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소위(김하진) 지음 / 채륜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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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어쩌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책을 덮는 순간 떠올랐다.

#부사가없는삶은없다 (#채륜 출판)을 쓴 #소위 작가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병에 걸린 엄마가 작가의 손을 잡고 도망쳐나오는 순간부터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국어교사, 출판 편집자, 수녀가 되려했다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꾸준히, 기어이 나아간다.

외면 하고 들춰내지 않음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나씩 오롯이 받아들여 자기만의 언어로 그것도 신중히 선택해 여유롭게, 덜아프게 다시 만들어내며 그렇게 과거의 자신을 떠나보내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는 삶을 살아오면서 발표를 하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하는 순간이 오면 ‘간단하게 해야할말만, 요약해서’를 최고의 미덕으로 배우고 행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곧 돈인 사회에서, 이 상황뿐만 아니라 신경써야할 일들이 넘쳐나는 바쁘디바쁜 사회에서 쌀이 도정되어 생쌀이 가지고 있던 독특한 풍미가 사라져가듯, 비슷하게 느껴질 수는 있으나 절대로 같을 수 없는 개인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카테고리속에 비슷한 케이스로 분류해버린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권한 행사인가.
그 속에 담겨져있는 한 사람의 진짜 인생이 무차별하게 깎여나간다. 자기만의 특별함이 무시당하고 다른 것들과 하등 차이없는 것으로 비하당해버리면 무슨 의미로, 의지로 행복이 빛날 만큼 힘듦과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간단말인가.

소위 작가는 깎여나가버린, 어쩌면 스스로부터 특별하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하지만 고통스러웠던 삶을 부사하나에 하나의 이야기를 대입하여 마주보고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나의 하나의 사건이 특별해지면 하루가, 일주일이, 한달이, 일년이, 평생이 특별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에 하나의 부사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부사가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용언 또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품사.
우리 국어에서 부사의 의미이다.
뜻을 분명하게. 우리의 삶에 부사가 쓰이는 순간, 우리의 삶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를 비롯한 50만명의 독자들이 이 글을 읽으며 위안과 감동을 받은 것도 작가의 인생에 담겼던 부사가 우리의 삶에도, 태양의 빛을 반사해 빛을 내는 달처럼, 분명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 느낌은 ‘위안‘이다.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
위안의 사전적 뜻이다.
스스로 위안을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쉽게 매순간 특별하고 명징해 질 것이다.

쳇바퀴 구르듯 구르는 인생이라는 표현을 아무 거리낌 없이 쓰며 살아왔다. 내 스스로가 내 인생을, 내 삶을 전혀 특별하고 분명하고 의미있게 여기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스스로의 삶이 특별하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삶이 ‘특별해지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우리의 현재 삶은 특별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비슷하다는 인식을 우리도 모르는 새에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생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만큼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되짚어 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빡빡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은 하나의 계기만 있으면 꽃이 피듯 활짝 피어나 이전과는 전혀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또 사람의 특징이다. 그러니 수만년을 넘는 아득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오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모두 특별하고 귀한 존재이다.
부사를 통해 너무 아프지 않기를, 외면했던 무언가를 다정하게 보듬어 줄 수 있기를.

작가의 말대로, 부사가 없는 삶은 없으니까.

이 책을 만나 마침내, 우린 각자의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유난히 밝은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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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해방일지
김명주 지음 / 아빠토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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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인구 오천만의 시대. 수도이자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향해야한다는 이미지가 강한 서울에는 천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있으며, 수도권까지 확장하면 전체인구의 절반수준인 2500만명정도가 살아가고있다.

과연 날때부터 서울 및 수도권에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가 문득 궁금해졌다. 원래도 비쌌던 집값이 코로나시대를 지나오면서 몇배나 한번에 올라 말그대로 정말 그림의 떡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서울로 향한다.
서울은 무엇이 그렇게 특별할까?

나도 광역시이지만 지방에서 태어나 학업으로 서울로 올라가서 몇년을 지내다 고향도 서울도 아닌 지역에 터를 잡고 몇년 동안 살아오고 있다.

어쩌다보니 성향과 맞지않게 경상도 서울 전라도를 아우르는 인간 화개장터가 되어보니 어디 한 곳이 특별나게 뛰어난 곳은 없었다. 다들 저마다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완벽한 곳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서울로 향하는 것일까?

