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 내 안의 힘을 발견하는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24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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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의 24번째 시리즈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찬국 교수와 함께 에리히 프롬을 만나는 시간이다. <사랑의 기술>,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 등의 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에리히 프롬은 대중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철학자이며 ‘사랑의 철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인 사랑, 자유에 대한 프롬의 사상은 여타의 어렵고 난해한 철학보다 조금은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삶에 대한 큰 화두를 던진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중심으로 박찬국 교수가 펼쳐내는 에리히 프롬의 삶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철학적 이론 뿐만 아니라 비판적이면서도 독립적이고 종교적, 철학적, 심리적인 다양한 통찰을 폭넓게 수용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모습을 통해 프롬의 사상을 조금 더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자유란 무척 중요한 가치이고 당연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념이다. 중세의 왕정, 국가권력, 교회권력에서 해방되어 현대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프롬은 오히려 제도적인 권위와 지배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고독과 무력감에 대한 불안 등의 이유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프롬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네 가지 방법으로 마조히즘, 사디즘, 네크로필리아, 기계적 획일성을 들고 있다. 속박이나 지배를 통한 관계를 통해 안정감을, 정치적 권위나 상업적 가치에 수동적으로 따르며 내면의 무력감과 불안감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를 진정한 자유에서 도피해 거짓된 자유에서 편안함을 찾는다는 말한다.



결합과 합일, 초월과 창조, 지향의 틀과 헌신의 대상, 프롬이 말하는 인간 고유의 세 가지 욕망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존재와의 결합과 합일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고 본다. 정치적 집단에의 예속, 종교적 교리에 대한 광적인 집착, 우상 숭배 같이 욕망을 어긋난 방향으로 해소하는 형태가 바로 자유로부터 도피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독일에서 나치즘이 대두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불안하고 낯선 세계에서 도피하여 강한 힘을 가진 공동체에 속함으로써의 안심을 얻고자 하는 심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프롬의 시각으로 본다면 슬프게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아니 과거보다 더 병든 욕구가 지배하는 사회로 보일 지도 모른다. 현대 자본주의의 시대는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여가 시간 역시 많아졌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과거 보다 더 분리되고 서로간에 소외되어 있으며 고독하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파가 점점 더 영향력을 넓혀가고 물질적 탐욕 역시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 지위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생각에 갇혀 결국 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이 생각하는 자유란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욕망들을 이성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연대, 미덕을 실천하고 사랑과 책임감, 관심을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구현해야 할 덕으로 보았다. 프롬은 우리에게 소유욕과 탐욕에서 벗어나야하며,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책임감과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를 살아가며, 참된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끝없이 수양하라고 말한다.



사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프롬이 제시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삶이란 소유양식과 존재양식 양쪽 모두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고, 수도자와도 같은 수양은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쉽지 않으며, 게다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사회구조의 변혁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과 자유를 말하는 프롬의 글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에게 있어 자유란 과연 무엇인지, 현대인들의 고독과 불안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과학의 시대인 지금에도 왜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할까. 아마도 자기자신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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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빛 그림 아이
숀 탠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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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우연히 방문하게 된 작은 서점을 둘러보다가 인상적인 표지에 끌려 나도 모르게 펼쳐보게 된 숀 탠 작가의 <도착> 때문에 여행 중에 무거운 짐을 늘리지 않아야 한다는 평소 생각과 그래도 이 책은 사야해라는 강한 욕망 사이에 한참 망설이다 결국 책을 손에 들고 서점을 나선 기억이 난다. 그 이후부터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이가 바로 숀 탠이었고, 지금도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무척이나 기대하며 기다리곤 한다.



