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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 위대하신 왕의 가장 고귀한 선택
팀 켈러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2월
평점 :
"하나님을 리더요 도덕선생으로 삼는다면 모르지만 하나님을 구세주로 삼고 싶다면
현재의 구세주를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이 구세주를 갖고 있다. 당신의 구세주는 무엇인가? 돈인가? 하나님인가?"
팀켈러의 [왕의 십자가] - 하얀색 양장 표지에 그려진 작은 가시관을 보면서 '왕의 십자가'는 무엇을 우리에게 남겨 주려고
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마가복음 강해주석서이면서 변증서에 근접한 이 책이 미국에서 많은 찬사를 받은 책인데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을까?
'왕과 십자가'라?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생각하기 쉽지만 역설적인 이 조합으로 인해 우리가 왕에게 가는 길이 열리게 된다.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적인 예수'를 사람들은 기억을 한다.그러나 그 역사적인 예수를 자신속에 대입하지
못하므로 복음과는 먼 거리에 서 있다. 역사속의 예수만 알게 되면 죽은 예수를 아는 것이지만 이것을 개인적인
예수로 의미를 부여할 때 복음속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영적으로 살아나서 그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게 된다..
팀 켈러의 '예수님의 이야기'는 십자가가 없이는 왕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이둘의 완성이 예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최상의
단어가 되기 때문이다.
시대를 넘나들며 예수님과 십자가에 관한 증거와 다양한 책들이 수도 없이 많이 출판됐고 사라져 갔다.
그러나 아직도 회의론자들은 의심에 빠져 있고 자유주의론자들은 그들의 논리에 맞춰 예수님을 해석하고 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각색한 예수님, 그들이 입혀준 너덜너덜해진 이론의 옷을 입히면서 서로의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세상을 뒤바꾸신 정의와 공의의 예수님이 바라 보시며 이 시대의 패역한 무리들에게 공의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진정한 신이 누구인가를 답해 보라고 하실것 같다. 세상의 진리가 아닌 하늘나라의 진리를
아무리 외치고 선포해도 귀를 막고 각자 자기길을 걷기에 바쁜 이론가들과 몽상가들, 회의론자들과
현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의 생애와 그가 짊어졌던 십자가'를 재조명해 보면서 지적인 예수가 의지적인 예수로 받아
들여져서 마가가 보았던 예수, 왕이 나의 삶속에서 복음으로 전환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수십명의 저자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글이 나온다. 해리포터 이야기도 나오고 반지의 제왕 이야기도 나오고
신학자들의 글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해박한 저자의 지식으로 인해서 글을 읽는 동안 잠깐의 재미도
느낄 수 있다.
4복음서마다 각자의 주제가 있는데 마가복음의 주제는, 이 세상에 비천한 종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한 구원을 완성하신
왕되신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고 이 로드맵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마가복음에는 '곧바로'나 '즉시로' 같은
일상에서 행동적인 묘사와 예수님이 부활 하신후에 그 장면을 목격한 여자들의 이름이 중복 나열되고 있는데 예수님의
일생이 모두 사실적인 이야기라는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이고 저자가 특별히 4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별히 저자는 복음에 관해서, 종교에 관해서, 기독교에 관해서 심층있게 설명하면서 이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왜 우리에게
종교가 아닌 기독교가 필요한지를 애써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날 기독교를 거부하고 종교의 다양화를 인정하려는 기독교인에게
주는 선명한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서두가 복음으로 시작해서 복음을 마침으로 완성되는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일생이
우리에게 어떤 소식으로 전해지고 있을까?
복음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오면서 그들의 삶에서 예수님이 어떤 존재로 다가와서 그들을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전환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있고 실패와 악과 선의 감정들, 치유,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
나셨다는 부활의 이야기가 정점을 이룬다. 이 역사적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은 헛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고 전해 내려오는
민화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이야기'-복음은 진짜 이야기이다. 우리 인생이 복음처럼 될 수 있다는
소망의 이야기이다. 패배에서 승리로/약함에서 강함으로/죽음에서 생명으로/버림에서 구원으로 이르는 생명이야기이고
그 구심점에는 항상 예수님이 계신다.
그런 연유로 복음은 기쁜 소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희망과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비크리스천과 크리스천이 이 글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은 분명 다를 것이다. 우리가 믿는 그 분을 우리는 직접 체험하며
믿고 있지만 비크리스천들은 귀로만 들어서 알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쁨과 우리가 누리는 기쁨이 다른 이유이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특권이기도 하다.
가장 암울한 영적인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이야기속에서 바라는 것 한가지가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그들도 귀로 들어 아는 것 뿐만이 아닌 직접 체험하며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백부장이 그 시대에 존재했던 단 한 사람이 아닌 이 시대 누구나 우리 시대의 '백부장'이 되길 원하는 까닭은
이 복음을 널리 전파하라는 마가복음의 마지막장 16장의 당부이면서 복음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영적인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사람, 그래서 그가 고백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한 백부장의 고백을 이 세상에서 듣길 원하는 것이다.
복음과 종교는 분명 다르다. 종교는 하나님 앞에서 자격을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조언이고 사람이 할 일은 조언을
따르는 것이지만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을 획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무언가를 획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 길은 순전히 은혜로 받는 선물이며 자격을 따지지 않고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종교를 더 선호하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종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인라고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때 복음과 종교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자기위안으로 복음을 하락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구속사의 관점에서 그 길을 직행하면서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마가가 보았던 예수의 생애를 추적하고 있다.
차츰 차츰 폭이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들어 가면서 심층있게 신학적인 견해와 ,강해와 주석으로 변론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면서, 아직도 머리로 이해한 예수님이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나 의심의 자리에서 곡예를 하는 사람들
아니면 비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이해하고자 할 때나 기독교의 진리가 사실인지 검증하고 싶을 때 읽으면 될 것 같다.
그럼으로 해서 바울처럼, c.s루이스처럼, 이어령처럼 반박론자에서 옹호론자로 바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진리가 진리를 대변하듯 마가복음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추적해 나가는 동안에 숨겨진 진리의 가지를 발견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능력은 권력과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나처럼 권력과 돈을
아낌없이 나눠 주는 사람에게로 흘러간다.
너는 어떻게 살려느냐?"
고정된 예수가 아니라 유동적인 예수, 정지된 예수가 아니라 낮은곳과 사랑이 있는 곳으로 흘러 가는 예수님이심을
기억하면서. 팀켈러 목사님의 깊은 신학과 심오한 설명으로 인해 이 책을 제대로 서평할 수 없어 느낌 위주로 글을 적으며
책을 읽고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을 떠 올리며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