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의 기도 - 주여, 내게는 힘이 없사오니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스탠리 게일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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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성경을 읽다가 여호사밧의 기도 한 구절에 딱 멈춰 선 적이 있었다 .

더 이상 성경을 읽지 않고 그 한 구절을 놓고 묵상하면서 기도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 <여호사밧의 기도>는 내게 더 특별한  책으로 다가왔다.

역대하 20장에  나오는 그의 기도는 많지도 않은 짧은 한 구절이지만

정말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기도이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즐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 20:12)

 

역대하 20장에 나오는 여호사밧의 기도를 강해한 이 책은 여호사밧의 기도와 주변 상황들을

설명하면서 그의 기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조명한 책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평범한 기도든 절박한 기도든 어떠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게 된다.

늘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지만 은혜와는 별개로 기도는 일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어서  평범한 기도도 있지만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에서는 여호사밧의 기도처럼

간결하지만 중심을 담고 있는 절박한 기도도 드리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 기도를 다급한 위기상황에서 드리는 기도,눈보라가 몰아칠 때 인도의 빙판을

위해서 뿌리는 소금같은  기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긴할 때 써 먹는 신통한 장치가 아니며 ,주문처럼 중얼 거릴 수 있는 기도는 아니라고 단정짓는다.

오히려 여호사밧의 기도는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우리의 말문을 열어 주는 기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옳은 길로 우리를 이끄는 기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마치 물길이 막혔을 때 처음의 포문을 터 주면 그 다음 부터는 막힘없이 물이 줄줄 흐르는 것처럼

기도의 첫 물줄기라고 표현하고 있는것 같다.

 

어려운 상황을 지내 오면서 첫 관문을 어떻게 헤치고 나가는가가 그 다음 향방을 결정 짓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 첫 관문이 세상을 향해 있으면 해결점을 찾을 때 까지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하나님이 터 준 첫 물길만 향해 나아가면 된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을 만나든지 '오직 주만 바라보라'-오직 주님만 바라 봅니다,

이 말 한마디 만큼 힘을 주고 위로가 되는 말은 없는것 같다.

이 말 안에는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말하지 못하는 것, 말 할 수 없는 것들

마음이 응고 되어서 더 이상 풀어내기 어려운 것들이 들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많은 것들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말해 주고 있고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긴 기도만이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마디의 짧은 기도라도 우리의 신음 소리까지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면전에 상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경의 상황을 지내면서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 여호사밧은 전리품들을 거둬 들였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상황끝이 된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남기신 전리품을

거둬 들이지 않고 다음 상황을 향해 내달음질 치는 사람과 전리품을 줍는자가 대비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싶어하시는 곳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그것 때문에 영적인 전쟁을 치르게 하시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역시 우리 마음을 조명하시기 원하셔서 마음에 전리품들을 남겨 두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그냥 지나치거나 소홀히 대하고 마는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폭풍과 바닷물에 떠 밀려온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곰곰히 살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런 사실을 저자는

"폭풍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삶에 오는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은혜의 결과들을 남겨 놓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 단계로 급하게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 담긴 하나님의 귀한 뜻과

 폭풍에 의해 우리 삶에 쌓인 하나님의 은혜-전리품을 거둬 들이는 일을 잊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사실 성경을 읽으며서 여호사밧의 기도에만 시선이 집중 되어서 그 다음 이후를 경솔하게 놓치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 구석 구석을 분주히 뛰어 다니며 '하나님의 은혜의 전리품'을 거두어 들이는 일을 얼마나

 소홀히 여겼는지? 하나님이 표적으로 삼으신 마음의 과녁을 얼마나 빗나가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기도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이후를 돌아 보는 일은 신실한 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여호사밧의 기도 이후에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이 평안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소문에 소문을 타고 이방나라로 번지게 되었다. 전쟁을 앞에 두고 다급한 상황에서 여호사밧이

기도함으로 인해서 '평안'을 선물로 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모든것이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라는 말로 귀결된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의 궁극적인 결론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다.