#서울해방일지(#아빠토끼 출판)을 쓴 #김명주 작가는 직장인시절 출강하는 직업 특성상 매달 본사가 있는 서울을 왔다갔다하면서 대전에서 출퇴근 했던 경험과 퇴사하고 디지털노마드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굳이 서울에 머무를 이유가 없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울에 대기업들이 몰려있고, 좋은 학교도 인서울이라 불리며 소위 성공이라 불리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서울에 있어서 사람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었으나, 코로나 및 통신의 발달로 서울에 집약되어 있던 메리트들이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닌 세상이 왔다고, 세상이 변화했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 변화에 올라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남들 다하니까, 혼자 도태되는 것 같아서, 부모님이 원하셔서 같은 수동적이며 아무생각없는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서울로 향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않는다고, 다만 자기에게 진정으로 옳은 일인지, 이득이 되는 일인지 잘 따져보고 결정하라고 말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하루에 많게는 4시간을 출퇴근길에 투자할 수 있는지 같은 요소들을 요목조목 따져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방에 살아도 아무문제없음을 경험으로 이야기하며 오히려 지방에 살았을때의 이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같은 금액으로 좀 더 신축의 더 넓은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서울보다 낮은 인구밀도와 소음으로 더 고요하게 스트레스 받지않고 오롯이 나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여 진정한 자기계발을 이룰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요즘은 물가와 집값의 상향평준화로 돈이 오직 지방에 살아야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하지만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력 등의 이유로 청년들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단순히 정착지원금같은 제도만 운영하는 정부기관들의 수동적 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정착했을 때, 지원금이 아니라 앞으로 주욱 정착해서 발전해서 살아갈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서울 해방일지>는 지방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변화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식의 환기를 시도함과 동시에 지방소멸에 반응하는 정부기관의 이상적 모습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치적 제도적 이야기와 자기계발까지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회사의 구성원으로도, 디지털 노마드로 1인 가구 세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겪고 가르치고 배운 작가의 사상과, 책을 펴낼정도로 끊임없이 글을 써오면서, 같은 무언가를 두고도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더라는 고백까지 담아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며 책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방소멸에 대해 자신의 관점까지 내세운다.
두권의 책으로 만들었어도 분량걱정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의 활동성과 의지, 열정이 읽는사람에게도 전달될 만큼 꽉꽉 눌러담아져있다.

다른 것들을 다 차치하고 나는 이 작가처럼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 열정을 다 바치고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게 살아왔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는 독서였다.

세대가 변하듯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남들의 시선과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에서 벗어나는 ‘나의 해방’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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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예술가들 - 창작은 삶의 격랑에 맞서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마이클 페피엇 지음, 정미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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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덕업일치 라는 말이 있다.
덕후라도 불리어도 좋을만큼 좋아하는 특별한 일을 업으로 삼는 행운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덕업일치를 이루었다라는 것도 부럽지만,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했다라는 것이 더 부럽다.

#내가사랑한예술가들 (#디자인하우스 출판)을 쓴 #마이클페피엇 이 덕업일치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제목에서 부터 ‘내가 좋아하는’이라는 말을 숨김없이 그대로 적은 의도 처럼, 자신의 60여년의 미술평론가 인생에서 가장 사모하고, 직접만나 우정을 나눴던 작가들을 자기만의 신전에 모셔놓았다.

하나의 전시회를 구상한 듯한 구조이다.
전시회의 제목은 ‘지극히 개인적인 예술가들을 위한 신전’이며 전시실은 총 다섯개이며 전시실의 이름은 없다.
많은 작가들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무제(Untitled)'가 아닐까.

하지만 각각의 전시실에는 누가봐도 예술사를 말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화가들이 빽빽하게 전시되어있다.
작가의 그림에 집중했다기 보다 화가 그 자체에 집중되어 있어 그림에 대한 기억은 희미할 수 있지만, 화가에 대한 이해도는 내가 옆에서 지켜봐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올라간다.

작가는 서문에서 화가의 신전이 있듯 문학가들을 모셔놓은 신전도 마음속에 구비해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화가들의 편지나, 메모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에 유난히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인생이 온통 ‘고통’뿐이었던 고흐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동생 테오와의 편지, 고갱이 남긴 일기 등을 통해 고흐의 심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읽는 내내 입꼬리가 아래로 쳐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위대한 그린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궁금했던 내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책이었다.

아직 미숙하여 잡히지 않은 내 스스로의 취향이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한 화가들로 잡아먹힐 정도로 말이다.
페피엇의 신전을 고대로 모셔와 평신도로 숭배할 뻔 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안비밀이다😇)

피카소의 인정욕이 그의 패션에도 담겨있다며, 베래모로 대표되는 그의 갖춰입은 패션은 그림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점차 옷이 검소해져가는 과정도 인상깊었고, 화려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다는 지극히 모순되는, 불가능해 보이는 화풍을 90이 넘도록 열정적으로 그려온 멀티링구얼 천재소녀 출신 소냐 들로네, 이름만으로도 20세기 실존주의 그 자체의 상징이 되어버린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처절한 실패로 가득한 그의 인생에 절로 박수를 보내며 팬이 될 수 밖게 없는 서사성들을 보여준다.

