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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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食口. 음식을 나눠먹는 말그대로 입을 공유하는 절대적 친밀 집단. 아마 가족이라는 말의 이음동의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족은 혈연血緣이니 즉 식구는 피로 이어진 사이라고.

#카프네 (#아베아키코 지음 #은행나무 출판)의 초반에도 식구의 의미는 변함없다. 어느것 하나 부족함없이 자라온 것 처럼 보이는 가오루코의 삶은 그 식구에 대한 갈망으로 조금씩 무너져내렸다.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남동생 하루히코의 찬란한 빛만큼의 어둠으로 식구임에도 사랑받는 식구가 되지못한 누나 가오루코. 하지만 그런 누나를 어릴적부터 살뜰히
챙겨온 하루히코이기에 견뎌냈고 살아냈다.

식구에 대한 결핍은 자기만의 완전한 가정을 꿈꾸게 하는 법. 완벽한 남편을 만나 완벽한 육아를 위해 돈도, 집도 준비했지만 책임질 식구, 아이는 생기지 않는다.
생기지 않는 아이,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침대에서 죽어서 발견된 남동생.

식구라 할 수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가오루코는 망가져간다. 모두가 떠난 먼지와 쓰레기더기마 쌓인 집에서 술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런 그녀를 꺼내준 사람이 바로 남동생의 전 여자친구 세쓰나다.

남동생의 유지를 이루어주기위해 만났지만 차가운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세쓰나는 셰프경력을 발휘해 가오루코에게 따뜻한 밥을 선사한다. 혈연이 아닌 식구로, ‘식구’의 의미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세쓰나가 해준 요리로 다시 삶의 의지를 붙잡은 가오루코는 세쓰나와 요리와 청소가 ‘시급한’집들을 방문하는 봉사활동을 함께 한다. 지쳐버린 아내이자 엄마, 부모 병간호에 지친 아들,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여동생을 무척이나 아끼는 일찍 어른이된 아홉살 된 오빠.

혈륜의 역할에 지쳐 차마 식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세쓰나와 가오루코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법.
아픔을 치유하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겠지만 기꺼이 식구가 되어주는 것은 가장 확실하고 가장 따뜻한 치료법이다.

결국 혈륜에 한정되었던 식구의 의미가 무한히 확장되면서 책 속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식구와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다.
책의 제목 <카프네>는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겨주는 행동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이다.

진정한 애정이 있어야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겨줄 수 있고, 머리에 닿는 손을 허락할 수 있다.
둘이었던 것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순간. 그 순간이 특별할 수 있는 것은 그 둘의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연인, 부부, 형제, 자매 그리고 식구.
카프네가 허용되고 온전해질 수 있는 관계이다.

1인 가족이 늘어가는 요즘, 결혼도 연애도 포기하는 젊은 층이 많아진다. 그들은 필요없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때 유튜브 등 다양한 식구들을 찾는다.
식구는 특정한 형태는 없지만 단하나 필수적인 조건은 바로 온기이다. 아무리 난방을 켜고 두꺼운 옷을 입어도 채워지지 않는 온기. 나누어야 더욱 훈훈해지는 그 온기를 가진 식구는 어느시절이나, 오히려 지금의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식구를 만들자. 식구라는 이름의 따스한 울타리를 가져야한다. 법, 피로 얽혀있지 않아도 식구는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카프네>가 알려주고 있다.

이 책 <카프네>가 외롭지 않았냐고, 식구가 필요하지 않았냐며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카프네 그 자체인 것 같다.

함께 온기를 나눌, 서로의 머리카락을 쓰러넘겨줄, 카프네, 식구와 함께하는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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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태도 - 공간 디자이너 황유정의 감각과 사유
황유정 지음 / 아트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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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프랑크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가구들을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빈약하지 않으며 무드있으면서도 가볍지 않다. 실용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름다우면서 기능은 당연하게 가져가는 디자인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전이랄까.

가구 중에서도 특히 1인용 소파를 좋아하는데 내 몸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좋아한다. 팔걸이도 큼직하게 있어서 소파와 같은 방향을 향하게 앉는 것도 가능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큼직한 팔걸이 하나하나에 내 오금과 등을 기댈 수 있는 자세로도 이용이 가능한 모양과 크기의 소파.
내가 쓰는데로 내 몸에 맞게 변해가고 낡아가는 모습이 나를 보여주는 증명사진 같아 반갑다.