그 이름 때문에 고난도 달게 받을 수 있고 그 이름 때문에 기도할 힘도 얻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결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선물로 받게 된다.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많은 은혜가 넘쳤다. 그동안 간과했던 부분들이 하나씩 선명하게 그림으로

그려 지면서 여호사밧이 받았던 평안이 내게도 넘쳐났다.

하나님이 주신 시련 앞에서 통과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지 말고 통과한 후에 남겨진 전리품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전리품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있다면 짧지만 아주 강력한 여호사밧의

 기도지만 소중한 기도의 모범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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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 언약의 능력
말콤 스미스 지음, 류재상 옮김 / 베다니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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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각 기독교 출판사들의 성향이 어떤지 대략 알게 된다.

처음에 베다니 출판사의 책을 접했던 것이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부터인것 같다.  책의 흐름이 성령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져 온 것 같았는데

이번에 나온 [보혈 언약의 능력]은 이전까지 보아왔던 베다니 츨판사의 책과는

 다른 성향의 책이었다,

그저 이전과 같은 종류의 책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는데

이번에는 머리를 많이 힘들게 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생각을 계속 하게 되고  묵상을 거듭하게 하는 책이었다.,

제목처럼 '보혈과 언약에 관해서' 그 흐름과 맥을 세세하게 짚어주기 때문이다.

이전에 책들은 그래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는데  이번 책은 무겁고 약간 난해한

 감이 없지 않았다.  책 앞 부분에서는 언약의 정의에서부터  옛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과정들을 설명하면서 언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약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라는 것과 그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것의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

 

언약을 설명하는 한 예로 다윗과 요나단, 그 가운데 놓인 므비보셋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언약은 바로 이런 것이다는 것을  예증하고 있다.

우리가 이제는 옛언약이 아닌 새언약, 즉 예수그리스도라는 언약에 의해서 그 언약의

중심내용-자비, 헤세드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경건해지려고 노력하는 일을

중단할 것. 이것이 핵심 요지이다.

 

책 서두에서 한 사람의 편지글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생활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경건의 모양을 갖추려고 노력하는지, 그리고 그 노력은

무엇을 말해 주는지,  결국에는 그 모든 노고가 헛될 수 밖에 없음은 바로 '언약'때문

이라는 것을 촘촘하게 짚어 주고 있다. 

 

성령의 능력, 하나님과의 관계. 성령과 함께 동행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도 이 언약이라는

틀 안에서만 가능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닌 하나님 자체를 알아야

하고 그 분과 관계된 것을 섬기는 것이 아닌 그 분 자체를 섬겨야 하는 것이다.

 

탕자가 집을 떠나 멀리서 방황 할 때는 누더기 옷을 입는 것이 그에 걸맞는 옷이었다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비싸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이 그의 신분에 걸맞는 행동이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도 이제는 죄의 아래가 아닌 에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자비가

중심이 된 언약 아래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그 어떤 노력이나 경건의 연습은 필요치 않다.

 

저자도 어느 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이런 은혜를 깨닫고 나서 부터는 홀가분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도 자신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을 해 왔는가?

아침에 일어나면 의무가 되어 버린 큐티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고 시간에 맞춰서 기도를

하고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봉사를 하고 때로는 헌신과 다짐도 하면서 자신을 경건의 틀에 맞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살아 왔고 지금도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물로 이런 경건의 연습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어느 사이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어 자신을 속박하고  틀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되면서 의무감에

하루 하루가 버겁게 된다면 이것은 분명히 문제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이렇게 무거운 짐 아래에 살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곧 나이고 내가 그 분이 된다는 사실을 수용하기만 한다면 경건이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내 짐은 이미 그 분이 가져 가셨고 우리는 새 언약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떠한 노력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관계를 원하실 뿐이다.

