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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심으로 설교하라 - 하나님의 명령
다니엘 에이컨 외 지음, 김대혁.임도균 옮김 / 베다니출판사 / 2012년 12월
평점 :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야기 할 때 교회가 비대하게 외형적인 성장만 추구하고 건물중심으로 흘러 간다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물론 한국교회가 지금의 현상을 초래한 것은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교역자의 부패와 타락도 있고 물질 만능주의와 세상의 조류, 문화도 한몫 거들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말씀과 기도가 사라졌다는 것을 주 요인으로 꼽고 싶다.
교회가 외형적으로 비대해져서 커지게 되면서 내면으로 더 충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외형적이 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넓은 공간을 채우려니 세상적으로 인본주의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지금의 시대가 말씀이 고갈된 시대, 영적 무능력에 빠진 시대, 성령의 역사가 점차 소멸되고 사라지는
시대라고 그 현상을 진단할 수 있다.
목회자가 강단을 목숨처럼 사수하면서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하던 열정이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예레미야 처럼 눈물로, 한국교회 강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목회자의 죄성을 지적하고 거듭남과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양심 바른 사람들이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매도 당하는 현실 속에서
누가 과연 광야의 세례요한처럼 바른 말씀을 외치는 자가 될 수 있을까?
이 모든 현실들이 강단에서 성령의 불같은 말씀의 역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설교자는 설교 이전에 자신에게 먼저 설교하는 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먼저 설교를 듣고
깨닫고 뉘우치는 자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른 설교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말씀은 양심을 비추는 거울이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말씀이 모든것의 기초가 된다.
말씀의 기초석이 무너지면 모든것이 무너지고 말씀 없이 쌓아 올린 것들 모두 신기루에 불과하다.
이렇게 사라져 가는 말씀을 회복 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 본문 중심의 설교,강해설교가
다시 되살아 나야만 한다. 이 책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설교를 하면서 이론적인 지식만 갖고 있어도 안되고 성령의 도우심과 성경지식이 결합되어야
조화로운 설교가 될 수 있다. 설교를 하면서 서론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설교를 한참
나열하다가 그것이 서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최소한의 지식을 갖추고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서 편협한 외골수가 되지 않도록,무지한 자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 시대에 아주 적절한 책이고 참 고마운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설교자에게,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하기 위한 A부터 Z까지의 사항들을 아주 차근 차근 자세하게
안내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문적인 부분도 개입 되어 있긴 하지만 본문중심의 설교를 하기
위한 밑그림부터 뼈대와 그 위에 집을 짓는 방법까지 세밀하게 짚어 주고 있다.
특히 본문중심 설교를 위해서 요한일서 2장 15절을 중심으로 설교의 실제적 준비와 주해
설교전달과 적용까지 마스터 할 수 있도록 실제강해의 틀을 보여 주고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위대한 영적인 스승들은 모두 본분중심,즉 강해설교자들이다.
루터, 칼빈,쯔빙글리,리차드 백스터.존 오웬,존번연,켐벨모건 그 뒤를 이어 로이드 존스에 이르기
까지 이들을 강해설교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
현대설교가 수직적이기 보다는 수평적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설교로 전락하면서 말씀을
인간의 말로 대치하는 인간중심의 설교 현상이 생겨났다. 강해설교 대신에 적용이 없는 설교나
자신의 이야기나 정치,사회 유머들이 강단에 판을 치면서 실종되었다. 설교의 효과를 위해서라지만
설교가 영적 행위이기 때문에 설교의 효과는 설교자의 영적생활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신의 성품에 설교를 담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성품을 올바로 갈고 닦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한다
강해설교는 본문중심의 설교가 되어야 하고 본문이 이끌어 가야 하고 적용도 여기서 이루어져야 한다
본문을 제목으로 읽을 때만 필요한 것으로 전락 시키지는 않는지, 본문과 적용과는 아무 상관 없이
팽개치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한다. 이런 경우를 너무 많이 보고 있다.
본문에서 개요를 뽑고 거기서 본문이 나와야 하고 거기서 적용도 나와야 하고 거기서 예화도 나와야 한다,
본문과 동떨어진 적용과 예화는 본문 중심 설교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설교의 마지막 적용까지 다다라야
완벽한 본문중심 설교가 된다. 하지만 적용이 없는 허무한 미완성인 설교가 많음도 보게 된다.
무엇을 설교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적용과 책임 부분까지 다다라서 생활에서 변화된 열매가
맺혀지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편의 완벽한 본문중심 설교가 탄생되는 것이다.
성경본문은 단순히 설교의 재료가 아니다. 본문은 설교의 근원이다.
큰 오류중에 하나는 설교자가 이미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으로 본문을 대한다는 데 있다
본문의 원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이 주제에 본문을 끼워 맞추거나 자신의 생각에다 본문의 옷을
입히는 식이다. 이 경우 성경이 본문을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성경본문을 말하게 하는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설교로 성도를 가르치려 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가르치려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양심을 비추어 보아야 할 일이다. 설교는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본문에 나를 비추는 일이다.
설교자는 가슴을 통해서 머리를 움직이도록 해야지 그 반대로 해서는 안된다.
본문중심 설교로 본문을 강해해야지 자신의 생각을 강해라는 옷을 입혀 설파해서는 안된다
주사기로 억지로 주입하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신학적인 밑바탕이나 기초 없이 얼토당토 않게
전달시켜서는 안된다.
본문 중심의 설교는 본문의 의미를 설명하고 예증하고 적용하는 것으로 본문을 제대로 드러내는 설교이다,
사람들을 성경 본문 밖에서가 아니라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힘쓰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본문중심설교를 했더라도 자신의 삶이 설교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설교는 어떤 효력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성품이 설교를 그대로 투영해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미 강단에 올라서기도 전에 빛을 잃어 버릴 것이다.
최고의 설교자는 다른 이들에게 설교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설교하는 자이다.
성품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단에 선다면 그는 이미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성경에 일치하도록 자신의 생각을 굽히고 성령의 이끌림에 내 맡겨야 한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 말씀의 한 부분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지 내 생각을 끌어다
맞추는 작업이 아니다. 귀한 강단을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맡기시지는 않으셨다
분문중심의 설교를 하는 목적은 보다 나은 설교 방법을 찾는 것도 아니고 유창한 설교를 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 목적은 분명하다.주님이 본문중심 설교를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방법대로
하는 것이고 주제설교라는 이름하에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을 강단에서 배제시키기 위해서도
본문중심 설교의 권위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교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이라는 독을 품고 성도들을
광야로 내 몰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