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쿠킹 다이어리 - 언제나 꺼내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영화 한 그릇
오토나쿨.박지완 지음 / 유선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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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의 가장 신나는 하루는 매주 수요일이었다. 수요일마다 시내(촌놈)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가 반값이었기 때문에 4000원(세상에)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매 주 만나도, 별로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와 사천원에 영화를 즐기고 저녁을 대신한 술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시절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취향따위 없이 그때는 개봉한 영화를 거의 다 봤었는데(매 주 보다보니 영화가 남아나질 않았) 그때는 티켓을 버리지 않고 지갑에 차곡차곡 넣어뒀는데 부자로 오해받을 지경이었다. 뭐 쨌든 애니웨이.
아직도 그때 보았던 영화들을 티비에서 보거나, 영화를 보고 나서 먹었던 음식들을 볼 때면 그 시절, 그 날,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것을 핑계로 그 녀석에게 연락하면 그랬나? 요딴 반응이나 하고 속을 뒤집어 놓지만 괜찮다. 그것까지가 다 나만의 일기가 되니까.

일기를 쓰다보면 마땅히 쓸 말이 없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래서 몇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먹고 집을 치우고 이런식으로 채워지는데 그럴 때 드는 생각이 내가 인생을 살면서 영화, 음식들처럼 누리는 것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같은 순간이라도 하루를 담아내는 언어와 시각은 풍성해지겠구나였다.

그러한 생각은 #시네마쿠킹다이어리 (#오토나쿨 & #박지완 씀 #유선사 출판)을 보면서 더 확실해졌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떼깔나게 음식들을 찍어보여줘서 비슷하게라도 해먹어보겠다며 이것저것 알아보고 했었는데, 그렇게 영화 속 음식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영화는 기억의 트리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한 머리핀을 보고 엄마가 떠올라 엄마가 좋아하던 버섯 샐러드가 떠오르고, 신실한, 그로인해 자식의 성정체성을 부정하는 아버지와 <콘클라베>를 보고 뒤에 소주 한잔과 함께 먹은 돼지국밥, 한여름밤의 꿈 같던 그녀와의 썸 때 둘 다 좋아한다며 이야기 나눴던 영화를 떠올리며 만들어주었던 쿠키를 떠올리는 식이다.

그렇게 영화와 음식은 잊고있던 좋은 기억들 또는 잊고 싶은 나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지만 일종의 완중체가 되어준다.

너무 좋아도 너무 싫어도 어느쪽으로도 너무 휩쓸려가지 않도록, 음식이 중간에서 가림막이 되어준다. 즐거웠던 것은 오도독 씹으면서 들뜨지 않게하고, 슬펐던 것은 따뜻함, 든든함으로 헛헛해지는 속마음을 채워준다.

일기를 쓰는 이유는 내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을 몸 밖 어딘가에 옮겨담는 것이라 생각한다. 헛헛함, 텅빈 것 같은 기분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부(-)의 감정들이 쌓여있어서 빼줘야 한다. 그래야 또 새로운 것들로 나를 채울 수 있으니. 그렇게 나를 적절한 덧셈, 뺄셈으로 보통의 나를 유지해 현실에 단단히 발디디고 걷게 해주는 것.
<시네마 쿠킹 다이어리>의 저자들에게는 영화가, 음식이 나를 더 잘 비워낼 수 있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일기소재였고,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서 많이 공감했다.

함께 담겨있는 레시피로 요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지만 이 책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에게 영화, 음식과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무언가를 직설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 아닌 살짝 틀어 충격량이 덜하게 다가오도록 하는 무언가가 있는, 일기로 쓴만한 것들이 떠오르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에게도.
내 일기를 채워줄 나만의 소재.
당신의 소재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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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헨리 지 / 까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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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속에서 살아남은 단 하나의 종.
지구에서 유례를 찾기어려운 다양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종.
바로 호모 사피엔스. 우리 인간이다.

