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 위대하신 왕의 가장 고귀한 선택
팀 켈러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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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리더요 도덕선생으로 삼는다면 모르지만 하나님을 구세주로 삼고 싶다면

현재의 구세주를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이 구세주를 갖고 있다.  당신의 구세주는 무엇인가? 돈인가? 하나님인가?"

 

 

팀켈러의 [왕의 십자가] - 하얀색 양장 표지에 그려진 작은 가시관을 보면서 '왕의 십자가'는 무엇을 우리에게 남겨 주려고

 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마가복음 강해주석서이면서 변증서에 근접한 이 책이 미국에서 많은 찬사를 받은 책인데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을까?

'왕과 십자가'라?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생각하기 쉽지만 역설적인 이 조합으로 인해 우리가 왕에게 가는 길이 열리게 된다.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적인 예수'를 사람들은 기억을 한다.그러나 그 역사적인 예수를 자신속에 대입하지

못하므로 복음과는 먼 거리에 서 있다. 역사속의 예수만 알게 되면 죽은 예수를 아는 것이지만 이것을 개인적인

예수로 의미를 부여할 때 복음속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영적으로 살아나서 그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게 된다..

팀 켈러의 '예수님의 이야기'는 십자가가 없이는 왕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이둘의 완성이 예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최상의

 단어가 되기 때문이다.

 

 

 

 

시대를 넘나들며 예수님과 십자가에 관한 증거와 다양한 책들이 수도 없이 많이 출판됐고 사라져 갔다.

그러나 아직도 회의론자들은 의심에 빠져 있고 자유주의론자들은 그들의 논리에 맞춰 예수님을 해석하고 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각색한 예수님, 그들이 입혀준 너덜너덜해진 이론의 옷을 입히면서 서로의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세상을 뒤바꾸신 정의와 공의의 예수님이 바라 보시며  이 시대의 패역한 무리들에게 공의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진정한 신이 누구인가를 답해 보라고 하실것 같다.  세상의 진리가 아닌 하늘나라의 진리를

아무리  외치고  선포해도 귀를 막고 각자 자기길을 걷기에 바쁜 이론가들과 몽상가들, 회의론자들과

현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의 생애와 그가 짊어졌던 십자가'를 재조명해 보면서  지적인 예수가  의지적인 예수로 받아

들여져서 마가가 보았던 예수, 왕이 나의 삶속에서 복음으로 전환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수십명의 저자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글이 나온다.  해리포터 이야기도 나오고 반지의 제왕 이야기도 나오고

신학자들의 글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해박한 저자의 지식으로 인해서 글을 읽는 동안 잠깐의 재미도

느낄 수 있다.

 

4복음서마다 각자의 주제가 있는데 마가복음의 주제는, 이 세상에 비천한 종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한 구원을 완성하신

 왕되신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고 이 로드맵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마가복음에는 '곧바로'나 '즉시로' 같은

일상에서 행동적인 묘사와 예수님이 부활 하신후에 그 장면을 목격한 여자들의 이름이 중복 나열되고 있는데 예수님의

일생이 모두 사실적인 이야기라는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이고 저자가 특별히 4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별히 저자는 복음에 관해서, 종교에 관해서, 기독교에 관해서 심층있게 설명하면서 이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왜 우리에게

종교가 아닌 기독교가 필요한지를 애써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날 기독교를 거부하고 종교의 다양화를 인정하려는 기독교인에게

주는 선명한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서두가 복음으로 시작해서 복음을 마침으로 완성되는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일생이

 우리에게 어떤 소식으로 전해지고 있을까?

 

 

복음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면서 그들의 삶에서 예수님이 어떤 존재로 다가와서 그들을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전환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있고 실패와 악과 선의 감정들, 치유,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

 나셨다는 부활의 이야기가 정점을 이룬다. 이 역사적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은 헛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고 전해 내려오는

민화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이야기'-복음은 진짜 이야기이다. 우리 인생이 복음처럼 될 수 있다는

소망의 이야기이다.  패배에서 승리로/약함에서 강함으로/죽음에서 생명으로/버림에서 구원으로 이르는 생명이야기이고

그  구심점에는 항상  예수님이 계신다.

 

 

그런 연유로 복음은 기쁜 소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희망과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비크리스천과 크리스천이 이 글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은 분명 다를 것이다. 우리가 믿는 그 분을 우리는 직접 체험하며

 믿고 있지만 비크리스천들은 귀로만 들어서 알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쁨과 우리가 누리는 기쁨이 다른 이유이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특권이기도 하다.

