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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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얼마전 짝꿍의 생일을 맞아 1박2일로 땅끝마을 쪽을 목표로 나들이를 다녀왔었다. 바다를 머금은 휴양림을 숙소로 하였더니 근처에 항이 하나있어 여기까지 온김에 볼 수 있는것은 다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새벽부터 오전 내내 비가 내리다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듯 뜨거운 해가 바다 특유의 짜고 비릿한 습한 공기를 데워 끈적하게 몸에 달라붙었지만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하늘은 절경이었다. 그렇게 귀여운 백구 가족상과, 항구 곳곳에 이정표처럼 남아있는 노란리본들은 마음먹먹한 웃음을 머금게했다. 안타깝다라는 말을 할 수 조차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져 맞잡은 두손만 꽉 쥘뿐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래, 바로 팽목항이었다.

한글은 하나의 음에 여러가지의 한자가 대입되어 여러가지 뜻을 머금는다. #열린책들 의 두 작가가 하나의 책을 공동집필하는 #둘이서 시리즈 세번째 책 #관내여행자_되기 (#백가경 #황유지 씀)는 한글에서 ‘관’ 과 ‘통’에 대입되는 여러 의미들에 주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간다.

‘관’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현장을 의미하고 ‘통’은 무언가를 ’담아내고‘ ’연결’하고, ’통증‘의 의미를 담아냈다.
그렇게 두글자가 합쳐진 ‘관통’은 사회와 개인의 공통된 기억으로 서로 이어지고 관계맺는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그렇게 여러장소를(도시를)함께 다니면서도 그 장소의 사회가 가진 기억, 개인이 가진 기억들에 주목하며 하나의 관내에서 두개의 글을 써낸다. 그런 도시들은 사회적으로 아픈사건을 지닌 곳이 많았다. 안산, 이태원, 광주, 서대문 같은 장소들이 그런 아픔의 예시이다. 마침 팽목항을 다녀오고 안산의 이야기를 읽으니 나 스스로도 사회적, 개인적 이야기가 연결되는 관내가 생겨나는 것이 명징하게 이해가 되었다.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장소이자, 우리 둘이 보낸 좋은 시간 속 한 장면으로 팽목항이 기억되는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의 발아래 죽은자들의 삶이 남아 두발 디딜 곳이 되어준다는 시간을 아우르는 연결을 말하던 황유지 평론가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어떠한 낯선 장소를 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장, 세미나 같은 어떠한 이벤트가 있어서 가야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 한번 가볼까? 하는 흥미를 느껴 여행지로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흥미’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지역, 관내, 도시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들어봐서 익숙하게 받아들여져야 조금 더 매력적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이름을 들어온 장소들은 그 장소에 어떤 대표적인 행사, 축제같은 도시의 대명사들이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나열했던 장소들처럼 마음아픈 비극적 사건들이 발생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건들이 있으면 마음이 아파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결국 그곳으로 발길을 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 곳에 두발 단단히 딛고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한 장소에 사회가 응당 기억해야할 기억과, 그곳을 방문하거나 살아가며 각자가 걸었던 개인의 사유와 삶이라는 기억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의 일상에서 안타깝게도 그 모든 것을 놓치고 살아간다. 눈을 뜨면 집을 나서고 해가지면 집에 들어오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삶을 살다보면 어느것하나에도 신경을 여력이 없다. 그냥 빨리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은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정상’은 보편적, 일상적이라는 뜻이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을 곱씹어보고 사유하고 능동적으로 살아간다면 그것들을 기억으로 남긴다면, 자연스레 내 삶이 걸어가고 있는 그 장소, 도시, 관내가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장소에 기억과 애정을 가진다면 그 장소가 가진 히스토리에 저절로 관심이 가져질 것이다.
그렇게 개인과 사회의 기억은 유기적으로 얽히며 또 한번 살아진다. 그렇게 지난한 ‘관’을 지나며(‘통’) 우리는 또 살아간다.
서로의 개별의 기억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안부를 물으며 두손을 잡고 말없이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렇게 나아간다.

