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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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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얼마 남지않은 시간, 지하철 막차를 타러 역으로 내려가면서 친구와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좀 이따 봐!” 몇 시간, 아니 몇 분도 남지않은 오늘을 넘어 내일 또 보자는 농담4, 진심6의 인사. 불안한 미래를 애써 지우며 가장 답없던 시절이었지만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우리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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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가정을 이뤄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어른이지만 일년에 한번도 보기 힘들어 아주 가끔 만나도 우리는 그 시절의 철없는 시커먼 남자애들이 된다.
처음만났던 고등학생으로 돌아가서 저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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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일종의 가지치기. 모든 가능성과 솔직함을 거세당하고, 그럼에도 그 안은 온갖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 터질 것만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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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인 것은 비록 자신 안을 채우지는 못했을지언정 세상에 사랑괴 격려, 다정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 넣지 못하는 그것들을 다음 세대, 우리의 그 시절 그 모습인 아이들에게 밀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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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예술가의 첫 작품이 귀한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주변인들로 인해 채워진, 안으로 흘러들어온 것들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무엇보다 진심으로 담았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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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친구들 (#프레드릭배크만 지음 #다산북스 출판)속 25년 전 친구들의 진심을 가득채워넣은 화가, 대성공을 거둔 그가 자신의 전재산을 바쳐야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자신의 첫 그림을 자신과 닮은, 평생 딱 한번 만난 십대 소녀 루이사에게 전해준 것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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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받았던, 자신에게 흘러들어와 채워주었던 다양한
이름의 진심들을 너무나 말랑말랑하고 가능성이 무한해 역설적으로 그 안이 텅 빈 어린 소녀에게 밀어넣어 채워주는 것, 그래서 사람을 터트려 죽일 것만 같은 나쁜 것들로 채워져서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영원히 그 흘러들어옴을 잊지 않고 놓치지 않고 좋아하는 그림으로 맘껏 풀어내라고, 그렇게 어른과 소녀 그 사이의 어디에서 맘껏 숨쉬며 유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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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을 읽으며 예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예술서를 읽을 때 보다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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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루이사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화가의 오랜 친구, 테드가 친구의 부탁을 받고 전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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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는 교사로 조용하고 변화없는 평범함을 사랑하고, 아픔을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담고 살아가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전형적인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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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사는 재능도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그녀를 도와주고 이끌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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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을 중간에서 이어준 것이 바로 화가다.
내가 답이 아닌 답을 내린 예술이 바로 이것이다.
세대와 세대, 전혀 다른 타인들을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로 연결시켜 주는 것. 그로인해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충만해지고 자신을 비우고 다른 사람을 채우고 자기 자신에게도 흘러들어오게 하는 것. 그렇게 그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충만하게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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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본다.
각자의 삶이, 그 사람으로 흘러들어 그를 채운 것들이 그들이 본 것을 각자만의 것으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같은 것을 보았다는 공유의 행위가, 다양한 의미들을 이해하게 하고 공감하게 하며 상대방에게 흘러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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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 같은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와 같은 것을 바라보고 분명 다른 말을 하는데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 그것이 예술이고 오랜 시간 삶의 모습이 그렇게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예술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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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거리감으로 그 곁을 배회하던 예술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더할나위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예술서 보다 예술을 더 사랑하게 하는, 예술 그 자체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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