 당시 ‘국어’라고 불리던 일본어에 밀려,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의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되던 시절 그는 순우리말이 주를 이루는 시를 썼다.
시대상을 담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물론 시인 그 스스로도 짙게 베어있다.

#윤동주의오래된노트 (#김신정 씀 #사계절 출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윤동주가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못했다가 평생동안 푹 빠져버린 저자의 글이다. 윤동주를 연구하기 좋은 이유로 그는 육필원고가 남아있기 때문이라 하는데, 부족한 글을 쓰는 나의 입장에서도 글 하나를 쓰다보면 수없이 고쳐진다. 고치고 고쳐도 또 고치게 된다. 주제말고는 기존의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윤동주 시인은 시를 지어놓고 몇번이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단어나 문장을 고쳐나갔는데 줄을 긋거나 지우개로 지우는 등 수정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왜 이렇게 고쳤을까라는 물음표에 답을 찾아가기 좋다. 게다가 그가 소장했던 책이나 글에는 모두 날짜가 기록되어 있어 이 글을 쓸 때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의 인생에서 어떤 사건이 있던 시기였는지를 볼 수 있다.

글은 적어내려간 그 사람의 일부이자 전부이다.
그때 자신의 감정을 똑 떼어다 심어두기도 하면서 전심을 담는다. 그래서 저자의 삶 모든 것이 담겨있다.
짧은 생에 걸맞지 않는 평양, 간도, 일본, 다시 고국으로의 이동이 그만의 시적 언어를 만들어냈고 수많은 고쳐쓰는 과정에서 그 어휘 하나를 고르게 했다.

윤동주에 진심인 저자를 따라 육필원고를 사진으로나마 구경하며 수정의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뜻하지 않게 용기가 생긴다. 나도 수정될 수 있다는 용기다.
나도 아직 미완성인 하나의 무언가다.
지나온 길은 고칠 수 없지만 그것을 돌이켜보며 일기로 성찰할 수 있고, 앞으로를 그려볼 수 있다. 일생의 ‘앞으로’는 매일 걸어나가는 오늘의 성찰로 얼마든지 고쳐질 수 있다. 그렇게 수정된 흔적들은 내가 살아오고 투쟁해온 고된 삶의 훈장이 될 것이다.

그 수정될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단 한가지 조건은 바로 열정과 끈기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써내려가고 끊임없이 수정할 끈기. 지치지 않을 열정.

윤동주의 이름과 시처럼 후대에 전해내려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렇지 않다고해서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윤동주는 살아생전 자신의 시가 출간되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 그 스스로에게 의미없는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한 청년, 젊은 동주에게 나도, 우리도 조금 더 오랫동안 젊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그의 육필이 써지는 그 순간의 그 손의 필압, 종이의 질감, 그때의 공기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고 내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 나도 그러고 싶다는 열망이 만들어낸 신체적 변화이다. 모골이 송연해지고 정신이 번쩍들게하는.
그럼에도 자상한 그런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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