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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희망과 두려움
윌리엄 모리스 지음, 조원호 옮김 / 미술문화 / 2026년 3월
평점 :
무언가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기어코 하게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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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희망과두려움 (#미술문화 출판)에 실린 대중 앞에서의 강연은 본래의 #윌리엄모리스 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40이 될 때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신념을 어디에서도 공공연하게 말한 적 없고, 기사도 투고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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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마흔이 넘어서 강단에 섰다면 그래야만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을 지극히 사랑했다.
예술. 우리가 이 단어를 보고 떠올리는 장면은 어떤 것일까. 수백억을 호가하는 유명한 그림과 조각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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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애석하게 여겨 대중들에게 목소리를 냈다. 그가 말하는 예술은 생활예술을 말한다. 생활예술이란, 오늘날 우리에게 디자인이라는 용어로 더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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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상황에 적합한 용도를 가진 물건들을 사용할 때, 그 물건들은 디자인 되어있는 하나의 예술이다. 실제로 윌리엄 모리슨은 직접 패턴을 만들어 그 패턴을 적용한 수공예품을 만들어왔고, 건축을 생활예술의 예 중 하나로 강연에서 많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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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게 사용되어지고, 예술가와 수공예가가 분리되면서 예술은 보편적인 우리와 멀어졌다. ‘상상력의 노동’을 해오던 예전 예술가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육체적 노동을(그리고 만드는 행위)를 기꺼이 즐겼다.(물론 고되기는 하지만)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상상력을 배제한 체 하나의 기계처럼 담순히 물건들을 ‘찍어내고’있다.
보람없이 고되고 단순한 노동으로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그것이 바람직하게 받아들여 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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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 고된 노동의 결과물은 시장원리에 의해 터무니없는 헐값에 팔려나가니 어디에서 보람을 느낄까.
긴 노동시간을 결국 약간의 여가시간을 위해 버텨내지만 여가시간에 어떤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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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는 보여주기식으로 마냥 화려하게, 자연을 헤치면서까지 공간을 가득가득 채우는 심지어 비싸기까지한 예술을 최고로 치는 현실을 비판하며 자연을 헤치지 않으며, 사치와 낭비를 행하지 않으며, 지난 역사 속에 존재하는 예술을 올바르게 이해한 상황에서 단순한 복제와 반복이 아닌 유지를 이어나가는 ‘진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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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활 곳곳에 놓여지는 디자인들이 진정한 예술정신으로 만들어지고 가치를 인정받고, 수공예가들의 노동이 예술로 인정받고, 스스로도 보람을 느끼는 선순환이 진행되는 것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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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 없이 쓸모없는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며, 진짜 가치를 보지않고 돈만 좇는 현실을 비판하고 노동의 숭고함을 되찾으려 애쓴 그의 정신은 디자인의 상징과도 같은 바우하우스에 전해졌고, 이제는 우리 주위의 모든 공간에서 자기가 직접 자신의 취향을 최대한 활용해 생활예술로 생활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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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의 대량생산된 제품들이 그의 미적기준을 통과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얀 벽에 걸려있는 값비싼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 일상 속 함께하는 것에서도 예술이 존재함을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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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함께 숨쉬어야 예술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보면 윌리엄 모리스가 주장했던 그러한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향은 너무 틀어지지 않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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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하고 익숙한 것이지만 내 손에 쥐어지고 내 옆에 놓여져있는 것들이 예술임을 인식하는 것과 하지못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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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로 본다면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의 희망과 두려움>은 우리 곁에, 일상으로 존재하는 예술이 정답임을 알려주는 진정한 예술입문서가 아닐까.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헤치지 않는 허례허식없는 실용적인 예술. 윌리엄 모리슨이 말하는 예술을 보면 미니멀리즘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듯하다. 이처럼 좋은 예술은 역사가 되어 이어져 흘러간다. 자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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