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 영적 능력을 더하는 놀라운 은혜의 언약
찰스 스펄전 지음, 서하나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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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은혜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은혜라는 단어 안에 이렇게 많은 보화가

숨겨 있는 줄은 미처 몰랐었다. 스펄전이라는 거장답게 은혜라는 단어의 의미를 좁은 틀 안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광범위한 틀 안에서 바라보고 탐구한 '은혜'에 대한 책이다.

 

은헤를 받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 은혜안에 하나님이 주시고 싶어하시는 그 이상의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보물창고에서 그냥 잠자고 있는 '언약의 은혜'- 이 언약이라는 단어 안에서 은혜를 바라보면

불가능한 것이 없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의 의미안에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스펄전은 특별히 은혜를 설명할 때 '언약'안에서의 은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언약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고 간구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의 '충만'이 들어있다. '나의 하나님''우리의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말할 때는 몰랐던 숨겨진 은혜들이 이 언약속에 그냥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언약을 맺는다면 상상 그 이상의 것을 얻게 될 것인데 우리가 하려는

몸무림 때문에 은헤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 속에 있는 보화의 가짓수가 얼마나

무궁무궁한지 스펄전이 제시하는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은혜를 이젠 당당히 요구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된다.

 

언약과 관련된 성경에 나오는 단어만 열거한다 해도 수천 수만가지가 될 것이기에 스펄전은

설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그 은혜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깊이를 재려는 우리의 노력도 헛되다고 충고를 하면서...
하나님이 없는 삶에는 슬픔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렘11:4)는

말씀을 소유할 때, 모든 사람들이 가진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것인데 하나님을 활용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영적인 축복을 활용하라는 말인데 아무리 많이 우리가 구한다 해도 하나님의

인자함의 보물을 다 쓸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우린 하나님을

그보다 더 적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구하는 것보다 더 적게

그분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단지 명목상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지혜로운 인도를 받기 위해 '날마다 그분을 활용하라'고 스펄전이 우리에게

충직한 조언을 해 주고 있다.

 

우리가 나의 주인이신 주님께 부르짖고 '그분을 사용할 이유'는 그것을 위해 그리스도가 언약위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언제나 그분을 사용할 권리가 이미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언약'과 '그리스도'와 '은혜'라는  3개의 단어가 삼위일체가

되어서 우리가 간구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특권를 내려 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그분의 엄숙한 계약 이상을 베푸시는 분이시고 '그 언약을

 눈여겨 보시는 분'(시74:20)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확신을 갖고 침착하게 그분께 부르짖을 수 있고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며 기다릴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스펄전이 말하는 언약은 '행의의 언약'이 아닌 '은혜의 언약'을 말하는 것이다.

행위 언약은 우리를 멸하는 언약이고 우리가 그 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번째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그 언약은 이미 깨어졌다.그러나 두번째 아담이시며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새언약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10)이다. 죗값을 치르셨고 죄를 끝내시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남은 언약은 '영원히 ~할 것이다'와 '~일 것이다'로 이루어져 있고

이 약속은 세세토록 변치 않을 언약의 기반위에 견고하게 서 있는 말씀이다. 

 

이 언약의 말씀은 우리가 모든 투쟁 가운데서 사용할 수 있는 두 날을 가진 칼이 될 것이고

모든 고통을 치유하는 길르앗의 겨룩한 유향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의 언약을 보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언약에 관해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임한 은혜의 효과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나타내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할일이다.

성경에서 '네 하나님'이라는 말이 포함된 구절이 삼천육백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하루에 한 단어만

적용해도 10년은 족히 걸릴  엄청난 은혜의 언약을 우리에게 주신 '그 하나님'을 이젠 힘써 구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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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2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혜로운 서평 잘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체하실 때 - 기다림을 포기하고 싶은 당신에게
조안나 위버 지음, 오현미 옮김 / 두란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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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의 절박한 상황에서 만약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 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의 참담하한 심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이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가지고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누구나 이런 상황에선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가?에 이르기가지 ..다양한

의심과 불신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기에 이른다.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린 사실을 요셉이 어두운 감옥에서 수년간을 기다렸던 사실을

야곱이 애매하게 일하며 기다렸던 그 시간을, 노아가 방주를 지으며 수년을 묵묵히 참음으로

기다렸던 시간을....이 외에도 수 많은 기다림,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는

나와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황이 자신과 같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성경은 늘 역설적이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와는 다르고 그 시간속에 해답이

담겨 있다.