<개>는 전작인 2020년 영국의 케이트 그린어웨이를 수상한 <이너 시티 이야기>에 수록된 스물다섯 동물들의 이야기 중 하나인 개의 이야기를 별도의 그림책으로 출간한 책이다.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를 담은 이너 시티 이야기 속 여러 외롭고 쓸쓸하고 때로는 다정하고 먹먹한 이야기 중 강렬한 이미지와 긴 여운을 남겼던 개의 이야기를 좀 더 큰 사양의 하나의 책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반가웠다.



수많은 반려동물 중에서도 개는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 중 하나이다. 약 1만 2천년 전부터 개와 인간이 함께 했던 기록들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인류의 오랜 역사를 사람과 개는 함께 걸어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의 학명은 Canis lupus familiaris이다. 가족을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가 아종명으로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개는 인간과 친밀하고 안정감을 주는 동물이다. 개와 함께 함으로써 삶의 행복이 커진 사람의 이야기, 함께 했던 사람을 잃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개의 이야기.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존재인가 여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숀 탠의 <개>는 이런 사람과 개의 유대감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서로를 잘 모르고 서로를 적으로 인식했던 때의 각자의 고독과 두려움, 그러나 서로는 좀 더 다른 관계를 원했고 가까워지고 나란히 함께 걸어간다. 여러 이유나,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제약에 의해 헤어지기도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긴 시간, 꽃이 피어나는 따뜻한 장소에서도,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서로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다시 함께다. 나날이 변화하는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함께라면 외로움도 두려움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단순하고 동일한 구도 속에 변화하는 위치와 풍경, 색감을 통해서 변해가는 개와 사람의 관계를 표현한 숀 탠의 그림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을 그려내는 것일까 매번 감탄하는 사실이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 세상은 우리 거야!’라고,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겠지만 함께 걸으며 이렇게 외칠 수 있다면 오늘을, 그리고 또 내일을 조금 더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반려동물을 좋아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만난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위안과 힘을 주는 이야기였던 <개> 다시금 숀 탠이라는 작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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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 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수지 호지 지음, 이지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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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조 행위의 시작은 파괴 행위다.’ 파블로 피카소의 이 말은 현대 미술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앙, 미, 전통적인 가치를 담고 숙련된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오랜 수련의 시간이 필요했던 전통적인 미술과 달리 현대 미술은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과거의 양식과 관습을 파괴하며, 기술보다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내면과 주장을 다양하고 파격적인 방식과 재료, 형태로 표현한다.



하지만 일단 현대 미술은 어렵게 느껴진다. 상징과 기호의 의미를 알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대체적으로 읽어내기 어렵지 않은 고전작품들에 비해 새로운 기법과 독창성으로 표현된 현대 미술은 예술가의 내면, 의도를 알지 못한 상태로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이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레디메이드(기성품의 미술작품)’라는 개념을 창안한 마르셀 뒤샹의 <샘>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은 당황스럽다 였다.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 시판하는 소변기에 서명을 하고 전시를 함으로써 기성품이 예술품으로 변화하였다.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발상이다.



그와 동시에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예술 혹은 미술이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예술’이라는 단어는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창조 활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술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듯 단어에 담긴 의미도, 미에 대한 정의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



