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팀 하포드 지음, 윤영삼 옮김 / 윌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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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무질서도.
물리학에서 일이 진행될수록 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엔트로피를 없애려고 노력해야할까 증가하는 방향으로 순리대로 나아가게 두어야 할까.

이것은 무질서, 혼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순행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역행을 택할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영역에서 무질서도는 용납되지 않는다.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원하고, 매뉴얼화되는 것을 선호한다. 좋은 팀은 매끄러운 팀워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은 준비과정에서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아웃사이더라 칭하고 대하며 완전무결함을 지향한다.

#인간을인간답게만드는불완전함에대하여 (#팀하포드 지음 #윌마 출판)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질서, 혼란을 긍정한다. 인류의 역사에 남을 만한 예술, 과학, 심리학, 역사, 경제 등 여러분야의 순간들을 인간 특유의 ‘임기응변’과 ‘즉흥성’, ‘순발력’과 ‘판단력’의 예로 들며 완전무결함을 반대한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떠올리고 실천하며 이 세상을 살아왔다. 살아온 세상이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모호하고 불완전함을 특징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어떻게 완전한 준비가 가능할까.
모순이다. 하지만 발전하며 손에 쥔 것들이 많아지고 그것을 놓기 싫어지다보니 안정을 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AI를 필두로한 자동화이다.

모든 것들을 데이터베이스와 알고리즘에 입력하여 인간이 기지를 발휘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만들어놓은 것인데 이것이 오히려 인간의 대응력과 참신함을 앗아갔다. 단순한 일들은 자동화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까지 자동화를 시도하면서 시스템의 오류는 오류대로 발생하고 인간은 시스템을 곧이 곧대로 믿는 ‘자동화 편향’과 사소한 실수를 할 확률은 줄지만 큰 실수를 할 확률은 올라가는 ‘위너의 법칙’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모든 것이 자동으로 ‘보정’되니 대응능력을 기를 수도 없고 가지고 있던 대응능력도 사라져 참혹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역사에 남아있는 여러분야의 것들을 떠올리면 ‘완벽하다’하는 평가를 받아서 기억되는 것은 거의 없다. ‘참신하다’, ‘새롭다’, ‘한계를 넘어섰다‘, ’기존의 발상을 뒤흔들었다‘같은 평을 받은 것들이 남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았고 살아가고 있다.
AI시대에 인간의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염려하는 것도 불완전함에 적응하는 ‘임기응변’의 인간다움으로 지켜낼 수 있다. 기존에 수집한 데이터를 가지고 활용할 수 밖에 없는 AI들은 우리 세상을 좀 더 매끄럽게, 덜 힘들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는 그 틈과 틈 사이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에 대응하며 매꾸면 된다.
그렇게 AI를 필두로 한 자동화와 인간이 하나의 매끄러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애초에 둘의 역할이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가치있는 것으로 삼고 좇아온 것들을 진정 가치있는 것이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완벽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해오던 예측가능하고 실수없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일수도있다.

인간다움, 완벽과 불완전함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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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때리는 인문학 - 축구로 읽는 40가지 삶의 지혜
명왕성 지음 / 글의온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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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들 중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룬 좁은 골목에서의 일상들이다.
위아래로, 또 옆으로. 여러 가정들이 모여살았기에 당연히 동네친구를 넘어 골목친구들이 생겨났고 책가방을 벗어두기가 바쁘게 집밖으로 달려나가 골목에서 모였다.

그 시간을 가장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놀이, 바로 공차기였다. 골목이 꺾이는 곳에 있는 주택의 담벼락이 골대가 되어(집주인 아저씨한테 참 많이도 혼났다)이리 뛰고 저리 뛰고 축구 선수들 못지않은 플레이타임을 자랑했었다.

그러다 대문 옆에 위치한 창고의 유리창을 정통으로 맞추어 깨면 도망치라는 본능을 물리쳐내고 대문의 벨을 누른다. 내가 도망가면 이 친구가 혼날 것을 알기에 도망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노는 행위에서 공동체의식과 상대방을 관찰하는 것, 리듬감, 책임감 등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들을 배웠다. 학교와 학원의 책상에 앉아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골 때리는 인문학> (명왕성 씀 / 글의온도 출판)은 이런 놀이에서 시작되는 축구에서 인문학적 깨달음들을 사유해내는 책이다.

