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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 : 돌아온 탕자 이야기 ㅣ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2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1년 5월
평점 :
설교시간에 자주 들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류모세님의 시각으로 다시 재해석한 책이다.
탕자 이야기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둘째 아들에 대한 시선을 둘째 아들이 아닌 아버지와 함께
거주했던 첫째 아들에게로 돌리고 있고 우리가 흔히 간과하기 쉬웠던 것들을 이스라엘에 오래동안 거주했던
저자의 시각과 유대문화의 풍습과 그들의 관습을 토대로 여기에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서 저자가 풀어낸 탕자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단순한 비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유 속에서 현대인의 초점이 아닌 유대인들이
당시에 들으며 느꼈을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중요한데 이 점을 특히 중시하며 내용을 하나 하나 짚어간다.
'돌아온 탕자'라는 비유가 이 제목이 타당한 것인지?에서부터 출발해서
'아버지는 왜 순순히 재산을 나누어 주었을까?' '탕자는 왜 갑자기 마음을 돌렸까?' '탕자는 왜 자신을
품군의 하나로 여겨 달라고 했을까?'' 아버지는 왜 먼저 달려가 아들에게 입 맞추고 포옹했을까?'.
'첫째 아들은 동생의 귀환 소식에 왜 폭풍분노를 보였을까?'..등이다.
설교를 들으면서 탕자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데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첫째 아들은 존경받고 거룩하게 보이는
죄인의 전형이고 둘째 아들은 만인의 지탄을 받는 죄인의 전형이다. 우리는 이 두 부류 중에서 어느 한쪽에든
반드시 속하게 되는데 모두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죄인일 뿐이다.
에수님의 비유가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단순하다는 인상을 받기 쉬운데 예수님의 비유가 쉽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줄거리이지만 그 안에는 매우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다. 비유속에 은유가 담겨 있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가 볼 수 있다.
누가복음 속에 녹아 있는 주제인 기도와 회개와 용서,사랑,칭의,은혜가 탕자의 비유속에 모두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교훈하시기 위한 '우리 중에서 누가 첫째아들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현대를 사는 그 중에서도 자신의 돈독한 믿음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향한 선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내 보여준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이 여기서도 재현되고 있는데
불평과 원망이 하나님의 은헤를 은혜답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에 아주 좋은
가림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불평과 원망은 비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항상 아버지 곁에서 만족할만한 사랑을 받고 지냈던 첫째 아들
에게서도 나타났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버지와 비견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는 탕자의 이야기를 사랑의 관계가 깨어진 현대판 '브로큰 패밀리 '(broken family와 동일시 하고 있는데
이제는 이 이야기를 한 개인이 아닌 '사랑과 관심'이 실종된 쓴 뿌리를 품고 있는 가족 안에서 조명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의 가족 중에는 청소년기의 탕자나 아니면 자아가 실종된 탕자가
있을 수 있고 자존감이 강한 탕자가 분명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가족 중에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탱시켜줄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받았고 이 숭고한 마음으로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수
있다.
탕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역시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어리석게 보이고 당당하지 못한 것
같고 우유부단한 것 같은 그 아버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하는 마음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아버지가 바로
'힘없는 전능자' '힘없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드러난 죄인인 둘째 아들과 드러나지 않게 자기 실속을 챙기며 침묵으로 일관했던 첫째 아들 사이에서 마음 둘 곳
없었던 예수님의 비하(卑下)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예수님의 비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들의 언어,이미지,캐릭터등을 빌려서 천상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 올리면서 우리가 고통을 떠 올리기 전에 먼저 '수치'를
떠 올려야 하는 이유도 자신을 통째로 버리고 수치와 모멸을 참고 견디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본
유대인의 문화적인 코드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프실까?'가 아니라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우실까?'이다. 이런 모습이 탕자의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는 수치심을 뛰어넘는 사랑의
모습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둘째 아들인 탕자에게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아버지와 첫째아들에게도 균등하게
내용을 분배했다고 밝혔다. 그것이 당시 유대인의 코드로 탕자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부류 중에서 '나는 과연 어느 유형의 탕자에 속할까?' 라며 진지하게 자신의 내면을
탐구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