이미 죽어서 무덤 속에 갇혀 지내는 동생 나사로, 이로 인해서 낙담속에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찾아 오셔서 구원을 베푸셨던 주님의 이야기를

돌아 보면서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왜 그렇게 지체해야 하셨을까?를 조안나 위버가 조명하고 있다.

 

우리가 '왜'냐고 묻고 싶은 순간들에 이 나사로 이야기는 그 의문점을 플어주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은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로 지체하신다'. 자신과 끝없는 영적인 전쟁을 치르며

바닥 까지 떨어져서 마지막 남은 회의의 모래알이 사라져야 비로소 반석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시간들이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투자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찾아 오시던 그 순간에 마리아와 마르다의 행동이 다르다. 이전에 예수님을 향해 달콤한

교제를 나눴던 마리아는 오히려 집에 앉아 있고 예수님의 사랑에 의심을 품었던 마르다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 나가는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의지를 자신이 쥐고 있는가? 아니면 그 의지를 예수님께 넘겨

드리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크게 반전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작은 그림만 보며 한탄하고 있을 때 주님은 전체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기대하는 응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예스;라고 하실 때보다는 '노'라고 말하실 때가 자주 있고 나사로의 경우처럼 '잠깐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최상의 응답일 때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기다림의 시간을 잘 참아내지 못하는데 있다.

 

눈 앞의 현실에 얽매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타이밍 박자에

귀 기울이며 내 삶의 통재권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에 맡긴다면 단 한순간도 인생을

허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다림도, 우리의 의문도, 우리의 고통까지도 결코 헛된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믿으면 된다." 이 얼마나 위로가 넘치는 말인가?

보이지 않는 손길 때문에 낙심할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고 여전히 나를 향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

 그 하나면 된다. 이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읽다보니 주제와 관련된 연관성이 떨어져서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쨋든 '하나님이 왜 그렇게 지체하셔야 했을까?"에 대한 단순한 답변이 아닌 포괄적인 핵심을

두루 알게 되었다. 기다림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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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음 버리기 - 흔들리지 않는 마음, 내 안의 부동심 찾기
오제키 소엔 지음, 김지연 옮김 / 큰나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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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슬플 때도 마음 한 구석에는 기쁨이 한순간 자리하기도 하고 기쁠 때도 여전히 슬픔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온전히 마음을 한가지 것으로 가득 채우기가  어려운

것은 왜일까? 궁금했다. 그것을 저자는 '부동심'을 갖지 못해  흔들리는 마음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가득하게 사는 것, 그것이 부동심으로 어떤 여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 '오제키 소엔'은 불교에 몸 담고 있는 승려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이 환해질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일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낡은 사진첩을 펼쳐 보면서 예전의 자신의 모습에 흐뭇해하기도 하고 간혹 걸려오는 낯익은

사람의 전화에 마음이 감동되고 흐트러진 정신에  밝은 음악을 들려 준것처럼  마음이 빛날 수

있음을 안다. 책의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마음에 반창고를 붙인 것처럼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튼튼한 정신력을 갖게 되기도 한다. '마음을 튼튼하게 해 주는 책' 에서  단 한줄의 위로의 글이

무너진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줄 수도 있고 침체된 마음을 추스려 주는 기둥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환경이나 여건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문제이다. 항상...

그럼에도 이 마음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무언가에 의지하게 된다.

신이든 절대자든 자신이 이상으로 추구하는 그 무엇인가를 향해 끊임없이 소리치고

답을 하라고 아우성을 지른다. 불교에서는 이런 상태의 마음에 대해서 인간의 노력으로

마음을 비우든지 아니면 무엇으로 채우든지 하라고 말을 한다.  이것이 기독교와 다른점

인것 같다. 기독교는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살아가다 보면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상황 앞에서 은혜를 기꺼이 받아 들이든지 아니면 자신이 좋아 보이는 어떤 것을

선택을 해서 어떤 결과에 도달할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이 책은 목차가 좋아서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마음의 용량을 키우기'에서 부끄럼을 더 키우고, 고독을 견디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서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라고 말을 한다.마음의 탄력성을 키우기에서는 괴로움을 가까이 하고 물러서지 말것을

권면하고 있다. 마지막 장  '움직임에 움직이지 않는다'에서의 예화는 책의 소개글에서 깊은 울림을 준

글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바람이 움직이게 한 것인지 깃발이 움직인 것인지의 논쟁을 놓고

옥신각신 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혜능선사가 명쾌한 해답을 알려 준다.