축구란 참 의미가 큰 스포츠이다. 밤새워 티비 앞에 있게하기도 하고, 귀찮음을 이겨내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축구공을 들고 나가게 만들고, 그렇게 세상 욕을 하다가도 붉은 옷을 입고 모두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가 되게 한다.

이렇게 축구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홀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축구 속에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축구라고 부르기 민망한 인원과 실력과 시설로 시작하는 공놀이로 시작해 학교 체육시간에 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방과 후, 주말에 약속을 잡아 자발적으로 학교(운동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상대방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능력, 경기의 흐름을 읽는 능력, 내가 실수 했을 때 우리팀에게 돌아가는 피해에 대한 책임감, 함께 승리했을 때의 보람을 느끼고 배운다.
그것들을 위해 개별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이다.

이런 것들은 사회에서 살아가는데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설레며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 말은 축구에서 자신의 인생의 결과 같은 무언가를 보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어릴적부터 놀이가 아닌 선행학습으로 책상 앞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골목이 사라지고 운동장도 줄어들면서 맘껏 뛰놀지 못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지 못하고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겉도는 개인으로 살아간다.

시대가 팍팍한 탓도 있지만 놀이와 축구에서 협동심, 공동체의식, 흐름을 이해하고 거스르지 않으면서 따라가기도 변화하기도 하는 다양한 것들을 익히지 못한 것도 크다.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세상이 나에게 의미가 있어질 때 비로소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의미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언어, 문학, 역사, 철학. 이런 것들을 다루는 것이 인문학이라지만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학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의 축구를 하는 플레이어로의 15년, 축구를 바라보고 그것에서 인문학적 요소를 발견하는 관중으로의 15년이 고스란히 담겨 이론은 물론, 행동적 요소까지 아낌없이 담겨있는 책이다.

왜 축구를 잘하지 못함에도 응원을 하고 보게 되는지, 축구 선수들을 멋지다 생각하는지 그 마음의 원인을 찾게 해준다. 그 해답 속에 우리 인생의 태도와 방향도 달려있다.

이제 우리가 그라운드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해주는 하프타임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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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꾸는 100일 영어 필사 - 천천히 음미하고 깊이 되새기는 고전 읽기
서메리 지음 / 청림Life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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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왜 아직도 여전히 읽히는가.
나는 그것이 의아했다.
다른 모든 것은 아무리 좋고, 한시대를 풍미하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옛 것이 된다. 여전히 사용한다면 최고가 아니라 손에 익어서, 추억이 담겨있어서라는 부차적인 이유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고전 만은 예외다.
백년, 이백년이라는 말도 안되는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읽히는 것을 넘어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대가 바뀌고 사상이 바뀌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책을 읽지 않던 시절의 나에게는 너무나 모순같은 현실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고전을 나름 꾸준히 접하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내가 고전을 ’꾸준히‘읽고 있다는 것. 온라인 서점에 포인트가 어느정도 모이면 고전을 산다. 고전은 ’평생 가져갈 수 있다‘고 나도 모르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전 세기의 사람들의 이야기임에도 주인공들은 시대에 얽매여있지 않다. 그 시대에서 그들은 깨어있는 선지자였고, 남자 여자를 구분짓지 않고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표현하는 길을 기꺼이 걸어간다. 그 길은 어지러운 현재를 헤쳐나가고 있는 상처받은 우리의 그것과 일치한다.
시대를 뛰어넘어 공유되는 이야기의 ’심‘이 있다.
그리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성까지.

수많은 독자들을 공감하게 하고 마음아프게 하며, 응원하게 하는 고전의 힘. 그 고전들은 이야기 자체로 이미 훌륭하지만 더 널리 알려진 고전의 또 다른 힘은 ‘문장’이다.
이게 여기에 나오는 문장이었어? 싶은 익숙한 문장들, 명언이라 불리는 글귀들을 모은 책에는 고전 속 문장들이 빠지지 않는다.