 

 

 

가장 암울한 영적인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이야기속에서 바라는 것 한가지가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그들도 귀로 들어 아는 것 뿐만이 아닌 직접 체험하며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백부장이 그 시대에 존재했던 단 한 사람이 아닌 이 시대  누구나 우리 시대의 '백부장'이 되길 원하는 까닭은

이 복음을 널리 전파하라는 마가복음의 마지막장 16장의 당부이면서 복음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영적인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사람, 그래서 그가 고백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한 백부장의 고백을  이 세상에서  듣길 원하는 것이다.

 

 

 

복음과 종교는 분명 다르다. 종교는 하나님 앞에서 자격을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조언이고 사람이 할 일은 조언을

 따르는 것이지만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을 획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무언가를 획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 길은 순전히 은혜로 받는 선물이며 자격을 따지지 않고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종교를 더 선호하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종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인라고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때 복음과 종교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자기위안으로 복음을 하락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구속사의 관점에서 그 길을 직행하면서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마가가 보았던 예수의 생애를 추적하고 있다.

차츰 차츰 폭이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들어 가면서 심층있게 신학적인 견해와 ,강해와 주석으로 변론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면서, 아직도 머리로 이해한 예수님이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나 의심의 자리에서 곡예를 하는 사람들

아니면 비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이해하고자 할 때나 기독교의 진리가 사실인지 검증하고 싶을 때 읽으면 될 것 같다.

그럼으로 해서 바울처럼, c.s루이스처럼, 이어령처럼 반박론자에서 옹호론자로 바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진리가 진리를 대변하듯 마가복음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추적해 나가는 동안에 숨겨진 진리의 가지를 발견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능력은  권력과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나처럼 권력과 돈을

아낌없이 나눠 주는 사람에게로 흘러간다.

너는 어떻게 살려느냐?"

 

고정된 예수가 아니라 유동적인 예수, 정지된 예수가 아니라 낮은곳과 사랑이 있는 곳으로 흘러 가는 예수님이심을

기억하면서. 팀켈러 목사님의 깊은 신학과 심오한 설명으로 인해 이 책을 제대로 서평할 수 없어 느낌 위주로 글을 적으며

책을 읽고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을 떠 올리며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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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 - 이 땅에서 하늘 시민답게 살아가는 법
송태근 지음 / 성서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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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경제도 어렵고 모든것이 침체에 빠져있는 요즈은 기쁨으로 살아 간다는 것이 수월하지 않다. 

그래도 기독교인의 삶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쁨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믿음의 성숙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전제가 붙어 있어서 가능하게 된다.

 

기쁨의 서신서를 꼽으라면 당연히 빌립보서를 들 수 있는데 기쁨 그 자체보다는 왜 기쁨을  누려야 하는가

하는것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기쁨의 근원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크리스천들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예수가 우리 속에 없기 때문이다.

 

삼일교회에 부임하신 송태근 목사님의 빌립보서 강해인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기쁨으로 살아가기 위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빌립보서를 심층적으로 분해하고 강해한 책이라 조금씩 새겨가며 읽어야 할 설교집인데

주제에 따른 강해가 아니라 빌립보서의 내용을 순차적으로 따르다 보니 좀 딱딱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 강해를 설교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 생각을 해 보았다. 아마 더한 은혜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울이 이 성경을 집필한 것이 로마감옥이라는데 중점을 두고 보면 그럼에도 그가 '기뻐하고 기뻐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요셉이 모진 고난속에서도 늘 '형통'을 이야기 했다면 바울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늘 '기쁨과 평안'을 이야기했던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임재안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좌우를 살펴봐도 의지할 곳이 없고 기쁨을 찾을 만한 곳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위로받을 곳이 없고 기쁨을 찾을만한 곳이 없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한것 같은 현실이 우리를 옥죄고 있고 경쟁사회에서 늘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고 있지만

 바울이나 요셉을 보면서 우리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기쁨의 상태를 한결같이 유지했던 이들에게서

위안의 빛을 보게  된다.

 

환경과 상황 때문에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한정적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쁨의

 근원은 다르다. 상황과 관계없이 누리는 기쁨, 예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말하고 있어서 우리가 충분히 누릴수 있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으로 인해서 복음을 더 널리 확장 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했고 그것을 모두

 아름답게 협력하여 '선'으로 사용하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에

목표를 두었고 그럼으로 그리스도가 낮아진 십자가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었다.