1850년부터 현재까지, 인상주의부터 입체주의, 다다이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디어아트, 설치 미술과 퍼포먼스, 참여형 예술까지 <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속 미술 세계를 뒤흔든 현대미술, 동시대 미술 50점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미술계를 변화시킨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과 작가들의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고 참신한 발상을 통해 만들어내는 세계는 기이하게, 때로는 도발적이거나 전복적인 방식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에두아르 마네, 파블로 피카소, 피에트 몬드리안,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이브 클랭, 쿠사마 야요이, 데미언 허스트, 애니시 커푸어, 뱅크시까지 과거에 비해 훨씬 개성적이고, 복합적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표현해온 예술가들에 의해 현대 미술, 동시대 미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과거 작가에 의해 창조된 작품을 감상하는 위치에 있었던 관객은 이제 작가와 함께 예술작품을 완성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최근 리움미술관의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에서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던 이브 클랭의 강렬한 파란 색과 신체를 붓으로 변화시킨 인체 퍼포먼스는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솔직히 어렵지만 그 강한 인상은 오래 남아 계속 작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데미언 허스트의 죽은 동물을 이용한 설치미술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 중 가장 직접 관람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죽은 상어가 떠 있는 포룸알데히드 탱크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과연 두려움과 덧없음 중 어떤 감정이 더 깊게 다가올 것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산업화는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고, 그에 따라 예술을 향유하는 방법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디지털 혁명과 글로벌화와 함께 미술의 표현과 방법은 더욱더 넓어져갔다. 현대 미술은 때로는 격렬한 반발을, 때로는 엄청난 찬사를 받는다. 환호, 분노, 충격, 경악, 비판, 작품에 대한 반응의 방향을 각각 다르지만 현대미술이 예술을 좀 더 넓게 확장시켰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현대 미술이 시대별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작품과 시대상을 통해 들여다보며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현대 미술 작품을 어떤 방식과 마음으로 마주해야 하는가,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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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어들 - 전설 신화 속 신비한 인어를 찾아서 고래동화마을 11
차율이 지음, 가지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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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해에서 사람을 구해주기도 하고, 은혜를 갚기도 하고, 때로는 유혹을 하고, 심지어 먹으면 불로장생을 한다는 세계 곳곳에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어. 인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다. 스타벅스의 로고이기도 한 세이렌, 인어고기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일본의 설화 등 다양한 인어 이야기들이 생각나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인어 설화는 조금 생소했다. 한국에 인어 전설이라고? 랄까.



이미 인어 동화책을 세 권 출판한 동화작가 차율이와 동양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가지 작가가 함께 엮어낸 <한국의 인어들> 목차와 후기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도 이렇게 많은 인어에 대한 전설과 민담, 설화들이 전해져왔구나 하고 새롭게 다가왔다. 심지어 최근 영화로 개봉되기도 해서 익숙한 조선시대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인어에 대한 글이 남아있다고 한다.



어유야담의 ‘김빙령과 인어’를 시작으로 총 10가지 인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국 인어는 해를 끼치기보다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하는 겁 많고 마음씨 착하며, 도움을 받으면 꼭 보은을 한다. 인어와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순박하고 착한 이들이다. 어부에게 잡힌 어린 인어들의 눈물을 보고 바다로 돌려보내주기도 하고, 굼들에 찾아오는 인어들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다툼과 경계 없이 조화롭게 살아가기도 한다. 어부들에게 잡혀 팔려가려던 인어를 구해주었던 어부는 알고보니 용궁의 인어공주였던 인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 선행과 호의는 역으로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로 돌아오게 되는 법이랄까.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거문도에 전해 내려오는 <신지께가 된 은갈치>가 제일 눈길이 갔다. 인간이 되고 싶어 100년간 미역만 먹으며 물속에서 인간처럼 생활을 해야 했던 은갈치는 큰 태풍이 오는 날 한번 쯤은 용왕님도 모르실 거야 하는 마음에 눈을 뜨고 자는 바람에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하고 반인반어로 남게된다. 비록 인간이 되지 못해 슬펐지만, 정이 들었던 어부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도 그들을 계속 도와주던 은갈치는 결국 거문도의 수호신인 신지께로 불리게 된다. 한 번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교훈도 담겨 있지만, 처음 원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분 좋은 결말이다. 쑥과 마늘만 100일간 먹어야 했던 웅녀보다는 미역을 먹어야했던 은갈치가 조금은 나았으려나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암. 감히 미천한 인간이 넓디넓은 바다의 깊은 속을 어찌 휜히 다 알 수 있겠는가.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닌 게야.” (P130)