유일한 ‘호모’가 된 역사는 그렇게 길지않다.
5만년 전만해도 여러 ‘호모xx’종들이 존재했다. 나머지들이 한계를 넘지 못하고 사라질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한계를 돌파하고 지구의 자원을 독점에 가까울 정도로 사용하게 되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제국이 모든 것을 발 아래 두듯이.
호모 사피엔스의 제국은 눈부신 번영을 누린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번영이 쇠퇴를 무르익게 했다, 한 종이 언제, 어떻게 멸종할지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정점에 올랐을 때 무엇을 하는지를 보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우리는 ‘멸망’이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영원히 증가할 줄 알았던 인구수가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아지면서 감소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대로라면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에 이를 것이다.

그 멸종, 멸망의 역사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위해 #인간제국쇠망사 (#헨리지 지음 #까치 출판)에서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발전과정의 양면성을 살펴보고 있다. 정착생활과 풍요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농경생활이 한 곳에 오래 정착하면서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에 취약해졌다고 말하고, 농업‘혁명’이라고까지 불리지만 사회적 불평등 같은 다수의 희생이 강요되었다는 것과 같은 팩트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출생률과 기후변화, 자연고갈 등 여러가지 위협요인들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이번 세기의 끝에는 인구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하고 결국 멸종이라는 엔딩을 불러온다고 보여주며 해결책도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길어올린다.

사라진 종의 다양성을 달, 화성 등의 우주공간에서 단일 종으로 살아가며 적응하며 종의 분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에 달려있기에 아직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만의 한계없는 상상력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니 발전에 취해있지 말고 끝을 계속 생각해야한다.

먼 이야기 처럼 들리는 멸종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다가올 수도 있는 예정된 현실임을 <인간 제국 쇠망사>는 말해준다. 그로인해 어떻게 그것을 미루고 막을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을 시작하게 한다.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피할 수 없을지라도 이렇게 성찰하고,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미래까지 전체를 한번 굽어보는 것 만으로도 적어도 최후의 날을 미룰 수 있다.

과거를 잊은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돌아보고 다르게보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최고의 시절을 찍고 내려오는 것 같은 우리들이 여전히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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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종의 나라 1~2 세트 - 전2권 (양장)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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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이 지구의 주류 문화로 올라서서 한류라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양 그들만의 것이었던 빌보드차트에 우리나라 가수들이 높은 순위를 기록한다.

한류를 폭발시켰던 BTS가 군백기를 깨고 우려속에 컴백, 또한번 빌보드 메인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7번째 1위, 전세계 그룹 중 5번째로 많은 수란다.

그들의 앨범제목은 ‘아리랑’이었다. 어느때보다 한국적일 것이라며 일명 ‘왕의 길’,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이 지켜보는 광화문에서 넷플릭스가 지원하는 컴백콘서트에서 공개된 곡들은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너무나 한글이 없고 영어 가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첫 무대곡에서 우리의 민요 아리랑이 샘플링이 되어있긴 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단 BTS만의 문제는 아니다. 라디오 방송 횟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빌보드 차트 점수 집계방식을 염두해 수많은 아이돌들이 영어가 많은 노래를 발매한다.

한류라는 거대한 문화에 한글이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출처와 기원, 제작 방식이 ‘해례’라는 이름으로 남겨져있는 ‘훈민정음’이 널리 퍼지면 좋으련만.
물론 한국어를 배우는 타국인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이럴 때, K-POP과는 다른 방법으로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라는 염원의 이야기를 널리알려 줄 수 있는 ‘K-뭐시기’가 있으면 좋을텐데.

그런 염원이 대답을 받은 것일까.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 의 #세종의나라 (#이타북스 출판)가 시의적절하게 찾아왔다.

5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매우며 다시한번 현시대에 강림한 세종과 훈민정음의 이야기는 뻔하다면 뻔하다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어떤 시대에 어떤 것에 주목해 길어올리는가에 따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울림이 다르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새로운 글을 만들겠다는 왕에게 돌아오는 것은 우리의 글자를 훔쳐간 주제에 발음을 천박하게 한다는 중국의 사신과 천자의 글을 버리고 오랑캐가 되려하냐는 사대부들의 반발이었다.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해 마음이 짠하기도,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관찰’이라는 개념의 탄생이었다.