소파는 가장 작은 건축이다 라는 말이 있다.
몸에 붙는 건축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자체로 벽과 바닥, 가구, 그것들이 모여 이루는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간의태도 (#황유정 지음 #아트북스 @ 출판)는 저자가 겪은 파리, 런던, 뉴욕, 그리고 서울. 네 가지 도시 그자체, 도시 속 건축, 건축 속 가구까지 모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말하는 공간에서 가장 의미있는 개념으로 ‘태도’가 거론되는데 무척 흥미롭다. 건축은 공간에 흐르는 공기, 재료의 온도, 빛의 방향과 자태, 사람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으로 그 안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바뀌게 만드는데, 그 변화를 야기시키는 것이 바로 공간의 ‘태도’이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떠올려보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최애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왜 최애일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라. 그러면 거기를 방문했을 때의 날씨, 건물의 물성,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온도, 그 안의 소리와 냄새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독특한 질감들이 떠오르면서 거기서 느꼈던 나의 ’감정‘까지 도달할 것이다. 그 감정은 내가 떠올렸지만 그 감정까지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바로 그 공간, 그 공간의 태도이다.

가득 차있는 듯 하나 공간은 결국 사람이 들어와 움직이면서 공간만의 독특한 리듬이 생겨난다.
그 리듬은 공간의 태도와 반응해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토리들은 그 공간의 태도들을 변화시키기도, 강화시키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있는 파리의 노천카페의 의자, 마주보게 되어있는 서울 카페의 의자처럼 뚜렷한 형태를 띄면서.

아무리 낡고 작은 공간이라도 내 방, 내 집은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절대적 참으로 여기게 할만큼 편안하다.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가면서 공간이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의 태도‘와 나의 리듬이 합쳐져 내가 원하는, 추구하는 것들을 향하도록 시간이 쌓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생의 태도는 공간의 태도로 부터 배우기도 하고 응원받기도 한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든든하지 않은가. 태도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런 단순한 것들이 모인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다고 했던가.
내가 되고 싶고 가지고 싶은 삶을 가장 나와 가까운 곳에서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내 책상, 내 집, 내 사무실 같은 공간들이다.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등한시했던 내 공간들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았다. 내가 좋아하고 편안하다 느끼는 것들이 가득 담겨 있지만 일상이라는 이름의 게으름(옷더미, 옷더미, 그리고 옷더미 등등)에 묻혀있다.
원래 있던 것과 그 위와 빈 공간을 덮고있는 게으름이 공간의 여백을 제로에 가깝게 없애고 있으나 여백을 유지하게끔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인간(나)이다.

계속 침대 이불 속으로 숨어들고만 있는 나를 꺼내고 공간을 돌보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공간들을 유심히 보고 싶다. 그 안에서 내가 놓쳤던 공간과 내가 쌓아놓은 태도를 발견하고 그렇게 다시 살아가고 싶다.

공간의 태도로, 그 안에서 공간과 시간을 쌓아온 나의 태도에 비로소 시선을 향하게 되었다.
공간이라는 인생의 스승을 마침내 만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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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똥을, 한 손엔 소원을: 소네트집
다이앤 수스 지음, 황유원 옮김 / 김영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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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sonnet. 14행, 각 행은 10음절로 맞춘 복잡한 운으로 형식미를 강조하는 유럽에서 유례한 시형이다.
엄격한 형식과 절제의 요구.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우리가 요구받는 것과 비슷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방향이 있으나 다수가 선택하는 것을 뜻하는대로 선택하는 것은 쉽지않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원하는 길을 강요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글을 깨우치는 순간부터 오직 하나의 길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간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다른 세상이 있는지도 모른체.

물론 하나의 길을 달려가도 서로 다른 위치에 각자의 인생이 흩뿌려진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 사고, 고통, 사랑, 탈선 들이 생을 채우기도, 좀먹기도 한다.

최선의 형태를 강요 받으면서도 그 안에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 소네트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한손엔똥을한손엔소원을 (#다이앤수스 지음 #김영사 출판)은 다이앤 수스라는 한 여자의 보편적이면서도 유일한 삶이 128개의 소네트로 담겨있다.

1792개의 행, 많다면 많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인생을, 소네트를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 아들의 약물중독, 뱃 속 아이와 두 번의 이별 등 있었던 일들을 받아들일 수는 있었지만 어떤 심정이었는지, 글에 담아내는 순간에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나의 모습이 싫지 않다. 우리 인간의 큰 재능이자 문제점이 있다면 세상을 왜곡해서 본다는 것이다. 당장 내가 꽂혀있거나 이해한, 그래서 중요하다고 인식한 것을 세상의 전부인양 생각하고 행동한다. 객관적으로 더 중요한 것들이 분명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끝없는 창의성과 인류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정작 중요한 것(환경, 인간의 도리, 제도 밖에서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을 놓치게 하기도 한다.