"바람이 움직인 것도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이 말 한마디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모두 들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 가면서 깃발이 움직이든 바람이 움직이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다만 지금 이순간을 최선을 다해 충실하게 사는 것, 가득한 충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쓸데 없는데  마음이 흔들리고 사로 잡혀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가득하게 살아가면 동요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으로 가득하게 살아갈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때'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힘껏 살아가는 것이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 갈 수 있는 부동심을 갖는 법이라고 이 책은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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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 : 돌아온 탕자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2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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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시간에 자주 들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류모세님의 시각으로 다시 재해석한 책이다.
탕자 이야기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둘째 아들에 대한 시선을  둘째 아들이 아닌 아버지와 함께

거주했던 첫째 아들에게로 돌리고 있고 우리가 흔히 간과하기 쉬웠던 것들을 이스라엘에 오래동안 거주했던

저자의 시각과 유대문화의 풍습과 그들의 관습을 토대로 여기에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서 저자가 풀어낸 탕자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단순한 비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유 속에서 현대인의 초점이 아닌  유대인들이

 당시에 들으며 느꼈을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중요한데 이 점을 특히 중시하며 내용을 하나 하나 짚어간다.

'돌아온 탕자'라는 비유가 이 제목이 타당한 것인지?에서부터  출발해서
'아버지는 왜 순순히 재산을 나누어 주었을까?' '탕자는 왜 갑자기 마음을 돌렸까?' '탕자는 왜 자신을

 품군의 하나로 여겨 달라고 했을까?'' 아버지는 왜  먼저 달려가 아들에게 입 맞추고 포옹했을까?'.

'첫째 아들은  동생의 귀환 소식에 왜 폭풍분노를 보였을까?'..등이다.

 

설교를 들으면서 탕자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데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첫째 아들은 존경받고 거룩하게 보이는

 죄인의 전형이고 둘째 아들은 만인의 지탄을 받는 죄인의 전형이다. 우리는 이 두 부류 중에서 어느 한쪽에든

반드시 속하게 되는데 모두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죄인일 뿐이다.

 

에수님의 비유가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단순하다는 인상을 받기 쉬운데 예수님의 비유가 쉽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줄거리이지만 그 안에는 매우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다. 비유속에 은유가 담겨 있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가 볼 수 있다.

누가복음 속에  녹아 있는 주제인 기도와 회개와 용서,사랑,칭의,은혜가 탕자의 비유속에 모두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교훈하시기 위한 '우리 중에서 누가 첫째아들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현대를 사는 그 중에서도 자신의 돈독한 믿음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향한 선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내 보여준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이  여기서도 재현되고 있는데

불평과 원망이 하나님의 은헤를 은혜답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에 아주 좋은

가림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불평과 원망은 비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항상 아버지 곁에서 만족할만한 사랑을 받고 지냈던 첫째 아들

에게서도 나타났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버지와 비견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는 탕자의 이야기를 사랑의 관계가 깨어진 현대판 '브로큰 패밀리 '(broken family와 동일시 하고 있는데

이제는 이 이야기를 한 개인이 아닌  '사랑과 관심'이 실종된 쓴 뿌리를 품고 있는 가족 안에서 조명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의 가족 중에는  청소년기의 탕자나 아니면 자아가 실종된 탕자가

있을 수 있고 자존감이 강한 탕자가 분명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가족 중에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탱시켜줄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받았고 이 숭고한 마음으로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수

있다.

 

탕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역시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어리석게 보이고 당당하지 못한 것

같고 우유부단한 것 같은 그 아버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하는 마음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아버지가 바로

'힘없는 전능자' '힘없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드러난 죄인인 둘째 아들과 드러나지 않게 자기 실속을 챙기며 침묵으로 일관했던 첫째 아들 사이에서 마음 둘 곳

없었던 예수님의 비하(卑下)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예수님의 비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들의 언어,이미지,캐릭터등을 빌려서 천상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 올리면서 우리가 고통을 떠 올리기 전에 먼저 '수치'를

떠 올려야 하는 이유도 자신을 통째로 버리고 수치와 모멸을 참고 견디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본

유대인의 문화적인 코드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프실까?'가 아니라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우실까?'이다. 이런 모습이 탕자의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는 수치심을 뛰어넘는 사랑의

모습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둘째 아들인 탕자에게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아버지와 첫째아들에게도 균등하게

내용을 분배했다고 밝혔다. 그것이  당시 유대인의 코드로 탕자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부류 중에서 '나는 과연 어느 유형의 탕자에 속할까?' 라며 진지하게 자신의 내면을

 탐구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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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신앙고백
이윤재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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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윤재 목사님의 책을 ;광야의 영성'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때 한신교회와 별세

신학 이라는 단어가 한번에

조화를 이루며 이윤재 목사님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서 이 책을 읽게 되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통해서 이윤재 목사님이 받았던 말씀의 깊이와 은혜를 함께

누리게 되었다.

