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고요하지 않다 -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 경이로운 생명의 노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최재천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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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고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제대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 뿐이다. (P17)

도시는 시끄럽고 번잡스러우며 숲과 자연은 고요하고 편안하다. 이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했을 뿐이지 자연 속 동물, 식물, 미생물들은 모두 생존을 위해 시각, 청각, 후각 등 환경에 따른 각기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정보교환을 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세균, 아메바,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들조차 소통하고 공생한다.

독일의 행동생물학자인 저자 마를렌 치게가 보여주는 생명체들의 대화와 정보교환을 보고 있자면 저자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숲은 고요하기는커녕 도시만큼이나 다양한 활동과 소통이 일어나는 시끄럽고 활기찬 곳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는 자연의 언어는 놀랍기만 하지만, 그 중에서도 식물의 생존을 위한 소통 방식과 자연의 정보망은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달콤한 즙을 입구에 발라 곤충을 유인하는 주전자풀과 그 주전자풀이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를 먹이로 삼는 대신 그 안에 남은 오물이나 잔해를 청소해주는 왕개미의 공생관계는 무척 흥미롭다. 같은 종만이 아닌 동물과 식물, 식물과 미생물 사이에도 서로의 윈윈을 위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수분을 얻기 위해 암컷 곤충이 수컷 곤충을 유혹할 때와 유사한 화학 전달물질을 방출해서 수컷 흑벌을 속이는 곤충난초처럼 식물 사기꾼도 존재한다고 한다. 숲은 거대한 사회관계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를 가진 의사소통을 통해 생존과 번식을 이루어가는 식물들의 활동은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수동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식물들의 전투가 얼마나 능동적이고 전략적인지 책을 읽는 내내 놀람과 감탄사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너무 재밌기까지 하다.

토끼나 오소리 같은 포유동물의 배설물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고 한다. 건강상태는 물론이거니와 성별이나 짝짓기 준비 정도 같은 개인정보까지 알 수 있는 똥과 오줌을 통해 서로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더럽다고만 생각되었던 동물의 배설물은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유용한 소통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시골토끼와 정반대인 생활방식을 가진 도시토끼를 보면서 선입견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시골보다 훨씬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천적이 적은 도시에서는 집단생활이 적어지고 들판에 사는 야생토끼에 비해 작은 굴에 살며 낮에도 활동하는 도시의 야생토끼들이란. 복잡한 도시환경에 야생동물이 적응하기 힘들거라는 내 생각에서 한참 벗어나있었다. 이 얼마나 유연한 생존방식인가.

‘숲은 전혀 고요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떠올려 보는 숲의 모습은 과거 내가 알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바이오커뮤니케이션(Biocommunication).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합적이고 합리적인 생물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소통방식을 통해 생명이란 얼마나 정교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는지, 여러 생명이 공존하는 숲의 공간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정말이지 너무나도 멋진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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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격언집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임경민 지음 / 노마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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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인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가 1500년 그리스․ 로마의 명언들을 모은 책인 [아다지아]에서 뽑은 격언들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지혜를 담고 있는 이 명언집은 출간된 당시에도 많은 관심을 받고 꾸준히 증보되었으며, 5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책 속 여러 표현들이 여전히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허세와 위선, 사랑과 우정, 가족과 행복, 희망과 미래, 순리와 원칙, 처세의 지혜와 분수 등 총 1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각 주제에 맞는 격언들을 소개되고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회에 통용되는 문구들이 있는가 하면 당대의 시대상이나 문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장들도 자주 눈에 보인다. 격언에 대한 해박한 해설까지 곁들여져 있어 문장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타인을 험담하는 사람에게 동조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말인 호라티우스의 풍자시집에 나오는 ‘Quid rides? motato nomine de te rabla narratur(뭘 웃나, 이름만 바꾸면 당신 이야긴데)’ 같은 문장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특히 우정에 관한 격언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이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친다’는 속담과 같은 의미를 가진 ‘Duos insequens Lepores neutrum capit(다 잡으려다가는 몽땅 놓친다)’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명언도 곳곳에 보인다. 이솝 우화에서 본 것 같은 경구나 요즘 자주 사용하는 ‘Memento mori' ’Spero spera' 같은 격언 역시 눈에 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언어이자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어 같은 로망스어의 근원이기도 한 라틴어는 현재는 교회 외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라틴어는 이러한 격언들 때문인지 의외로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틴어 문구다.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행복해질지, 불행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 보다는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후회하지 않는 길이 아닐까 최근에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서일까. 이 문장이 좌우명과도 같이 되어버렸다.

