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오후 - 정오에서 해가 지기까지
선연 지음 / 이음서가 / 202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날이 온전히 빛을 머금어 칙칙해보이던 콘크리트 건물벽도, 아스팔트 도로도 반짝거리고 생기있어 보이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아 이 좋은 날에 회사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경험.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을 것이다.(장소는 다르더라도 말이다.)
물론 출근길도 그렇지만 점심을 먹고 커피한잔 들고 걷고있는 낮시간, 해가 본격적으로 진심을 다해 세상을 보듬는 정오부터 여섯시까지(딱 이시간이 회사에 묶여있지) 시간대가 그런 마음이 더 크다. 그러다 회사 눈치를 보고 반차라도 성공하는 날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상당히 오랜시간동안 그 날짜와 요일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랄까?

물론 휴일 전날에만 누릴 수 있는 모두가 잠든 늦은 밤도 매력적이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라면 단연코 ’해가 중천에 뜨는 시간부터 해가 지는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다.

#어떤오후 (#이음서가 출판)를 쓴 #선연 작가도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 말한다. 작가는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당연히 빛에 민감하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오후의 빛을 담으러 다닌다고. 계절 특유의 색온도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니 말 다했지.
그렇게 하루하루, 오후마다의 차이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작가의 오후들이, 일상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들이 몇년 간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 바로 <어떤 오후>이다.

작가에게는 일기이면서, 하루하루 렌즈로 바라보고 찍은 순간들에 대한 코멘트가 아닐까 싶은, 분명 나도 보냈음직한 하루가 전문가용 카메라와 전문가의 실력으로 찍으면 같은 피사체라도 달라보이듯 너무나 따스하고 포근한 빛을 담고 있었다.

일상으로 치면 침대, 이불, 흔들의자, 쇼파 같은 주제들인데 빛에 바싹 말린 햇볕냄새 가득한 이불을 덮고 누운 침대, 볕이 잘드는 창가에서 반려견(반려묘)가 무릎에 올라와 함께 나른하게 일광욕하는 쇼파처럼, 평범한 일상이 빛에 반짝이는 순간들로 둔갑해 담겨있다.

빛을 가득 머금은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더 그 효과가 배가된다.(살짝 사각거리는 질감의 종이에 사진이 인쇄되어 있어 살짝 색이 날린 듯한 느낌이 오히려 좋다.너무 쨍한 것 보다포근하고 아늑해 글이랑 잘 어울린다.)

커피를 내려 손님에게 건내기까지의 순간, 여름의 매미소리가 엄마에겐 ‘세월~ 세월~’처럼 들린다고 딸과 대화하는 순간, 아쉬운 마음에 시든 꽃을 말려두는 것, 화분에 물을 주는 일상에서의 반복의 순간과 같은 보통의 일상들이 열두시부터 여섯시까지를 여섯개의 색온도로 분절하여 각 시간의 빛과 그림자를, 사소한 일상을 오래동안 응시하며 조리개셔터속도를 늦춰놓은 것처럼 지긋이 따라간다.

어릴 적 일기를 쓸 때면 오늘은 쓸 일이 없다며 곤란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나에게는 쓸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소소한, 공기같은, 빛 같은 일상들을 세심하게 바라본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하면서 어떻게 담겨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상의 모든 순간을 바라보고 글로, 사진으로 찍어놓는다.

물론 피하고 싶은 일상들도 존재한다. 사람에게, 일에게 치이고 상처입고 울고, 그렇게 환자처럼 좇아다니던 빛의 이면에 짙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도 깨닫고 당연하게 눈물도 흘린다.
그런 순간들도 사진이 항상 원하는 결과값을 보여주지 않듯, 외면하지 않고 글로 그대로 담아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빛도 실은 다양한 색들이 모여 있듯이, 우리의 일상에도 기쁜 순간, 보통의 무덤덤한 순간, 슬프로 괴로운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매끄러워 보이는 삶도 순간순간으로 나누어 살피면 균열이 있다고, 그 균열들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빛과 그림자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또다시 세상이 빛을 빨아들이는 오후가 있는 하루하루를,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하는데에는 이러한 태도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좋을 수 없다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꽃길만 걷는다의 꽃길도 꽃이 피기전에는 아스팔트가 깔린 포장도로가 아니고 흙과 자갈이 섞인 비포장 도로일테다. 비포장된 길이 꽃이 피면 꽃길이 된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하루도 꽃이 피아 꽃길이 되기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기분좋게 볕을 쬐는 것도 좋지만, 비에 젖거나 온기가 필요한 순간 나를 감싸주는 볕도 무척이나 기분좋고 필요한 것이다. 어떤 볕도 어떤 오후에 항상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도 항상 존재하며 살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