자산어보에 인어에 대한 항목을 수록하려고 하자 실제 본 적이 없는 인어를 정말 추가할 것인지 묻는 창대에게 한 정약전의 대답이다. 그렇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만을 믿는 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인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깊은 바다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어본다면 세상은 좀더 넓어지고 훨씬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한국의 인어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의 지혜와 마음 착한 이들의 좋은 이야기를 통해 오랜만에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동화책은 어린시절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언제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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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괴수괴인 도해백과
고성배 지음, 백재중 그림 / 닷텍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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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강렬하다. 옛날 만화 잡지에서 본 것 같은 이 컬러풀하고 개성적인 괴수괴인들은 대체 누구인가. 대체 이 책 안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인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텀블벅 펀딩을 통해 전세계의 악마, 마물들을 모아놓은 ‘검은사전’, 한국 고문헌 속에 등장하는 이상한 식물사전 ‘괴초록’, 조선 민간 부적들을 모은 ‘잃어버린 조선의 부적들’ 같이 제목만 봐도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색적인 책을 출판하는 닷텍스트(구 더쿠)는 매번 어쩜 이렇게 독특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신기해하며 다음 책을 기대하게 만드는 출판사다. 타이밍을 놓치면 구하기 힘들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한국 요괴 도감’, ‘동양 요괴 도감’같은 책들은 전국 서점 어디에서나 구매할 수 있게 되어 드디어 이런 장르의 책도 점점 더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즐거워하던 차에 이번 역시 무척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이름하여 <전격해부 SF 괴수괴인 도해백과>. 초기 SF영화에 등장하는 괴수, 괴인 50종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괴수괴인들의 드로잉, 생태, 도해 각부 명칭 등을 통한 각각의 특징, 배경 등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등장 영화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금성수, 바란 등 12종의 괴수, 아스트론델타인 같은 16종의 우주괴인, 모울맨, 아토믹 몬스터 등 22종의 지상괴인까지 1910년부터 1970년대 영화나 시리즈물에서 등장하는 괴수들의 탄생배경, 피해자, 약점, 은신처 같은 상상력이 흠뻑 가미된 정보들을 담은 재미있는 설명과 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괴인괴수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작품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만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50편의 작품이 다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책 구석구석 꼼꼼하게 볼수록 더욱 재미있다. 식집사가 될 수 있는 식인식물 오드리 주니어를 키우는 방법이나 골렘 제작 요령을 진지하게 읽고 있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계속 눈길이 간다. ‘우주에서 온 10대’라는 1959년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직 10대인 호전적 외계인 토르가 지구를 침략한 이유가 거대 랍스터인가 싶은 모습의 별미 괴수 가곤을 키우기 위해서라니, 고전영화 상상력 너무 멋지잖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고전작품에 등장하는 괴수, 괴인은 그로테스크하고 무섭다기보다는 어딘가 묘하게 귀엽다는 느낌도 든다. CG나 그래픽 기술이 뛰어난 지금의 괴물과는 달리 많이 어설프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억 속 향수를 자극한다. SF영화나 특촬물에 등장하는 괴물이 실존한다면 어떤 구조를,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글과 책 디자인을 담당한 고성배 에디터와 일러스트레이터 백재중 작가의 협업이 만들어낸 마치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괴인과 괴수의 세계를 통해 순간이지만 어린 시절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이것이 진정한 레트로의 세계인 것인가.

과거 만화잡지를 보는 것 같은 레트로 감성이 가득한 편집과 매 장마다 다른 구성, 심지어 8~90년대 문방구에서 볼만한 딱지놀이, 미니보드게임, 종이인형 같은 레트로 게임들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친구와 진지하게 늑대인간 딱지놀이를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니. 최고다.



책 한권으로 고전 영화, 레트로 게임, 괴인괴수에 대한 궁금증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재미와 정보, 게다가 레트로한 감성까지 모두 잡은 <전격해부 SF 괴수괴인 도해백과>.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옷은 건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독특한 소재를 아카이빙한 책들이 계속 출판되기를, 닷텍스트의 롱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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