#내삶을바꾸는100일의영어필사 (#서메리 지음 #청림출판 )은 그런 고전 속 명문장들을 영어 원문으로 수록해 놓았다. 읽고 해석하고 저자가 이 문장을 고른 이유가 보이는 코멘트를 보며 따라 써내려가며 자연스래 성공, 사랑, 관계, 행복, 위로에 관련한 인사이트를 얻는다.

우리를 힘든 하루하루를 그럼에도 살아가게 하는 성공과 사랑, 타인과의 관계, 행복이 나란히 놓여져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따라 적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내 마음에 새기는 효과뿐만 아니라 마음에 닿은 문장이 수록된 책을 읽을 목록에 리스트업하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그 책이 내 서재에 없으면 더 신난다. 살 명분이 생겼으니)

삶을 바꾸는 영어필사라고 하지만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100개의 글 중 아주 조금만 와닿았다고 스스로에게 실망할 필요도 없다. 꾸준히 읽고 따라 써봤다는 그 경험. 그것만으로도 삶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거 아니라고, 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라고 하지만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내가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들려줘야 한다. 그래야 희미하게나마 흔적이 남고 점점 더 또렷해져 나를 바꿀 수 있다.

고전을 영어로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마음에 날아와 박히는 아름다운 문장의 매력, 꾸준히 받아적고 체화시키는 뿌듯함까지. 한 권으로 이토록 많은 것들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책이다.
그로인해 인생에서도, 독서에서도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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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시적인 과학,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우주
우주플리즈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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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시적인과학당신을위한최소한의우주 (#우주플리즈 지음 #모티브 출판)은 시작부터 아주 참신한 설정으로 강력하게 몰입시킨다.

수십 수백만 킬로미터를 아득히 넘어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을 도는 빛 자체가 거리의 단위(광년)이 되어버리는 우주의 수학적 단위들을 인간의 그것으로 압축시킨다. 태양을 축구공으로 압축시킨 다음에 우리 지구를 포함한 다른 행성들의 크기와 그 행성과 태양사이의 거리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우리 지구는 크기가 참깨 한알(약2mm)이고, 태양과의 거리는 23m이다.
태양을 광화문 앞에 두어서 실제로 어디정도의 종로주변에 위치할지 대입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인세의 단위도 아주 잠시.
우리은하를 벗어나기도 전에 수치는 다시 우주의 단위 AU(1억 5000만 km)로 회귀한다. 태양을 축구공으로 줄인 세상에서 참깨 위에 먼지 보다 작은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아둥바둥 매일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하찮아 보이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 같다.
하지만 물리적 크기가 존재의 크기를 결정짓지는 않는다. 먼지보다 작은 존재의 시선은 하늘을 넘어 그 위에 끝없이 펼쳐져있는 우주를 향하고 있는, 우주에게 (거의)유일무이하게 이름을 부여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상상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시작과 끝 그 자체인 우주는 오히려 우리의 존재감을 더욱 뚜렷하게 한다.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었던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탈락하게 된 짧은 꼬리 행성의 출발점, 카이퍼 벨트를 넘어 인간이 아마 끝까지 관찰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관념상으로만 존재하는 오르트구름까지. 양자물리학처럼 관찰하지 못하는 것들마저 존재를 확인하는 인간에게 감탄하면서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페이지가 끝난다.

그리고 이 거대하고 흥미로운 여정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선을 발아래로 향하게 한다.
바로 모든 우연들이 모여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인 지구이다.