상황과 관계없이 그리스도가 앞세워지는 것이 바로 바울이 누리는 평안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편지에서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말,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비결도 먼저 자신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염려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었던 이 '영적인 신비의 실체', 바울은 무었 때문에, 무엇이, 그토록 심한 박해와 어려움을 견디게 했을까?

의문을 품는다면 이것이 바로  세상사람과 기독교인이 구별되는 증거가 된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감옥에서도 이런 삶의 태도, 즉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거룩의 삶을 살아가라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했을 것이다.

  

고난의 학교를 통해서 바울이  터득한 일체의 삶의 비결과 자족하는 비결은 단순한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다.

우리가 말로는 누구나  쉽게 고난의 학교를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이 이런 과정을 겪게 된다면 바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안을 쉽게 이야기 하지는 못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그가 받았던 은혜를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된 비결은 염려도 평안도 그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주인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법을 빌립보서를

통해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인 기쁨과 감사, 위로와 격려가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 이유 때문에 송태근 목사님이 빌립보서 강해를 하셨고 그 위로와 격려로 인해 승리하는 삶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강해설교가 딱딱하고 읽기 거북스러운 면도 없지 않겠지만, 편집을 조금 부드럽게 여백의 미를 살려서  

줄을 띄워서 넉넉한 공간과, 요약박스도 중간마다 있었더라면 한결 읽기가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빌립보서를 절별로 강해한  좋은 설교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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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응답받는 바른 기도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지음 / 미성문화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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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기도에 관해서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지금까지 알았던 기도의 내용과는 다른, 생각을 뛰어넘는

내용이었다. 매순간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나님을 매순간 호흡하듯 느끼고 있었다.

성경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내용은 이렇게 매순간  하나님이 곁에 계시듯이 대화하라는 것이다.

그때는 이런 책도 있구나 라며 무심히 흘려 넘어 갔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책의 내용이 다시 생각났다.

후안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의 바른 기도의 내용도 그런 면에서 같은 점이 있다.

 

이제까지 우리가 했던 기도의 내용을 다시 돌아보면 늘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고 반복해서 조르고

하면서 우리가 종이 아니라 마치 주인인 것처럼 무엇을 달라고 매달리고 있다.

후안 목사님도 그동안 금식도 여러차례 하셨고  밤새워 기도하셨고 정말 기도에 목숨을 걸면서 살아 오셨던

분이셨다. 그런데 그렇게 부르짖고 철야를 하고 금식을 하면서 매달렸던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자 자신의

기도를  돌아 보면서 기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바른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셨다.

 

우리는 기도를 의무나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기도를 돈으로 환산하려

하는 경우도 있다. 기도를 한시간 정도 하면 하나님이 한시간 정도의 복을 주실거라는 허황된 믿음.

이런 기도라면 기도가 영적인 것이 아닌 물질적인 것과 다를바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철야하고 금식하는

사람은 어마어마한 복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절대 그렇지가 않다.

 

주님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신다. 그래서 성경에도 성령이 너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리라 하셨고

그런 성령님 때문에 우리가  큰 소리로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기 때문에 후안 목사님도

큰소리로 기도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늘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시는데 주일날 교회에 와서 성령님의 임재를 느낀다고 한다면 그동안

주님은 어디에 계셨던 것인가고 후안 목사님이 묻고 있다. 밥 먹을 때도 일할 때도 잠잘 때도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이시라면 우리가 기도시간에만 기도할 필요가 없고 매순간을 주님께 물어야 한다고 한다.

 

후안 목사님이 그동안 기도하면서 응답되지 않았던 기도를 뒤돌아 보면서 뒤늦게 깨달은 점이 바로 이것이다.

늘 매순간을 성령님과 상의하고 묻고 대화하는 것. 이것이  바른 기도의 비결이다.

바른 기도는,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만 기도하는 것도 아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면  기도를 억지로 하려고 힘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특별한 때에는 특별한 기도가 필요함도 알려주고 있다. 때로는 철야도 필요하고 금식기도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도 자기만족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기도를 하면 평온해 지니까

하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우리가 하는 기도의 형식과 내용을 바꿔야 할 때이다.

시간이 날 때 하는 기도나  정해 놓고 하는 형식적인 기도도 아니고

매순간을 그 분께 묻고 듣고 하는 쉼없는 대화가 바른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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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퍼틱의 선포 기도 -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선포하라, 개정판
스티븐 퍼틱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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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멈추는 땅은 '약속'과' 혹시'가 공존하는 땅이다.