 

책 표지에도 소개된 문구가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사역의 섬김보다 친밀한 교재를 더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친구가 되세요."

"그 분과 함께 사랑하고 사랑 받으십시요."

사역에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려는  목사에게 얼마나 단비 같은 처방인가?

이보다 더 신나는 해답이 어디 있을까? 이것은 비단 개인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닐 것이다. 교회성장과 부흥에도 사역과 선교의 현장 어디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 분의 보혈 언약 아래서 '마음껏 춤추고 헤엄치고 노래 하면서 신나게 자유를 누려라.

 하나님도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서 보고 싶어 하실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과 연합함으로의 부르심'이 곧 복음이고 언약이기 때문에 우리를 이렇게 춤추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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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대사 3 - 사랑의 중보자 하나님의 대사 3
김하중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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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하나님의 대사'라는 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 왔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가  궁금했었다.  주중 대사였으니 그냥 갖다 붙인 이름일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하나님의 대사' 이 책을 3권까지 모두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김하중 장로님에게

가장 알맞은 수식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大使)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심부름꾼이다. 자기나라의 대표 의사를 주재국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인데 김하중 장로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서 하나님의 특명을 받아서 그 뜻을 전달하는

중간 역할자였던 것이다. 

 

장로님의 이런 기도가 너무 부러웠다.  3권까지 책을 모두 읽은 후에는 그런 생각이

더 많이 생겨났다. 자신을 위한 기도도 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수십년간 꾸준히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기도를 해도 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 되는지 안 되는지 의심을 품고서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고 기도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도가 힘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낙심이 되어서 기도를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장로님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소통하면서  때마다 즉시로 하나님의 뜻을

받기 때문에 기도에 윤할유 역할이 되는 것 같았다.

 

1권에서도 '혼의 기도를 하지 말고 영의 기도를 하라'고 했는데 3권에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유익과 정욕을 위한 기도를 내려 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의 기도를  할 때

그럴 때 비로소 성령님이 움직이시기 시작하는 것이다.

1권에서 3권까지 장로님의 기도사역을 통해서 응답 받은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핵심은

우리도 이런 중보기도를 하라는 은유적인 메세지를 주고 싶으셨던 것은 아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다른 사람을 위해 복을 빌때  자신도 같은 복을

받는 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이 밑바탕에 전제되지 않으면 [사랑의 중보기도자]가 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닐텐데

시간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항상 업무에 쫓겨 바쁜 사람이 수백면의 명단을 놓고 일일이 기도하기가

어디 쉬운일이었겠는가? 그럼에도 특히 감동을 받은 사실은 항상 집에 돌아 와서 그날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감사기도를 드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수시로, 상황과 여건이 어떠 하든지 그것들을

초월해서  아무 때든지 기도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진정

"하나님께 묻고 답하기"가  일상의 습관이 된 기도의 사람, 하나님의 전권대사였다.

 

우리는 제일 먼저 가까운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부모님께

매달리고 제일 마지막 후순위가 하나님인데 장로님은 무엇이든지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일이었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깨달음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예수님 처럼 힘들지 않으면 참으라"는 교훈이다.

 어려운 위기를 만나거나 힘든일이 닥쳤을 때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을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의 고난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일이 예수님처럼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분명 아닌 것이다.

여기서 위로와 힘을 얻게 된다.

이런 교훈들이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은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더 좌절과 낙심이 쉽게 생기기 때문이다. 기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큰 기대를 하지 않지만

기도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 큰 기대치를 걸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그분과 교제하는 기쁨을 원천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영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기도이다.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장로님이 받은 기도응답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대한 표본이다."

이번 3권에서는 특히 두분의 대통령을 비롯해서 나라의 요직에 있을 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서 위기와 어려움의 순간들마다 우리의 숨소리까지도 기억하시는

세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들이다.

