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거슬러 내가 혼자 독립을 한 첫 집은 첫 알바 근무지에서 이러쿵 저러쿵 모아서 얻은 서울시 대방동 반지하방이다. 하다하다 쥐가 하수구 구멍으로 올라와서 방까지 침입한 집이었는데 내 다시는 지하에는 안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래서 그 다음집은 단독 주택에 2층, 사실상 옥탑인데 테라스도 있고 꽤나 컸지만 삼각형 모양이라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지는 않아서 꼭 다락방이라 해도 괜찮은 집에 살며, 비스듬한 천장이 겉보기에는 예쁘나 살기에 그리 적합하지는 않다고 깨달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탑층도 아니고 지층도 아닌 중간층에 살겠다고 마음을 먹은거 같다. 그 이후로 서너번의 이사를 더 했고, 지금 사는 집을 고를 때엔 명확한 기준이 생겨 있었다. 중간층이며 계단식일 것, 걸어서 갈 수 있는 산책로와 산이 있을 것, 앞뒤로 2차선 이상의 도로를 끼고 있지 않을 것, 남향이며 창이 커서 바람이 잘 통할 것. 그렇게 내게 딱 맞는 집을 구했다 하더라도 이 집이 내가 사는 집이 되기 까진 많은 난관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연 설명이 더 없어도 아시리라 생각한다. 그렇듯 집은 한 사람의 이야기와 취향을 모두 반영한다. 집에 가보면 깔끔한 사람의 종류도 분별이 가능하다. 쓸고 닦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정리정돈만 좋아하는 사람인지, 위생개념이 뛰어난 사람인지. 결혼도 하고 보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배우자가 최선이 아니였나? 하고 헷갈리는데ㅎㅎ 집도 내 깐깐함을 다 끌어모아 실용적인 집을 구현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선택에 후회를 하기도 하는 법. 내 다음번 집은 주인공 이안과 같은 건축가를 모셔와서 짓고 싶다는 마음이 싹튼다. 다음 번에 살게 될 집은 지금과 또 다른 그림을 꿈꾸며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집을 향한 꿈을 모아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재미있고 기발한 #이안의멋진집 을 선물하고 싶다 #이안의멋진집 #오늘책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호수: 어려운 만화책인데 영화책 같기도 해, 그래서 이 책은 그래서? 같은 책이야. 왜냐하면 흥미진진한데 뚱딴지 같아. 무슨말인지 모르겠는데 귀여워. 그래서 자꾸만 그래서? 라고 묻게 되는 책이야. 엄마: 뭔소리야..... 그게? 호수: 그래 그거다 엄마! 뭔소리를 하는건지 몰라서 일백이천번 보고 싶은 책. 편집자님의 말처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전개의 #레몬타르트와홍차와별들 을 읽은 독후감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딸아이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돌아온 이야기가 마치 독후감쓰기에 숙련된 독자의 100자평 같아 나를 띠용하게 했다. 아이의 말 속에서 얼토당토 않지만 한번은 꿈꾸어 보았음직한 우리의 모험심을 발견한다. 안정감이 있는 삶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편안함이지만 우리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해방감을 느낄때에 비로소 행복의 방점을 찍기도 하니 말이다. 간혹 무모함은 용기로 피어나곤 한다. 모르는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랬거늘 모르는 사람이 꼬깔모자를 쓴 요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법, 요정이 인도하는 대로 아득한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 일상에 밀접하게 교류하는 사람과 개가 함께 한다. 내가 가장 좋았던 점은 이상한 나라에서도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들이 변하지 않고 내 곁에 함께라는 것이다. 책 속 메세지를 찾아 n차 정독을 하다보면 매직아이보다 정교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그림에 또 한번 매료된다. 그리고 눈썰미 좋은 꼬마에게서 퀴즈를 하나 받았는데 악어와 생쥐가 몇번 등장하느냐는 것이다. 철학적 수수께끼와 함께 숨은그림 찾기도 함께 해보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오후의소묘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은, 는, 이, 가에 동그라미를 치며 핵심을 못찾는 학생이었다 해도 딱히 내세울것 없는 내게 최고의 치장은 필통과 그 속 내용물이었다. 연예인 굿즈(그땐 굿즈라는 말이 없었는데 뭐라 불렀지?)나 패션으로 멋을 부리는 등 각자의 깔롱 중에 나는 필기감이 좋은 볼펜을 찾아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고, 머리에 들어가는 공부보다 형형색색과 가지런한 필기형 학습에 열정을 불태우는 쪽이었다. 문구소설집이라는 재미있는 장르의 이 책은 학교 속에서 문구라는 매게를 가지고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었다. 