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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펼침면
이제야 지음 / 먼곳프레스 / 2026년 4월
평점 :
페이지의 모퉁이를 접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그 페이지가 너무 좋아서일까? 나중에 또 보고 싶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은 감당할 수 없어서 외면이 아니라 잠시 보류일 뿐이라며 다음을 기약하는 하나의 숨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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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시인의 #슬픔의펼침면 (#먼곳프레스 출판)을 읽어보면 정확하게 이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능동성이었다. 무언가에 눌려 접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눌러 접어둔 것이다. 슬픔을 잘 극복해 낼 수 있을 때를 위해 접어둔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시인이 접어놓은 슬픔은 다시 펼쳤을 때 여전히 슬픔이지만 이전과 같은 슬픔은 아니다. 세월이 지나 접어두었던 면에 눌려 압착되었거나, 시들었거나 아니면 조금 더 자랐거나.
자란 것은 슬픔일 수도, 자기 자신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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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두었을 때만큼 다시 펼칠 때도 능동성이 느껴진다. 인생에서 슬픔은 한번으로 끝나지(끝나면 좋겠지만)않는다. 여러 번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더 잘 맞이해보겠다는 의지로 이전의 슬픔을 펼쳐낸다. 접었을 때와 같은 슬픔이 아닐지언정 그런 각오들로 스스로 펼쳐 슬픔과 마주한 어투는 덤덤하다.
접혀 있던 시간 동안 그녀가 강해진 것일까. 슬픔이 흐릿해진 것일까.
시를 잘(거의) 모르지만 내가 읽어낸 <슬픔의 펼침면>이 덤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덜어냄과 공유됨이라 생각한다.
써낸다는 것은 종이를 채워가는 과정이지만 내 안을 비워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워내야 비로소 고요해지고, 따뜻하고 도움 되는 무언가들로 나를 다시 채울 기회가 생긴다.
밀물과 썰물이 달에 이끌려 당겨지고 밀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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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문장으로 써낼 수는 없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쓰고 읽는 것.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마음을 겪고, 그로 인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공감받는다는 공유감이 큰 위로가 되어준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슬픔에 특히 효과가 좋듯이, 슬픔을 담아 낸 시에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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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유토피아일 뿐이다. 슬픔이 있기에 평온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천국에 있는 이들이 평온하고 행복하다면 이곳에서의 기억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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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시인은 <슬픔의 펼침면>을 통해 슬픔을 대하는 능동적인 의지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 없다면, 잘 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갈무리‘한다’는 것의 시작이자 전제조건은 피하지 않고 기꺼이 펼치려는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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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접던 손가락의 힘과 접혀있던 시간에 비례해 남아 있는 접혀있던 자국은 마주했고, 나아갔다는, 그러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지난한 파도가 있었다는 증거이자 훈장이 되어, 또 다른 곳을 펼치는 데 필요한 용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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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는 통상적 의미가 있을지언정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닐 것이다. 접어두었던 슬픔의 키워드들을 펼치고 마주하면서 다른 의미로 다시 정의해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것과 같은 과정일 것이다.
각자의 의미로 삭여내는 것. 그것들로 채워진 것이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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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계속 눈이 가고 손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과 닮아서.
나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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