 

 

오랜 세월 잊혀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책이나 글, 문장은 그만큼의 시간을 이겨낸 이유를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노트에 메모해 놓은 문장들이 빼곡했다. 일상에 지쳤을 때, 실망하거나 지쳤을 때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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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흐르는 미술관 - 큐레이터 첼리스트 윤지원의 명화X클래식 이야기
윤지원 지음 / 미술문화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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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을 가장 섬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예술이다.’(P12)

 

 

책 표지의 저자의 이력부터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 최초 큐레이터 첼리스트로 다양한 시도로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해온 윤지원은 이 책을 통해 명화와 클래식을 조화롭게 엮어 서양 예술사의 큰 흐름을 개괄하고 있다.

 

 

예술이란 그 시대와 문화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진 미술과 음악은 많이 닮아있다. 원시시대 동굴 벽화부터 고대 이집트 벽화, 기독교의 영향이 강했던 중세 종교미술, 십자군 전쟁 이후 종교의 힘이 약해지면서 인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시작된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와 현대 추상미술까지 서양미술의 흐름을 예술사의 큰 틀을 이해하기 좋게 각 시대별로 하나의 주제를 잡아 대표적인 미술 작품과 함께 동시대의 음악 사조를 접목시켜 미술과 음악, 두 예술 모두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그림과 음악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각 장이 시작되는 페이지 하단에 삽입된 QR코드를 통해 해당 장에서 소개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번거롭게 따로 음악을 검색해 볼 필요가 없다보니 편리할 뿐만 아니라 작품과 음악을 함께 보게 되니 기존에 알고 있던 작품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대 이집트 음악을 재현한 라파엘 페레스 아로요의 음반에 수록된 <피라미드 텍스트의 찬가 567>을 들으며 기원전 1275년경 제작된 <후네페르의 사자의 서>를 보면 마치 고대 이집트의 제의 장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두 예술을 함께 들여다보니 미술만큼이나 음악도 시대별로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 종교를 위해 활용되었던 중세시대의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은 후에 조스캥 데 프레의 <아베 마리아>나 오페라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야코포 페리의 막간극 <에우리디케>의 한 장면을 들어보면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만큼이나 음악 역시 입체적으로 변화하고, 주제도 다양해 진 것이 여실히 보인다.

 

 

훌륭한 명화 만큼이나 작자 미상의 세이킬로스의 비문이나 라파엘 페레스 아로요처럼 생소한 음악부터 시대별 음악사조를 대표하는 비발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드뷔시, 현대적 음악을 시도한 에릭 사티까지 다양한 음악은 책을 읽는 내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새로운 장을 시작할 때 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음악이 나올지 기대감이 가지고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미술도 음악도 뛰어난 작품은 그 작품만으로도 큰 감동을 준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면 작품은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 예술을 즐기는 좋은 방법을 또 하나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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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공작소 - 다짜고짜 펜들기
김정희 지음 / 도서출판 큰그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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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멋진 그림을 쉽게 쓱쓱 그려내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샤프 하나만으로 자연스럽게 완성해내는 풍경이나 캐릭터를 보면서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에 따라해 보곤 했지만 펜을 드는 순간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망설이기만 하다가 나는 이런 쪽에 재능이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결국은 포기하곤 했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그림에 대한 흥미는 있지만 소질이 없는지라 직접 그려보려고 도전하진 못하고 장소나 풍경을 스케치한 책들을 수집하고 즐겨 읽곤한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바로 ‘드로잉 공작소’다.
‘다짜고짜 펜 들고 무조건 따라 그려 보세요.’ ‘못 그려도 괜찮아요!’ 라는 뒷면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이 문구처럼 따라 그리는 정도라면 나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묘한 자신감이 생겨 책을 펼치고 오랜만에 노트와 연필, 지우개을 꺼냈다.