문구류에 대한 추억이 있는 성인독자들이 읽어도 좋을 이 소설은 표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가늘게 부서지는 섬세한 감정의 선을 아기자기 담아냈다. 그 속에 있을 때는 큰 동요였지만 지나고 꺼내어 보면 더 없이 풋풋한 청소년기 일기 같은 이야기들에서 내 공감의 포인트를 찾아가며 읽어보면 좋겠다. #올리브색이없으면민트색도괜찮아 는 덕선이가 독서실에서 책과 필기구를 정리하고 시간표를 열심히 짠 뒤 깊은 잠에 빠지는 장면을 마주했을 떄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만약 당신이 응답하라 1988에서 그 장면에 가장 내 가슴에 와 박혔던 누군가라면 이 책과 함께 가을의 독서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연필 뒤에 칼집을 내어 이름을 쓰고, 모나미 볼펜의 똥을 닦고, 모나미 볼펜에 몽땅연필을 끼워 써본, 일제 펜의 필기감에 환호했던 그 시절 우리의 낭만에 건배를 건네는 책을 만났다. 고맙습니다 #돌베개 #호수네책 #책이야기
소수의 쪽에 서는 것에는 어떤 용기가 필요하고 그 배후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을까? 아이들의 행동을 도덕의 잣대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내 아이가 무리를 짓는 것을 목격한 이후 부터이다. 좋지 않은데 좋다고 하기도 하고 싫지 않은데 싫다고도 했다. 뚜렷한 선동자는 없지만 웅성거리는 동요는 동조가 되었다. 내 마음의 진실은 꽁꽁 감추고 내가 다수에 섞이지 못하게 될 초조함이 담긴 눈동자들을 보았다. 나는 아이들의 깊은 마음이 궁금했지만 아직 그 열쇠는 찾지 못했다. 잘 이해되지 않고 납득이 어려운 사람을 인정하기 어려울 때에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내 마음에 더이상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틈을 없애버린다. 다시 말해 이상하다는 말은 다름을 인정하기 싫을 때 쓰는 완곡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가르침으로 가능할까? 나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보다 다름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지 거듭 생각해본다. 물론 내가 그 독특한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도 말이다. 다양성 존중을 마땅히 알고는 있지만 내 사고에 대입해서 특별한 사람에게 이타적인 마음을 가진 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카의왼손 속 별난애가 된 미카와 그의 짝꿍이 된 유리의 이야기는 소수의 편에 서서 대변할 용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라고 말하던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와 그의 친구 최수연이 함께 보이는 책을 만났다 #북뱅크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나는 책에 있어서 권장연령의 중요성을 염두해두지 않았었다. 특히 그림책의 경우엔 내용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림만으로 충분하다는 아둔한 생각을 해왔다. 나는 꼬마가 긴글밥의 책에 관심을 조금씩 갖기 시작하고 나서야 허겁지겁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으로 분류된 책들을 찾았다. 그리고 작년부터 꼬마가 노는 시간에 나는 그 곁에서 소리내어 책을 읽었다. 책을 멈추면 다시 플레이 하라고 닥달했다. 오디오클립을 듣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긴 글책으로 확장을 꿰하였다. 본인이 듣기에 재미난 소재의 책은 금새 알아 차리고선 노는 것을 멈추고 어느새 곁에 뽀짝 앉아서 책을 들춰본다. 학년별로 나뉜 권장연령이 아닌 개인의 취향과 발달에 맞게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 즐거움과 닿아있다. 어떤 연령과 학년이라 해도 조금씩 긴 글밥의 책에 흥미를 보이는 단계에 와 있는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필통속에 옹기종기 모인 연필들_전지적 연필시점에서 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들에 빨려 한 숨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읽어버렸다. 순수한 상상력의 결정체 같은 #까만연필의정체 를 읽고나면 전편 #깊은밤필통안에서 를 읽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긴 글 책에도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길것이다. 나는 암만 다독을 해도 생기지 않는 그 상상력이라는 것은 어디서 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 오는지 알수만 있다면 나도 아이에게 이런 기발한 이야기를 책이 아닌 내 마음을 통해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과욕을 부릴 만큼 기똥차게 귀여운 책을 만났다. 고맙습니다 #비룡소 #호수네책 #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