천지인의 이치, 발음기관의 구조를 본따 만들었다는 과학성. 그 과학성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관찰이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의문을 품으며 무언가를 발견하고 깨닫고 살을 발라내 일반화 해서 다른 무언가에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 이 모든 관찰인 것이다.

중국의 옛 서적들을 왜?가 아니라 달달 외우고 글을 잘 지으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그 시절 사람들에게 그 책들 말고는 이 세상을 이루는 이치들은 하찮은 신분의 ‘것’들이 경박스럽게 먹고살기위해 팔아먹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끝없이 바라보며 간구하는 것. 과학이 나라의 국력, 미래를 보장한다는 것은 기술뿐만 아니라 이렇게 무언가를 발견하고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닮고있다는 것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 관찰이 찬란히 꽃피운 것이 바로 훈민정음, 한글이다. 그렇게 우리 고유의 것으로 가지고 못가지고를 떠나서 모두가 깨우치고, 깨우친 것을 공유하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내고, 한민족이라는 끈끈함이 강화된다. 그랬기에 쓰리다로는 다 담지못할 역사를 우리 민족도, 한글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이는 한글이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며,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준다.

끈끈함과 관찰로 시작하는 무궁한 가능성.
우리가 어떤 민족인지, 누구의 후손인지가 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게 발을 단단히 땅에 붙이게 해준다.

그럴 잊고있던 힘을, 용기를 다시 내 두발에 닿게 해주는 굳건한 손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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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전면 개정판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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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건축. 건축으로 채워져있는 것이 도시같기는 하지만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공간‘보이드’가 있다는 것이다.

공간이 있어야 건축물을 만들 수 있긴 하지만, 건축물 속 비어져있는 공간들에 무엇을, 어떻게 채우는가에 따라 비로소 건축물이, 도시가 제역할을 하게된다.
이 ‘제역할’이라는 것이 신기한데, 만들고 기획한 사람의 의도를 넘어 그 이상의, 새로운 무언가가 자꾸만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관계로 어떤 시간을, 어떤 역사를 만들어나가는지가 기획의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시는무엇으로사는가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출판)에서는 이것을 보고 도시는 ‘유기체‘라는 표현을 한다. 환경에 적응하고 조금씩 달라져가는 유기체의 특징 중 하나인 ’진화‘와 몹시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건축물이 나열되어 있는 도시도 복잡하게 갈라져있는 거리를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우리몸의 혈관의 혈액같기도, 식물의 잎맥 속 수분같기도 하다.

그 진화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출판된지 10년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10년 전에 다루었던 도시의 매커니즘은 여전하나 짧지않은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떻게 달라져왔나를 반영했다.
특히나 이번 10년은 현대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급격한 생활환경의 변화(펜데믹, AI, 비트코인, 전쟁)를 보여준 시기이기에 놓치지 않고 개정하는 저자와 출판사의 세상에 대한 이해력이 놀랍다.

물론 십년전 ‘핫플’이었던 가로수길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공실률60% 로 그 명성을 잃고, 성수동이 떠오르고 있는 등 완전히 달라진 것들도 부연설명을 더했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로마부터, 서울, 뉴욕, 파리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이 도시들이 어떻게 이렇게 변해왔는지를 생각하고 있는 이 책을 따라가다보면 도시를 말한다기 보다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도시로 바둑판식으로 배열이 되어있어도 사람들이 살면서 거미줄처럼 또다른 길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로인해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것에 특유의 리듬감이 더해진다. 그것은 맥박과도 같아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도시는 그 안의 사람들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통신과 기술의 발달로 더이상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될 필요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로 모여든다. 여전히 대기업, 문화를 포함한 컨텐츠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혈류가 공급되기에 근육도 더 성장하듯이,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이자 진화할 수 있는 자극, 환경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묻는다.
도시 안에서 살아가고, 영향을 주고 받는 우리가 원하는 도시는 어떤 모습이냐고. 자동차의 소통이 원활한 성공한 거리를 원하는지 걷고 싶게 만드는 거리를 원하는지,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선호하는지, 시대에 맞춰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 처럼 개량해서 새로운 모습과 역할로 여전히 의미있게 쓰이는 것응 선호하는지, 우리나라의 경의선 숲길이나 현재의 핫플 성수동 팝업을 보여주며 기존의 것이 아닌 새로운 문화로의 확장, 상업 시설의 주거화와 같은 현재 변화추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이런 예상치 못한 생각들이 도시를,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문화를 진화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진 요즘이다. 변화의 흐름 놓치고 도태되는 것 보다 변화의 흐름을 예측하고 편승하며 오롯이 누리며 사는 것이 도시에게도 우리에게도 정답이다.