 

이 책은 이윤재 목사님이 느끼고 묵상했던 내용들을 갈2장 20절 말씀속에 투영한 것

이라 볼 수 있다.

일상에서나 목회현장에서 목사님 자신이 죽고 살았던  기록의 번복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수없이 자아를 버렸다가 찾았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비춰보게 되고 그

속에서 다시 한번

결단을 하게 되는 책이다.

 

예수님이 별세하셔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었듯이 목회자가 별세해야 교인들이 별

세할 수 있다는

이중표 목사의 별세목회를 계승하고 있기에  이 책의 주제도 철저하게 거기에 초점

이 맞춰져 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는가?' 나는 예수님과 함께 살았는가?' '나는 예수님과 함

께 세상을 살리고

있는가?'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매일 자신의 죽음을 경험

하는 것이 영성생활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이 기본을 뒤집으며 우리는 기본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목회자 한 개인의 진솔한 고백이 오히려 내 모습을 더 부끄

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개 목회자의 경우,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우리가 보기 때문에 그 이면에 감춰진

인성과 품성을

우리가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간과할 수 도 있는데 목사님은 아주 솔직하

게 자신의 치부까지도

 드러내시면서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죽음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기도원에서 3주간

금식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이 부서지는 체험을 하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고 느껴지면서 이 말씀이 한 구절 한구절 폐부를 찌르면서 강력한 검으로 작용

했던 것 같다.

목회자의 '자기반성'은 어떤 열마디 백마디의 설교보다 더 성도들의 마음을 뒤흔들

어 정화작용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시는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

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많은 자기반성은 아울러 우리가 어떻게 죽어야 하고 어떻게 다시 살아 나

야 하는지를 그리고 살아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부흥' 성공' 잘 되는 것''성공주의'..등등의 것들이 죽어

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일반 성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아를 깨뜨리고 날마다 코람데오의 삶을

살 것을 끝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아가도록 견책하는 채찍으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 성도들 보다는 특히 목회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나 앞으로 하실

분들이 꼭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갈2장 20절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이다. 우리

가 나온것도

예수님이고 다시 돌아가야 할 곳도 예수님이다. 그것이 위의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한 모금의 물도 아니고 한움큼의 양식도 아닌 낮

아지고 깨어지셨던

 예수님의 영성이어야 한다. 예수결핍 시대에 사는 우리가 외쳐야 할 구호는 '교회부

흥'이나 사람으로

채워지는 교회가 아닌 '잘되는 우리'가 아닌 <예수로 채워지는 삶>이다.

 

"'주님과 상관없이 너무 바빠진 자신 때문에 눈물이 났습니다.

주님'제가 또 주님을 잃었습니다.

목회는 성공하는데 주님과의 관계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없는 저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주님 없는 성공보다 차라리 주님 있는 실패를 택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저자의 목회와 삶에 분명한 주인으로 모시게 한 책 뒷표지에 있는 위의 레마

의 말씀이

오래도록 나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것은 비단 목회에 국한 된 일만이 아니라 우리

의 일상과 자신과

관계된 모든 일에 적용을 해볼 말씀이다. 행복에 겨워 하면서도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인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안에서'의 삶

이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삶이다.

 

'자기열심'과 '예수님을 사랑'해서 하는 목회나 교회일은 분명히 차원이 다른 것이다

. 예수님이 없는데도

얼마든지 성공을 할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잃어버린 목회는 얼마나 비참할 것인

가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성도들에게도 모두에게.. 목회자가 교회의 부흥과 성공을 바라는 것과는 달리 그것

보다 먼저 성화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목사님의 말씀 중에서 특히

'~를 위하여 '보다는

 '~를 통하여'가 중요하다는 말을 새겨 듣게 된다. 우리는 교회에서 누구나 '예수님

을 위하여'라는 말을

쓰기 좋아한다. 그러나 그 말 보다는 '예수님을 통하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유

는 '위하여'의

주인공은 '나'이지만 '통하여'는 내가 수단이 되고 주님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그렇

다.

 

우리가 '자기'라는 원안에 갇혀 있다면 결코 세상을 향해 나갈 수도 없고 세상을 살

릴수도 없다.

물론 이것이 자신을 죽인후에 그 전제하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나를 넘어서고 정복하

지 않고서는

세상을 향해서도 아무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게 된다.

 

이 책은 이윤재 목사님이 자기를 죽이는 과정의 고백의 기록이면서 갈2장 20절을 통

한 '나'를 죽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기록이다. 목회자아상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목회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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