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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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과 같은 PC통신이 처음 들어 왔을 때, 왜 그곳에서 새로운 해방감을 느낀 것일까? 나는 나인데 또 다른 내가 되어보는 것. 익명성으로 갖게 된 자유는 진솔한 이야기 하게 했다. 보여지고 싶은 모습과 보여져야만 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아주 깊이 했던 것 같다. 어떤 것도 남과 비교되지 않고 오직 손가락 끝에서 나와 키보드를 또각또각 눌러 전달되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서로를 알아가는 경험은 공평하고 정정당당한 게임처럼 느껴졌다. 재단이 불가능한 주관적인 관점을 은근히 수치화하는 세상에서 벗어난 일탈이기도 했다. #고요한우연 은 내가 겪어온 그 시절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청춘들에 양은냄비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넘치지 않을뿐 뚜껑을 들추면 저마다에 온도로 끓고 있는.

우정을 구걸하지 않고 고고한 척 보이려 애쓴건 외로웠기 때문이다. 쎈 척 했던건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트릭이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칭칭 감겨있던 나를 달래기 위해 이제와서 청소년 문학을 읽는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다시 질풍노도에 시기로 돌아간다면 어중간한 위치에 머무르며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있는듯 없는듯 될 수 있는한 고요하게. 이 소설 속 주인공 수현은 내가 바라던 가장 보편적인 고등학교 1학년에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열심히 흔들리고 적당히 유연하며 때로는 맹렬하고 끈질기게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지 탐구에 시간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시절. 덧없는 것이라곤 하나 없이 매 순간 부셔지고 깨지며 견고히 빚어지는 청춘에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피가 뜨거워진다.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관계를 넘나들며 외로움에 관점을 다양하게 다루는 #고요한우연 은 반짝여야만 빛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읊조린다 #문학동네 #호수네책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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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상상하면 거꾸로 노란돼지 창작동화
공수경 지음, 지우 그림 / 노란돼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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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왜 다 비밀로 해?” 이 말에 의미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여행이나 만남이 동반되는 약속은 비밀리에 진행한다. 꼬마들이 포함된 약속은 늘 변수가 따르기에 그 순간을 대비한 방편이다. 취소되어 버린 약속 앞에 아이가 터트리는 실망스러운 감정을 지켜보는 것이 버거웠다. 이 버거움 역시 감정에 쉬이 동요하고 깊이 이입하는 내 탓이 컸다. 별말 없이 동조해 주던 남편은 넌지시 말을 꺼냈다.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타인의 상황과 아쉬움을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는 태도까지도 아이 몫으로 남겨두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무엇을 할지 계획하고 기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 또한 여행과 만남이 주는 큰 즐거움인데 그것을 내가 지레 차단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노파심조차 월권이 아니냐는 그에 말에 오늘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남편과의 대화는 대련이 아닌데 왜 난 늘 지는 기분일까)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내가 아이에 감정마저 인터셉트해서 편집하고 있었다. 고대하는 마음이 클수록 이상하게 어그러져 버리는 상황이야말로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낸 긴장 징크스였다. 

부풀었던 만큼 힘이 풀리는 경험을 거듭하다 보면 다음번엔 마음에 반만큼은 덜어내고 기대한다. 준비한 만큼 내 역량을 다 펼치지 못하게 될 걱정이 앞서지만 기량을 펼쳤을 때 오는 뿌듯한 경험이 쌓여 강단도 담력도 생긴다. 오류를 고치고 꼬인 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중첩되면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엄마, 거꾸로 주문이 결국 뭔지 알아? 그건 노력이야. 잘해보려는 노력. 그게 거꾸로 주문을 만들어 낸 거야.” 아이가 건네는 한 줄 평 이 내가 장황하게 늘여서 쓰는 수백 자에 글보다 낫다. 우리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 액땜했다는 말로 부정을 위로한다. 꿈은 반대라는 말을 끌어다 붙여 뒤숭숭한 마음을 애써 눌러본다. 징크스란 도약을 위해 도움닫기에 필요한 구름판이다.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어퍼컷을 제대로 먹은 허점 투성이지만 내 마음을 까발린 덕분에 징크스 하나가 깨졌다. 오늘도 마음에 크고 작은 바람들을 끌어안고선 펄럭이고 있을 모든 어린이들에게 징크스는 깨져야 제맛이라고 또박또박 경쾌하게 들려주는 책을 만났다 #노란돼지 #호수네책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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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 레이디 1 - 최고의 선생님을 구하라! 런치 레이디
재럿 J. 크로소치카 지음, 장혜란 옮김 / 시공주니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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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꼽고 싶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남성에게 치중되어 온 탐정 캐릭터를 영양사 선생님+흔히 볼 수 있는 여성으로 그려낸 점이다. 고착화 된 캐릭터에 반대의 성을 대입하는 것은 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자연스럽게 허무는 경험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어딘지 모르게 많이 허술한 만능형사 가제트가 있었다. 그에게 다양한 무기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힘이 되었던 것처럼 런치레이디에게도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주방템을 엄선해주는 조력자 베티가 있다. 베티 역시 급식실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 역시 신선한 부분일뿐만 아니라 개인이 저마다 저장하고는 있지만 직업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재능을 어떤 식으로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악당으로 등장하는 인물 또한 자신에 장기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사례를 보여줌으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소재가 참 많은 책이라 느꼈다.