장소와, 기억과, 더불어 살아감과 잊지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으로 걸어나갈 내 두발을 지지해줄 색다르고 참신한, 단단한 땅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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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오후 - 정오에서 해가 지기까지
선연 지음 / 이음서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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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날이 온전히 빛을 머금어 칙칙해보이던 콘크리트 건물벽도, 아스팔트 도로도 반짝거리고 생기있어 보이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아 이 좋은 날에 회사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경험.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을 것이다.(장소는 다르더라도 말이다.)
물론 출근길도 그렇지만 점심을 먹고 커피한잔 들고 걷고있는 낮시간, 해가 본격적으로 진심을 다해 세상을 보듬는 정오부터 여섯시까지(딱 이시간이 회사에 묶여있지) 시간대가 그런 마음이 더 크다. 그러다 회사 눈치를 보고 반차라도 성공하는 날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상당히 오랜시간동안 그 날짜와 요일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랄까?

물론 휴일 전날에만 누릴 수 있는 모두가 잠든 늦은 밤도 매력적이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라면 단연코 ’해가 중천에 뜨는 시간부터 해가 지는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다.

#어떤오후 (#이음서가 출판)를 쓴 #선연 작가도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 말한다. 작가는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당연히 빛에 민감하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오후의 빛을 담으러 다닌다고. 계절 특유의 색온도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니 말 다했지.
그렇게 하루하루, 오후마다의 차이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작가의 오후들이, 일상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들이 몇년 간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 바로 <어떤 오후>이다.

작가에게는 일기이면서, 하루하루 렌즈로 바라보고 찍은 순간들에 대한 코멘트가 아닐까 싶은, 분명 나도 보냈음직한 하루가 전문가용 카메라와 전문가의 실력으로 찍으면 같은 피사체라도 달라보이듯 너무나 따스하고 포근한 빛을 담고 있었다.

일상으로 치면 침대, 이불, 흔들의자, 쇼파 같은 주제들인데 빛에 바싹 말린 햇볕냄새 가득한 이불을 덮고 누운 침대, 볕이 잘드는 창가에서 반려견(반려묘)가 무릎에 올라와 함께 나른하게 일광욕하는 쇼파처럼, 평범한 일상이 빛에 반짝이는 순간들로 둔갑해 담겨있다.

빛을 가득 머금은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더 그 효과가 배가된다.(살짝 사각거리는 질감의 종이에 사진이 인쇄되어 있어 살짝 색이 날린 듯한 느낌이 오히려 좋다.너무 쨍한 것 보다포근하고 아늑해 글이랑 잘 어울린다.)

커피를 내려 손님에게 건내기까지의 순간, 여름의 매미소리가 엄마에겐 ‘세월~ 세월~’처럼 들린다고 딸과 대화하는 순간, 아쉬운 마음에 시든 꽃을 말려두는 것, 화분에 물을 주는 일상에서의 반복의 순간과 같은 보통의 일상들이 열두시부터 여섯시까지를 여섯개의 색온도로 분절하여 각 시간의 빛과 그림자를, 사소한 일상을 오래동안 응시하며 조리개셔터속도를 늦춰놓은 것처럼 지긋이 따라간다.

어릴 적 일기를 쓸 때면 오늘은 쓸 일이 없다며 곤란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나에게는 쓸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소소한, 공기같은, 빛 같은 일상들을 세심하게 바라본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하면서 어떻게 담겨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상의 모든 순간을 바라보고 글로, 사진으로 찍어놓는다.

