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혜완, 영선, 경혜- 이 시대 여성을 대표하는 여성의 불평등한 삶, 자화상을 표출해 내는 인물들이다.
선우, 박감독 그외 출판사 사람들.
이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은 불평등한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문제제기만 할 뿐이다.
공지영 작가가 사회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가라지만 소설 속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천천히, 혜완의 입을 통해서 그의 동창들인 영선과 경혜의 우울하고 음침한 그림자만을 보여 준다.
물론 자신을 포함해서.
왜 세여자 모두가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질긴 끈처럼 온 몸에 두르고 살아야만 했던걸까?
우울하고 어두운 혜완의 방에 처음으로 울린 전화 벨 소리로 시작해서
마지막 친구 영선의 죽음을 전화벨로 들으면서 까지 전화벨은 이들 모두의 운명처럼
그렇게 낮고 어두운 마음의 방을 통해서 혜완의 목소리로 나타난다.
왜 여자는 남자의 음식이 되어야 하고, 왜 여자는 남자의 배게가 되어야 하고
음식이 되어야 하고, 그의 가방이 되어야 하고, 그의 옷이 되어야 하는가?
한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사물로 여자를 보는 이중적인 잣대, 남자의 시선이
이 각자의 개체물을 통해서 나타난다.
여자는 단지 하나의 사물일 뿐이라는 의도적인 표식이다.
이것들 각자가 다시 하나로 통합 될 때 그 때에야 비로소 여자는 자신의 존재를 찾을 수 있다.
소설 속 화자(話者)인 혜완은 자신의 이혼과 새로운 만남에 대해서
영선,그리고 경혜의 일들을 나지막하고 음울한 목소리로
들려 준다. 자신의 남자 선우와의 만남과 헤어짐도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면서,
그 과정에서 여자라는 존재가 남자와의 관계에서 얼마나 불평등하고 불편한 사람이라는
암시를 주면서.
'이미 식어 버린 커피에 하얀크림은 섞이지 못한다.
남자와 여자의 이해심도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혼 별거, 이런 상황에선 아무런 것도 작동을 하지 못한다.
다 식어버린 커피같은 마음만 남아서 프림처럼 겉돌기만 한다.
이런 상황이 남자와 여자를 분리하는 경계선을 더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남녀의 심리묘사- 그 간극을 읽어 내느라 내용이 아주 지리할 만큼 책장이 넘겨지고
쉬엄 쉬엄 읽어 가며 한 템포 느리게 읽어 내려 가야 할 책.
"~하지 않아도 됐을 것,그러나 이건 선택이었다.
다만 그 선택 속에는 예기치 않던 상황들이 늘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가끔 운명이라 부르고 싶어했다."
"누구도 행복하지만은 않고 누구도 불행하지만은 않다.
불행이란 단지 나날의 사건일 뿐이다."
혜완의 이혼도 영선의 죽음도 단지 자신의 선택에 따른 운명이었을까?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포함 된 것, 이것이 운명이다.
비껴갈 수 없는 그 무엇 강력한 힘. 바로 그것.
그러나 그 운명이 불행하대도 행복하대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다.
단지 흘러 가는 시간 속에 소멸 될 뿐이다.
누구에게나 우리 속엔 영선이 있고 혜완이 있고 경혜가 있다.
이혼을 하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그로 인해서 자살을 하고
바람난 남편에 맞서서 똑같이 다른 남자를 만나 어긋난 길로 향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형태는 같은 모습들. 두명의 여자에게선 희생과 의연한 모습이
다른 여자 경혜를 통해서는 자유분방한 여성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그러나 이것은 단편적인 여자의 모습일 뿐이다.
어제의 나의 모습이 오늘의 나이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 모습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운명이란 단지 자신이 선택한 길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굳이 '운명'이란 굴레에 가둔다면
일생이 불행하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삶의 기로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사랑'을 빼고 나서도 일부러 차선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혹 차선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회할 일이다.
선택이 운명을 가름한다.
단지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이 소설 속에 그려진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모두가 나쁜 남자의 유형들이다. 이 원리대로라면 남자는 모두 나쁜 사람들이고
여자들은 모두가 남자에게 얽혀 사는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모두가 픽션일 뿐이다.
세상엔 완전히 나쁜것도 완전히 좋은 것도 없다.
그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이 그렇게 하도록 떠 밀었을 뿐이고
그 떠밀림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남자들만 있을 뿐이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낮과 밤이 있고 음이 있고 양이 있듯이
어둠과 밝음이 늘 교차하고 왕래하며, 돌고 도는 지구처럼
음은 더 도드라지게 사람들의 주의를 끌며 시선을 날카롭게 채 가고 있다.
그러다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 가거나
아니면 불시착한 별처럼 낯선 땅에 정착해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고 운명이었다면 말이다.
살아가며 여자로서 겪어야 할 수치와 모욕들- 이런
모욕을 감당할 수 없다면 누구도 자신을 발닦개처럼 밟고 가도록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몸에서 나오는 때처럼 모욕이 그토록 징그럽게 싫었다면
누군가가 자신을 밟고 지나갔다면, 자신을 널부러 뜨려 누군가가 밟도록 허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말들은 지금 출판된 책의 제목에 사용된 불경의 문구들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더 담대하게 더 용감하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마음을 씻어 잡념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혼자서 자기의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살아가는 길일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남자와 함께 어울려 살며 겪어야 할
여자의 어쩔 수 없는 굴레를, 불평등과 불합리를 내 세워 조근조근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 보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회의 부조리와 남녀의 불평들을 걷어 치우고
가볍게 깃털처럼 살아가라는 말을 작가가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