기도 없이는,그것도 중보 기도 없이는 이 나라에 희망이 없고 우리의 앞날에도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래서 더욱 우리가 깨어서 장로님 같은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장로님이 이렇게 응답을 많이 받고 수시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 된 비결을 책 서두에서 이렇게

벍히고 있다.

"저는 대부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기도, 그리고 남을 위하는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응답을 받거나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님에게 기도응답의 비결을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답해 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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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이 정말 싫습니다 -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추격전
튤리안 차비진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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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싫어서 도망쳤던 사람-요나의 이야기. 주일학교에서 자주 들었던 설교로 기억하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의미없아 받아 들여졌던 요나서가 이렇게 심오한  깊이가 있는 책인 줄 몰랐다.

 저자가 풀어낸 요나서에는  죄의 속성과 거기에 비해 가늠할 수 없는 더 큰 하나님의 은혜에 무게가

 실리면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색다른 단어가 나온다.

 

십자가 복음이 신약성경 사복음서애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비유로 들어 말씀하시던

요나의 이야기 속에도 있다.  그것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난 이야기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요나의 죄와 우리의 죄,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여

되면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요나라는 인물속에 있는 것이다,

 불순종한 요나의 삶을 관통하며 흐르는 복음의  진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책에는 요나서의 강해와 아울러 문학적인 시도 나오고 요나를 그린 그림을 형상화 하면서 그림속에서도

이야기를 끌어내며 신앙의 적용점을 짚어 주고 있는점이 특이하다.

책 속에는 두가지의 큰 대지가 나오는데  요나와 하나님의 상반된 마음이 그것이고 이렇게 다른 점을

 대비 시키면서 죄와 은혜를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뒷 부분에서는 이제까지 강해한 요나서를 통해서

어떻게 그 내용을 삶에 적용 시키며 살아 가야 할지를 원초적인 복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니느웨성을 멸하실 충분한 권한이 있음에도 왜 끝까지 요나를 쫓아가셨을까? 의아해진다.

그러나 시선을 달리해서  그럼에도 요나를 쓰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은 사역이나 일 보다는 그 일을

 맡은 사람을 더 필요로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요나에게 하나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복음은 바로 실패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중심으로 살지 않아서 실패했던 요나, 그렇다면 복음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 것이다, 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를 이기려고 했고 자신에게 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실수를 범했다.

 

니느웨 사람들만 우상을 섬긴 것이 아니라 요나에게도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과 선지자라는 우상이 있었다.

  "당신의 우상은 무엇인가?"........  저자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도  되묻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모습 속에도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우상이 잠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참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입게 되었지만

요나에게 참된 회개는 없었다,  우리에게 기쁨과 만족이 없는 이유는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들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회개는 샬롬이 흘러가는 호스와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도 하나님을 피해 달아 날 수 있음을 통해 순종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된다,

마음과 행동-주종이 뒤바뀐 순종, 회칠한 무덤과 같은 순종을 하나님도 원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요나의 사고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선'과 요나가 생각했던

인간적인 선의 차이점에서 나타난다, 요나의 마음 속에 자만심으로 응어리진 '응당한 일의 댓가'를 바라는

우얼적인 마음은 결코 하나님이 바라시는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요나의 이야기는 완벽하리만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 도망자를 끝까지 추격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와 같은 반역자들을 포기할 충분한 권리가 있으심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하나님의 깊은 자비심이다,

책을 통해서 보여지는 트라이앵글의 큰 삼각 구도는 '큰 것'이다, 우리의 '죄'가 크고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 하나님의 '선교'가 크다는 사실이다.  하나님도 우리처럼 선교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또 다른 발견이다.