관심있는 사람의 하나를 이해하면(그렇다고 믿는) 그 사람 전체를 알게 되었다고 믿는 것도 이 왜곡 중 하나다.
그렇게 너무나 쉽게 단호하게 판단 내려 놓고는 그 판단이 빗나가는 일이 생기면 상대방을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에 가장 쓸모없는 것이 자존심이다.
사랑과 다정 등 이 세상애 훈기를 불어넣는 그 어떠한 것에도 자존심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
인간이란 너무나 어렵고 복잡하며 완전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
그것이 모두 비슷한 형식을 강요받는 인생이라는 소네트를 조금이라도 더 즐겁고 행복하고 편안한 음절들로 채워넣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물론 심연 같은 삶을 새겨넣은 다이앤 수스의 소네트들도 몹시 의미가 있다. 써냄으로 비워낼 수 있었을테니. 터지지 않고 살아낸 것이 쓰는 행위 덕분이었을 것이다.
율격에 투항하지 않은 자유로운 소네트라는 혁명을 이룩한 작가의 글을 보고 있으면 괜히 살아내겠다는 투쟁생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소네트를 써야한다면 좀 더 행복하게 쓰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살아내고자 마음 먹으면 살아내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생가는 것이구나를 깨닫는다.

불같은 투쟁심과 온기같은 바램을 샘솟게 하는 책이다.
읽는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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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의 정원
안리타 지음 / 홀로씨의테이블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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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이 닿는대로 걸어간다.
음악을 듣기는 하지만 듣는다기보다는 도시의 소음으로 부터 거리두기를 하는 것에 더 가깝다.

어제는 이쪽으로 갔으니 오늘은 저쪽으로 가볼까.
그렇게 낯선 곳으로, 내가 매일 존재하는 곳과 그다지 멀지않은 곳임에도 주위의 모든 것이 새롭다. 우와 감탄사를 남발하다 인적없는 비밀의 장소에 도착한다.
인세의 소리 하나 없이 풀과 뿌리와 새와, 해와 구름의 소리만으로 가득채워진 고요한 곳. 그곳을 정원이라 부르기로 했다.

#리타의정원 (#안리타 씀 #홀로씨의테이블 출판)을 읽다보면 위의 장면이 무성영화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산책에서 뜻밖의 정원을 발견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야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나는 달리기를 자주한다.
너무 빠르지 않게, 마주 불어오는 바람이 장애물이 아니라 땀을 식혀주는 반가운 이로 느껴질만큼의 힘듦으로 달리는 것을 특히 좋아하는데, 이 속도로는 주변 모든 환경을 다 내 안에 새겨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속이 시끄러운 날 일수록 더 달리러 나가고 싶어지는데 그것은 아마 달리면 나를 비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운다라는 것은 아 몰라 하고 저리 던져두는 것이 아니다. 달리기 중 은연중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곰곰히 곱씹어보며 소화시킨다. 그래야 비로소 비워진다.
그리고 그 비워진 내 안을 내가 달리면서 만나는 자연의 싱그러움과 생명력으로 채운다.

이런 의미로, 저자의 산책과 나의 달리기는 같은 것이 아닐까. 속도만 다른.
저자는 산책 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인 정원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반려견과 놀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 시간동안 작가 안에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피어올라 정원과 교감한다. 그 생각들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산책의 이로움부터, 만남, 슬픔, 일상의 감사함,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까지 내려놓는 일상 속 명상 등등. 수많은 화제들이 작가의 마음안에 자리잡고 글로 정돈되고 단단해 진다.

<리타의 정원>이라는 제목은 작가만의 비밀의 장소임과 동시에 온갖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자기자신을 뜻하는 것이지 않을까.

나도 달리기를 하다보면 점점 인적이 드물어 진다.
포장이 끝나고 울퉁불퉁한 날 것의 길이 이어진다.
나에겐 그곳이 산책 속 발견한 나만의 정원이다.
그 정원에서는 수십년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내가 겪지 못했던 온갖 것들이 있다. 이름 모를 나무와 꽃은 어찌나 많은지 사진으로 찍어두고 시간 날 때마다 찾아보는 것이 새로운 습관이자 취미가 되었을 정도다.