물론 피하고 싶은 일상들도 존재한다. 사람에게, 일에게 치이고 상처입고 울고, 그렇게 환자처럼 좇아다니던 빛의 이면에 짙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도 깨닫고 당연하게 눈물도 흘린다.
그런 순간들도 사진이 항상 원하는 결과값을 보여주지 않듯, 외면하지 않고 글로 그대로 담아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빛도 실은 다양한 색들이 모여 있듯이, 우리의 일상에도 기쁜 순간, 보통의 무덤덤한 순간, 슬프로 괴로운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매끄러워 보이는 삶도 순간순간으로 나누어 살피면 균열이 있다고, 그 균열들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빛과 그림자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또다시 세상이 빛을 빨아들이는 오후가 있는 하루하루를,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하는데에는 이러한 태도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좋을 수 없다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꽃길만 걷는다의 꽃길도 꽃이 피기전에는 아스팔트가 깔린 포장도로가 아니고 흙과 자갈이 섞인 비포장 도로일테다. 비포장된 길이 꽃이 피면 꽃길이 된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하루도 꽃이 피아 꽃길이 되기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기분좋게 볕을 쬐는 것도 좋지만, 비에 젖거나 온기가 필요한 순간 나를 감싸주는 볕도 무척이나 기분좋고 필요한 것이다. 어떤 볕도 어떤 오후에 항상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도 항상 존재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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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의 산책
안리타 지음 / 홀로씨의테이블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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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적의 몇 안되는 남은 기억 중 하나는 ‘한반도, 우리나라의 특징에 대해 쓰시오’라는 문제에 ‘사계절이 뚜렷함’이라고 적고있는 모습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이 사계절이 지구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줄 알았을 때였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비록 요즘은 봄과 가을이 많이 짧아져서 봄 여어어어어어어르으으으음 갈 겨우우우우우우우울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계절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그런데 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제 새싹들이 올라오네? 꽃망울이 달렸네, 언제 꽃이 폈지? 매화향이 너무 좋네, 벚꽃이 벌써 다 졌네, 해가 길어졌네, 아침부터 덥네 이제, 구름한점 없이 쨍하네, 열대야구나 이제. 같은 나열하려면 끝이 없는 이런 순간들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난 어느순간부터 주위에는 관심이 없이 무엇하나에 집중하지도 못한 채 흐리멍텅하게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열심히 하루의 대부분을 하기싫은 것을 참아내며 살아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행복하려고가 아닐까? 그럼 행복은 무엇일까? 올해 내가 되찾은 행복은 변해가는 날씨를 하루하루 내가 의도해서 깨닫는 것이다.
독서모임을 하다보면 매일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당연히 날씨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런 인사 속에서 뭐? 벌써 이렇다고?를 기이하게 여겨서 그제서야 창 밖을 보고 비로소 깨닫는 스스로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길래 날씨 한번, 하늘 한번, 구름 한번 바라보지 못하는 것인지. 그때부터 문을 열고 집을 나서면서 날씨를 민감하게 느껴보려 애썼고, 다시 시작한 러닝의 인증사진을 찍기위해 하늘을, 구름을, 노을을 두 눈에 담았으며, 달리는 곳이 중심에서 제법 외각이라 자연이 가까이 있어서(이건 축복이었다. 풀도, 꽃도, 논도, 개구리도, 철새도, 고양이도 이제는 밤나무 감나무에 열매가 맺히다 못해 떨어진다)달리면서 자연 특유의 푸름과 초록을 마음껏 눈에 코에 담았다.
그렇게 이야 날씨가, 자연이 이렇구나라는 감탄으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나의 두뇌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보고, 해야할 일을 다시한번 점검하고, 그렇게 점점 내 안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결국 시간없다, 다들 그렇게 산다라는 핑계로 외면했던 내가 솔직하게 가지고 있는 걱정이나 염려, 고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나의 마음 속에도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생각이 싹트고 꽃피우고 어떠한 결심이나 생각들이 무르익어가는 계절의 흐름이 생긴다.
자연과 나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달리기 덕분이었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혼자도, 둘이서, 가족끼리 오손도손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과정들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겠지? 나는 달리기라는 형태로, 저 사람들은 걷기라는 형태로. 속도만 다를뿐, 모두 저마다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리타의산책 (#안리타 씀 #홀로씨의테이블 출판)도 마찬가지로 저자가 알상의 산책으로, 자연과의 교감을, 길 위에서 피어난 사유를 이뤄낸 것들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다.
그녀는 그의 반려견 ‘봄이’와 산책을 하러나가는데 썩 자유분방하다. 서로가 서로의 안전을 점검할 뿐, 그 기준을 통과하면 그들이 나아가는 곳이 곧 산책로가 된다.

그렇게 온 몸에 흙과 먼지가 묻고, 개똥을, 도깨비 가시풀이 온몸을 뒤덮기도 하지만 무사히 돌아와 서로에게 의지하여 기대 누우면 절로 나오는 행복에 겨운 ‘하’소리는 저자도, 읽는 이도 마찬가지로 삶을 절로 행복하게 만든다.