 

성실하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께 충실하든 그렇치 않든 우리 모두는 어느쪽으로든 요나처럼 독선적인 사람들이다,

  그런 요나, 선지자인 요나에게도 구원과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끝까지 추격하시며 하나님이 그를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추격하시는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더 두려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끝까지 요나와 니느웨를 추격하셨다면 나도 어디에 머물든지 어디에 있든지 끝가지 추격하실 것이다,

그것이 두렵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위로가 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도 요나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누구 못지 않게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요나의 영적인 빈곤이 나의 빈곤과 같음 앞에서 나약함를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의 추격과 요나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선교사명 때문에 막을 내렸다.

하나님의 선교사명- 즉 '하나님의 관심'은 죄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를 동일하게 보는 것이어서

니느웨도 요나도 모두 구원과 자비를 경험하게 되었다,

 

요나서가 다는 선지서와 다른 점은 요나의 메세지가 없다는 점인데  그럼에도 도망자 요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인간의 죄악 앞에서  복음의 우월성과

하나님 은혜의 절대적 필요 ,복음과 비복음적인것들의 분별. 자신의 자존(自尊)적인 감정이 한낮 가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도 다른 비그리스도인들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요나서는 하나님이 싫다고 도망치면서도 간절하게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첫번째 책이 된다,

 

 

"복음은  모든 도망자들을 추격한다.

혼자 힘으로 선해지려 노력하면서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과

제 멋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을 다 좇는다.

둘 중 어느 방향으로 달아나건 우리에겐 복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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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동행하는 40가지 방법
조태성 지음 / 베다니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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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일체이신 하나님, 그 중에서 한 위(位)이신  성령님에 관한 논란은 많다, 그만큼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성령님에 관해서라면 각자 가지고 있는 신앙과 믿음만큼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성령님이 우리와 일대일의 관계형성을 통해서 맺어지는  일련의 모든것들이 개인이 알 수 있는 성령님에 관한

전부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내가 성령님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 것인가? 는

 이미 저자의 전작들에서 충분히 밝혀지고 있고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전작들에서 말한 내용들과

중복되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책의 내용들은 개인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량과 신학적인  한계 때문에 

모두 수긍할만은 없지만 일단 신학적인 논란은 배제하고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법에 관해서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내용중에서 저자가 초창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물어 보며 행동했던 것은

지나치다 싶은 감이 있지만 그만큼 절박하게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성령의 은사는 받은자만이 알고 체험한 자만이 아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도 있지만 누구에게 일어났던 현상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나타나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방언이나 치유의 은사나 예언등의 은사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성령의 나타남에 관한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3위의 한 분으로 인격적으로 높여 드리면서 그분을 자신이 친구와 대면하여 말하듯이

 친밀하게 함께 교제하며 동행하는 법을 말하고 있는데 저자도 서두에서 이 책의 목적을 그렇게 밝히고

있다. 언어적인 면에서도 성령님을 '성령'이라고 부르지 말고 인격적으로 우대해 드리는 '성령님'이라고

부르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의식적으로 성령님을 찾아야 되는 것'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의미도

이런 뜻이다, 하루의 일상 속에서 밥먹을 때도 일할 때도 공부 할 때도 차를 타고 갈 때에도 생각 속에는

늘 성령님이 곁에 계시다는 의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식기도를 하고 작정기도를 하고 단기간에 하나님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목마른 사람이 갈증을 느끼면 또  물을 찾는 것처럼 다시 그 방법을 찾기 때문에

일상에서 늘.항상, 성령님의 임재의식을 느끼며 살아가야 내 곁에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상시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 성령님께 여쭤보고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삶에서부터 동행하는

삶은 시작되어진다. 방법은 결코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쉬운 방법인데도 성령님께

끊임없이 묻고 듣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첫 책인 [성령님의 임재를 연습하라]가 가장 좋은 책이었던 것 같다,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과 다른 사람들의 실례도 함께 들고 있고 실천적인 조언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법에 관해서 간단하면서도 쉬운 조언들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노년까지 누구라도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함으로 성령님이

먼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닌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대화하고 걷고 식사를 하고 일상의 모든 것들에서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그 분도 그러한 분임을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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