이 책이야 말로 전적으로 꼬마의 선택으로 읽게 된 노블이다. 아이는 책을 덮자마자 아이는 너무 짧아서 괴롭다고 말했다. 다음 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말이다. 맞다. 나도 읽어보았지만 꽤나 긴 추리만화를 보아왔던 어린이들에겐 호흡이 짧은 감이 있다. 대신 이 책은 이제 막 만화에 입문한 어린이들이 완독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분량이다. 짧은 문장과 어지럽지 않은 구조에 이야기가 담백하지만 기약을 남기는 것으로 맺음 되어 다음편에 대한 기대를 자꾸만 갖게 한다는 점도 장점이라 하겠다. 한편 안에 속고 속이는 여러가지 트릭이 반복되는 탐정물을 다소 어렵게 느끼는 친구들에게 권하면 더 없이 좋을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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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깨비가 듣고 있어 북극곰 이야기샘 시리즈 7
김정민 지음, 은희 그림 / 북극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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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돌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혐오, 어떻게 하다 세상이 이렇게 까지 각박해졌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노키즈존처럼 타당한 이유없이 아이를 거부하는가 하면 맘충이라는 말이 떠돈다. 고양이, 비둘기 밥주지 말라는 경고문도 모자라 층간소음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연대까진 아니라도 최소한에 연민 조차 사라진것 같아 아릿하다. 하지만 이런 어린이 책들이 있어서 희망을 본다. #쉿깨비가듣고있어 는 빡빡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인간을 비롯한 생명들에게 아직은 살만하다고 위로를 건내는 책이다. 우리 생활 반경내에 머무르고 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숨쉬고 있을지도 모르는 외로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고소한 향기와 낮은 목소리로 전한다.

엄마인 나는 노인이 등장하는 동화를 좋아한다. 파스향을 할머니, 할아버지 냄새라고 기억하며 자란 세대의 내게는 아직도 향수와도 같은 장면들에는 항상 조부모님이 함께이다. 나는 서른살까지도 할머니에 쌈짓돈을 용돈으로 받은 귀염둥이 막내 손녀였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할머니는 늘 부끄러운 존재이자, 나를 굉장히 예뻐해주지만 매일보는 동네 이모보다는 쑥스러운 사람이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마음도 만만치 않게 널찍하게 떨어져버린 아이의 마음속에 할머니에 푸근함을 심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엄마인 내가 채워 줄 수 없는 맹목적 사랑에 깊이를 알게 되길 바라는 책을 만났다.

더하여! #북극곡이야기샘시리즈 는 그림책 맛집 북극곡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어린이문학 시리즈이다. 쉿! 깨비가 듣고 있어를 비롯하여 현재 7권에 책이 출간되었고 번역본 없이 국내작가들에 순수 창작동화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가 긴 글밥을 시작하는 시점이라면 꼭 한번 찾아 읽어보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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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 - 2020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작 반달 그림책
오세나 지음 / 반달(킨더랜드)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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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세개의 전쟁, 기후 디스토피아>가 겹친다. 왜 책을 보면서 자꾸 다큐나 시사를 떠올리게 되는걸까, 나는 이 책에서 오세나 작가님이 전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것이라 느껴졌다. ’사소하다 치부하거나 외면하지 않을 것! 그리고 의식을 지속할 것‘ 내가 #빙산 에서 느낀 정확한 메세지이다. 문학도 매체에서도 어쩌면 모든 문화 전반에 기후위기가 대두되고 있는 이유는 심각성이라는 점을 왜 자꾸 망각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문명의 발달이 당장에 내 삶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었디. 무너져내리는 빙하를 보면서도 당장 내 집 뒤에 산이 무너질거란 가정은 대입해보지 않는 경솔함이 조금씩 우리를 향해 오고있다. 그것은 재앙이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가책이 쌓이듯 빙산은 더 큰 빙산이 된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에라이! 모르겠다.’ 모른척 하는 마음에 소리가 들려오고 동시에 얼음도 녹아내린다. #빙산 은 몹시 역설적으로 빙산에 활기를 더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독자는 되려 위기감을 느끼고 긴장하게 된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양심이란 것이 움직이는 지점이다. 이 글 없는 그림책은 글보다 더 뚜렷하고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전한다. 빙하가 녹고 있다고! #킨더랜드반달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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