그렇게 산책자로의 자신이 마주한, 교감한 자신을 둘러싸고있늠 자연에 대해, 특히나 봄과 여름의(봄,여름 편이라 되어있으니 분명 가을,겨울 편도 나올 것이라 믿는다)생명력과 충만함으로 책 한권을 가득 채우면서 스스로의 삶을 사유하고, 존재의 본질을 탐구로 나아간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짬을 내어 잠시 걷는 것 만으로도, 말 없이 묵묵히 함께 걸어주는 자연이 건네는 무언의 격려는 우리에게 더 많은 자연의 목소리를 듣게하고 그만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준다.

자연의 변화처럼 우리 내면도 변해간다.
내면을 응시하는 산책으로 말이다.

그녀처럼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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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말 2 - 나를 떠난 글이 당신 안에서 거듭나기를 이어령의 말 2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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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평생을 꾸준히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 좋아보이기는 하나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취미로 마냥 사랑하던 것도 업으로 삼으면 애정이 반감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런데 꾸준히 공부! 하고 공부한 것을 꾸준히 글로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나. 심지어 그런 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모두 해낸 삶을 살고, 소천한 뒤에도 꾸준히, 여전히 글이 사랑받는 작가가 있다. 바로 #이어령 선생이다.
다양한 분야를 익히고 글을 쓰던 이어령 선생은 무려 88년 동안 글을 쓰고 사유했다. 그 수많은 책과 강연에서 깊은 울림을 주었던 글들 수백권 중에서 ‘정수’라 불릴만한 것들만 추려 #이어령의말2 (#세계사 출판)로 출판되었다.

1권 한권으로는 부족할 만큼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기도 했고, 미공개 강연을 비롯한 이어령 선생의 새로운 글들(저자의 사후 출판된 서적의 문장도)이 2권에 담겨있다. 평생을 글 써온 저자의 시간과 사유를 관통하는 감성, 지성, 자연, 문화, 물질, 정신, 일상, 상상 8개의 주제로 나뉘어 담겨있다.

지식인들에게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라던 ‘말하기’를 사랑하고 평생을 해왔던 저자는 생애 마지막 직전에 팬데믹 사태를 경험하고 ‘생명’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특히나 많은 호흡을 했고 그 흔적들을 남겼다. 우연찮게 ‘생명’에 대해 21년도에 남긴 영상을 봤었던 기억이 있다. 끔찍한 사태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그럼에도 이어져 나갈 인류의 미래의 희망이 생명이라 여겼던 저자의 뚜렷한 주관이 그만큼 뚜렷하고 맑은 두 눈에 서려있었다.

전쟁, 환경오염, 경제위기,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것들이 가득하게 눈앞에 놓여져있는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더더욱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강조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놓지 않듯 글과 사유를 놓지 않으며 누구보다 많은 말을 글로 남겼던 이어령 선생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말들을 다 잊어달라고 한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일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리고 나만의 결론은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평생의 말과 사유에 있어 마중물의 역할만을 하기를 바랬던 것이 아닌가싶다.

살아생전 저자는 유튜브와 같은 영상으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누군가의 말과 글을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했다. 노력하여 스스로 생각하여 받아들이지 않은 것들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책을 읽고 스스로 사유하길 바란다 했었다.

그렇게 수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자신의 글도 누군가에게 무조건 적으로 받아야들여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스스로가 읽고 사유하는 것은 놓치지 않길 바랬으니, 물이 끊임없이 흐르도록 처음에 살짝 부어주어 돕기만하는 마중물같이 자신의 글과 사유도 딱 그만큼의 역할만 하기를 바란 것 같다. 누군가의 생각, 그 전체가 자신의 것으로 채워지길 거부한 것이다. 자기의 글이 잊혀지기를 바라는 작가라 하면 어떻게 작가가 그럴 수 있나 싶지만, 어찌보면 자신과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들의 글과 사유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가장 잘 지키고 응원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평생을 생각하고 글을 쓰다보면 문투는 어투와 거의 똑같게 되고 그리되어 군더더기가 없어진다고 들은 적이있다.
결국 글이 꾸밈없이 온전한 저자의 생각을 투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때 이어령 저자는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글이 없었다. 명징하였으나 고요하였고 어느쪽으로도 편향되지 않았던 그의 글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마침내 잊혀질 결심을 담아낸 것이 아닐까.