아무리 대담한 믿음을 품어도 의심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담한 믿음으로 한 발씩 나아갈 때마다 의심과 두려움의 힘은 조금씩 줄어든다.

 

 

 

 

선포하는 기도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믿습니다'를 연발하며 무모하게 드리는 기도로 생각할 여지가 있는데

그런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기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그런 책이 아닌가 했는데  뜻밖에  섬광을 발견한 것 같아 너무 기쁘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다른 책과 달리 무조건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됩니다'가 아닌 그에 앞서 선행조건이 따라야 하고

그런 몇가지 조건들을 더 자세히 설명했다는 점이다. 특히 자신이 가진 믿음의 분량을 초과하는 기도를 드려선

 안된다고 하는 점은 누구나 베드로가 될 수없고 혈루병 여인이나 나아만 장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믿음의 훈련을 거듭해서 그런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자신만의 태양이 떠 오르기를 소망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어쩌면 자신만의 태양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자신의 영적인 특성이 있어서 조용한 기도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크게 소리를 내서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안이나 급한 상황일 때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기도를 하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여호수아도 연합군이 밀려오는 전쟁을 앞에 두고 다급한 위기의 상황에서  대담하게 태양과 달이 멈추기를 기도했고

전무후무한 그 기도가 실제로 이루어졌다.

 

 

 


 

 

 

이 책은 수10장 12절의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춘 선포기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고 선포기도란  우리의 '자연'과

하나님의 '초'가 만나서 '초자연적인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만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대담한 기도를 드릴 수 있고 그 기도의 비결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여호수아의 삶을 통한 믿음의 행보인데 여호수아의 기도, 그 뿌리를 자세하 살펴보면 전후 사정에는

여호수아가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다한 것이 있었고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았던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래서 선포기도는 막무가내의 기도가 아닌 약속과 말씀이 먼저 있어야 하고 자신의 할일을 잘 감당하는

 일이 뒤따라야 진정한 선포기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자연계를 뒤바꾸는 기도를 하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에게 닦친 난공불락 앞에서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의 키워드는 '믿음'인데 그것도 오직 한가지 종류의 믿음 '담대한 믿음'만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하나님의 목적과 부합하는 담대한 믿음으로 대담성을 갖고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라는 것이다.

기적은 거창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두가지는 하나님은 선하심과 위대하시다는 것인데  모든 진리는 이 두가지에 요약된다.

그 능력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 어떤 꿈도 꿀 수 있고 어떤 기도도 드릴 수 있는 원천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믿음에 장애인이 되어서 무거운 짐을 홀로 지면서 괴로워 하고 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약한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자신에게 선포하는 일을 꾸준히 실천해서

 믿음의 근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선포기도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고의 설교는 자신에게 한 자신의 설교이다.

그렇다고 해도 계속 이런 대담함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목사님도 의심과 두려움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고후9:8절 말씀을 자신에게 선포하면서 담대함의 근육을 키워 나가셨다고 한다.

 

 

심금을 울린 말씀이 있는데 " 우리 시대의 비극은 누구나 드릴 수 있는 기도가 아무나 드릴 수 없는 기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참 슬픈 말이다. 여기에 나도 포함되고 우리 모두가 포함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여호수아 같은, 엘리야 같은 불도저의 기도를

드릴 수 없는 것일까? 모두가 응답 받을 수 있었지만 다 그런것은 아니란 사실 앞에 숙연해진다.

 

 

 

 

 

 

선포기도의 중요한 점이 있다. 자신의 자격만큼이 아닌 오직 은혜에 의지해서 드리는 기도와, 밤새 행군으로 발이

부르튼 상황에서 기도를 드렸던 여호수아처럼  행동을 해서 순종과 짝을 이루는 기도가 될 때 응답 받는 기도가 된다는

 것이다. 대담한 믿음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과 실현 사이에는 과정이 있어서 이런 고통의 순간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이다.

 

 

 

 

 

 

 

 

믿음의 목표는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과거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은혜를 기억 하고 묵상하는 것.

그래서 내 안의 '혹시'를 이길 때까지 계속 말씀으로 선포하고 기도함으로 마침내  승리하는 것이다.

"당신의 '혹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뛰어 넘으라고 하시는 파도가 무엇인가? 묻고 있다.

내가 아직도 뛰어 넘지 못하는 두려움의 파도가 물밀듯이 밀려 올 때 과거에 주신 은혜를 나에게 선포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가상의 태양을 멈추시길 원하시고 과거에 여호수아라는 불도저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우리의 차례이다.

