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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인에게 배우는 설교 - 한국 교회 설교자
문성모 지음 / 두란노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설교는 말장난이 아니다. 설교는 삶이다.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에서 감동이 좌우될 수 있다.
책을 펼치며 머리말에 이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말 한마디가 설교의 모든것을
압축해서 표현한 말이고 '설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와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설교가 유행하고 각 tv마다 방송매체마다 설교를 쏟아내고 있는 이른바 말씀의 홍수시대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축복이면서 한편으로는 아닐 수도 있다.
전하는 입장에서 보면 말씀 준비하는 수고를 덜어 주는 이점이 있는 반면 설교자의 무능과 게으름
을 초래할 여지가 있고 듣는 입장에서는 귀만 높아질 수 있다고 하겠지만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디서나 말씀을 접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양면성의 문제를 유용한 방향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활용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세상의 학문도 양적으로 질적으로 점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설교가 발전을 해야 하지 않을
이유도 없을 뿐더러 성도들의 귀가 예전보다 더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말씀을 많이 연구하고
읽고 배웠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맞춰서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도 영성으로나 학문적으로나
한치의 소홀함이 없게 준비를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자의 인격이라고 본다,
요즘 설교 잘하는 목사들이 많다. 설교를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대형교회의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평이하고 들을 것이 없어 보이는 원초적인
복음적인 설교라는 것이다. 그 흔한 강해설교라든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말씀풀이도 없다.
그 이유를 나름 몇가지를 꼽아 볼 수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하용조 목사의 설교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설교는 중학생이 들어도 알아 들을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이 말이 정답이다.
아무리 유창하게 설교를 하고 헬라어 히브리어 원전을 풀이하고 강해설교를 하고 남들이 들어 보지
않은 설교를 내 놓아도 그 설교가 설교자의 삶과 배치되는 설교라면 아무도 그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게 된다. 자신을 먼저 채찍질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듣고 회개하거나 뉘우침이 없는 설교라면
공간만을 울리는 꽹가리가 되고 말 것이다.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는, 이미 그들의 삶에서 기도와 영성이 배어 있고
그들의 삶이 곧 설교가 되기 때문에 목청을 높여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말라.고
울법적인 설교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은혜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만큼의 대형교회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을 흉낸 낸다고 하루 아침에 그들처럼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33인의 설교- 왜 33인에게만 한정했을까 의아스럽고 뒷부분의, 지금 현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설교 대신에 요즘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의 설교를 실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설교의 기교나 방법보다는 설교자 자신의 삶을
더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의 기교나 방법만 배운다고 온전한 설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은혜를 끼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의 '적극적 사고 방식'의 설교는 힘들어 지친 성도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교훈을 준다. 목사를 보러 오는 것도 아니고 삶에 지친 성도들에게
야단만 치고 강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로해 주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렐루야와 아멘만을 강조하는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김선도 목사의 메세지는 김삼환 목사의 '위로와 희망'이라는 메시지와 닮은 부분이 있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위로 받고 싶어서 나온 성도들에게 야단을 치거나 무엇을 하라는 것을 주입하기 보다는
사도바울과 같은 겸손함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의 메신저가 될 때 그 위로가 희망이 될 수 있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면 그의 지난한 과거의 아픈 삶들이 그대로 설교로 녹아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설교 몇십분의 말보다 더큰 감동과 은혜로 다가옴을 종종 느낄수 있었다.

이동원 목사의 설교는 강해와 적용의 균형을 맞춘 설교로 평가하고 있다.
어떤 설교는 장황하게 성경만 찾다가 끝나는 설교도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가
빠져 있다. 그런 꼬리물기식, 관주 찾기식 설교는 혼자서도 성경을 읽으며 할 수 있다.
그 다음이 문제이다. 께닫고 받은 말씀을 이제 현장과 삶에서 어떻게 적용시켜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까지 흘러 들어가야 설교의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김준곤 목사는 자신의 지식으로 설교하려 하지 않고 성령께서 직접 사람의 마음을 감동
시키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설교를 했다. 인위적인 것이나 가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부훙사들이나 하던 쇼맨십이 요즘 강단으로 흘러 들어와서 저마다 이 방법을 사용하려
하고 있다. 설교의 은혜를 자신들의 능력으로 끼친다는 잘못돤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기도 없이 성령에 완전히 의지하지 않고 하는 설교는 강연이나 웅변에 불과할 뿐이다.

한경직 목사의 설교는 삶 그 자체였다. 그는 강단 위에서만 설교한 것이 아니라
삶을 설교화 하였다. 그의 인격이 설교였고 그의 행동이 설교였다.
이런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풀어내고 보여 주는
것이 참 설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설교를 듣고 왜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설교자의 삶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설교는 유창한 언변에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제스처나
좋은 목소리나 유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되었겠지 하는 자만이나 교만은 더 더욱 아니다.
아래의 말이 설교와 은혜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
자신의 설교에 은혜를 받지 않는다고 성도들을 탓하고 그 책임을 성도들에게 돌리는 셜교자가 있다면
이 말을 꼭 명심하고 심비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설교분석은 내용을 세밀히 분석했다기 보다는 전제적인 흐름을 파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설교자의 인격과 비교해서 포괄적으로 풀어낸 설교분석서이다.
설교현장에서 설교를 직접 듣고 설교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전반을 설교와 연관시켜
평가한 책이다. 따라서 설교의 기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책을 권하고
이 책은 설교자가 어떻게 삶과 조화된 설교, 삶 자체가 어떻게 설교가 될까를
고민 하는 내면에 진정성이 있는 설교자가 볼 책이다.
이쉬운 것은 어느 한 부분에서는 이런 면을 지적했다가 다른 설교자 편에서는 그 점을
옹호하는 글이 있어서 저자가 지향하는 바가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점이고
뒷부분의 지금 현존하지 않는 분들의 설교는 잘 들어 볼 수 없고 실제 설교가 없는데
실었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서 뒷부분은 그분들의 일대기가 더 많이 실려 있다.
차라리 지금 현존하는 분들의 설교를 실었더라면 더 좋았을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