형상화 그것에만 집중해도 평생이 걸릴텐데 존재자체의 본연성에 몰두하여 실패의 고통에서도 포기않고 끝까지 마주친 그의 예술은 가히 하나의 사상을 대신하는 대명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인류가 망할때 까지, 아니 어쩌면 인류가 사라지고 다음 생명체가 과거에 있었던 인류의 문명을 찾아내더라도 고도로 심화된 사상과 문화를 가졌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할 예술가들을 막연히 상상할 때는 천재, 특출난 재능, 오롯이 자기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인 것에 또한번 충격을 받았다.
고통과 결핍으로 예술이 이루어진다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문학에서도 우리가 재미있어하고 열광하는 이야기의 특징은 주인공이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아픔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위대한, 감명깊은 이야기들은 결핍과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에 박혀서 영원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예술 뒤에서 결핍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마주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화가들이 진정한 예술이며 그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진정한 뜻임을 깨달았다.

나도 이 위대한 예술가들 만큼은 아니지만 버티고 열심히 살아낸다면 누군가가 기억해줄 무언가 하나쯤은 남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삶을 살아가는데에 용기가 생긴다.

이래서 예술은 불멸인가보다.
우리의 삶도 예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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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지구라는 놀라운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아이작 유엔 지음, 성소희 옮김 / 알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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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는 지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있을까?

눈 뜨자마자 눈 감을 때 까지 심지어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구에 속해있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어 지구의 일부로 돌아갈때까지 지구를 단 한번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에 대해 아는 걸 이야기 해봐라라고 하면 딱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없다라는 것에 당황한다.

#지구를여행하는히치하이커를위한안내서 (#아이작유엔 지음 #알레 출판)제목을 보고는 여행객처럼 맛집 관광지말고는 제대로 아는게 하나없는 우리에게 딱 맞는 제목이 또 있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과학적 지식을 담고, 어떠한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하나의 행동으로 귀결되는 대부분의 지구를 다루고 있는 책들과는 다르게 어떤 장르로 규범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글들이 50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생물들(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앞서 언급했고 대부분 생명체인 대상)을 열거하면서 진행된다.

과학적 지식이 담긴 글이었다가 문학적 에세이로 글이 끝나기도 하고, 아예 소설인 것 처럼 보이는 글도 있고, 사소한 것에서 고찰을 고백하는 철학 에세이 같은 글들도 있다.

읽으면서 계속 그래서 이 작가는 하고싶은 말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생물들의 이름짓기에 문제점, 시각적 정보들을 받아들이는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위해 각기 다르게 진화한 모습들, 동물들의 보금자리에서 인간의 가정과 가족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글 등 좋게 말하면 다채로운 주제와 그 주제보다 더 다양한 작가의 생각들이 담겨있다. (끊임없이 작가가 유머를 녹여 글을 적어 놓았는데 책을 덮는 순간에는 작가의 농담이 가장 강하게 기억될 만큼 온갖 이야기들이 온갖 방향으로 흘러가 다정한 느낌이나 분명히 얽혀있다)

작가는 이러한 글들의 주제와 형식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설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들 독립된 개별적인 것처럼 하나로도 이미 완성된 이야기들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헷갈리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소주제로 나아가 한권의 책으로 묶이듯이, 다양한 생명체들이 독립적으로 살면서 하나의 역,계,문,강,목,과,속,종으로 묶이고 그것들이 다시 모여 하나의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제목에 적혀있는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라는 표현을 보면, 읽기 전에는 아 우리 인간을 말하는 것이구나 했지만 다 읽고나니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다 지구라는 관광지를 여행하고 있는 히치하이커구나라는 생각까지 더해지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만심으로 지구를 마음대로 다룰 권리를 가진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지구를 지배하는 지배종이라 여기면서도 지구의 생명체라면 본능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모두 가지고있는 보금자리조차도 마음대로 가지지못해 낑낑거리고 있으면서 뭘 그렇게 떵떵거리고 있는지. 아 정말 방구 낀 놈이 성낸다라는 말을 고대로 실천하고 있더라🤣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끼리 사회화과정을 통해 이루어놓은 모습들도 하나의 지구 생태계처럼 이루어져있다.
짝을 이루어 번식을 하고 사냥을 하고 힘을 기루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고(하기위해 애쓰고) 등 모든 일들이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똑같이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결국 다 똑같은 평등한 임차인이다.
똑같은 돈을 지불하고 빌려쓰면서 다른 생명체에게 소음, 쓰레기, 폭력 등 다양한 갑질을 하고있었다 우리 인간은.
당연하다는 듯이 생명체에 이름을 붙가면서.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를 창조해 내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룩한 행위를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 한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 가장 넓은 서식영역, 가장많은 각종 배설물들을 만들어내는 주제이니 반성하고 다른 동등한 권한을 가진 이웃들을 위하고 보살펴야한다.