 

 

 

 

 

 

 

 

 

 

55%의 확신만 있어도 다음 단계를 밟으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베드로처럼 한발자욱을 바다에 내 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기 때문에. 그래서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나만의 태양이 떠 오를 날을 기대해 본다.

 

 

 

 

 

 

이 책은 기도에 관한 책이지만 믿음을 분리해서 설명하지 않았고 오히려 믿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책이다.

읽으며 메모를 참 많이 했다.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은 책. 기도에 관해서 시리즈로 강의를 해도 좋을 책으로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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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길을 묻다 - 인생의 의미를 찾아주는 11가지 영적 질문과 대답
김학중 지음 / 두란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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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으로 정직한 자세를 취하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밖에 없다.  -c.s 루이스- 

 

 

 

 

언젠가 TV 설교를 듣는데 설교자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신의 교회를 신축할 때에  교회크기를  줄여서

지금처럼 더 작게 지으라고 하셨다고.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장성했을 때는 유럽의 교회들처럼 교회당을 채울 수 없어서 그

부담이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이 말을 듣고  지각이 깨어있는 분이구나 생각했는데

바로 이 책의 저자 꿈의 교회 김학중 목사님이시다. 신세대를 향해 깨어있는  목사님이,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물어 보지 못하고 끙끙대던 질문을 대신 하시고 답을 주셨다.

고난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크게 세분류로 나눠 놓고 함께 고민하며 생각하는 장을 만든 것이다.

 

 

 

 

 

책을  읽고 느낀 것은  믿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불신자들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성과 말씀에 기초해서

글을 쓰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신자를 향해서는 '믿기 위한 위한 이해'를 주기 위해서, 신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위한 믿음'을  더 돈독히 해 주기 위한 열정어린 글을  볼 수 있었다.  그래일까? 연세대  권수영교수도 이 책을 읽고

 자신 같이 비판적 지식인이 듣고도 무릎을 치며 절감한 책이기에 모든 종교인의 날선 의심도 풀어 주리라 확신

한다고 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말씀만을 인용하지 않았고  이성과 지성과 말씀을 잘 버무려서

비빔밥처럼 아주 맛있게 비벼 주신것 같다. 

 

 

 

 

 

 

첫 챕터 [하나님께 고난을 묻다]에서 불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행에 대한 이유를 설영해 주어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이 답변이 책에서 질문하고 있는 모든 물음에 대한 근원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세계는 영의 세계이고 창조주와 창조물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고난을 당할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죄와 불행은 별개의 문제라고 따끔하게

충고를 해 주고 있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의 원인을 묻기 보다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뢰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한다.

 

 

고통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 주는 자명종이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의미 없는 괴로움이 아닌 하늘나라를 향한 디딤돌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평온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통해서라도

하나님를 찾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마음을 보게 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지만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말씀으로

이해시키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역반응이 나타나고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해법이 타당하다.

 

십자가가 무엇인지, 죄인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익숙한 단어나 말을 사용해서 답을 해 주게 되면 이해와 호응이 더 빠를 것이다.

 

고통과 악에 대한 질문에 세상사람들의  답은 여러 갈래가 될 수 있다. 코끼리를 만진 사람들의 답변이

제각각 이듯이. 그들이 경험한 세상학문의 다양성 만큼이나 그들의 알고 있는 지식과

이해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크리스찬들의 답은 오직 하나, 십자가와 예수님으로 종결된다.

이것을 빼고 나면 그 어떤것도 설명이 불가능하고 설명이 될 수 없다.


 

 

 

 

 

 

2쳅터 [하나님께 믿음을 묻다]편에서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어떻게 증명해 보일 수 있는가인데

우리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과학의 시대에도 하나님은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과학과 기독교가 상생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변으로

서로를 보완해 주고 도와 주어야 상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인해 그동안 흐릿하게 보이던 기독교의 근본 진리가

선명하게 밝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세상사람들이 묻는 이러한  질문에 우리가 답변해야 할 말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기독교가 허무맹랑한 꿈만을 심어주는 긍정의 심리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평소  궁금해 하던 질문들, 왜 고통을 당하는가?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 걸까?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학과 기독교의 조화가 가능할까?

등등의 많은 난제들에 대한 답변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이 답변들이 모두를 만족시켜 줄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신비의 하나님의 세계를 인간이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입에서만 맴돌던 단어들을 잘 꿰어서 다른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답변할 수  있게 해 주고

비기독교인들에게는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답변으로 인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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