평생을 애정으로 가르친 자식들이 이제 스스로 독립하여 씩씩한 날갯짓을 응원하는 어미새의 마음으로, 애정 듬뿍 담은 최후의 응원이 여기있다. 스스로 세상을 높은 곳에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르길, 그렇게 자신의 삶을 향유하길.

스스로 사유하는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마중물 같은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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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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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하늘아래 같은 그림은 없다던가.
하늘 아래 같은 글은 없다라는 것을 #키메라의땅 (#베르나르베르베르 씀 #열린책들 출판)을 보며 느꼈다.
가제본으로 읽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정식 출간본으로 다시 읽게 되었는데 내가 느끼는 부분이 전혀 달랐다.

저번에는 신인류 3종이 기존의 인류의 모습을 답습해 나가는 모습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면’라며 한번의 기회를 더 원하는 우리들의 모순을(높은 확률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지)느꼈다면 이번에는 신인류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 까지의 인간들의 모습들에 더 눈이 가고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하나의 종으로 인식될 정도로 유전자가 비슷한 여러개체들이 각자의 환경에 적응하며 생명체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생명체들이 경이롭기도, 단 하나의 종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인간이 신기하기도 했으며, 스스로에게 ‘현명한’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라는 것이 참 인간은 오만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했다.

신인류의 선조 격인 원숭이와 돌고래, 박쥐, 두더지와의 혼종을 무단으로 침입해서 발견한 기자는 오히려 유명세를 타고, 저 실험은 인류의 존엄성을 위협한다며 격한 시위도 모자라 연구자인 카메러를 죽이려고 총을 쏘기까지 한다.
불쾌한 골짜기라고, 자신과의 유사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호감이 사라지고 불쾌함을 느낀다고. 내가 본 격한 시위자들의 그럴싸만 말들은 모두 ’불쾌한 골짜기‘를 숨기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실험을 완성하기위해, 연구자의 안전을 위해 실험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기도)들을 안락사시키고, 연구자를 지구 밖으로 보내는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우주 정거장에서도 박사의 연구를 막기위해 총을 쏘고, 아무 관련없는 사람을 우주로 날려버려 늦은 죽음을 맞이하게 해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면서도 인류를 위해 신인류를 만들어내겠다는 카메러 박사의 순수한 열정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스스로의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작가의 말대로라면 이러한 일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지금부터 오년 뒤에 벌어지는 일이라니, 당장 내일 이러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라고 여겨질만큼 인간의 이중성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다.

저런 윤리에 어긋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실험이라며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이 보였다는 이유로 시작된 핵전쟁으로 대부분의 지구를 날려버리는 것을 보며 무엇이 윤리인지 한참을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멍하게 있게 만들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대재앙 이후 파괴된 곳에서 살아남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을 이야기 하지만 <키메라의 땅>에서 과연 어디가 아포칼립스 지점인지, 책을 덮고나서 명징하게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나는 윤리란,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함이(생각으로든, 행동으로든)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있다. 그럴 때는 대화를 해야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어느 지점도 대화로 해결하려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침입하고 훔치고 파괴하고 과격한 시위를 하고 총구를 겨누고, 폭행하고 강간하고 핵무기를 날려댄다.

어쩌면 아포칼립스는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결코 짧지않은 기기를 뜻할 수도 있겠구나, 문명이 끝장난 것이 아포칼립스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순간이 아포칼립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던 폭력, 핵무기, 전쟁들도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비윤리적인 행동 중의 하나기도 하고.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찬란하게 이룩한 생물학적, 천문학적, 물리학적 지식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이 책에서 자신의 악함과 못남을 숨기기 위해 비싸고 좋은 것들로 자신을 치장한 모습을 한 사람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다 떠나,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위대한 작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의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읽었다.

개미에서 부터 이어지는 그의 과학적 상상력은 여전히 놀라웠고 식상하지 않았다. 화를 참지못하는 인간과는 달리 그의 책은 겉도 속도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작품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예술이라 부르고 기꺼이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았다. 예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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