가볍게 유쾌하게 우리도 지구의 일부임을 특권따위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대부분의 것들에서 부정적이고 강압적인 압박에 의한 행동보다 유머와 가벼운 유쾌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깨달음에 기반한 행동이 더 효과적인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유쾌한 동기부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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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 천천히 사유할 때 얻는 진정한 통찰의 기쁨
머리나 밴줄렌 지음, 박효은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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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는 정체되거나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순간이 돈으로 환산되면서 멍때리거나 게으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 되었다.

자본 주의 이전에 무한 경쟁 사회에 들어서면서 부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억제당한다. 너가 지금 이러고 있는 시간에 경쟁자는 한글자라도 더 보고 있다고, 그렇게 뒤쳐진다고, 뒤쳐지만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언제 쉬고 내안의 나와 조우할 수 있는가?

#창조적영감에관하여 (#마리나반주일렌 지음 #다산북스 출판)는 진화라는 것은 환경에 맞는 모습으로 나아갔다는 것이고, 그럼 우리 뇌는 오롯이 집중하는 것에 맞게 진화되었을 것인데 왜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라는 진화학적 의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집중력을 오랜시간동안 유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면 분명 그렇게 진화했을텐데 왜 그러지 못했냐는 물음이 꼴에 생물학도라 그런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동물이 우리보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밥이든 간식이든, 좋아하는 장난감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옆에 무슨일이 있어도 아랑곳하지않고 오직 그 하나에만 몰두한다.

족발에 있는 커다란 뼈를 좋아해서 쥐어주면 손발이 갈색으로 물들고, 밤에 잠도 자지않고 매끈한 뼈에 뽕뽕 구멍이 보일정도로 핥아대던 우리집 강아지도 기억이 난다.

각설하고 이처럼 우리는 상대적으로 진화가 덜 되었다는 표유류나 유인원보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집중력을 잃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작가는 던진다.

실제로 집중력이라는 이름의 이성을 유지하는데에는 우리 뇌의 앞부분이 강하게 활성화하는 것이 관여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뇌의 특정부분의 활성화가 약해지면 직감, 창의력이라 불리는 자유롭고 틀에 얽매이지 않은 사유가 가능해진단다.
우리는 이것을 ‘몽상’이라 부른다.

몽상은 많은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영어에서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을만큼, 인간의 삶에서 제법 배제되어있다. 물론 왜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몽상’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파리지앵의 나라 프랑스어에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파리지앵을 떠올리면 눈앞에 선하게 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즐기는 모습이 바로 몽상하는 모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실제로 커피를 마시기위해 커피잔을 드는 것과 샌드위치를 입에 넣어 씹는 저작운동에는 아무런 의식이 담겨있지 않은 반사적인 행동일 것이다. 시크한 선글라스 안에는 멍때리고 있는 멍한 동공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대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는 기존에 없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창의력이 굉장히 중요하고 실제로 귀한 능력으로 인정받고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창의력은 단순히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머리에 담아 좋은 성적을 이뤄내는 직선적인 사고가 담당하지 않는다. 멍을 때리고 사색에 잠기고 몽상하는, 겉으로 봤을때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 같은 그 시간에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심지어 돌이켜봤을때 너무도 간단해보이는 답을 찾아낼 확률이 훨씬 높다.

뇌과학적으로도 충분히 밝혀진 내용이다. 멍을 때리는 동안 우리뇌의 뇌하수체의 이동속도가 빨라져 뇌활동의 부산물로 생기는 노폐물들을 수월하게 걸러준다고. 이렇게 노폐물을 걸러내는 움직임은 오직 멍때리고 몽상하는 순간에만 발생하는 귀한 일이라고 한다.(원래 우리 몸에서 림프절이 하는 역할인데 우리 몸 중 유일하게 뇌에만 림프절이없다)

집중력이 부족한 나같은 사람에게 집중력이 떨어져도 괜찮아, 오히려 좋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지만 무조건몽상을 응원하고 있지만은 않다. ‘중도’를 말하고 있다.

집중력(이성)과 창의력(몽상)의 적절한 비율 유지.
이 둘을 합쳐여 비로소 다른 종들과 비교되는 인간성이 완성된다. 완벽한 자유로운 발상을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어느정도의 지식과 이성적 판단은 필수이다.

아무런 지식없이 펼쳐지는 몽상은 아무짝에 필요없는 허황된 망상일 뿐이다.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여 즐기는 서핑이 떠오른다.

적절한 몽상과 멍때리는 사색으로 이성과 창의력의 밸런스로 인생이라는 파도에 즐겁게 올라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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