그냥 하루하루 회사와 집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살아가고 내가 진화시키고 그로인해 나도 변할 수 있는 생의 동반자로 도시를 여기게 한다.

그 도시에 있는 내 삶이 제 색깔을 되찾는 것 같다.
도시라는 거울로 나를 비춰보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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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하는 태도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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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것은 다른 것일까?
우리 개인은 물론, 사회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하고 싶어한다(‘건강한’ 이라는 조건도 붙여서)

살아가는 것에 열중하다보니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 되었다. 사십에게도 오십에게도 육십에게도, 그 이상에게도 죽음은 아직 먼 일이다.
우리 곁에 있던 소중한 인연들이 하나씩 떠나가면서 죽음에 대해서 더 부정적인 생각이 심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삶에서 떨어져있는 것도 아니다. 살아내는 것의 마지막 종착지,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면 죽는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물론 건강하게, 온전한 정신이길 바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닌 준비가 가능한 것이다. 마냥 살아내다 덜컥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죽음을 인식하면 당연히 겁이 날 수밖에. 정리해야 할 일도, 마음도 산더미처럼 남아있으니.

#죽음을대하는태도 (#책읽는고양이 출판)은 작가 #소노아야코 가 80세가 되어서 쓴 글이다.
가톨식신자로 살며 오지의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곳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죽음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준비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자신의 생각들을 담담하게 적어놓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존엄생’의 태도였다.
죽음을 너무 깊게 받아들여 주체적 죽음을 바라며 존엄사가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죽음을 가까이에 있음을 항상 인지하되 시선을 죽음이 아닌 살고있는 지금에 두라는 갓이다. 끝이 있음을 인식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의미없이 흘러가는 것 같던 반복되는 하루도 평온하게 아무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되고, 그 감사한 마음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노랗게 고개내민 진달래, 하루가 다르게 쑥쑥 줄기가 자라나는 식물들을 눈에 담을 수 있게 한다. 일상이 주는 감동을 느끼면 삶이 충만해 진다. 그 충만해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죽음의 순간이 두렵지 않다. 모든 것을 겪었고, 지나온 강인한 사람에게 죽음도 그저 살아가는 것의 한 모습일 뿐이다.

삶을 마감한 사람의 삶과 마지막 모습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자신의 삶을 이 사람처럼, 이 사람같이라는 목표를 가지게 해줄 수 있다면 나는 더이상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던 씨앗이 아닌 죽음으로 새로운 다른 싹을 틔우게 하는 햇살, 물과 같은 양분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봤다. 돈을 많이 모아둬야하나? 튼튼한 집을 구비해둬야하나? 같은 많은 목표들이 떠오른다.
욕심같기도 하지만 돈, 집과 같은 것들을 다 걷어내면 남는 것은 사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충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상의 멋진 나날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하루하루의 내일에 마주하게 될 죽음의 순간, 그 순간에 사랑하며 살았다라는 같지만 다른 충만함을 느끼며 지켜보는 누군가에게 사랑하며 살고, 사랑하며 살았다라는 기억을 물려줄 것이다.

그들이 또 사랑하며 살고 사랑하며 살았다 말하게 하는 삶. 그것이 올바른 삶이고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매순간 귀하게, 충만하게 살자.
그렇게 평범한 나날들을 살다 평범한 죽음을 맞이하자.
죽음은 먼 것이 아니라, 피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세상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갖게하는 하나를 지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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