엄청난 자원을 소모하여 척박한 환경이지만 인간이 형태를 유지한 체(우주복을 상시 착용해야하지만)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는 화성에 쏟아붓는 노력을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주며 고통받고 있는 지구에 쏟아붓는다면 화성으로의 이주는 필요없지 않을까.
아무런 장비없이 사시사철의 계절과 푸르름과 공기를 누릴 수 있는 지구가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주로 향하는 시선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듯 하지만 우주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 모든 것에는 당연히 우리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노력은 몹시 중요하다.
존재 이유와 존재의 가치를 깨달을수록, 스스로를 더욱 사랑할 수 있고, 다정할 수 있다. 그로인해 나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도 더 다정히 대할 수 있다.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호기심, 지적능력, 그리고 다정함. 이 모든 것이 어우러졌을 때, 지구의 다정함도 제대로 알아챌 수 있다.
그냥 너무나 당연히 걷고 숨쉬며 존재하는 것.
너무나 당연해 고마움을 몰랐다.
생색내지도 않는 다정한 지구를 가장 먼저.
무엇보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다정히 대하도록 마음먹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지구의 사랑이 어렴풋이 보였다.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정말 시적인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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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펼침면
이제야 지음 / 먼곳프레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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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의 모퉁이를 접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그 페이지가 너무 좋아서일까? 나중에 또 보고 싶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은 감당할 수 없어서 외면이 아니라 잠시 보류일 뿐이라며 다음을 기약하는 하나의 숨통일까.

#이제야 시인의 #슬픔의펼침면 (#먼곳프레스 출판)을 읽어보면 정확하게 이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능동성이었다. 무언가에 눌려 접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눌러 접어둔 것이다. 슬픔을 잘 극복해 낼 수 있을 때를 위해 접어둔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시인이 접어놓은 슬픔은 다시 펼쳤을 때 여전히 슬픔이지만 이전과 같은 슬픔은 아니다. 세월이 지나 접어두었던 면에 눌려 압착되었거나, 시들었거나 아니면 조금 더 자랐거나.
자란 것은 슬픔일 수도, 자기 자신일 수도 있지만.

접어두었을 때만큼 다시 펼칠 때도 능동성이 느껴진다. 인생에서 슬픔은 한번으로 끝나지(끝나면 좋겠지만)않는다. 여러 번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더 잘 맞이해보겠다는 의지로 이전의 슬픔을 펼쳐낸다. 접었을 때와 같은 슬픔이 아닐지언정 그런 각오들로 스스로 펼쳐 슬픔과 마주한 어투는 덤덤하다.
접혀 있던 시간 동안 그녀가 강해진 것일까. 슬픔이 흐릿해진 것일까.
시를 잘(거의) 모르지만 내가 읽어낸 <슬픔의 펼침면>이 덤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덜어냄과 공유됨이라 생각한다.
써낸다는 것은 종이를 채워가는 과정이지만 내 안을 비워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워내야 비로소 고요해지고, 따뜻하고 도움 되는 무언가들로 나를 다시 채울 기회가 생긴다.
밀물과 썰물이 달에 이끌려 당겨지고 밀리듯.

그리고 같은 문장으로 써낼 수는 없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쓰고 읽는 것.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마음을 겪고, 그로 인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공감받는다는 공유감이 큰 위로가 되어준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슬픔에 특히 효과가 좋듯이, 슬픔을 담아 낸 시에도 그러했다.

슬픔이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유토피아일 뿐이다. 슬픔이 있기에 평온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천국에 있는 이들이 평온하고 행복하다면 이곳에서의 기억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야 시인은 <슬픔의 펼침면>을 통해 슬픔을 대하는 능동적인 의지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 없다면, 잘 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갈무리‘한다’는 것의 시작이자 전제조건은 피하지 않고 기꺼이 펼치려는 의지이다.

그렇게 접던 손가락의 힘과 접혀있던 시간에 비례해 남아 있는 접혀있던 자국은 마주했고, 나아갔다는, 그러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지난한 파도가 있었다는 증거이자 훈장이 되어, 또 다른 곳을 펼치는 데 필요한 용기가 되어 줄 것이다.

단어는 통상적 의미가 있을지언정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닐 것이다. 접어두었던 슬픔의 키워드들을 펼치고 마주하면서 다른 의미로 다시 정의해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것과 같은 과정일 것이다.
각자의 의미로 삭여내는 것. 그것들로 채워진 것이 인생일 것이다.

이 책에 계속 눈이 가고 손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과 닮아서.
나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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