도시에서 멀어져 정원으로 향하는 동안 속을 시끄럽게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곱씹으며 내려놓고, 비우며 그 안에서 괴로운 것들에 눈이 멀어 미쳐 보지 못했던 감사한 것들, 잠시나마 따뜻하게 해줬던 것들을 발견한다. 자연의 온갖 생명력들과 함께 그것들도 내 안에 담는다. 그렇게 나도 내 안에 나만의 정원을 가꾼다.

그리고 다시 정원에서 도심으로 달려돌아온다.
자연으로의 회귀는 일상에서의 도피가 아님을, 산책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행위로 더할 수 없이 단호하게 증명한다.

산책하는 것, 자연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가는 것은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더 잘살아낼 힘을 얻기위해서 하는 그 자체로 더 나은 하루를 만들어 주는 행위이다.

덜 개발된 곳에 자리잡은 것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무채색에 연두색 점이, 연두색 점이 조금 더 짙은 연녹색의 선으로 빼곡하게 이어지는 것을, 그 녹색 사이사이를 각각의 색의 꽃이 점묘화처럼 알알이 박히는 순간들을 모두 눈에 담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그 행복을 안고, 지구 곁을 멀어지지 않고 계속 도는 달처럼 인세人世와 자연을 피하지 않고, 도피하지 않고 누린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기분좋은 산책이 되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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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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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륜人倫.
‘군신ㆍ부자ㆍ형제ㆍ부부 따위에서 지켜야 할 도리’라고 사전에 검색하면 뜻이 나온다. 그 아랫줄에 예문으로 ‘인륜에 어긋나다.’가 달려있다.

인륜을 중요시하는 유교의 나라에서는 인륜을 천륜天倫이라고도 부른다. 검색하면 뜻은 ‘부모 형제 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예문은 ’천륜을 모르는 자식‘.

인륜, 천륜 무엇이든 간에 결국은 ’도리‘이다. 도리란 마땅히 응당 하여야하는 것. 어느 누구가 일방적으로 희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 주고 삭막한 세상에 제대로 두 발 붙여 지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어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의 도리이고 사람의 도리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피로 맺어져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안타깝게도 간사하다. 자신이 한 번 참고 내어준 것들에, 자신이 잃은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똑같은 사랑을 주어야 함에도 그 사랑의 크기는 당연하다는 듯 다르다.
큰 사랑을 준 대상은 사랑하다못해 어려워지고, 사랑을 갈구하며 눈치를 보던 사랑을 덜 준 대상에게는 강자가 되어 함부로 대하고 더 큰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다.

프로이트의 이론 중 ‘반복 강박’이라고 있다.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과거 의 상황을 반복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을 뜻한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반복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내가 피하지 않고 이 일이 악순환을 끊기를 바란다.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고, 나에게 진심으로 눈물흘리고 무릎 꿇고 사과하길 바라며 그 반복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용궁장의고백 (#조승리 지음 #달 출판)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강요받는 인륜에 얽매여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반복 강박에 오랜 세월을 괴로워하던 사랑받지 못하는 가족 중 누군가의 이야기다.

눈이 보이지 않게 태어나서, 더 많은 성취를 이룬 형제에게 가려져서 각종 무시와 차별을 받아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학대해온 가족의 사망은 슬프게도 슬픈 일이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형벌에서의 해방이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신을 믿었다.

온 이쁨을 다 받으며 차별이 아닌 특권을 누려온 막내아들은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가 다 쓰러져가는 용궁장에서 홀로 쓸쓸히 눈 감도록 방치한 형님네 부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형수의 세번의 유산, 24시간의 노동 착취로 변형된 손마디가 그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에게는 이 세상은 썩었을뿐이다.
그럼에도 인륜을 지키지 못한 옹졸한 형님네를 욕하며 신에게 버림받은 세상을 살아가겠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반복 강박에 자신도 모르게 허우적 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가족인데 어찌 그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악순환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것 보다 용기내서 그 순환의 고리를 끊고 벗어나는 것이 비교할 수도 없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결국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무조건적인, 맹목적이다 할 수 있을만큼의 사랑으로 세상이 다 무너져도 돌아갈 곳으로 든든하게 있어줘야 하는 것이 가정이고 가족이다.

하지만 그런 곳이 한번도 되어주지 못한 가정을 인륜이라는 이름으로 붙들고 있어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용궁장의 고백>을 읽으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것이다.
이 소설이 위안을 주기도 하겠지만 조금 더 삶에서 자신을 위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할 사람,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기꺼이 자신을 사랑 할 수 있도록, 지친 마음에 스스로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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