 

 

드로잉에 대한 이해와 도구의 종류,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시작으로 유리병, 커피 잔, 핸드크림 같은 간단한 소품부터 남자, 여자의 뒷모습, 책과 화분 같은 단계를 거쳐 아늑한 거실 풍경이나 한가한 푸드 트럭, 카페 풍경 같은 장면 스케치까지 간결하고 도전해보기 쉬운 물건부터 점점 섬세하고 복잡해지는 장면까지 총 50편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매 장마다 그리는 단계별로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순서대로 그려 나가다보면 언젠가 나도 여행을 다니다, 길을 걷다 문득 마음에 와 닿는 장면을 드로잉으로 간직할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림과 친해지는 방법은 무엇보다 매일 한 장이라도 일상이나 간단한 주변 것들을 그려보는 것과 사물을 볼 때 주의 깊게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아직 6단계를 통해 그리는 쉬운 그림조차도 너무 어려워서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아주 간단한 그림이라도 매일 그려보려고 시도하다보니 점점 더 드로잉이 재미있어 져서 저녁이 되면 나도 모르게 책의 다음 페이지를 뒤적거리게 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 요즘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은 것 같아 무척 반갑다. 오늘도 새로운 드로잉 한 장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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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 전집
이솝 지음, 최인자 외 옮김, 로버트 올리비아 템플 외 주해 / 문학세계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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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화책으로 읽거나 이야기로 듣던 이솝우화를 좋아했었다. 특히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서워했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아이들을 위한 우화라고 생각했던 이솝 우화를 성인이 된 후 무삭제 완역판 정본으로 다시 읽어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왜 ‘어른을 위한’ 이솝 우화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이솝(Aesop)이 그리스 우화작가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보다도 더 오래전인 기원전 6세기 초의 인물이라는 점 역시 놀라웠다. 이솝 우화가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지혜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동식물을 의인화한 보편적인 지혜를 담고 있는 경구를 설명하는 이야기’라고 검색된다.
책에 수록된 358개의 우화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이야기보다 새롭게 보게 된 내용이 더 많아 흥미로웠다. 게다가 주해자인 로버트 템플, 올리비아 템플은 텍스트의 원본을 가급적이면 수정하지 않은 형태의 번역을 통해 우화가 담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은 형태의 이솝 우화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 역시 좋았다. 더불어 원전이나 관련 판본, 자료들을 꼼꼼히 검토한 주석 역시 읽는 재미를 더했다.

 

 

‘금도끼 은도끼’의 원전인 ‘나무꾼과 헤르메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하는 ‘북풍과 태양’ 이야기처럼 널리 알려져 있는 우화부터, 가까운 사람의 배신이 훨씬 견디기 힘들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무척 공감이 되었던 ‘나무꾼과 소나무’, 두 명의 정부로 인해 결국 대머리가 되어버린 ‘중년 남자와 정부’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우화도 있다.

 


‘공작새와 학’, ‘애꾸눈 암사슴’처럼 교훈을 담은 경구 같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우화도 많지만, ‘여행길에 오른 디오게네스’처럼 조금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나, 자신의 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제우스에게 애원하는 당나귀들’같이 그 시대 운명에 대하는 자세를 볼 수 있는 우화도 여러 편 보여서 이솝 우화가 쓰여진 시기의 사회상 역시 엿볼 수 있었다.

 

 

도덕적이거나, 교훈을 주거나, 어떨 때는 냉혹한 현실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냉소적일 때도 있는 짧으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358편의 이솝 우화와 이야기 끝에 덧붙여진 교훈은 기대 이상의 재미와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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